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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게이들은 안 그러겠지만 정치 저관여층 또는 중도층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무슨 차이가 있냐"

"새 정부와 현 정부의 정책 차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지난 5년 건설 현장에서 내가 봤던 변화 3가지를 정리했다. 내 생각으로는 같지 않은 것 같다. 

 

1. 산업재해가 일어났을 때

 

2019년 이맘때였다. 천안에 빨리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였다. 한 40명 정도 되던 팀원 전원이 새벽을 달려 천안까지 갔다. 2층인가 3층인가 안팎의 거푸집을 한꺼번에 해체하는 작업이었다. 한 팀은 안에서 보를 중심으로 해체하고 한 팀은 밖의 거푸집들을 해체해야 했다.

 

거푸집 뜯는 법을 가르쳤던 사수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담배를 물며 인상부터 썼다. 그 이유는 조금 읽다 보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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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를 서포트로 세워둔 사진이다. 그런데 저 쇳덩이들만 딸랑 세워 놓으면, 콘크리트를 부어 넣으며 바이브레이터를 흔들 경우 세워둔 서포트들이 옆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래서 파이프를 묶어준다. 이걸 후리도메(미안하다. 지식인이 아니라;;; 업계 용어를 그냥 쓴다. 우리도 현장에서 그냥 일케 써서;;;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내가 더 똑똑해지면 차츰 편한 용어로 다가가겠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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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램프로 파이프와 서포트를 묶어준다. 중간에 파이프들끼리도 연결해주고, 가장자리도 위 사진의 왼쪽처럼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이건 대기업 아파트 현장 이야기다. 일반 상가나 빌라 같은 현장으로 가면 아래 같은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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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 3mm인 10번 반생(철사)으로 서포트와 파이프를 묶는다. 그것도 묶기 좋다고 서포트 높이 맞추는 구멍 안에 저 얇은 철사를 넣어서 묶어 놓는다.

 

사수가 담배를 물고 인상을 쓸 만했다. 우리가 밟고 작업해야 할 파이프들이 조금의 충격이라도 있으면 바로 끊기는 놈들로 묶여 있었다. 저 힘도 안 받는 10번 반생이를 서포트 구멍에 넣어서 파이프들을 고정했던 것이다. 조금 신경 써서 만드는 곳은 그래도 조금 더 굵은 6번 반생이로 해놓는다. 보는 천정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당연히 높은 곳에 있다. 그 높은 곳에 있는 걸 뜯으려면 목수들이 서포트 넘어지지 말라고 후리도메로 매어둔 파이프를 밟고 올라가야 한다.

 

사실 그때 내가 속해 있었던 팀이 선호하던 방식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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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 비계(Built-up Type 비계, 이동식 비계) 두 개를 파이프로 묶은 다음,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뜯는 것이다. 사진처럼 저렇게 일하는 거는 불법이다. 산업 재해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놀랍게도 사망 사고가 가장 많이 벌어지는 높이가 1.6~3미터 정도 높이에서의 추락이다. 바로 저 높이.

 

안전 난간대 같이 추락을 막아줄 수 있는 것도 하나 없이 일하는 것이니 조금이라도 규모가 있는 현장이라면 안전관리자에게 모조리 다 끌려가 안전교육을 받아야 할 일이다. 그런데 저렇게 하면 빠르게 뜯는다. 내가 속한 팀은 주로 일정 시간 내에 끝내야 팀장(오야지)이 돈 많이 버는 도급일을 했기 때문에 보 뜯을 때는 주로 저런 식으로 했다.

 

그날 그 현장에선 서포트를 풀면 안 됐다. 그러니 어떻게든 얇은 철사로 묶어놓은 파이프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파이프와 서포트를 묶어놓은 철사가 끊어지면서 그날 점심 먹기 전까지 세 명이 떨어졌다. 다행이라면 그 셋은 자기가 일하던 곳 앞이 끊어지는 바람에, 적어도 떨어지는 것을 인지했던 터라 알아서 뛰어내릴 수 있었다. 물론 셋 다 중앙아시아에서 온 20대들이라 운동신경이 좋았던 것도 있다.

 

그런데 점심시간을 보낸 후 일을 시작하자마자 사수가 추락했다. 뒤쪽으로 파이프가 끊어지는 바람에 볼 수 없었고, 뒤로 떨어진 것이다. 흔히 1.5미터라고 하면 우습게 볼 수 있다. 헌데 일반인이 아무런 대비없이, 1.5미터에서, 그것도 뒤로 아무런 안전 장구 없이 떨어지면 사실 사망각이다. 그런데 이 양반, 고등학교 때까지 태권도 도대표선수였다. 낙법을 잘 구사하긴 했는데 오른발 뒤꿈치 아킬레스건 밑 부분으로 거푸집 상을 밟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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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600 거푸집. 노란색 쇠로 되어 있는 부분을 상이라고 부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것도 출처가 애매한 일본말이다.

 

일반적인 안전화는 발끝 부분과 발바닥을 보호해주지만 발뒤꿈치 부분을 보호해주는 장치는 없다. 사수는 발뒤꿈치 뼈가 깨졌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내가 식당에서 얼음 한 봉지 갖다주면서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이려고 하는 동안, 총반장은 사수를 방치한 상태에서 작업을 계속 진행했다. 2 시 반쯤 작업이 끝나자 총반장은 바로 후리도메로 묶고 있던 철사들을 모조리 끊어서 없애라고 지시했다.

 

사고 보고를 들은 팀장은 나보고 사수를 집까지 태워다 주라고 했다. 속으로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람이 다쳤는데 총반장은 사고 보고도 안 하고 증거인멸을 한 다음 철수했고, 팀장은 사수더러 알아서 병원에 가라고 한 것이다. 며칠 뒤에 사수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갔다. 사수는 팀장이 자기를 한 번도 찾아오지 않고 병원비를 어떻게 한다는 이야기도 없다는 것에 분개했다. 분개하는 사수에게 같은 병실에 있던 분들은 어떻게 산재 처리를 하는지 꼼꼼하게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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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며칠 뒤 팀장이 사람들을 일찍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누가 바람을 넣었는지 사수가 산재 처리를 신청했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팀장이 날뛰었던 이유는 이렇다. 2017년, 정권이 바뀌기 전까진 산재가 터지면 전문건설업체(전문공사를 직접 도급 또는 하도급받아 해당 전문 분야의 시공 기술을 가지고 공사를 수행하는 업체)에 감독 책임을 물어 이런저런 불이익을 줬었다. 일하다가 다쳐도 적당히 치료비와 일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걸로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다가 2017년 정권이 바뀌면서 사망사고 같은 중대재해가 아니면 그 불이익 주던 것이 없어졌다. 대신 피해자가 4대보험 가입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회사가 의무가입을 해야 해서 산재보험 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내가 바라시 일을 했던 2018년 5월부터 2019년 6월까지 현장들 대부분은 일수 가방 차고 목에 금사슬 두르고 선글라스 낀 분들이 만들던 건물들이었다. 법은 피하거나 어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는 건축주였다. 그 비슷한 분들이 하는 건설회사에서 건물을 만들었다. 그런 분들이 짓는 상가에 주로 우리 팀이 일하러 갔다. 건물주들의 성향, 전문건설업체가 불러주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 인력사무소 등록도 안 하고 일하던 형편이 발각될까 하는 두려움에 그 난리를 쳤던 것이다. 거기다가 그즈음에 산재 당했던 중앙아시아 출신 두 명은 치료도 안 해주고 집으로 돌려보냈으니... 알 만했다.

 

그날 오후 퇴근하자마자 아는 사람들에게 모두 전화해 최강의 노무사를 사수에게 연결해줬다. 그리고 다음 다음 현장에서 그 팀을 그만뒀다. 물론 사수는 꽤 보상받았다. 뼈를 아주 제거하지 못해서 잘 걷지를 못하여 2년 일을 못 하다가 작년 초부터 다시 일하고 있다.

 

2. 정기건강검진

 

말도 안 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바라시팀에서 일 년 가깝게 버텼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일찍 끝나서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두세 시간 정도 있던 것이다. 그랬는데 2019년 봄에 사수가 다치고 그 뒤처리하는 꼴을 봤고, 그즈음부터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 안 되는 이들을 고용하는 바라시팀이 많아진 걸 봤다. 게다가 팀장은 전문 건설회사들에 잘 보이려고 우리더러 두 시간 더 일하고 오라며 요구해서 바로 그만뒀다.

 

근처 인력 사무소로 찾아갔다. 운전면허증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소장은 일주일 정도 지나서부터는 나에게 스타렉스 운전을 맡겼다. 일의 강도는 바라시하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널널했다. 그 인력사무소 사람들이 가장 가기 싫어하는 빡센 일이라고 해봐야 바라시팀 노동강도의 70%였다. 인력사무소에 나오던 분들의 절반은 한국계 중국인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태극기 영감님들이었다. 영감님들께서 한 개에 20kg이 넘는 600*1200 거푸집을 두 개씩 들고 다니실 수 없으니 노동강도는 그분들의 근력에 맞춰졌던 것이다.

 

더불어 이 어르신들의 입맛이 상당히 까다로웠던 터라 식당도 바라시팀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할 수 없는 체류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바라시 팀원들이 먹었던 음식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겨울엔 깡깡 얼어 있는 밥을 배달해주었고, 반찬도 항상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들이었다. 가끔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나기도 했다. 어떤 현장 소장은 우리에게 배달된 밥을 보고 바로 그날 점심부터 식당을 바꿔버리기도 할 정도였다. 그걸 어떻게 먹냐면서. 그런 걸 먹다가 먹을 만한 수준의 한식 뷔페에서 식사하니 참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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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실외에 있는 저 배달 밥통을 보면 그때 기억이 되살아난다

 

무엇보다도 다른 세상에 들어왔다는 것을 실감했던 순간은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다. 바라시 일하는 동안은 현대산업개발과 아파트 한 곳을 제외하곤 작은 현장에서만 일했던 터라 이 버스를 볼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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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 종사자는 다양한 형태의 직업병에 노출되기 쉽다. 예를 들자면 콘크리트 먼지에 항상 노출되어 있으니 진폐증(塵肺症)의 위협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 알루미늄 거푸집 해체나 설치 과정에선 소음 때문에 난청에 걸리기도 쉽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2년에 한 번씩 하는 건강검진으론 진폐증 같은 경우 추적하기가 쉽지 않다.

 

이게 작년부터 법제화되었다. 물론 큰 현장 한정이다. 그래도 진폐증 조짐이라도 일찍 파악할 수 있다면, 난청의 조짐이라도 일찍 알 수 있다면 뭔가 조치를 취할 수 있지 않겠나.

 

3. 중대재해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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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현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자재 중 하나가 바로 웨지핀(Wedge Pin)이다. 길이 79mm, 두께 4.3mm에 30g 언저리인 이 핀은 거푸집 중 가장 많이 쓰는 유로폼을 연결할 때 쓴다. 별거 아닌 거 같은 이 핀이 어쩌다가 공사 현장 밖으로 날아가면 대형 참사가 벌어진다. 바라시팀에서 일할 때 이 핀 하나가 안전망 밖으로 날아가 근처에 세워져 있었던 차 보닛을 뚫고 들어가 버린 적이 있었다. 다행히 사람은 안 타고 있었고 건설사에서 차 수리 비용을 물어주는 것으로 끝났다. 만약 그걸 사람이 맞았다면 무사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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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만들 때 거푸집을 웨일러 밴드(Waler Band, 하지만 현장에선 ‘반도’라고 부른다)를 저렇게 감싼다. 저 정도 되는 놈들은 대략 17kg이 넘는다. 저거 풀다가 혹은 운반하다가 떨어지는 것을 맞으면 바로 복잡골절이다.

 

조금만 방심해도 대형 사고를 당할 수 있는 곳이 건설 현장이다 보니 삼성 현장 같은 곳은 뒷걸음질 치는 것도 금지한다. 안 보고 움직이다가 넘어져서 꼬치가 될 수도 있다고... 3미터 이상의 길이인 물체를 옮길 때도 둘이서 들어야만 했다. 보통은 4미터 파이프도 두 개 정도는 혼자서 매고 다니는 곳이 건설 현장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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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평택 삼성 현장. 여기선 계장공으로 몇 달 일했다

 

삼성처럼 관리하면 좀처럼 사고 나기 어려울 것 같으나 여기도 종종 사고가 난다. 예를 들어 작업용 발판(현장 용어로 우마)에서 내려오다가 뒤로 넘어져서 응급구조대가 출동하여 병원에 싣고 가는 것을 본 적도 있다. 관리의 대명사 삼성이 이러는 판에 다른 곳들은 어떨까.

 

처음 바라시팀에서 일했던 현장은 용인의 초등학교 건설 현장이었다. 일하기 시작한 지 한 달 여쯤 지났을 때 앞의 중고등학교 건설 현장에서 추락 후 사망한 분이 있었다. 같은 해 겨울에는 우리 팀이 뜯어놓은 거푸집을 정리하시던 분들이 거푸집을 밟고 타고 넘어 다니다가 비계 밖으로 거푸집이 떨어지면서 같이 추락 후 사망한 일이 있었다. 형틀목수가 된 이후 바로 앞의 현장에서 일하던 조합원 중 한 분이 철근 기둥이 넘어져 압사한 사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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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동안의 사망자 이름만 써도 신문지면 한 면이 모자란다.

 

이걸 좀 어떻게 막아보자고 민주노총에서 주야장천 요구했던 것이 중대재해처벌법이었다. 사실 대부분 사고는 50인 미만을 고용한 사업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나 그건 2년 유예된 상태에서 법이 통과되었다. 아파트 건설 현장은 목수팀 하나만도 20여 명인데 그런 목수팀이 세 팀 이상은 일한다. 당연히 이 법의 적용 대상이고 안전관리도 빡빡해졌다.

 

물론 작업속도는 왕창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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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상단을 보면 나무로 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 거길 자세히 보면 긴 못이 박혀 있다. 안전 규정 지키면서 못 박으면 딱 저 분량하는데 한 시간 30분쯤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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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높은 곳에서 일하려면 현장에선 우마라고 부르는 비슷한 것을 찾아와야 한다. 그걸 조립하고 끌고 다니면서 못질하려면 그 정도 시간이 안 걸릴 수 없다. 시간을 줄이면 줄일수록 회사는 돈을 번다. 하지만 그만큼 작업자들은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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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푸집 해체 일할 때의 현장들 대부분은 이랬다(사진 이상하게 찍어서 미안하다;;; 뭐 난 취재하면서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직접 내가 현장에서 일하면서 찍는 거니 봐달라!) . 돈 아끼기 위해 시스템 동바리를 전체적으로 설치하지 않고 보 구간만 설치했다. 그 상황에서 보 거푸집을 뜯어야 하니 중간에 6미터 파이프를 철사로 묶어놓고 그 위에 올라가서 작업했던 것이다. 족히 7미터 위에서 종일 일하고 나면 ‘오늘도 무사히’라는 말이 절실하게 다가왔었다.

 

뭐, 글타. 

 

대충 기억나는 것들만 산재보험·건강검진·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세 가지다. 사무직으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진보의 아주 똑똑한 어르신들에겐 이놈이나 저놈이나 이 정권이나 저 정권이나 다 같아 보일지 모르겠다. 

 

헌데 맨날 죽고, 다치고, 깨지고, 부러지는 우리들에겐 그 작은 차이가 몇 달치 가족의 생계를, 혹은 목숨을 좌우한다. 그러니 제발 똑같다곤 하지말자. 어느 분은 공약들 중 하나가 지금의 중대재해처벌법도 과하니 처벌을 약화하자는 것이었는데, 그런 말 들으면 정말 속이 상한다.

 

다 같은 목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