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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키움 히어로즈와 기아 타이거즈는 시즌 세 번째 맞대결을 앞두고 트레이드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트레이드를 통해 키움은 포수 박동원을 기아에 보냈고 기아는 내야수 김태진과 2023년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 거기에 현금 10억 원을 키움 히어로즈에 내줬다.

 

키움과 기아가 서로 윈-윈한 트레이드라는 우호적인 기사가 없지 않았지만 이를 다룬 대부분의 기사는 ‘현금’에 초점을 맞춘 우려의 시선을 전했다. 키움이 현금 트레이드로 선수를 팔아 운영 자금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개중에는 ‘선수 장사’, ‘선수 팔이’라는 노골적인 표현이 기사 제목에 달리는가 하면 ‘우승을 포기한 프로구단은 프로의 가치가 없다’며 존재 의의를 묻는 사실상 비난 기사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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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데일리스포츠한국>

 

히어로즈와 현금 트레이드

 

히어로즈를 향한 불편한 눈길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모기업 재정난으로 나온 ‘급매물’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한 히어로즈는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모기업 없이 독립된 사업체로 운영되는 구단이었다. 이 말인즉 돈줄 없이 구단 운영 자금을 스스로 번 돈만으로 충당해야 하는 경제적 자립 구단이 히어로즈의 운명이자 사명이라는 것이다. 모기업이 있는 다른 구단들은 부모의 지갑 사정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버는 돈 보다 쓰는 돈이 많아도 생존을 걱정할 일이 없었다. 때에 따라 부모가 우리 자식 어디 가서 기죽지 말라고 포르쉐나 페라리를 사주듯 거액의 FA 계약을 뻥뻥 질러주기도 했다. 물론 그 돈을 굳이 자식이 벌어올 필요는 없었다.

 

허나 히어로즈는 처음부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수익 모델로 삼아도 살림살이가 간당간당한 처지로 시작한 구단이었다. 군사정권이 기업 삥 뜯어내 가며 열어젖힌 한국 프로야구는 태생부터 모기업 돈줄에 의지하지 않고는 지탱할 수 없는 구조였으므로 출범한 지 스무 해가 넘게 지나도록 구단의 경제적 자립이 가능한 수익 모델 따위를 개발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 환경에서 손가락 빨며 태어난 히어로즈의 살림살이가 그렇게 쉽게 나아졌을 리 없다. 히어로즈 현금 트레이드의 유구한 역사는 그렇게 창단 첫해인 2008년부터 일찌감치 시작되었다.

 

모기업 없이 자립해보겠다며 등장한 히어로즈를 바라보며 ‘저거 되겠어?’ 하며 반신반의했던 야구계는 성적이 곤두박질치는 와중에도 주축 선수를 현금 트레이드하며 연명하는 히어로즈를 곱게 볼 수가 없었다. 실제로 창단 후 5년간 히어로즈의 시즌 성적은 최하위권을 전전했는데 같은 기간 동안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주전급 선수를 트레이드하며 현금을 챙겼다. 가만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KBO도 히어로즈발 현금 트레이드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렇게 할 거면 그냥 야구단 팔고 떠나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한국 프로야구의 골칫거리였던 히어로즈는 2010년 넥센타이어를 새로운 메인스폰서로 맞이한 후 차츰 자리를 잡아가더니 2013년을 기점으로 팀 성적도 상위권을 넘보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그 후로도 간간이 현금 트레이드가 있었으나 창단 초 몇 년과 같은 바겐세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골칫거리 신세를 완전히 면하는가 싶었던 히어로즈에 두 가지 대형악재가 터졌다. 구단주이자 대표이사였던 이장석이 배임,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다가 급기야 실형을 선고 받고 수감되었다. 2018년에는 의혹만 무성했던 히어로즈 현금 트레이드 이면 계약의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둘 다 프로야구계의 역대급 사건이면서 한 뿌리에서 나온 사건이었다. 창단 후 히어로즈가 진행한 현금 트레이드는 그 규모가 실제 액수보다 축소되어 발표되었는데 그렇게 축소한 차액이 무려 131억 5천만 원에 달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진두지휘한 자가 이장석 구단주였다는 것, 그렇게 챙긴 뒷돈의 일부를 인센티브 명목 등으로 구단주가 챙겼다는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자체 수익모델로 운영되는 구단이 되겠다며 등장한 히어로즈가 순식간에 프로야구판에 뛰어든 사기꾼의 수익모델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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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현금 트레이드에 대한 히어로즈의 과거사를 보면 이번 박동원 트레이드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현금 트레이드 자체가 있어서는 안 될 선수 장사 취급하는 건 동의할 수 없다. 뒷돈 거래와 구단주의 배임, 횡령으로 얼룩진 현금 트레이드가 아니라면 말이다.

 

현금 트레이드가 어때서

 

프로구단이 선수를 넘기는 대가로 돈을 받아 운영 자금으로 쓰는 게 있어서는 안 될 일인가. 리그 흥행에 찬물을 끼얹고 발전을 저해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현금 트레이드를 리그 차원에서 아예 금지하면 된다. 현재 KBO는 현금 트레이드를 금지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프로축구의 ‘이적료’라는 개념이 있다.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 타 구단 선수의 영입을 원하는 구단은 현 소속 구단과 협의를 통해 이적료를 지급하고 선수를 데려올 수 있다. (물론 영입하려는 선수와 계약에 합의해야 한다) 프로축구의 이적료는 프로야구의 현금 트레이드와 다를 바 없다. 재정 규모가 크지 않은 작은 구단은 스타 선수를 이적시킨 대가로 받은 이적료를 선수단 운영에 보태거나 새로운 선수 영입에 사용한다. ‘선수 팔아 구단 살림에 보탠다’는 말은 이 바닥에서는 몹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선수 이적료는 입장권 판매나 구단 상품 판매 등과 같은 수익 모델의 일부일 뿐이다. 오히려 선수 육성을 잘해서 막대한 이적료 수입을 거두면 그 돈이 구단 발전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구단 운영에 급급해서 주축 선수를 바겐세일하는 식의 현금 트레이드라면 얘기가 달라지긴 하겠다. 팀 성적이 곤두박질쳐서 동네북이 되면서도 쓸만한 주전 선수를 다 팔아치우면 리그 흥행에 악영향을 끼칠 소지가 다분한 것도 맞다. 허나 지금의 히어로즈와는 먼 얘기다. 2013년 시즌 이후 아홉 시즌 동안 히어로즈는 2017년을 제외한 나머지 여덟 시즌에서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했다. 2017 시즌에만 딱 한 번 7위를 기록했을 뿐 2014 시즌에는 준우승을 기록하는 등 나머지 여덟 시즌에서는 항상 히어로즈의 순위 아래에 있는 팀이 히어로즈 위에 있는 팀보다 수가 많았다. 뒷돈 거래나 불법 요소가 없는 현금 트레이드라면 히어로즈가 선수를 팔아 구단을 운영한다 한들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인다. 응원하던 선수를 떠나보내는 팬들의 아쉬움은 현금 트레이드가 아닌 선수 간 트레이드나 FA 이적에서도 늘 있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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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의 순위·승·무·패·승률

출처 - <위키피디아>

 

선수 육성과 이적료 수입은 훌륭한 수익 모델이다

 

이번 박동원 트레이드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판 기사들은 하나 같이 히어로즈가 돈이 없어 소속팀 FA 선수를 잡지 못하는 것도 못마땅해한다. 팀의 상징과도 같은 박병호를 지난 시즌 종료 후 KT로 떠나보낸 사례가 예외 없이 인용됐다.

 

근데 그게 뭐 어때서? 프로리그에 소속된 모든 구단의 재정 수준이 비슷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처럼 모기업 돈줄에 의지하는 구단은 소위 말하는 구단주의 의지나 모기업 재정 상태에 따라 쓸 수 있는 자금의 한계가 결정된다. 그렇지 않고 쓰는 돈 만큼이나 버는 돈이 중요한 해외 프로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소속 도시의 인구나 시장 규모에 따라 구단의 씀씀이가 결정된다.

 

메이저리그 탬파베이나 오클랜드 같은 구단은 팀 내 프랜차이즈 스타가 FA 자격을 얻고 시장에 나가면 붙잡는 일이 거의 없다. 아니, 붙잡을 수가 없다. 스몰마켓 구단은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를 연고로 한 구단과 머니게임을 붙어봤자 싸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탬파베이나 오클랜드 구단이 미국 프로야구계에서 손가락질을 당할까? 전혀. 이런 스몰마켓 구단은 극강의 가성비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선수단을 꾸려나간다. 유망주를 육성하고 몸값이 저렴한 선수를 영입해 성적을 내는 데에 아주 특화되어 있다. 그래서 간혹 이들 팀이 부자 구단들을 누르고 포스트 시즌에 진출해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면 그 자체로 뉴스가 되고 드라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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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스몰 마켓 구단 오클랜드의

구단 운영에 관한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머니볼> 한 장면

 

히어로즈가 프랜차이즈 스타를 FA 시장에서 떠나보내는 것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박병호는 히어로즈 선수로 뛰다가 2015시즌을 마친 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146억 원의 이적료(포스팅 금액)를 안겼다. 히어로즈는 팀 내 최고 타자를 보내고도 다음 시즌을 3위로 마쳤다. 박병호가 2021시즌 종료 후 KT와 FA 계약을 맺고 떠나면서 키움 히어로즈에 안긴 보상금액은 22억 5천만 원이었다. 그런 박병호를 히어로즈는 어떻게 얻었을까. (잘못된 일이지만) 무려 뒷돈까지 받은 트레이드를 통해 LG에서 데려왔다. 만년 유망주에 머물면서 '2군 본즈'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갖고 있던 박병호를 데려와 무한 신뢰를 보여주며 기회를 보장한 히어로즈는 박병호가 팀에 머무는 동안 기록한 리그 최상급 성적에 플러스알파로 160억이 넘는 보상 금액까지 벌어들였다. 비즈니스로만 보면 이보다 훌륭한 사례를 리그에서 찾아보기 힘든 정도다.

 

‘히어로즈의 젊은 선수들 사이에 빨리 성공해서 팀을 떠나야 한다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는 부정적 기사의 내용은 달리 해석하면 히어로즈의 젊은 선수들은 동기부여가 잘 되어있다는 말이 된다. 신인급 선수들에게 히어로즈는 기회의 땅이다. 팀 내 주축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며 한 자리에 오래 머물고 있는 현실은 같은 포지션의 신인 선수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잦은 현금 트레이드로 주전급 선수를 잃고 FA 시장에 나간 선수를 붙잡지도 못했던 히어로즈의 생존법은 선수 육성이었고 지금까지는 실적이 꽤 좋았다.

 

포스팅 금액 500만 달러를 받고 주전 유격수 강정호를 메이저리그 보낸 후에 그 자리를 꿰찬 김하성까지 리그 탑 유격수로 성장한 뒤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다시 한번 500만 달러가 넘는 이적료 수입을 기록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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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1>

 

이번에 트레이드된 박동원은 2022년 시즌 후 FA 자격을 취득할 예정이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히어로즈는 박동원을 잡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가 다른 구단과 계약할 경우 박동원을 데려가는 구단으로부터 올해 박동원 연봉의 200% 금액과 보상선수 한 명을 받거나 연봉의 300%를 받을 예정이었다. 키움 히어로즈는 기아 타이거즈에 박동원을 보내면서 내야수 한 명과 2라운드 지명권, 그리고 10억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히어로즈는 박동원을 한 시즌 일찍 떠나보내는 대신 원하는 보상 선수 한 명과 박동원의 올 시즌 연봉 300%에 해당하는 현금을 받았고 거기에 내년 2라운드 지명권까지 얻었다. 우승권 성적을 노리는 기아로부터 최대한을 얻어낸 히어로즈 또한 전력손실을 감수해야 하지만 히어로즈는 박동원 외에도 이지영이라는 주전급 포수를 보유하고 있는 팀이다.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하나 4월 27일 현재 히어로즈의 순위는 10개 팀 가운데 5위다. 여전히 위보단 아래에 있는 팀이 많다.

 

히어로즈는 한국 프로야구의 비정상 구단인가

 

이번 트레이드를 놓고 아주 극렬하게 히어로즈를 비난하는 기사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히어로즈의 ‘비정상적’ 구단 운영을 비난하면서 정상적으로 구단을 운영해줄 기업을 찾아보란 말도 서슴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정상이고 뭐가 비정상인가. 히어로즈가 그간 행해온 현금 트레이드 이면 계약이나 구단주의 범법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전적이 있기에 박동원 트레이드 건을 놓고 KBO 또한 바로 승인하지 않고 검토 과정을 거쳤다. 허나 위에서 말했듯 프로구단이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운영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나 선수 육성을 통한 이적료 수입을 수익 모델로 하는 것 자체를 비정상이라 욕할 수는 없다.

 

해당 기사에서 말하는 ‘정상적인 운영’이란 뭘까. 자금력 빵빵한 대기업 그룹사가 프로야구단을 인수해서 구단주가 ‘OO이형’소리 들어가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그런 걸 뜻하는 것일 테다. 구단주의 의지로 쏟아붓는 막대한 운영 자금은 사실 사비가 아니라 그룹 내 계열사와의 내부 거래를 통한 합법적인 광고비가 대부분이다. 히어로즈를 제외한 나머지 구단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말이 좋아 합법적 내부자 거래지 계열사 들이 뿜빠이해가며 먹여 살리는 구조다. 재무제표상 흑자여도 까놓고 보면 적자가 먼저 있고 딱 그걸 메꿀 만큼의 금액이 계열사들을 통해 모금되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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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스포츠조선>

 

프로스포츠는 자본주의의 꽃이라는데, 명색이 프로구단이 단 한 순간도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걸 정상적인 운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제힘으로 먹고살지도 못해서 구단주 의지 하나에 팀의 전력이 좌지우지되는 그런 프로구단이 과연 정상적인가. 그런 구단을 먹여 살리기 위해 광고비를 꽂는 그룹 내 계열사들은 얼마나 자사 이익에 충실한 내부자 거래를 한 것일까. 이쯤 되면 뭐가 정상이가 비정상인지를 다시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닐까.

 

히어로즈를 비정상이라며 비판하는 기사들은 하나 같이 구단이 팬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수 팔이’, ‘다음은 누구?’ 운운해가며 노골적으로 싸잡아 욕하는 기사들이야말로 팬들에 대한 예의를 저버린 것은 아닐는지. 

 


*덧붙임 하나 : 사실 히어로즈 구단은 다른 부분에서 비판받을 소지가 여럿 있다. 그런 부분까지 모두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덧붙임 둘 : 히어로즈 구단의 현금 트레이드 이면 계약은 따지고 보면 히어로즈의 단독 범행(?)이 아니다. 당시 SK와이번스를 제외한 나머지 7개 구단이 모두 연루되어 있었다. 뒷돈을 받고 선수를 팔아넘긴 히어로즈의 행위는 비정상적이다. 뒷돈을 주고 선수를 데려온 나머지 구단들의 행위 또한 비정상이기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