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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기준 일본 편의점 점포 수는 5만 5,924개다. 신사(神社)는 8만 1,000여 곳이다. 8,000만 명 이상 일본인이 매년 1월 초 신사나 사찰을 참배한다. 신사는 일본 신도(神道, 일본 신화·자연 신앙·애니미즘·조상 숭배가 혼합된 일본 민족 종교) 시설이자 일본인들의 일상과 함께하는 곳이다. 일본인들은 어릴 때부터 신사 경내를 놀이터로 삼으면서 지내는가 하면 마쓰리(祭り[まつり], 일본 전통 축제이자 신에 지내는 제사 의식) 때마다 기모노를 차려입고 하나비(花火[はなび], 불꽃놀이)를 즐기면서 어른이 되어 간다. 일본인들에게 신사는 어린 시절에 행복했던 기억 속에 아련히 자리 잡고 있는 그리운 풍경이다. 정작 신사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것을 ‘신도의 종교 시설’이라고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때도 많다. 그만큼 신사는 일본인의 삶 속에 지극히 사적이고 친숙한 전통문화로 내면화되어 있다.

 

종교는 특정 문화에 속한 사람들 의식을 이해하는 첩경이다. 이스라엘이나 유대인을 알려면 그들의 민족 종교인 유대교에 대한 이해가 불가결하다. 일본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신도를 알 필요가 있다. 신도의 특성이 오늘날 일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자.

 

1. 성실함의 뿌리는 신도의 마코토(誠) 정신

 

한국은 유교 전통으로 제사를 지내고 성묘한다. 웃어른을 공경해야 한다. 충과 효를 중요시한다. 한반도의 공기 속에는 유교 전통이 흐른다. 일본은 어떨까. 한국의 유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일본 신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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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3대 마쓰리 중 하나인 도쿄 아사쿠사 신사 산자(三社) 마쓰리

 

신도는 종교이면서 생활풍속이다. 학자에 따라 신도를 종교가 아니라고 구분 짓기도 한다. 유교의 핵심 가치를 충·효라고 한다면 신도의 핵심 가치는 마코토(誠[정성 성], sincerity)이다. 마코토는 진심·성의·정성 등의 뜻을 담고 있는 단어다.

 

일본인들에게 마코토는 중요하다. 일상 속에 공기와 같이 흐른다. 편의점에 가면 점원들이 친절하고 성실하다. 일본에서는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 규모가 무척 작을 때가 많다. 일본 특유의 축소지향성이 있을 터이다. 얼마 전 작고한 이어령 선생의 견해에 동의한다. 동시에 필자는 거기에 신도 문화가 담겨 있다고 본다. 마코토다. 그들은 그 가게의 위치와 크기가 그들에게 주어진 본분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사심(私心)을 내려놓고 주어진 일이나 인간관계에 전력을 다한다. 일본에 노포(老鋪,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가 많은 것도 마코토의 영향이 있을 터이다.

 

한국인들 중에는 종종 사석에서 만난 지인 또는 일본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친절과 성실함에 감동받는다고 말한다. 왜 그 말을 하는지 공감한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1년 지내던 때 일화가 있다. 세 들어 살던 아파트에서 파티를 연 적이 있다. 일본인 7명과 인도·프랑스·이탈리아·미국인 등 7명을 초대했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옥상에서 놀고 있을 때였다.

 

한창 수영하고 사진 찍으며 놀고 있는데 어느 순간 일본 친구들이 안 보였다. 어디 갔나 싶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집에 들어가 봤다. 그 장면을 지금도 기억한다. 일본인 친구 7명이 식사한 자리 청소와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아니, 내가 하면 되는데 뭐 하는 거야? 옥상에서 같이 놀지 않구?"

"너 혼자 하면 힘들잖아. 우리가 도와줘야지."

 

당연하다는 듯한 그들의 반응이 마음에 깊이 박혔다. 아무 말 없이 여기 와서 청소하고 설거지하는 친구들이 고마웠다. 7명이 도와주니 금방 끝났고 다시 다 같이 옥상에 올라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런 일을 여러 차례 겪으며 일본 문화에 호기심이 생겼고 일본행을 결정하는 데 주요 동기가 되었다.

 

2. 선악(善惡)보다 위에 있는 것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인의 친절과 성실함을 자주 겪었다. 매일 겪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가게 점원들은 물론 직장 동료들도 친절하고 성실했다. 자기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임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일본인 특성을 마코토라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체험(體驗)의 산물은 입체성이다. 그들 사회를 매일 겪어보니 마코토 문화가 일본의 좋은 점이기는 하나 허(虛)함이 느껴지고는 했다. 언제부턴가 일본에서 편의점에 갈 때마다 생경한 게 있었다. 점원들의 말본새다. 손님이 들어올 때와 나갈 때 큰 목소리로 하는 인사는 기본이다. 카운터 뒤에 의자도 없다. 성심성의를 다하는 모습인데 그들의 친절함 속에서 어색함 또한 느꼈다. 이따금씩 그들이 친절한 로봇처럼 보였다. 맹점(盲點)이 있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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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점원이 되었든 지인이 되었든 일본인들의 성실함·친절로 인해 도움을 받는다면 좋은 일이다. 일반적으로 성실과 친절, 신의 등은 높은 가치기 때문에 마코토를 강조하는 일본 문화가 통상적으로는 바람직해 보인다. 그런데 거기서 어색함을 느낀다면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소위 타테마에(たてまえ[建て前], 표면상의 방침)·혼네(ほんね[本音], 본심)라고 하여 일본인은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하는 것도 연관이 있을 듯하다.

 

필자가 찾은 답의 실마리는 그들이 말하는 마코토 정신이 가치의 최우선 순위라는 점이다. 즉, 그들은 선·악보다도 마코토 정신을 상위개념으로 여긴다.

 

일본에서는 절대자나 신을 카미(かみ, 神)라 부른다. 인간을 포함하여 자연 만물 중 진귀하고 뛰어난 덕(德)을 지닌 두려운 존재를 뜻한다. 여기서 뛰어나다는 것은 선하고 공덕이 있어 뛰어나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악하고 기괴한 것이라 할지라도 뛰어나고 두려운 것이면 무엇이든 카미라고 한다. 카미는 선악보다도 위에 있는 존재인 것이다. 만인은 카미가 부여한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 아래에 인용했듯 사람을 위해 직을 만드는 일은 하지 않는다.

 

제7조,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임무가 있다. 각자의 임무를 지키고, 권한으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 ··· 그러므로 옛 성왕(聖王)들은 자리에 맞는 인재를 구하고자 했지, 사람 때문에 자리를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았다.

- 쇼토쿠 태자(574년~622년)의 <제17조 헌법> 中

 

위와 같은 사실로 인해 일본인들이 겉과 속이 다른 민족이라 불리는 연유를 조금 더 알 것 같다. 그들은 혼네와 타테마에가 달라도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에서 정해진 규칙대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 아래 있기 때문에 상냥하면서도 한편으로 종종 작위적인 모습으로 비추는 서비스를 갖추었으리라 여긴다. 개인으로서 다른 마음이 들더라도 사회적 역할에 따른 일을 행하는 것이다. 마치 한국인이 신발 벗고 집에 들어가는 게 공기같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일본인에게는 이런 행동양식이 태어날 때부터 보고들은 바라 무의식의 영역에 자리 잡았기에 자연스러운 터이다.

 

3. 자연환경이 신도에 미친 영향

 

그렇다면 일본인들은 왜 정해진 역할이 있다는 생각을 과거부터 지금까지 할까. 섬이라는 제한된 영토 안에서 오랜 기간 찜 쪄졌기 때문이 아닐까. 찜 쪄졌다는 건 일본인들의 자연재해로 인한 고초(苦楚)를 말한다. 화산이 폭발하고 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津波, つなみ, tsunami)가 발생한다. 쓰나미란 단어 자체가 일본에서 만들어진 세계공용어다. 태풍도 빈번하다. 소나기조차 돌풍을 동반한다. 3월의 따뜻한 날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우산이 날아가거나 뒤집어질 법한 바람이 부는 일이 예사였다. 여름엔 고온다습하기까지 한다.

 

기후가 한국과 다르다는 걸 전달하기 위해 하나 예를 말하자면 도쿄만 해도 길거리에 야자수가 심어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기후가 역동적이고 다양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남북으로 긴 섬 모양으로 인해 위도별로 다양한 기후를 겪은 것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생각도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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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 도쿄 디즈니 랜드. 야자수가 보인다

출처 - <링크>

 

이 글을 읽다가 지진이 일어나서 커피가 쏟아지고 형광등이 떨어질 듯 흔들린다고 가정해 보자. 사람들 동공도 지진하고 마음은 동요한다. 이럴 때 답이 없다. 지진에 쓰나미, 태풍을 매년 되풀이하여 주기도 정해지지 않은 채 겪는다고 생각해 보라. 도망가거나 피할 수 없는 섬이란 공간에서 자연의 비이성적이고 불규칙적인 재난을 몸소 겪으며 형성된 일본인의 정신. 만물에서 신의 존재를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일본에서는 신이 일으킨 바람이라 하여 카미카제(かみかぜ[神風])란 단어가 쓰이고 우레를 뜻하는 카미나리(かみなり[雷])는 신의 울음(神鳴り)이란 말이 어원이다.

 

더군다나 과거는 농경시대였다. 자연환경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조건에 따라 사회적 협력을 하며 농사를 짓는다. 그게 본분이라 여기던 사람들이 오늘날에는 샐러리맨(サラリーマン)이 되어 본분에 충실히 살아간다.

 

자연환경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도 않고 여전히 통제하기도 어렵다. 일본인들은 자연환경으로 인해 인간의 한계를 정기적으로 뼈저리게 느끼는 민족이다.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과 인과응보(因果應報)가 낳은 권선징악 같은 선악 개념보다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가 수천 년 곁에 있었다.

 

일본인은 ‘선한 행동이 악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악한 행동이 선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말한다. 행하던 도중에 있던 것들이 자연으로 인해 망쳐지기 일쑤였고, 더러는 혜택도 입은 터이다. 고려 충렬왕 때 여몽 연합군의 1274년·1281년 두 차례에 걸친 대규모 2회 정벌은 폭풍우, 즉 카미카제(神風, 신의 위력으로 일어난다는 바람)로 무산되었다. 신풍. 그들은 이 단어를 2차 세계대전에서도 썼다. 바람을 신과 결부한 것이다. 서양은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삼았고 한국은 조화의 대상으로 삼았다. 일본은 자연을 두려운 존재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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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 서양화가 

야다 잇쇼(矢田 一嘯, 1859년~1913년)가 묘사한 카미카제

출처 - <링크>

 

4. 인간이 신을 만드는 나라

 

일본 특유의 혼합 문화가 있다. 일본은 외래의 것과 일본의 것을 잘 섞는다. 화혼양재(和魂洋才 '화혼'이란 일본의 전통적 정신, '양재'란 서양의 기술을 말한다. 근대화 시기 일본의 구호) 같은 단어가 그들의 마음을 잘 보여줄 터이다. 히라가나·가타카나도 음가가 같은 중국 한자를 빌려와서 단순화하여 만든 글자다.

 

종교도 그렇다. 신불습합(神佛習合, Shinbutsu-shugo)이라 하여 토속 종교인 신도와 외래 종교 불교를 교묘하게 섞어 놓았다. 불교를 이용하여 신도의 교리를 보완하기도 했다. <일본 정신의 고향 신도>라는 책에는 아래와 같이 나온다.

 

··· 윤회의 고리는 이른바 ‘카르마(業)라 불리는 개념, 즉 공과(功過)의 행위를 쌓음으로써 작동한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자면 과실은 욕망 때문에 생기는 것이므로 욕망을 버리는 것이 구원의 열쇠가 된다. 이처럼 개개인의 욕망을 억제해야 한다는 불교의 주장이, 화(和)를 불러오고 유지하는 방식으로 집단에 종속할 것을 요구하는 신도적인 윤리 전통을 보완해준다.

 

그들은 인간과 신도 섞었다. 천황을 인간이자 신으로 여겼다. 동서양을 섞는 것, 신도와 불교를 섞는 것을 넘어서 사람과 신을 섞은 것이다. 여기에 더해 불교의 논리는 일본 지배층이 신도를 이용하기 달콤하게 만들었다. 마코토 정신을 기반으로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고 개인의 욕망을 억제하게 한다면 지배층이 백성들을 다스리기 편리했을 터이다.

 

이러한 신도가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하게 지배층의 도구로 이용된 것이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1868)부터다. 메이지 시대에 신도의 중심에 인위적으로 천황가를 두고 이를 ‘국가신도(State Shinto)’라 하였다. 메이지 유신은 박정희의 10월 유신처럼 위로부터의 개혁이다. 봉건 귀족들은 사람들이 천황을 신처럼 받들도록 만들었다. 절대적인 존재를 국가의 중심에 둠으로써 통치 이데올로기로 이용했다. 전국의 신사(神社)는 모두 국유화하였다.

 

그때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도 지어졌다. 1869년 동경초혼사(東京招魂社)란 이름으로 지어졌고 1879년에 야스쿠니 신사로 개칭되었다. 여기에는 막말 이래 무진내전(戊辰の役, 1868년 발발), 서남내전(西南の役, 1877년 발발), 청일전쟁(1894년 발발), 러일전쟁(1904년 발발), 만주사변(1931년 발발), 중일전쟁(1937년 발발), 태평양전쟁(1941년 발발) 등에서 죽은 군인과 군속(軍屬, 군무원) 등 245만여 명이 제신으로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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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

출처 - <위키피디아>

 

2차 세계대전 카미카제의 자살 공격은 무슬림 극단주의의 그것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군인들은 전우들과 “죽어서 야스쿠니에서 만나자”고 다짐했다. 할복(割腹)도 당시에는 국가주의의 성격이 녹아 있을 터이다. 요컨대 야스쿠니신사를 포함하여 근대기에 들어와 새롭게 창건된 수많은 신사들은 모두 새로운 신들을 모시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신들은 계속해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5.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없는 일본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을 점령한 연합국 사령부가 정교분리(政敎分離)에 착수한 것은 위와 같은 폐해 때문이다. 천황은 자신이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이른바 ‘인간선언’을 하였다. 그 후 국가신도라는 이름은 사라졌지만 일본 지배층은 여전히 신도를 이용한다. 수상 등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일본 내에서도 논란이다. 정교분리를 담은 헌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일본국 헌법 제20조

 

① 종교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이를 보장한다. 어떠한 종교 단체도 국가로부터 특권을 받거나 정치상의 권력을 행사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누구든지 종교상의 행위, 축전, 의식 또는 행사에 참가하는 것을 강제 받지 아니한다.

국가 및 그 기관은 종교 교육 그 외 어떠한 종교적 활동도 하여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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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9월 27일 천황 히로히토는 

미국 대사관을 방문하여 사령관 맥아더를 만난다.

일본국 헌법은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제정된다

 

현재 일본은 표면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신도는 국교가 아니다. 여기서 일본 지배층의 기술이 들어간다. 종교 너머의 종교, 종교 beyond 종교, 종교 위의 종교를 만든다. 그래서 신도는 국교가 아니다. 종교의 자유는 종교 아래의 종교를 대상으로 한다. 종교 아래의 종교는 자유로이 해도 좋다. 지배층은 신도를 종교 위의 종교, 메타종교로 만들었다. 마치 서양의 민주주의 껍데기만 빌려와서 근대 봉건주의 세습사회를 유지하는 것처럼 일본은 종교의 자유 껍데기를 빌려와서 자유는 보장해 주되 자신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계속 유지하고 있다.

 

화혼양재를 표방하며 외래문화를 흡수하여 섞는 듯 섞지 않는 일본의 문화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일본에서는 멋스럽기 때문에 교회나 성당에서 젊은 사람들이 결혼식을 올린다. 기독교·천주교인이 아니다. 일본 지배층으로 표상되는 일본은 지배층이 만든 껍데기스러운 종교의 자유 속에 오늘을 살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하는 일본 전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_출처 오마이뉴스.jpg

재임 기간(2001년 4월 26일~2006년 9월 26일)에

6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출처-<오마이뉴스>

 

신도 교의(敎義)는 전한다. “모든 것은 정해진 자리가 있다”. 일본이 역사적으로 조선보다 앞서 개방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외래문화를 흡수하고 섞는 듯 보이면서도 문화의 요소요소 정해진 자리에 고정해 둔 자신들의 것에 절대 변화를 주지 않고 있다. 역사상 의미 있는 천황들의 생일은 일본에서 기념일로서 휴일이지만 크리스마스와 석가탄신일은 평일이다. 여전히 천황의 즉위를 기준으로 한 연호(年號)를 공식 문서에 쓴다. 참고로 일본 기독교 신자는 인구의 채 1%가 되지 않는 소수파다. 외래종교인이 꼭 많거나 적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본의 현실을 알기 위해 덧붙인다.

 

그때는 맞고 지금을 틀린 것들이 있지 않나. 기술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필요에 따라, 시대에 따라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며 바뀌어야 할 터이다. 그런데 그들의 ‘화혼(わこん [和魂], 일본 고유의 정신)’에는 변함이 없다. 지배층이 권력 유지에 편하기 때문이다.

 

적게 잡아도 지난 200년, 일본에는 없는 게 있다. 동학농민운동·3.1운동·4·19혁명·광주민주화운동·6월 민주 항쟁·촛불혁명과 같은 아래로부터의 혁명과 이를 통한 승리의 역사다.

 

6. 목표 없이 성실함에 빠진 나라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수상할 때 일본 출신 미국인 카즈 히로도 상을 받았다. 그는 오스카 분장상을 2018년 <다키스트 아워>에 이어 2020년 <밤쉘>로 수상했다. 시상식 후 기자회견에서 일본 기자는 그에게 일본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됐는지 물었다. 카즈 히로의 답변은 열도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나는 일본을 떠나 미국인이 되었어요. 일본 문화에 진저리 났거든요. 지나치게 순종적(too submissive)이잖아요. 꿈을 이루기 너무 힘들었어요. 미안합니다."

 

참고로 일본 교토 출신인 카즈 히로는 주로 독학으로 분장을 배웠으며, 1989년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공포 영화 <스위트 홈>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더욱 다양한 경력을 쌓으며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특수 분장의 대가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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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카즈 히로 트위터 캡쳐>

 

개개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신도의 마코토 정신은 사람들의 도전에 대한 동기를 약화한다. 개인의 욕망은 거세되고 사회적 욕망이 중요시된다. 이는 정치에서 보수의 힘을 더해주는 논리도 된다. 각자에게는 정해진 자리가 있으니 튀는 것, 변화를 주는 것을 달갑지 않아 하는 사회 공기가 있다.

 

성실함이란 건 명확한 목표가 있을 때 생산적이다. 신 또는 국가·가족·상사가 부여한 목표는 한계가 있다. 제조업 시대에는 가능했을는지 모른다. 10년, 20년 열심히 같은 분야 같은 제품 개발에 집중하던 시대다. 그러나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달라진다. 지식과 창의력이 자본인 시대에는 본인의 욕망에 충실한 목표가 필요하다. 또 그 목표는 마주한 시기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성실함은 여전히 중요한 전제이지만 현시대는 스스로 우러나오는 목표나 창의성 없이 성실함만으로는 개인도 나라도 앞서가기 어렵다.

 

변화와 속도를 강조하는 시대에 일본인들은 쓸데없는 프로세스를 없애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프로세스를 더 정교하게 할까 고민한다. 그래서 나온 게 지폐 2장을 겹쳐 넣을 수 있는 자판기이고 도장 찍는 기계다. 카드를 사용하고 날인(捺印)을 없앨 발상을 못 하는 걸까. 쓸데없는 프로세스를 유지하고 쓸데없는 기계를 만들고 있으면 기존 권력들이 자리 지키기는 편할 터이다. 그래서 매뉴얼과 규칙을 강조하는 문화가 있을 법하다. 일본인도 그들이 만드는 기계와 유사하다. 과거에 만든 프로세스를 없애지 않고 유지하듯 일본인들은 회사·가게·의회 의석을 세습한다. 그것이 그들의 마코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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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일본의 모습은 신에 귀의하여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소명이란 의미로 목표를 가지는 것과는 다르다. 그런 사람들은 존중할 수 있고 그게 종교의 자유다. 그들은 보통 자발적으로 종교를 정하고 종교활동을 한다. 그러나 일본 신도는 의식을 갖고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따르는 게 아니다. 온 국토에 편의점보다 더 많은 신사가 퍼진 채 유지되는 신도에 대해 일본 사람들은 종교인지 아닌지도 잘 말하지 못한다.

 

그때는 맞았고 지금은 틀린 것들이 있다. 일본은 과거에는 공교롭게 시기가 맞아 잘 작동했던 그들의 문화가 있다. 세상이 바뀌면 도태되지 않으려고 변해야 할 때가 필요하다.

 

지난 70년, 한국만큼 변한 나라가 없다는 건 전 세계가 인정하기에 한국을 예로 들어 보자. 2016년 촛불 혁명이 또 한 번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2000년대 막 들어선 무렵, 한국도 시민들의 정치혐오가 심했고 투표율이 떨어졌다. 국회는 이종격투기와 레슬링 무대였다. 그랬던 한국이 최근 몇 차례 투표 참여율이 무척 높다. 물론 양 진영의 대립은 여전히 강하지만 동시에 정치 문화에서 긍정적으로 여겨지는 성숙한 변화들이 있었다.

 

반면 일본은 여전히 투표를 일요일에 하고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한자나 히라가나로 종이에 적어야 한다. 지금의 일본이라면 투표자가 자판에 한자를 입력했을 때 펜(pen)을 든 기계가 대신 종이에 후보자 이름을 써주는 것을 만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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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JTBC 화면 캡쳐>

 

21세기 일본에는 아래로부터의 혁명도 창조적 파괴도 없다. 과거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프로세스를 존속하거나 변화된 목표를 추구해야 하는 책임을 떠맡는 자가 존재하지 않는 한, 당분간 일본은 20세기 선진국 모델로 텍스트북에 남게 될 것이다. 도전정신·창의력·개인의 욕망을 거세한 채 목표 없는 성실함을 주입하는 한 열도는 여전히 20세기 정신에 머무를 터이다.


 


참고문헌

 

<신도와 일본인>. 박규태 (지은이) | 이학사 | 2017년 11월

<신도>. C.스콧 리틀턴 (지은이), 박규태 (옮긴이) | 유토피아 | 2007년 10월

<축소 지향의 일본인>. 이어령 (지은이) | 문학사상사 | 2008년 10월

<일본 교회와 재일한인선교>. 김남식 (지은이) | 베다니 | 2008년 01월

<일본문화사>. 폴 발리 (지은이), 박규태 (옮긴이) | 경당 | 2011년 3월

 

논문

박규태. (2005). 신(神)들의 일본 - 잊혀진 신들과 만들어진 신들. 종교연구, 39, 261-288.

이명주. (2013). 자연물 및 자연현상을 나타내는 한·일어 어휘 대조연구 -색을 표현하는 단어를 중심으로-. 日本語文學, 1(59), 19-35.

김양희. (2006). 일본 우익의 사상적 기저로서의 신도(神道) 고찰. 일본문화연구, 20, 291-323.

박규태. (1997). 논문 : 일본 신도에 있어 선악의 문제 - 모토오리 노리나가를 중심으로 -. 종교와 문화, 3, 241-262.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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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자료

위키피디아: 황국사관

위키피디아: 혼네와 다테마에

위키피디아: 신토

위키피디아: 10월 유신

 

이메일 : ddanzi.min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