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근육병아리는
요리에 관한 어떤 정식 교육도 받은 적 없으며,
오직 유튜브와 만화책으로만 수련 중인 야매 수산인으로
기사에 담긴 그 어떤 레시피도 성공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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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모든 일의 발단은, 대선이 끝난 직후 어느 날 딴지그룹 전 직원 회식자리였다.
총수 : 다들 고생했어. 먹기 전에 한 마디만 할게. 새로운 목표가 있어. 5년 후에 우리는 더 강력한 조직이 되어 있을 거야. 그럴려면 지금 뭘 해야 되냐.
한 템포 쉬고.
총수 : 졸라 명랑하게 지내야 돼!! 니들 당분간 뉴스 보지마!! 신문도 보지마!!! 재밌는 거 해 재밌는 거!!
두목님의 호방한 모두 발언에 모든 딴지 임직원, 웅장해진 가슴을 부여잡고 음식을 촵촵하고 있을 때. 오직 한 사람,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던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 였다.
그도 그럴 것이 관리자인 그에게, 총수가 말한
‘재밌는 거 해’
란, 재밌게 룰루랄라 놀아제끼라는 게 아니라
‘재미있는 무언가를 뽑아 내 이 돌고래야’
로 번역되기 때문.
하지만 그건 죽돌의 사정이고, 일개 기자나부랭이인 근육병아리는 그저 출장 뷔페 음식들이 제법 훌륭하여 무아지경에 빠져있던 것이었다.
‘얼른 한 접시 비우고 다음 턴에는 갈비찜 위주로 조져야겠군’
이런 야무진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별안간 날벼락이 떨어졌다.
죽돌 : 총수님, 우리 근병이가 회를 졸라 잘 뜹니다!
총수 : 뭔 소리여. 쟤가 회를 어떻게 떠.
죽돌 : 거 진짜라니까여. 제가 봤어요. 참치를 막 해체하고 그래요 점마가!!
총수 : 뻥치지마 새꺄. 그 큰 걸 쟤가 어떻게 해.
죽돌 : 와 나 진짭니다. 근병아, 니 일루와서 말 좀 해바라. 니 참치 막 해체한다 아이가.
갈비찜을 접시에 신나게 주워 담던 근육병아리. 뭔가 쎄한 느낌을 감지하고 들고있던 고깃덩어리를 툭 내려놓는다. 참치 꼬리마냥 세차게 손짓하고 있는 죽돌과 총수가 앉은 테이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고기 담느라 놓친 앞쪽 대화를 빠르게 유추해 본다.
근병은 얼마 전 노량진에서 잡아온 삼치 살덩이를 죽돌에게 맛보라고 줬고, 죽돌은 총수의 ‘재밌는 거’ 미션의 압박에 그게 삼치든 참치든 일단 던지고 본 것.
총수 : 너가 진짜 참치회를 뜬다고?
인생은 초이스라고 했다. 부서장의 가오를 지켜야 할 것인가, 민족정론지에 투신한 기자로서 참치라곤 동원참치캔 밖에 까본 적 없다는 실체적 진실을 밝힐 것인가. 리히터 7.0으로 동공지진이 온 근병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총수의 성성한 안광을 보고, 근병은 생각했다. 일단 구라를 쳐야겠다고.
근병 : 쌉가능이져.
총수 : 오 그래? 몇 마리나 해봤는데?
입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근병 : 100kg 넘는 거는 두 어번 해봤고, 작은 건 뭐 심심할 때마다 떠먹습니당.
이미 저지른 거, 이럴 때일수록 뻔뻔하게 나가야 한다. 시선을 총수의 무성한 콧수염에 둔 채 거짓부렁을 늘어놓는다. 짝귀선생이 구라 칠 때는 상대의 눈을 보지 말라 했다. 절면 끝장이다. 저 사자처럼 맹수 같은 사내가 그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총수 : 그런 건 어디서 배웠어?
근병 : 유튜브요.
총수 : 프하하하 웃긴 놈이네 이거. 그럼 다음 회식은 니가 참치 잡아 와바!!
읭?
내게도 다 생각이 있다
난데없이 식사추진병이 된 근병. 노량진을 들락거리며 참돔이나 전갱이처럼 작고 귀여운 녀석들이나 포 떠본 게 전부인 그에게 닥친 시련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아니 내가 무슨 미스터 초밥왕도 아니고.. 그 큰 생선을 대체 뭔 수로 뜬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치밀한 병아리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딴지 편집부, 어설픈 자는 살아남지 못한다. 이곳에서 필진으로 기자로 버텨온 고난과 오욕의 6년. 그 짬바는 고스톱 쳐서 딴 게 아니다. 나에게도 다 생각이 있었다. 일단 참치라는 게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횟감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참치집에서 흔히 접하는 참치, 그중 최상급인 혼마구로라고 불리는 참다랑어는 대부분 지중해와 호주 일대에서 축양으로 길러 냉동 상태로 수입된 것들이다.
출처-구글/축양 참치의 격전지 지중해
축양이란 쉽게 말해 '반 양식'이다. 알에서 깨운 치어부터 길러내지 않고, 어느 정도 자란 개체를 가두리에 가둬 살을 찌운다. 온전히 맛있게 먹기 위함이다. 흔히 횟감에 '자연산'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프리미엄이 생기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수많은 참치 박사님들이 혼신의 연구 끝에 개발한 방법으로 수온, 수질, 먹이 등등을 컨트롤해서 길러낸 참치의 살점은 자연산 보다 훨씬 좋은 빛깔과 맛을 구현해낸다. 암튼 졸라 비싸단 이야기다.
출처 - 딴지마켓(링크)
미친척하고 몰타 해변에서 가두리양식장을 하는 프랑코 씨에게 200kg 짜리 참다랑어를 항공 운송으로 주문해 법카를 긁었다 치자. 죽이 되는 밥이 되든, 칼로 톱으로 난도질을 해서 살점을 떼내는데에 성공했다 쳐보자. 그걸 다 누가 먹을 건가.. 길 건너 동아일보랑 사거리 너머 조선일보 사람들 다 불러서 성대한 파티를 열 것도 아니고..
암튼 이런 전차로, 빠져나갈 구멍을 확보해둔 채, 뭐라도 대충 잡아와 썰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노량진으로 나섰다.
아스팔트 위의 바다
봄 신상품 입고로 활기를 띠고 있는 노량진 새벽 경매장.
죽은 척하고 있는 쭈꾸미.
바다의 인삼, 해삼 그리고 봄의 전령 새조개.
푸틴의 심기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리는 대게.
달달한 단새우. 일본 업장용어가 많이 쓰이는 시장에서는 '아마에비'로 통용된다. 이자카야에 가서 젤 비싼 메뉴인 사시미 모리아와세(모듬회)를 시켰을 때, 사이드에 두어 마리 똬리를 틀고 있는 게 이 녀석이다.
노량진에는 조업방식에 따라 통발, 저인망 두 가지 종류의 단새우가 들어온다. 가격은 당연히 그물에서 부비부비하며 올라오느라 색깔과 단맛이 빠진 애들보다, 귀한 대접 받고 올라온 통발이 비싸다. 하지만 저인망도 충분히 맛있다.
통발로 잡은 단새우. 색이 좀 더 진하고 선명하다. A급은 깜짤 놀랄정도로 비쌈..
이자카야에 가서 새우가 유난히 빨간 것 같다면 셰프님에게,
혹시 이거 통발인가요? 깔이 너무 좋네요.
를 시전해보자. 새우튀김이라도 뭐가 더 나올지 모른다. 좋은 물건을 알아보는 손님보다 요리사를 기쁘게 하는 것은 없다. 실제로 이 시간대 노량진에는 아구찌(당일 최상품)를 잡기 위해 장화신고 경매장을 이리저리 누비는 셰프들로 가득하다.
완도산 전복. 7미는 1kg에 7마리 정도 들어가는 사이즈라는 의미. 삼계탕, 갈비탕, 황제짬뽕 등에 들어가는 전복이 30미 정도 된다. 몇년 전까지 5~6미 정도 되는 큰 사이즈 전복도 간간이 볼 수 있었지만, 바다 오염으로 폐사율이 높아져 양식장들이 전복을 크게 키우기 어렵다고 한다.
전복 맛이 거기서 거기인 것 같지만 크기가 커질수록 일단 풍미를 결정짓는 내장의 양과 질이 다르며, 살밥이 두툼한 큰 전복을 회쳐서 씹으면 그 오독오독한 저항감이 빠리의 레지스탕스 수준이다. 비싸서 그렇지..
노량진 상인들이 ‘딱돔’이라 부르는 이 생선의 정식 명칭은 ‘군평선이’다. 이 이름엔 재밌는 유래가 있다. 왜란 직전 여수에 부임한 충무공이 이 생선 맛을 보곤,
“맛이 기똥차구나. 이 생선의 이름이 무엇이냐?”
라고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녀석들은 바다 깊은 뻘에 산다. 지금도 그물을 바닥에 대고 박박 긁어야 겨우 작은 군집을 포획할 수 있는 희귀한 녀석들이기 때문에 조선 중기의 어획 기술로는 더더욱이나 구경하기 힘든 듣보잡 생선이었을 것이다. 다른 걸 잡다가 얻어걸린 몇 마리를 장군에게 진상했을 터.
여하튼, 아무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하자 충무공은 친히 네이밍에 나선다. 마침 장군의 식사를 시중들던 관기의 이름이 ‘평선’이었다.
“그렇다면 요놈을 네 이름을 따 '평선이'로 부르자꾸나”
이후 이 생선은 구워야 진미라는 형용이 붙으면서 ‘군평선이’가 된다.
얘한텐 ‘샛서방고기’라는 별칭도 있다. 너무 맛있어서 남편한테는 안 주고 새서방한테만 몰래 준다는 것이다. 조선판 <부부의세계>의 주요 소재였던 것. '샛서방'이 사위를 의미해서, 장모가 사위가 올 때만 꺼내 구워주는 귀한 생선이라는 썰도 있는데, 어쨌거나 저쨌거나 남편들은 이래저래 맛있는 생선을 얻어먹을 수가 없다는 슬픈 전설이..
아무튼, 구우면 졸라 마시따. 차진 갈치 맛이라고 해야할까.
군군평선이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진열된 아이템들에서 따뜻해진 바다의 수온이 와락 느껴진다. 역시 제아무리 코로나고 나발이고 우주 삼라만상을 거역할 수 없는 것. 자, 이제 얘네들을 어떻게 캐스팅해야 최대한 그럴싸한 시푸드 회식이 될까 두뇌를 풀가동하고 있던 중..
경매장을 돌아다니다가 단골 중도매인과 접선.
근병 : 오늘 활어 물량 터진 거 뭐 있어요?
엉클마린 마도로스김(이하 엉마) : 오늘 갑오징어 좀 들어왔고.. 자연산 참돔이랑,, 광어, 숭어 요런 거 물 좋죠.
근병 : 아 맛있겠네ㅋㅋ 그라믄 가마이써 보자.. 큰 놈들로 섞어서 15kg 정도 빼줄 수 있어요?
엉마 : 뭐 어묵 만들게요? 뭘 그렇게 많이 사.
근병 : 뭐.. 그렇게 됐어요. 암튼 좋은 걸로 빼주셈.
엉마 : ㅇㅋ. 이것만 정리하고 30분 후에 지하 작업장에서 봐요.
근병 : ㅇㅋ. 근데 말야 혹시..
나는 여기서 입을 닥쳤어야 했다.
근병 : 설마 오늘 참치 들어온 거 없죠?
엉마 : 참치? 있쥐.
근병 : 아니..냉동 블럭 말고.
엉마 : 그니까. 있어 생참치. 오늘 동해 정치망(연안에서 함정 어구를 써서 잡는 조업 방식. 단번에 대량 어획이 가능하다)에 많이 올라왔는디?
근병 : 다마(크기,중량을 뜻하는 업장용어)가 어떻게 되는데..
엉마 : 15~20kg 정도는 나오지. 함 보실?
근병 : ㅇㅇ...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는 마도로스 김.
오메 시벌 진짜 있네ㄷㄷ
총알도 튕겨나갈 것 같은 단단한 외피. 당장이라도 펠프스 후려치며 스프린트 할 것만 같은 장엄한 꼬리지느러미. 틀림없는 참다랑어다.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다음 화
<계속>
취재 및 촬영에 협조해주신,
노량진 수산시장 90번 중도매인 엉클마린(링크) 일동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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