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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BS>

 

지난 24일, 한국 차기 정부가 보낸 '정책 협의단'이 일본에 도착했다. 일본에선 한국에서 '정책 협의단'이 온다고 일주일 이상 전부터 계속 뉴스로 다뤘다.   

 

어느 정도냐고?

 

정책 협의단이 한국에서 출국하는 모습부터 현장 중계로 내보낼 정도다. 일본에 도착한 것도 속보처럼 때린다. 도대체 차기 정부가 보낸 '정책 협의단'을 일본에선 왜 이렇게까지 반기는 걸까. 

 

한국의 보도로는 정책협의단이 일본에서 뭘하고 온 건지 제대로 알기 쉽지 않다. 이왕 일본에 있는 김에, 일본 보도를 통해 정책협의단이 나리타 공항 도착 후, 어떤 행보를 보였는지 짚어보자.

 

 

일본 언론 보도로 본 정책협의단 

 

4월 24일, 한국 정책협의단은 기시다 총리에게 차기 대통령 윤석열의 친서를 전달한다. 28일까지 머무르며 하야시 외무상을 비롯한 여야당 국회의원과 만나 한일관계 재건책 등에 대해 협의했다.

 

(참고로 기시다 정권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는 건 하야시 외무상이다. 다른 각료는 아베 정권에서 스가 정권, 기시다 정권으로 타이틀만 바꼈을 뿐이다. 보통 정권이 바뀌면 각료도 바뀌는데 아베 정권 이후 거의 고정적인 느낌이라서 총리만 바뀌었을 뿐, 같은 자민당이라 그런지 변함이 없다)

 

정진석 단장은 인천공항 기자회견에서 

 

"한일과 한미일 협력관계 정상화는 동북아시아와 세계평화에 크게 기여한다.“

 

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대표단 파견임을 강조, 일본이 건재하다는 걸 과시하고 싶어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을 까내리면 일본이 건재하다는 걸 과시하는데 파워가 적어진다. 해서, 한국 대표단이 미국에 가서 바이든 대통령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만나지도 못한 외교 참사는 별로 거론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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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니혼케이자이 신문> 링크

 

한국 대표단은 25일, 하야시 외무상과 하기우다 경산상(경제산업대신), 기시 방위상과 만나 한일관계 개선책에 대해 회담했다.

 

다음날인 26일은 기시다 총리, 27일은 아베 전 총리와 회담했다. 기시다와의 회담은 기시다 정권의 키맨 하야시 외무상이 성사시켰다고 보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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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링크

 

 

한국 측에 문제가 있다...?

 

하야시 외무상과 15분 동안 진행된 회담과 그 후 기자회견에서 나온 발언을 정리하면 이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출처 링크).

 

하야시 외무상 :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구축한 한일 우호 협력 관계의 기반에 근거, 관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한국 대표단 단장(정진석 국회부의장) : 과제를 공유하고 긴밀한 협력을 유지, 강화할 것에 의견이 일치했다. (강제 징용공 소송 문제를 염두에 두고)새로운 전환기를 만들기 위해 성의를 가지고 대화해 가고 싶다.

 

대표단의 방일에 대해 보도하는 우리 언론들 논조를 보면 한국 대표단과 일본 정부가 마치 대등한 입장에서 회담을 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일본 보도는 논조가 사뭇 다르다.  일본이 우위에서 한국의 차기 정부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다, 잘하라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고 내심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이중적인 분위기가 우러나온다. 

 

하기우다 경산상(경제산업대신)과의 45분 회담에선 2019년에 이루어진 반도체 재료 수출규제 강화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은 수출된 재료들이 북한 군사용으로 쓰인다며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해 본격적으로 문제가 커졌던 사건이다. 한국은 이에 맞받아치며 WTO에 제소했다. 이후 수출 관련 양국의 대화는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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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우다 경제산업대신.

 

하기우다 경산상 : 건전한 한일관계는 지역/세계평화와 안정, 번영을 지향하는데 불가결하다.

 

한국 대표단 단장(정진석 국회부의장) : 수출규제 등 여러 현안이 있지만, 새 출발을 기회로 지혜를 모아 해결할 노력을 하자(출처 링크).

 

일본 측의 발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WTO에 제소한 상황에서는 한국과 정책협의 대화를 계속할 수 없다. 한국 측에 문제가 있다. 한국 차기 정부의 관계 개선 의사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겠다. 시곗바늘을 돌려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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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마이니치 신문> 링크

 

아베의 친동생이며 외가로 입양된 기시 노부오 방위상과도 회담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 관해 한일과 한미일 연대가 중요하다.“ (출처 링크)

 

따로 보도된 건 없지만, 기시 방위상과는 지소미아에 관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아베 전 총리, 유감을 표하다 

 

하야시 외무상과 하기우다 경산상(경제산업대신), 기시 방위상과 회담한 다음 날인 26일, 한국 대표단은 관저에서 윤 당선자의 친서를 전달하고 25분 정도 회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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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총리에게 윤 당선인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는 정진석(현 국회부의장) 대표단장

 

기시다 총리 : 국제질서가 위협받는 정세에서 한일 관계 개선은 서둘러야 한다. 한일, 한미일 간 전략적 연대가 이처럼 필요한 적이 없다. 

 

대표단 : 한일관계를 중시하고 있어 관계 개선을 위해 협력하고 싶다.

 

기시다 : (강제 징용공 문제를 거론하며)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구축한 우호 협력관계의 기반에 의거한 관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한일 간 현안 해결이 필요하다.

 

(기자회견에서) 국가와 국가 간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관계의 기본이다. 한국 차기 정부 입장을 지켜보겠다. 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돌려놓기 위해 일본은 일관된 입장으로 긴밀한 의사소통을 하고 싶다. 

 

일본 측 참석자에 따르면 5월 10일 한국 대통령 취임식에 기시다 총리의 출석 요청은 없었다고 한다. 한국 대표단은 같은 날 마쓰노 관방장관과 아키바 국가안전보장 국장과도 만났다(출처 링크).

 

또 다음날인 27일에는 아베 전 총리와 국회에서 회담했다. 아베는 회담에서, 

 

“위안부 합의 백지화에 대해 유감이다. (강제 징용공 소송에 관해서,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는 절대 피해야 한다.”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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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산케이> 링크

 

북한에 대해서는 한일, 한미일 연대 강화로 의견이 일치했다. 한국 대표단은 입헌민주당 이즈미 대표와도 회담했다지만, 회담 내용을 전하는 기사를 보진 못했다.

 

일본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한국 대표단과 회담하는 걸 반대하는 여론도 강하다. 일본을 '적국 취급'한 한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만나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한국에서 얻어낼 것이 없다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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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NEWS ONLINE> 링크

 

 

 

일본 언론에서 한국 차기 정부를 칭찬하는 이유

 

일본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한국 차기 정부에 대해 칭찬하는 보도량이 굉장하다. 물론 대선 당시에도 마치 윤석열 후보의 지지선언을 하는 것마냥 대부분 윤 후보 칭찬, 이 후보 비난 일색이었다(일본 언론을 유심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선 거의 악마화하듯 비난 기사가 쏟아진 바 있다. 일본에서 두 대통령의 이미지는 매우 좋지 않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전반적인 일본 언론 보도 행태로 판단해 볼 때, 일본에서는 자신들 뜻대로 움직여줄 한국의 차기 정부가 기특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다.  

 

일본에서 ‘한국 정책 협의단'을 맞는 자세는 속으로는 신나 좋으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한국에서 사정사정하니까 일본이 어쩔 수 없이 받아준다‘는 스탠스다. 사실 ’한국 정책 협의단'을 가장 반기는 건 기시다 정권이다. 이렇게 생각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언론 보도를 보면 기시다 총리가 '정책 협의단'을 만나기로 결정한 건 미리 정해진 게 아니라 회담(4월 26일) 바로 전날 밤이다. 

 

왜 그랬을까? 한국 차기 정부가 기특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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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링크

 

기시다의 관점에선, 27일 아베 전 총리를 만난다고 하니 그와 대립각인 본인이 먼저 만나 선수 치는 것이 유리하다. 아베를 견제해, 자신의 공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걸 마치 기시다 총리가 큰마음 먹고 양보해 만나주기라도 한 것처럼 생색을 내고 있는 모양새인데, 이는 그만큼 한국 정책협의단과 만나면 일본 자민당 정권에 반드시 득이 된다는 의미다. 

 

더하여 일본 정부 관계자는 ‘한국 차기 정부에서 요청은 따로 없었다’ 했지만, 일본 언론에서는 한국 대통령 취임식에 기시다 총리가 참석해주는 걸 고대하며 구걸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가 뒤이어 나오며(취임식에는 일본 외무상이 참석한다고 보도됐다), 한일 안보 협력을 위한 접근이 한국의 차기 정부에게 길보라는 뉴스도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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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마이도나 뉴스> 링크

 

오랫동안 일본 언론을 관찰해 온 나로서는 이런 뉴스가 무섭게 다가온다. 흔히 한국의 정치, 언론 지형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하지만 일본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극우화된 일본 정치, 점점 우경화되는 일본에서 왜 이토록 한국의 차기 정부를 칭찬하는 것일까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외교는 기본적으로 주고받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일본에서, 한국에 제공할 것이 얼마나 되는지는 냉정하게 판단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일본이 규제를 하고 한국을 멀리하면, 당장 한국 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한국 언론이 보도하고 소위 지식인이란 양반들이 떠들 때가 엊그제 같은데 결과는 어땠나. 한국은 오히려 이를 발판으로 자립도가 올라갔다. 아직도 10년, 20년 일본 경제에 뒤진다고 했지만 되려 문재인 정권 하에서 많은 지표들이 일본을 상회하기에 이르렀다.  

 

사견을 보태자면 현재 기시다 정권이 한일 교류에서 바라는 건 어디까지나 다음 참의원 선거에서 표를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얻고, 한국 관광객이 일본을 방문해 피폐한 지방경제를 일으켜 세워주는 것이다. 코로나 방역도 실패했고 내세울 게 없는 기시다 정권을 윤석열 정권이 구해주길 바라는 판이란 말이다.

 

그렇다고 무역제재가 쉽게 풀릴까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다. 만약 풀린다면, 그건 한국과의 관계를 생각해서가 아니라, 일본 기업을 살려주는 일이라는 판단이 확실히 선 다음일 것이다. 게다가 일본 언론의 보도로 판단한다면 위안부 합의나 강제징용 피해자 건도 한국 측이 나서서 일본이 원하는 대로 되돌려 놓을 분위기다. 

 

‘한국 정책 협의단'이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본 경제와 연명이 어려운 기시다 정권을 살리려고 온 듯 보이는 구원자처럼 보이는 건, 그리고 아직도 한국 관료들의 인식이 일본이 없으면 한국 경제가 파탄나고, 한국은 일본의 도움이 없으면 자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나의 기우일까.

 

이제는 모든 나라에서 선진국으로 인정한, 지표로 자신을 증명한 게 현재의 한국이다. 헌데 차기 윤석열 정권의 관료들은 과거에 본인이 배우고, 공부했던, 마치 일본이 없으면 한국은 금방 쓰러지고, 아직도 일본이라는 나라를 쫓아야 겨우 성장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듯 보인다.  

 

한국에게 한미일 관계가 중요하고 한일관계가 중요하다는 의견에는 100번 동의한다. 이미 글로벌 경제로 묶여진 시대인데 사이 좋게 지내야 한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헌데 한국이 문화적, 경제적으로 성장한만큼 우리 외교력도 성장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사이즈가 커지고 선진국이 됐다면 이제 그에 걸맞는 외교와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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