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1. 

바람 잘 날 없는 강호. 수없이 많은 군웅들이 봄날의 꽃처럼 피었다가 이슬처럼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곳. 이런저런 문파들이 저마다의 기치를 걸고 호걸들을 끌어모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가장 크게 세력을 떨쳐온 건 정파인 민주파와 사파인 국힘파였다.

 

실정을 거듭하던 폐주 근혜를 촛불신공으로 쫓아낸 민주파의 장문 재인이, 백성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 속에 보위에 올라 왕조를 열었으니, 왕호를 문왕이라 하였고 재위는 5년에 달했다.

 

문재인 왕조.jpg

 

백성들은 문왕이 만수무강하며 치세를 공고히 할 것을 염원했으나, 문왕은 물러날 뜻을 확고히 하며 모든 강호인이 승복할 만큼 무공이 높은 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공언하였다.

 

이재명윤석열.jpg

 

이에 무림의 관례대로 지존을 뽑기 위한 영웅대회가 열렸으니, 결승전은 민주파의 사이다 재명과 국힘파의 구수 석열의 대결이었다.

 

재명은 손가락 무공에 능한 자로, 손가락으로 혁명을 일으켜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를 지닌 인물이었다. 

 

이재명 숟가락.jpg

 

특히 억강부약(抑强斧藥)이라고 하여 아무리 강한 자라 하더라도 눌러버리는, 도끼 같은 약지의 공격을 받으면 대동세상(大疼細傷), 즉 보기엔 가늘지만, 통증은 엄청난 상처를 입게 되었다.

 

또한 재명은 어린 시절 막일을 하다가 얻게 된 흙으로 만든 수저를 병기로 쓰며, 독설로 상대방의 몸과 마음을 발기발기 찢어버리는 무공 또한 일품이었다. 이로 인해 죽거나 떠난 이가 무릇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반면에 자신은 위기에 처해도 목숨이 두 개 있는 것처럼 거듭 살아난다 하여, 사이다재명(死離多再命)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석열은 사파에서도 베일에 가린 검사파의 일원이었다. 그는 마치 아홉 개의 손을 가진 것처럼 현란한 손놀림으로 돌을 깰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을 보여주어 구수석열(九手石裂)이라는 별호를 얻게 되었다. 

 

3.jpg

 

폐주 근혜의 미움을 사 오랫동안 유배되어 있던 그는, 문왕 즉위 이후 청산가리의 일종으로 적의 무공을 폐해 버리는 적폐청산(敵廢靑酸)이란 이름의 맹독을 얻어 검사파의 맞수들을 제압했고, 마침내 검사파의 수장에게만 전해진다는 검철총장(劍撤總掌), 즉 검을 거두고 내공을 모두 손바닥에 실어 날리는 무공을 익히기에 이르렀다.

 

석열은 이후 검사파를 이끌고 조국(曺國)이라는 나라에 쳐들어가, 표창을 날리며 조국백성, 즉 조민(曺民)들을 괴롭히더니 끝내 조국의 정경부인을 깊은 감옥에 가두는 등 횡포를 부렸다. 

 

어둠의 집단.jpg

 

이에 분노한 문왕과 백성들이 검사파와 석열의 책임을 물으려 하자, 홀연 검사파를 떠나 국힘파에 투신한 것이었다.

 

석열의 아내는 술로써 우울함을 다스린다는 주울리(酒鬱理)라는 여성이었는데, 석열이 다리를 쩍벌리며 도리도리를 해 상대를 현혹시키면, 주울리가 덮개 부분이 뱀 모양으로 장식된 개사과(盖蛇戈)라는 창으로 상대를 제압하곤 했다. 

 

 

2.

민주파와 국힘파의 고수들을 모두 제압하고 결승에 오른 재명과 석열은 보위에 오르기 위한 마지막 초식을 겨루게 되었다. 

 

먼저 석열이 왕(王)자를 그린 손바닥을 크게 움직여 대장동(大掌動)이라는 초식을 전개하자 재명은 둘레에 코끼리가 그려진 곽상도(廓象刀)라는 칼을 휘둘러 반격했다. 원래 곽상도는 검사파에서 국힘파로 전해져 온 것이었는데, 50억의 황금에 눈이 먼 국힘파 제자의 아들이 이를 빼돌렸고, 돌고 돌아 재명에게까지 온 것이었다.

 

손바닥 왕.png

곽상도ㅎㅎㅎㅎ.PNG

 

석열이 노래를 부르며 손가락을 뻗어 상대의 폐를 썩게 만든다는 여가부폐지(與歌腐肺指)라는 공세를 펼치자, 귀가 큰 이대녀(耳大女)라는 여성이 나서 재명을 도왔다.

 

치열했던 대결은 중립적인 것처럼 간을 보고 있던 철수(撤收)가 이름과 달리 철수하는 척하면서 등 뒤에서 재명에게 손을 쓰기 시작하는 바람에 석열에게로 급격히 기울어졌다. 철수의 절기로, 붉은 꽃 한 송이처럼 화려하지만, 실속은 없다는 단일화(丹一花)라는 초식이었다.

 

뒷통수.jpg

 

결국 재명은 피를 토하며 물러서야 했고, 무림지존에 오른 석열에게 군웅들의 하례가 이어졌다.

 

그러나 석열은 보위에 오르기도 전에 왕궁을 옮기겠다고 민가를 기웃거리며 폐를 끼치고, 옥에 갇힌 명박을 풀어주려 하거나, 검사파 무리들을 중용하는 행태로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3.

검사파(劍邪派)는 이름과 달리 검은 별로 쓰지 않고 권법으로 일가를 이룬 자들이었다. 그들은 사람을 가둬놓고 죽인다는 수사권(囚死拳)과 불꽃을 일으켜 공격하는 기소권(起燒拳)을 휘두르며, 선량한 백성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사마외도의 무리였다. 하지만 같은 검사파에겐 권법을 쓰지 않았다. 

 

김학의.jpg

 

그들의 암기로는 가죽옷도 뚫고 몸에 4개의 구멍을 내버린다는 피의사실공표(皮衣四失孔鏢)라는 표창과, 나는 새도 죽일 수 있다는 소환조사(小丸鳥死)라는 환약이 있었고, 상대방을 옴짝달싹 못 하는 유령처럼 만들어 버린다는 구속영장(拘束靈掌)과 상대방의 영혼까지 탈탈 털어 빼앗아 버린다는 압수수색영장(押收搜索靈掌) 같은 장풍 공격 역시 강호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당년 무림지존이었던 노왕 무현을 핍박하여 자결하게 한 것도 명박의 사주를 받은 검사파였고, 폐주 근혜와 결탁해 정파 인사들을 옥에 가두는 등 탄압한 것도 검사파 무리들이었다. 

 

이명박.jpg

 

이에 뜻있는 이들이 검사파의 무공 중 가장 독랄하기로 악명높은 수사권을 폐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수사권은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이라는 두 권의 무공비급에 기재되어 있는데, 이를 되찾아 오면 검사파 무리들은 더 이상 수사권을 연성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영웅대회에서 간발의 차로 패했다고는 하나, 명문정파인 민주파의 힘과 세력으로 검사파를 이기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검사파를 비호하는 국힘파와, 곧 윤왕으로 즉위를 앞둔 구수석열이었다. 석열이 상대방의 살가죽도 들어 올린다는 거부권(擧膚拳)을 연성하면 민주파의 공세가 무력화되기 때문이었다.

 

이에 민주파의 군웅들은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을 찾기 위해 신속히 움직였다. 반대로 국힘파는 시간을 끌며 석열이 거부권을 모두 익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수완박 반대.jpg

 

 

4.

두 권의 비급은 법사(法寺)라는 절 위에 위치한, 윤리에 대하여 캐어 묻는 윤핵관(倫劾館)이라는 건물에 있었다. 윤핵관을 지키는 국힘파의 고수는 석열의 절친인 권성동(拳城動)으로, 주먹으로 성을 움직일 수 있는 자라 하였다.

 

윤핵관에 들어앉은 권성동이 시간을 끌며 버티자, 민주파의 형배가 갑자기 자신의 배를 갈라 위장을 꺼내더니 마구 치기 시작했다. 고육계의 일종인 위장탈당(胃腸脫撞)이었다. 그 처참한 광경에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니...

 

민형배권성동.jpg

 

보다 못한 무림의 원로 병석이 중재에 나섰다. 국힘파가 지키고 있는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의 절반을 넘겨주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검사파의 수사권을 전부 빼앗지는 못하지만, 그 힘이 약해지므로 패악질도 줄어들 것이었다. 

 

권성동은 두 권의 비급을 전부 다 내줄 수는 없지만, 절반 정도라면 줄 수 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권성동 본인이 검사파 출신이었음에도, 검사파의 수사권과 기소권에 맞아 고생했던 개인적 경험 탓이었다. 또한, 석열이 왕위에 오르기에 앞서 엄청나게 차가운 한덕수(寒德水)라는 강을 건너고,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인사청문(人死廳門)이라는 문을 지나야 하는데, 민주파가 자신들을 방해하면 곤경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민주파는 병석과 권성동의 중재안이 마뜩잖았지만, 국힘파와 검사파가 더 난리였다. 그들은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을 넘겨줄 수 없다며 약속을 깨고 버티기에 들어갔고, 평검사회의(平儉絲灰衣)라는 옷으로 갈아입더니, 적들을 모두 잡아 베어 죽일 수 있다는 집단사표(執斷死鏢)라는 암기까지 만지작거리며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필니보수토(必泥報讐討)! 원수를 갚기 위해 진흙탕에라도 쳐들어가겠다는 결사항전의 태세였다. 그에 앞장선 것은 검사파에서 국힘파로 넘어간 김웅이란 자였다. 

 

김웅.png

 

민주파의 홍근(紅斤)이 붉은 도끼를 던져 김웅이 들고 있던 회색 깃발을 둘로 쪼개버렸다. 회기(灰旗) 쪼개기라는 전법으로, 혼비백산한 김웅이 허겁지겁 달아나며 국힘파의 필니보수토는 무력화되었다. 김웅은 아주 오래전에 담근 고발사주(古醱蛇酒)라는 뱀술을 마시고 중독되어 주화입마에 빠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기억 안 남.jpg

 

이에 국힘파의 여협들이 드러누워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을 지키기 위한 농성에 들어갔으나, 국힘파가 약속을 파기한데 격분한 병석이 앙증맞은 몸을 움직여 여협들의 위를 경공으로 사뿐히 날아올랐다. 국힘파의 여협 배현진이 다섯 손가락을 참하게 모아 병석을 공격했으나, 병석은 국화 그림이 새겨진 국회의장(菊繪依杖)이라는 지팡이에 몸을 기대며 이를 피했다.

 

뉴스1.jpg

출처-<NEWS1>

 

배현진.jpg

출처-<연합뉴스>

 

이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이 민주파의 손에 들어오나 싶었던 찰나, 검사파의 수장인 기모수가 나섰다. 그는 생애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다는 필살기이자 실처럼 가느다란 암기인 사표(絲鏢)를 던졌으나, 뜻밖에도 튕겨 나온 사표는 도리어 기모수의 모자를 날려버렸으니, 이는 바로 인사권자만이 쓸 수 있다는 반려신공이었다. 졸지에 모자를 버린 기모수(棄帽睡)는 그대로 넋을 잃은 채 잠이 들고 말았다.

 

김오수 쿨쿨.jpg

 

 

5.

수장을 잃은 검사파 인사들의 어안이 벙벙한 사이에, 하늘에서 포성이 터지며 군웅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는 무림지존만이 날릴 수 있다는 공포(公砲)였기 때문이다. 석열이 드디어 거부권을 연성한 모양이라며 국힘파와 검사파가 쾌재를 부르는 사이 천천히 나타난 이는....

 

뜻밖에도 문왕 재인이었다. 그의 손에는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의 절반이 들려 있었다.

 

"나는 왕위에 올라 5년간 혼신의 힘을 다해 나라를 다스렸소. 무엇보다 백성들에게 피해가 컸던 검사파의 횡포를 근절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으나,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소. 이제 퇴위를 앞두고 초야로 돌아가기 전에 내 손으로 이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할 듯싶소."

 

말을 마친 문왕은 크게 포효하며 남아 있는 모든 공력을 다해 갖고 있던 절반의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을 짓이겨 버렸다. 

 

1.jpg

이 생퀴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동시에 그의 공력도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으니, 왕위를 버리고 양산으로 돌아가는 문왕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짓지 않는 이가 없었다.

 

검수완박(劍手完剝). 검사파의 살수를 완전히 박탈하려던 시도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아쉬움도 있었으나, 민주파의 군웅들과 뜻있는 백성들은 만세를 부르며 기뻐했다.

 

그러나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각 지역의 맹주를 뽑는 영웅대회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민주파와 국힘파의 군웅들은 한 달 뒤를 기약하며 다시 칼을 갈기 시작했으니, 천하 백성들의 안위를 걸고 겨루는 건곤일척의 승부에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