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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우 에브리원!

 

나는 해적X라고 해. 난 요즘 고민이 많아. 주식도 박살나고.. 서초부터 용산까지 더 막히는 출퇴근길도 걱정이구.. 딴지에 글쓰면 막 검찰에 후다 따일 거 같고 막 암튼 그래..

 

하지만, 그보다 걱정되고 염려되어 밤잠이 설쳐지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에 교양이라는 것이 메말라 버릴까봐, 교양없이 사는 자들이 아도치는 세상을 보고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교양따윈 루저들이나 따지는 것이지."

 

라는 세계관을 가져버릴까봐 그게 걱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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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정신능력을 문화로써 개발하고 배양해내 인격이라는 것을 만들어가는 것. 그게 무너진 사회는 정말 끔찍하지 않아? 그래서 내성적인(?) 나라도 이렇게 나서게 되었어. 우리 사회의 굥양미.. 아니 교양미를 보전하고 충전하자! 물론 당만 충전해도 살아가는 데 어려움은 없겠지만, 교양미까지 충전된다면 당신의 삶이 훨씬 더 윤택해질 거야.

 

그럼 첫 시간으로 오페라에 대해서 알아보자고!

 

오페라의 왕과 키다리 아저씨 

 

오늘날 오페라의 적자인 뮤지컬은 브로드웨이는 물론, 한국 사회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지. 하지만 대부분이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말로 되어 있는 오페라는 아직도 우리에게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야.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과장된 몸짓, 힙합과 R&B에 이미 최적화된 우리의 청각에 익숙하지 않은 창법도 한몫을 할 거야.

 

이러니 어쩌다 초대권이 생겨서 멋진 오페라 극장에 찾아가도 친절하지 못한 극 전개에 졸음과의 전쟁이 발생할 뿐이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는 스포일러 금지가 필수지만, 오페라는 반대로 대략적인 줄거리를 알고 가는 것이 졸음 방지에 필수야. 오페라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지루하게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사전 지식의 전무함이지. 반드시 최소한의 배경지식 및 줄거리를 확인하고 가면 아름다운 아리아도 즐길 수 있어. 그 자체로 교양미 뿜뿜 아니겠어?

 

자. 그럼 이제 19세기 바그너와 함께 오페라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던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와 그의 히트작인 아이다에 대한 친절한 스포일러를 시작해 보자고. 아이다는 국내에서는 원조 요정 핑클의 옥주현 씨가 출연하는 걸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지. 그럼 먼저 베르디에 대해서 함 디벼볼까? 오페라의 왕 베르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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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 이 왕이 아닌데? 잠만! 손이 미끄러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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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지 이거다! 자 다시~

 

오페라의 왕 베르디는, 1813년 이탈리아의 부세토라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어. 부모님으로부터 뛰어난 음악적 DNA뿐만 아니라 지독한 가난도 물려받았지. 그 덕에 어려서부터 음악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지만, 정식 음악교육은 꿈도 꿀 수 없었어. 그저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갈증을 달래야 했지.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과 뛰어난 재능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지. 베르디는 고향 마을에서 제일 잘나가는 ‘교회 오빠’였던 거야.

 

하지만 그럼 뭐 하겠어.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이상 베르디는 피아노 잘 치는 교회 오빠로 살아가다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갈 운명이었던 거야. 하지만 그의 인생에 쩌는 키다리 아저씨가 등장해. 그의 이름은 안토니오 바레치. 훗날 베르디의 장인이 되는 지역의 독지가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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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제대로 된 피아노 레슨을 시켜주마.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네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거라.”

 

안토니오 바레치의 후원을 받기 시작한 베르디는 더 이상 최저시급을 받으며 알바를 할 필요가 없어졌어. 키다리 아저씨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베르디의 피아노 실력은 수직 상승하기 시작해. 그맘때 남자아이들이 다 그렇듯 기고만장해졌지. 잔뜩 부푼 가슴을 안고 베르디는 밀라노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어.

 

‘내가 시골에 묻혀 지내서 그렇지 도시 놈들에게 재능에서 뒤질 것은 하나도 없다. 어디 시골 쥐의 매서운 맛을 한 번 보거라.’

 

이 당시 이탈리아는 외세의 침략에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였어. 로마제국의 후손들이란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지. 그래서 베르디가 밀라노로 갈 때는 여권이 필요했었다고 해(이 부분의 자세한 이야기는 "찌라시 세계사" 기사를 참고하도록 해! (링크)).

 

 

촌뜨기의 각성과 대형 불행 

 

어찌 되었건 우리의 주인공 베르디는 청운의 꿈을 안고 밀라노에 입국(?)했어. 하지만 밀라노 음악학교에서 피아노 특기생 실기 시험을 마친 베르디는 처참히 처발려버려. 마치 <위플레쉬>의 빡빡이 플랫처같은 교수의 냉담한 한마디로 말이야.

 

“이봐 시골 촌뜨기! 너는 우선 서류심사에서도 탈락인 걸 내가 실기 시험이나 보게 해준 거야. 18살이면 우리 학교 입학 기준 나이에서 이미 4살이나 넘겼어. 재능도 없고, 눈빛만 살아 있어. 피아노가 오기와 끈기로 잘 치게 된다면 이 세상 모두가 쇼팽이 되었을 걸? 같은 나이 또래는 물론이고, 한 세대 아래 아이들보다 나을 게 없어. 헛된 꿈 꾸지 말고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게 자네를 위해서 좋을 거야.”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이 일을 계기로 피아니스트의 꿈을 포기한 베르디는 작곡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게 돼. 밀라노에서 작곡 공부를 시작하지. 그 후 베르디는 밀라노에서 짧은 유학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귀향해 데뷔 음악회를 준비하게 돼. 무명의 신인 작곡가가 밀라노라는 대형마켓에서 데뷔가 쉽지 않았겠지. 결국 그의 데뷔 무대를 마련해 준 것도 그의 영원한 키다리 아저씨 안토니오 바레치였어. 그의 집 정원에서 음악회를 열게 되지.

 

“진짜 저 인간은 전생에 무슨 공덕을 쌓았길래 저런 후원을 받나 몰라? 듣자 하니 바레치가 자기 딸의 음악선생으로 베르디를 붙였다고 하던데.”

 

“말이 음악선생이지 결혼으로 가기 위한 예비 관문이지 머. 부럽다! 베르디.”

 

주변의 시샘에도 불구하고, 배르디는 바레치의 딸과 결혼에 골인하고, 장인의 확실한 후원을 받으며 다시 밀라노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어.

 

“선생님! 아니 장인어른! 다시 한번 밀라노에 가서 도전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제 저도 애 둘 딸린 유부남입니다. 오직 음악에만 승부를 걸어서 남 보란 듯이 성공해서 금의환향하겠습니다.”

 

흙수저로 태어났지만, 좋은 후견인을 만나 탄탄대로만 걷던 베르디. 신이 질투한 것일까? 베르디의 금쪽같은 두 딸은 돌잔치만 겨우 마치고 생을 마감하였고, 이 충격인지 그의 부인도 26세의 나이로 그만..

 

“아니 이게 먼일이래? 베르디 그 양반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어? 일이 손에 잡히겠어?”

 

“말도 말아. 지금 작곡가로서의 생명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생명이 위태로울 지경이라는구만. 거의 정신이 나갔다고 하던데, 아까운 인재 하나 잃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범국민적인(?)연애 반대와 뮤즈의 등장  

 

이처럼 베르디가 절망의 끝에 있을 때, 동아줄이 되어 준 여인이 등장하게 돼. 그녀의 이름은 주세피나 스트레포니! 같은 극장의 주연 가수였어. 요즘으로 치면 대형 기획사의 최고 작곡가와 걸 그룹 센터의 만남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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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는 그녀의 도움으로 마침내 재기를 할 수 있었어. 그의 재기작은 <나부코>라는 오페라. 당시 시대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탓으로, 그는 일약 국민 작곡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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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코'는 포로로 잡혀 억압받는 유대인의 이야기야.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등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이 오페라는 사이다 1.5리터를 원샷한 듯한 통쾌함 같은 것이었지. 하지만 너무 높아진 유명세는 베르디와 주세피나 두 사람의 애정 전선에 먹구름을 몰고 왔어.

 

“아니 베르디 같은 국민 작곡가가 그런 천박한 여자와 계속 만나는 이유가 머야? 그 여자 전적이 화려하잖아. 유부남과 바람펴서 자식까지 있는 여자가 어떻게 감히 우리 베르디와……”

 

“어허. 너무 그러지 말게. 어쩌면 오늘날의 베르디는 그 여자가 만들었다고 볼 수 있어. 전처와 자식을 잃고 사람 꼴도 아닌 베르디를 다시 작곡가로 만든 건 주세피나야.”

 

“그래도 이탈리아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데? 국민 작곡가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자야.”

 

실제로 이태리 사람들이 둘의 사랑에 호의적으로 돌아서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 그녀는 훗날 아이다 극본 작업에도 동참하며, 베르디의 확실한 뮤즈로 자리를 잡게 되지. 그녀의 내조 덕분인지 베르디는 국민 작곡가의 명성을 등에 업고 47세 때는 국회의원으로도 선출되었고, 환갑을 몇 년 앞둔 어느 날 이집트 국왕으로부터 오페라 작곡의 오퍼를 받게 되었어.

 

“여보. 이집트 측에서 백지수표를 보내왔소. 수에즈 운하 개통 기념으로 초대형 오페라를 제작해 달라는데 영 마음이 내키질 않소.”

 

“그래요. 이제는 당신 마음이 내키는 작품만 하세요. 국제 정세도 어수선하고 대형 작품을 하기에는 좋은 시기는 아닌 거 같아요.”

 

하지만 이집트 국왕의 끈질긴 구애와 기대 이상으로 잘 쓰인 원작을 본 후, 베르디 부부는 마음을 돌렸어. 뿌리치기 힘든 거액이 통장에 입금된 것도 크게 작용했겠지. 헐리우드 스타들이 입금과 동시에 조각 같은 몸으로 변신하듯이 말이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야. 하나도 받기 힘든 미슐랭 스타를 14개나 보유하고 있는 고든램지가 CF에서 한국 맥주가 맛나다고 엄지척을 할 줄 누가 알았겠어.

 

다음 시간에는 베르디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오페라 <아이다>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디벼보자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