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에 미국 대통령 바이든이 한국을 방문, 새 정부의 두목 대통령을 만난 후 퇴임한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난다고 한다.
이 사건에 대해 재래식 언론에서는 별일 아닌 듯 다루고 있지만, 새 정부의 두목 대통령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역시 바이든도 문재인을 알아본다며 반가워하고 있다.
기본도 모르는 인간들이 이러쿵저러쿵 아무 말이나 갖다 붙이며 유튜브와 종편에서 장사하는 개소리 대잔치판, 끼어들어 하나 더 얹는다고 해서 특별히 더 심각한 개판이 될 것 같지는 않아 간만에 끄적여 본다.
1. 바이든은 왜 문재인과 만나려 할까
바이든은 73년부터 미국의 상원의원이었으니 50년 넘게 정치를 해왔다. 그런 그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오랜 숙적인 중국·러시아와 가장 가깝게 붙어 70년 넘게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한국에 온다. 새로 취임한 두목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곧바로 실권 없는 전직 대통령을, 굳이 시간 내서 만난다는 건 그냥 개인적 친분이나 의리 때문에 벌어지는 일은 아닐 것이다. 즉, 필요하니까 만나는 거라는 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이번 문재인·바이든의 만남에 대해 미국에선 한국의 새 두목 대통령을 신뢰할 수 없고 위험한 존재로 보고 있으니 바이든이 문재인을 통해 한반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라는 의견과 문재인이 북미 간 협상 국면으로 가기 위한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해주길 바라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가장 그럴듯해 보인다.
맥락상 같은 얘기지만, 어쨌거나 미국이 한반도 관리를 위해 문재인을 활용하려고 한다는 거다. 그런데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라면 몰라도 한국의 전직 대통령한테 그런 역할을 기대한다는 게 미국의 정책상 가능한 것인지부터 의문이 든다.
문재인은 현직일 때도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한국의 이익을 가장 먼저 고려했던 지도자였다. 그래서 트럼프의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 요구에도 계속 버텼고 결국 한국에 유리한 결과를 냈다(최근에 나온 2018년 주한 대피령 등의 정보들만 보아도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트럼프-김정은의 충돌로 굉장히 위험한 상황까지 갔을 게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미국의 이익을 위해 역할을 해달라고 하려면 미국의 이익과 한국의 이익이 일치해 미국이 진짜로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분명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 그럼 바이든한테 지난 2년 동안 없던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의지가 갑자기 생겨났을까?
바이든의 50년 정치 중에는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라며 8년 동안 허송세월한 부통령 경력이 있다. 지난 2년간 현직 대통령으로서 실권을 가졌음에도 북미 관계에서 단 한 발짝도 전진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한반도의 평화적 관리를 위해 실권이 없는 문재인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건 뭔가 이상하다.
그냥 미국의 상황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다.
2. 바이든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2000년대 후반부터 돈을 너무 많이 써버린 미국이다. 언젠가 돈을 거둬들여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돈을 더 써버렸다. 이제 돈을 거둬들이려고 하니 전쟁에 돈을 쓸 여력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와중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졌다. 그 전쟁에 살짝 걸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한반도나 대만에서까지 긴장이 높아지는 건 불리한 일이다. 러시아와 중국에 한반도에서는 싸우지 말자는 신호를 보내야 할 필요가 있을 거다.
그런데 반중 극우세력의 지지를 받고 당선된 한국 두목 대통령이 대북 선제타격이나 떠들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그런 한국 두목 대통령과 오랫동안 만나면서 그와 친한 모습을 보이는 건 분명히 북한·중국·러시아에 좋지 않은 신호로 보일 터이다. 그렇다고 현직 두목 대통령을 아예 건너뛸 수는 없다. 일단 새로 취임한 두목 대통령을 만난 후에 한반도 평화의 상징인 문재인도 같이 만나는 게 첫 번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즉, 바이든이 실권 없는 문재인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만남 자체로 북한·중국·러시아에 “한반도에서는 당분간 참자”는 메시지를 주려는 것이다.
3. 미국이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얻은 교훈
한국을 일본 아래에 두고 일본을 통해 동아시아를 관리한다는 미국의 전략은 여전히 유효할 거다. 지금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미국에 여력이 없을 때는 이 체계를 빨리 구축하고 일본에 동아시아를 맡겨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미국은 한국의 새 정부에게 과거사 같은 얘기 그만하고 그냥 일본 밑으로 들어가서 일본이 시키는 거나 잘하길 바랄 것이다.
그런데 대놓고 친미·친일을 표방했던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미국과의 외교에서 미국이 원하던 것만 할 때, 어설프고 유치하게 처리한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일도 잘 안 되고 오히려 반미감정만 부추기는 결과로 나타났던 적이 많다. 뼛속까지 친미라던 이명박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의 검역 주권을 버렸다가 결국 추가 협상했다.
그 바람에 한미FTA는 다른 분야까지 부정적 인식이 퍼졌다. 외교·안보팀의 지적 수준이 낮다는 비아냥을 들었던 박근혜 정권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뭘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댔다. 중국의 전승절 기념식에 시진핑 들러리를 서는 자충수도 뒀다. 황교안은 배치하지 않겠다던 사드(THAAD)를 갑자기 배치하면서 중국에 미국의 메시지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였다. 한국인들에게 반미감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미국이 한국의 안전과 이익을 얼마나 하찮게 취급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2015년 9월 3일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관하는 박근혜
미국은 한국의 보수정치 세력 행적을 통해 ‘한국의 보수정권은 무능하고 지적 수준이 낮아 대화가 어렵다’는 것과 ‘한국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권은 미국이 시키는 것도 똑바로 실행하지 못한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 정부가 빠릿빠릿하고 영리해야 같이 뭘 해도 해볼 터이다. 뭐든 나올 때까지 압수수색이나 할 줄 아는 수준에 가장 낮은 지지율로 시작하는 극우 정권에게 뭘 시켰다가는 똑바로 하지 못하리라는 우려가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을 곤란하게 만드는 역효과도 염두에 둘 것이다.
앞으로 한국의 극우 정부가 하는 이상한 일들은 뭐든 간에 미국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지들이 알아서 하는 거라는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북한·중국·러시아만이 아니라 문재인을 지지하는 한국인들에게도 주는 메시지다.
“앞으로 미국과 일본이 한국과 공조해서 그동안 하려고 했던 걸 막 해치울 건데, 그건 우리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지들이 좋아서 하는 거야. 우리한테 뭐라 그러지 마. 우린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문재인하고도 친해, 우린 친구잖아. 앞으로도 한국 친구들이 뭐든 퍼주면 고맙게 잘 쓸게~”
라는 메시지로 추측하는 게 타당하다.
4. 결론
80년 5월, 광주항쟁이 벌어졌을 때 미국의 항공모함이 부산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는 미국이 왔으니 독재정권은 끝났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한국에 난리가 났으니 북한이 도발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필자가 아는 한, 아무리 지고지순한 가치와 논리를 갖고 있더라도 대부분의 관계에서 어지간해서는 입장을 넘어서는 논리는 없다. 문재인·바이든의 만남이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오고 문재인이 앞으로도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한국 시각에서 과장되게 해석하는 건 심사숙고해야 한다.
출처-<바이든 트위터>
이번 문재인·바이든의 만남은 한국의 새 정부하고도 당연히 논의되었을 터이다. 만약 미국이 퇴임한 문재인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역할을 맡긴다고 했으면 그걸 새 정부가 받아들였을 리가 없다. 새 정부가 필사적으로 막았으면, 미국이 고집하지도 않았을 거다. 한국의 새 정부가 싫다는데도 미국이 밀어부쳤으면 그것도 원리상 안 될 일이다. 그런데 그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건, 미국이 요구한 문재인의 역할이 새 정부가 볼 때 납득할 범위라고 보고 양해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 싶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그냥 미국 편이다. 이번 문재인과 바이든의 만남이라는 사건을 통해 미국은 북한·중국·러시아에 ‘미국은 한반도의 일시적 긴장 완화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주고(즉, 대한민국에 단지 만나기만 해도 이 정도 메시지와 파급력을 세계에 줄만한 전직 대통령이 문재인이라는 얘기다), 두목 대통령 정권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한국인들로부터 반감을 줄이려는 것 말고는 없을 것 같다.
추신.
만약 지구상에 한국에 너무나 우호적인 나라가 있다고 치자. 자발적으로 한국에 호구가 되려는 나라다. ‘뼛속까지 친한’이라며 한국에서 한국 돈으로 공부하고 한국말도 아주 잘하는 귀염둥이 극우세력이 그 나라 정권을 잡았다. 그 나라 사람들의 절반은 보수정권을 싫어한다.
그 보수 정권은 한국과 친해지려고 이것저것 선물 보따리를 잔뜩 싸 들고 온다. 우리가 대꾸도 안 하고 있으면 그들은 눈치를 살피며 뭐든 더 얹어주고 시키는 건 뭐든 하겠다고 할 것이다. 그런 등신들과의 외교는 ‘이게 다냐?’는 눈빛으로 차갑게 쳐다보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할 듯하다. 그런데 그들의 지지율이 너무 낮아서 한국의 이익을 위한 일까지 실행되지 않을 것 같다면 그 나라 보수정권 반대편을 만나 그 나라 사람들을 어르고 달래는 게 한국의 이익을 위해 유리하지 않을까.
강대국 최고권력자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다고 하는 건 기분 나쁘기만 할 일은 아니다. 다만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더 절실하지 않았던 대가로 뭔가 커다란 것들이 날아올 것 같은 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니 어금니 꽉 깨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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