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끝났고 정권이 교체됐다. 그리고 겨우 2주 뒤, 지방선거라는 또 다른 선거를 치러야 한다. 우리 외에도 최근에 선거를 치렀거나 진행 중인 국가들이 있다. 그중 영국은 우리보다 한 달 앞서 지방선거를 치른 국가이다.
지난 5월 5일(현지 시각), 영국에선 대대적인 지방선거가 실시되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현재 집권당인 보수당이 참패했다.
웨스트민스터 지역에서 노동당이 승리한 후,
축하하는 지지자들.
출처-<로이터>
영국 지방선거와 보수당의 참패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영국 의회민주주의는 400년이 넘는 기간동안 싸우고 봉합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사회적 합의를 이뤄낸 시민사회의 성과라 여겨진다. 때문에 역사가 깊고 제도적 특징이 분명하고, 다양하며 복잡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의원과 기초지방자치단체장, 기초의원 정도를 선거로 선출한다면, 영국은 이뿐만 아니라 경찰서장과 범죄국장과 같은 중요 고위직도 투표(지방선거)를 통해 뽑는다. 때문에 선거에 더욱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
영국 지방선거로 뽑힌 선출직은 임기가 4년인데, 우리의 선거와는 좀 다르다. 4년 임기 공직자 중 3분의 1을 3년 동안 매년 뽑는다. 그래서 1년마다 선거를 치르고, 4년째에는 선거를 치르지 않는다. 미국 상원의원 선거 시스템과 일부 비슷한 점이 있다고 보면 된다. 이러한 복잡한 선거 규칙 때문에 한 편으론 영국에서 오랜 기간 거주한 사람뿐 아니라, 그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도 선거제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번 지방선거의 대상은 다음과 같았다.
보수당은 과반을 확보한 지방의회가 11개 줄어들었고, 구의원(Councillors)의 경우, 491명이 자리를 잃었다.
출처-<BBC>
잉글랜드로만 한정한다면, 보수당은 과반을 확보한 지방의회 10개를 잃어 35개로, 자치단체장의 경우에는 런던 남부 외곽에 위치한 크로이던을 제외한 나머지 6지역에서 모두 패배했다. 이번에 뽑은 자치단체장 총 7자리 중 노동당이 4, 보수당 1, 자민당 1, 독립당 1을 차지했다.
지방의회에서 정당별 다수당을 차지한 분포도.
보수당이 잃은 자리 중 노동당이 가져간 자리가 꽤 되니 사실상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된 셈이다. 구의원의 경우는 2배 이상의 차이가 났다. 이 정도면 참패라 할 만하다. 자유민주당(자민당, Liberal Democrats)의 약진도 눈여겨 볼 만하고, 녹색당(Green Party)에서 85명의 구의원을 배출하게 된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해석할 수 있지만, 코로나 시국, 강도 높은 락다운으로 시민들의 발을 묶어 놓았던 보수당의 강압적이고도 비효율적이었던 정책 시도에도 나름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던 보수당 지지율이 급감한 것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수당은 왜 무너졌을까
보리스 총리의 보수당은 락다운 기간 동안 시민들에겐 강도 높은 락다운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국민들은 집콕에 열을 다하는 사이, 본인들은 열심히 일했으니 쉬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삼삼오오 모여 와인을 마시며 놀았던 파티 게이트. 이 사건이 이번 선거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관련 기사 ‘영국 브리핑 16: 왜 영국은 러-우 전쟁에 미소를 띠었나’ 링크)
지난해 5월 총리 관저에서
술을 즐기는 존슨의 모습.
출처-<Guardian>
1997년, 혜성 같이 등장해 웨스트민스터의 400석이 넘는 의석을 거머쥐며 거대 정당으로서 발돋움을 일궈냈던 영국 노동당의 전 당수 토니 블레어. 그가 노동자 계층과 이주민, 사회적 약자 계층을 위해 숱하게 많은, 좋은 법안들을 발의하고 통과시키며 엄청난 인기를 누렸음에도, 단 한 방으로 무너졌던 이유는 정직하지 못한 이중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인간애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노동당의 대표가 전쟁터에 젊은이들을 내몰았던 결정, 바로 그 한 번의 선택과 실수로 인기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보리스 존슨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안전과 안녕을 운운하며 국고를 털어 돈으로 입막음하고 사람들을 집안에 꽁꽁 묶어 두었다. 이렇다 할 방역 지침이나 정책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가 한 건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하고, 나오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한국과 달리, 방역에는 무관심했던 영국의 해당 정책은 쉽게 말해 정부는 편하고 국민은 불편한 정책이었다.
게다가 생을 마감하는 과정 가운데, 가족들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하며 피눈물을 쏟았던 이들도 상당했다. 근데 내각은 총리관저에 모여 술 파티를 벌이고 있었으니, 시민들이 느꼈을 배신감은 어땠을까. 만약 우리나라에서, 아무도 돌아다니지 못하게 막고서 정부 관료들이 모여 파티를 벌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때문에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자신이 내 걸었던 정책을 스스로 지키지 않았으니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가디언을 비롯하여 언론과 각 단체들은 그의 부도덕하며 정직하지 못 한 태도(Dishonest)에 대해 맹비난하며 물러나야 한다고 주창한다.
하지만 앞으로 안 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적반하장 태도를 보인 그에게 시민들은 인내를 보이지 않았다. 높은 지지율이 계속될 것 같았지만 시민들은 '심판'했고 이에 대한 결과는 고스란히 선거에 반영되었다.
개인 호텔비, 택시비 등을 공금으로 사용했다 적발되어 사퇴한 유럽의 정상들 얘기들, 한 번 즈음 접해 볼 때가 있었으리라. 그렇다. 다른 곳은 몰라도 서구 유럽 사회에서는 양심을 팔아먹는,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태와 언행에 대해 시민들은 극도의 불쾌감을 느낀다.
의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정책은 잘못 펼칠 수 있다. 어떻게 모든 위기의 순간을 알맞게 대처할 수 있겠는가. 인간이기에 누구나 실수도, 잘못된 판단도 할 수 있다. 정책에 실패한 것에 대해선 유럽인들은 생각보다 관대한 편이다.
그러나 양심 없는 짓과 그에 대한 뻔뻔한 태도는 용납하지 않는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 오히려 그게 무슨 큰 죄가 되느냐는 식의 반문, 혹은 잘못했으나 자리를 내려올 정도는 아니라며 끝까지 이익 혹은 권력을 거머쥐고 싶어 하는 욕망이 보이면, 사실상 아웃이다.
이번 보수당의 선거 참패는, 코로나 이후 겪고 있는 인플레와 부동산 가격 급등과 같은 이유도 한 몫했지만, 무엇보다도 보리스 존슨의 양심 없는 발언과 행동, 뻔뻔한 태도가 주요한 패배의 원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에 있었다면
한국은 대선이 끝나고 인수위원회 활동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대 대통령, 윤석열이 취임했다. 민주, 진보 진영에서는 여전히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리고 혹자는 문재인의 '실패'를 말한다. 야당에게 정권을 내어 준 건 분명 정부 운영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말이다. 물론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코로나라는 장벽에 부딪친, 수많은 국가들이 있다. 우리 국민들이 어떻게 느꼈는가는 분명 중요하지만, 영국에 거주하는 내가 보는 건, 손꼽히게 잘 대처했다는 세계의 평가와 높아진 국격이다. 회원국이 아님에도 G7에 초청되어 발언권을 갖고 회의에 참석했음이 이를 증명하며, 해외 순방 시 극찬을 아끼지 않고 문재인 대통령을 서로 만나려 했던 각국 정상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례는 무수하다. 아마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 대부분이 문재인 정부 시대에 달라진 국격을 체험하고 있을 터이다.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 자체가 달라졌다.
해서 더욱 아쉽다. 왜 한국 내에선 유독 그렇게 대통령과 질병관리청장을 때렸을까.
아마 내가 유럽 문화권에 있기에 더욱 크게 느꼈을 수도 있다. 수백 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해 국정 운영에 문제가 생겨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던 프랑스 대통령이 재선을 했듯,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발생한 어려움에 대해선 관대할 수 있는 게 이쪽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한국은 그 난관을 어느 나라보다 잘 헤쳐 나갔는데...
재선에 성공하며 지지자들 앞에서
손을 치켜올리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출처-<로이터>
정말 문제가 되어야 할 건 적반하장, 인면수심이다. 잘못해 놓고도 발뺌하고, 밝혀지면 별거 아니라는 식의 대응과 태도다. 영국 보수당의 참패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말이다. 이것이 유럽인들이 국가의 지도자들을 뽑는 우선순위 기준이다. 그러한 지도자는 반짝 빛날 순 있지만 장기적으론 국가에 악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준으로 봤을 때, 야당에게 정권을 내어 주었지만, 문재인은 어려운 시국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이끌고 나갔다. 그의 행보에 묻어있는 발자취엔 성실함과 근면함을 바탕으로 한 뚝심 있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노력이 있다. 유럽에서 한국의 평가가 올라가고 문재인 대통령의 유능함에 주목한 해외 언론들이 많은 건 그러한 점 때문이리라.
문재인 정부의 각종 성과를 비롯, 정책의 성공과 실패,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병리 현상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혹은 별도의 기준을 갖고 대화를 해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끝까지 양심을 지키고자 했던 지도자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세계 제일의 정치 선진국이라 말하는 유럽의 기준으로 판단했다면, 문재인 정부는 다시 한 번 선택을 받았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듀, 문재인
지난 5년간 수고 많으셨다는 말을 전한다. 정책의 성공과 실패는 후세의 전문가들이 판단하겠지만,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려 하지 않았고, 누구 하나 성공하면 사돈에 팔촌까지 끼워 넣어 한탕 해 먹으려는, 또 그렇게 하기 편리한 한국 정치권에서 가족과 친지, 친구들에게 냉정하다는 평가를 받을만큼 철저했던, 특별한 혜택을 주려고 하지 않은 그의 노력은 글로벌 기준에서 마땅히 모범적인 지도자로 인정받아야 한다.
만약 부도덕하고 정직하지 못해 정권을 넘겼다면 분명 아쉬움이 있었겠지만, 최선을 다했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국민을 위해 일해왔던 부분을 부정할 수 없기에, 그의 지난 5년은 가히 성공적이었다 평가받을 수 있다. 내가 영국에서 살고 있기에 더욱 그리 말하고 싶다.
물론 나만 느끼는 건 아니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만 모를 뿐, 세계적으론 이미 인정받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리더 50.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한 대통령의 좋은 본보기가 되어줄 것을 믿는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다.
부디, 고향에서 여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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