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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속 터키 존재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3달째 이어지는 지금.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가는 나라가 있다. 터키다.

 

전쟁 기간 중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지금 이스탄불에는 러시아인들이 득실거린다. 제재를 피해서 러시아 부호들이 이스탄불에 몰려들었다. 이쪽의 집과 부동산을 사들이고 있다.

 

원래 터키는 러시아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이다. 정교회 신자가 많은 러시아로서는 이스탄불은 일종의 ‘성지’였고, 러시아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 등등이 맞물려 터키에는 러시아 사람들로 넘쳐난다. 현재 러시아의 부호들과 좀 살만한 사람들은 제재 상황인 러시아를 피해 터키로 ‘피난’ 온 이들이 꽤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크라이나 난민들 중 일부도 터키행을 택한 경우가 있다. 러시아는 제재를 피해서,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피해서 지금 터키에 몰려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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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Black Sea) 근방의 우크라이나·러시아·터키

출처-<위키피디아>

 

개인적으로 터키의 외교·국제정치를 설명할 때 언급하는 고유명사가 하나 있다.

 

“Fw 190"

 

정확한 명칭은 포케불프(Focke-Wulf) 190A-3 다. 2016년 10월 14일 터키 중부의 카이세리주(州)의 공항 터에서 2차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전투기 Fw 190, 50대가 묻혀 있는 게 발견된 거다. 이 50대의 전투기들은 기름먹인 방수포에 꽁꽁 싸여 있었고,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수 있을 정도로 잘 보관된 기체였다.

 

일반인들에게 포케불프란 이름은 낯선 이름이겠지만, 2차 대전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Bf-109와 함께 독일 공군의 한 축을 맡았던 전투기란 걸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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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케불프 Fw 190

출처-<위키피디아>

 

“독일 공군의 두 깡패 형제”

 

라고 불렸던 포케불프와 메서슈미트(Bf-109). 당시로선 최신 기체였던 포케불프가 어떻게 터키에 갔을까? 간단하다. 당시 터키는 독일에 철광석을 수출하고 그 대가로 전투기 72대를 받기로 했던 거였다. 그러던 것이 2차대전이 끝나고 2년 뒤인 1947년 이 기체들이 모두 사라지게 됐다. 바로 미국 때문이다.

 

“야, 너희 우리랑 같이 놀려면 무기도 비슷해야 하지 않겠어? 우리 전투기 어때?”

“그게...우리가 지금 좀 사정이...”

“에이, 내가 너한테 돈 받겠냐? 걍 줄게.”

“어, 진짜?”

“단, 조건이 있는데 독일 전투기 폐기해.”

“오케이 알았어!”

 

보통 이런 경우, 전투기를 완전히 박살 내거나 해야 하는데, 터키는 훗날을 생각했던 건지 기름먹인 방수포로 꽁꽁 싸서 땅에 묻어 버린 거였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생각해 봐야 한다.

 

첫째, 터키는 강대국들에게 상당히 많은 ‘러브 콜’을 받아왔다.

둘째, 터키는 이 와중에도 간을 보며 최대한 자기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터키의 배짱 외교

 

“터키인들이 지나간 땅에는 어떤 잡초도 자라지 않는다.”

 

라는 속담이 있다. 중동 인근, 아랍 쪽에서 나온 말이다. 이 말은 수많이 변주되어 다른 국가에도 퍼져나갔다. 이는 역사적 사건과 충돌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빠를 거다. 한때 지중해 지역 상당 부분을 지배했던 것이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다. 이러다 보니 전쟁과 탄압, 민족 간의 충돌 등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터키에 대한 시선이 나빠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 봐야 할 한 가지가,

 

“어째서 강대국들은 터키의 ‘비위’를 맞추려 애쓰는 걸까?”

 

하는 부분이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은 터키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지만, 터키는 끝까지 독일 편에 서지 않았다. 터키의 국부인 케말 파샤가 유언으로 남겼을 정도니, 독일과는 거리를 뒀던 거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미국이 터키를 어르고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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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공화국의 건국자이자 초대 대통령 케말 파샤

(임기 1923년 10월 29일~1938년 11월 10일)

 

터키의 외교는

 

“배짱 외교”

 

라 불러도 할 말이 없다. 지금도 터키는 지역 내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해 두고 있다. 이 와중에 또 자신들의 이익을 착실히 챙기고 있으니 말이다. 당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만 보라.

 

터키는 우크라이나에 ‘바이락타르’란 무인기를 팔아서 우크라이나 편에 붙은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러시아 제재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당장 이스탄불에서 미친 듯이 터키 부동산을 사는 러시아인들을 보라. 러시아인들은 매일 7~8채의 터키 주택을 사들이고 있다. 이들은 터키 은행에 계좌를 열고, 여기로 현금을 쏘거나 금을 들고 와 집을 샀다. 이런 자유로운 거래를 터키는 용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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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무기 판매에 소극적이자 직접 무인기를 만든 터키

출처-<유튜브채널 14F 일사에프>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러시아야, 우크라이나야! 왜 쌈박질하고 그래? 너희들 그만 싸워! 자자, 말로 하자고... 내가 너희들 입장 다 알거든? 내가 테이블 깔아 줄 테니 여기 와서 협상해!”

 

휴전 협상의 테이블까지 열어준 게 터키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래도 터키가 사람이 됐네. 자고로 흥정은 붙이고, 싸움을 말리랬는데... 터키가 사람 구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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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9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5차 평화협상에서 연설하는 에르도안 대통령

출처-<링크>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나토에서 터키가 어깃장을 놓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테러 단체의 게스트하우스 같다."

 

최근 러시아의 행보에 불안을 느낀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려고 하자 터키가 어깃장을 놓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바로 스웨덴에 있는 쿠르드족 때문이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쿠르드족에 우호적이다.

 

“얘들 나라 없이 떠도는 거 불쌍하다.”

 

라는 지극히 북유럽적인 모습을 보인 거다. 스웨덴은 한술 더 떠서 쿠르드족 출신 의원 6명이 활동할 정도다. 이건 한번 생각해 봐야 하는 게 터키 내 분리주의 무장 조직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이란 게 있는데, 스웨덴과 핀란드가 이 PKK에 우호적이라고 믿고 있는 게 터키다.

 

터키가 쿠르드족이라면 입에 거품 무는 건 다들 알 터이다. 터키 내에 있는 쿠르드족이 독립하겠다고 난리를 치니까 어쨌든 쿠르드족을 밟아놔야 했던 거다. 터키가 얼마나 쿠르드족을 싫어하냐면 시리아 내전 당시 북시리아에 있는 쿠르드족 자치정부인 ‘북시리아 민주연방 체제’를 박살 내겠다고, 대대적인 공격을 가할 정도다. 시리아 내전, IS와의 전쟁에서 미국은 쿠르드족과 손을 잡았다. 미국은 쿠르드족을 쏠쏠하게 잘 활용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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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경향신문>

 

문제는 이 와중에도 터키는 IS를 고용해서 쿠르드족을 죽였다는 거다. 그리고 미국이 쿠르드족을 버리고 시리아에서 철수하자마자 시리아 동북부에 있는 쿠르드족을 폭격으로 때려잡기 시작했다.

 

“쿠르드족 저거 다 때려잡아야 해!”

 

터키에 총구를 겨눈 상태로 분리주의를 표방한 게 쿠르드족이다. 이걸 내버려 뒀다간 나중에 터키가 어떻게 될지 누구도 장담 못하는 상황인 거다(원래 쿠르드족은 1차 대전이 끝나고 땅을 떼어 받아서 독립할 수 있었는데, 케말 파샤가 들고 일어나 이 모든 걸 엎어버렸다. 쿠르드족으로서는 원통할 일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터키가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거부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자, 그런데 말이다. 국제정치라는 게 감정만으로 정리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터키가 아무리 기분이 나쁘다고 하더라도 터키의 국력으로 유럽 강대국과 미국에 어깃장을 놓는 건... 아무리 좋게 봐도 ‘만용’으로 보인다.

 

당장 러시아가 호시탐탐 남하를 생각하는데 이 와중에 터키는 배짱 외교를 하고 있다(수 세기에 걸쳐 러시아는 흑해를 넘어오려 했다. 이걸 막겠다고 영국이 크림반도로 달려가고 미국이 함대를 보내고 했던 게 지난 수백 년간의 일이다). 

 

지정학적 우위에서 나오는 터키의 호기

 

터키의 힘은 터키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시작됐다 할 수 있다. 바로 보스포루스 해협(Bosporus Strait)이다. 이스탄불 시내를 가로지르는 ‘한강만 한 해협’(정말 한강 정도 된다)이 터키의 진정한 힘이다.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이 실낱같은 해협은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러시아의 지중해 진출을 막아선 방어선이다. 여기에 다르다넬스 해협(Dardanelles Strait), 마르마라해(Sea of Marmara)는 터키의 몸값을 한껏 띄운 공신들이다.

 

“러시아 상대로 우주 방어하고 싶어? 그럼 여길 막아야지. 근데... 공짜로 안 되는 거 알지?”

 

이 지역은 중요한 지역을 넘어서 ‘역사의 중심축’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이곳에서 있어 왔다. 비잔틴 제국 시절, 수많은 외침을 극복하게 한 테오도시우스 3중 성벽이라든가, 갈리폴리 전투 같은 건 전쟁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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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략적 요충지를 터키가 움켜쥐고 있다.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지금까지 터키는 이 지정학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왔다. 지금 터키는 이 지정학적 우위를 레버리지 삼아 미국과 러시아를 저울질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과시한다.

 

지금 시점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모습만이 보이지만 그 물밑에선 터키가 자기만의 셈법으로 움직여 왔다. 미국의 신경을 긁고 러시아의 뒤통수를 쳐 가며 자기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야기는 201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