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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부터 싸우고 있는 터키와 러시아 사이

 

『다행스럽게도 우리 조종사들은 터키 조종사들이 러시아 사람들을 대할 때처럼 변덕스럽지 않다.』

- 그리스 총리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2016년 11월에 올린 트윗 중 발췌

 

치프라스 총리가 내뱉은 이 한마디는 2016년 11월을 뜨겁게 달궜던 한 사건을 ‘조롱’하는 이야기다. 원래 그리스와 터키는 앙숙이다.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고, 무력 충돌도 몇 번이나 있었다. 1차 대전 끝나고 케말 파샤가 터키 독립 전쟁을 일으켰을 때 가장 격렬하게 반대하고, 군대를 보냈던 게 그리스였다. 그리스와 터키는...원수다.

 

이런 그리스 총리가 터키를 ‘조롱’했다. 그리스 총리는 그리스 전투기 조종사들이 터키 조종사들과 달리 변덕스럽지 않다고 놀리고 있었던 거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6년 11월 24일 터키 공군의 F-16이 러시아 항공우주군 SU-24 한 대를 격추한다. 그나마 조종사가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조종사 2명이 탈출에 성공하긴 했는데 1명은 투르크멘 민병대(시리아 반군 조직)에 걸려 죽고, 나머지 한 명은 은신처에 숨게 된다. 이걸 구하겠다고 헬리콥터 2대에 특공대를 태워 보냈는데, 착륙 시점에 맞춰 투르크멘 반군이 대전차 미사일(토우를 날렸다)을 발사해서 헬기 1대를 박살 냈다. 행인지 불행인지 구출조의 인명 피해는 특공대원 1명뿐이었다.

 

이 11월 24일 사건은 터키와 러시아 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몰고 갔다. 뭐, 원래 터키와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좋았던 적이 없었다. 오스만 제국 시절엔 남하 정책을 실행하는 러시아 제국과 치고받고 싸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러시아-튀르크 전쟁은 16세기부터 시작해서... 제1차 대전까지 포함하면 열세 차례나 이어진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러시아와 터키는 정말 박 터지게 싸웠다.

 

“임진왜란 때부터 한국 전쟁까지 계속 싸워왔다.”

 

이 한마디면 이해가 갈 거다. 안 싸웠던 적이 없다(그리스가 독립전쟁할 때 그리스 편에 붙은 것도 러시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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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9일에는 터키 앙카라의 한 미술관에서 경찰관 출신 22세 터키인 청년 메블러트 메르트 알틴타스가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인 안드레이 카를포프를 총으로 사살했다. 그는 카를포프 러시아 대사를 향해 총격을 가하며 “알레포를 잊지 말라. 시리아를 잊지 말라”고 외쳤다. 부르한 오즈빌리치 AP 사진기자는 이 사진으로 ‘올해의 사진’을 수상했다(출처-<월드프레스포토 재단>)

 

이런 상황이니까... 뭐 안 친한 게 당연한 거고, 러시아 전투기가 넘어오니까...

 

“씨바 러시아 새끼들이다. 쏴 버려!”

 

이렇게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가 녹록치 않다.

 

에른도안과 푸틴의 러브라인

 

에르도안이 정권을 잡고 나서 터키와 러시아는,

 

“역사상 가장 가까웠던 시기”

 

를 구가하고 있었다.

 

“터키!”

“러시아!”

“크로스!”

 

냉전 시절까지만 해도 러시아가 지중해를 넘어오지 못하게 틀어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던 터키가 어느새 러시아와 짝짜꿍이 된다. 그 결과 흑해 바닷속 1천 킬로미터(정확히 939킬로미터)를 잇는 터키 스트림(Turk Stream)을 건설하겠다고 나선 거였다.

 

“이제 터키는 유럽 천연가스의 허브가 될 수 있다!”

 

이 얼마나 원대한 구상인가? 이미 우크라이나와 사이가 틀어진 러시아였기에 우크라이나로 넘어가는 가스관이 아니라 다른 가스관이 필요했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게 터키였다.

 

아니, 그 이전에 사우스 스트림(South Stream) 계획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사우스 스트림은 간단히 말해서 흑해 해저 터널을 거쳐 불가리아·세르비아·헝가리·오스트리아 등 남동부 유럽 6개국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220억 달러짜리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이때 불가리아·세르비아는 잔뜩 몸이 달아 있었다.

 

“야, 이렇게 되면 우리도 값싸고, 질 좋고, 배달 사고 안 나는 가스를 맘대로 쓸 수 있는 거야?”

“그뿐이야? 러시아는 가스관 설치한 지역에 가스 할인도 해줘!”

 

러시아 입장에서도 나쁜 게 없는 게,

 

“이렇게 되면 유럽 남동부 애들도 우리 손아귀에 넣을 수 있지. 이대로 가스에 중독시킨 다음에... 나중에 내 말 안 들으면? 잠가라 밸브! 해버리면...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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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스트림(붉은 선)과 터키 스트림(파란 선)

출처-<Gazprom>

 

이런 상황이었다. 2012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2014년 2월 돌발 변수를 맞이한다.

 

2014년 2월 28일 세바스토폴항에 주둔 중인 러시아 해군 흑해 함대 소속 해군 보병들이 크림반도의 주요 공항 두 군데를 점령해 버린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이를 기점으로 러시아군이 신속하게 크림반도를 장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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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유튜브채널 지식한잔>

 

이렇게 되자 EU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들어가게 됐다. EU 회원국이었던 불가리아가 2014년 6월 사우스 스트림 사업을 포기한다.

 

이 당시 EU는 러시아에 한 방을 먹였다고 좋아했었다.

 

“봤지? 우리도 한다면 한다고... 우리가 너희한테 가스를 많이 사고는 있지만... 이거 언제든 대체할 수 있어. 알아?”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외교, 경제적 압박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직접 사업 폐기를 결정했다고 밝힌다. 이렇게 사우스 스트림 계획은 폐기됐다. 다음에 등장한 게 바로 터키 스트림(이때까지만 해도 ‘블루 스트림’ 계획이라고 불렸다)이었다.

 

“사우스 스트림 자빠졌다고, 가스 못 팔 줄 알아? 우리한테는 터키가 있어!”

 

임진왜란 시절(따지고 보면 니탕개의 난 터지기 전부터 러시아와 치고받고 싸워서... 20세기까지 이어진 앙숙인데)부터 싸워왔던 러시아와 터키. 그런데 러시아와 터키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에르도안이라는 ‘변수’가 있었다. 오죽하면 에르도안을 두고,

 

“터키판 푸틴”

 

이란 말이 나올까? 에르도안은 합법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연장해 왔다. 마치 푸틴처럼 말이다. 문제는 이 인간이 독재에 한없이 가까운 형태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고, 국제사회에 위험하게 보였다는 거다.

 

푸틴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독재자들의 필살기 중 하나가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거다. 에르도안 역시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강한 터키’를 외치고 있다. 푸틴이 구소련의 향수를 기반으로, 강한 러시아를 만들겠다는 걸로 지지층을 끌어모은 것처럼 에르도안도,

 

“저 빌어먹을 쿠르드 색희들... 저거 내버려 두면 터키 다 찢어진다! 저거 다 때려잡아야 한다!”

 

라면서 강력한 터키의 모습을 보여왔다. 똥은 똥끼리 뭉치고, 독재자는 독재자끼리 뭉치는 게 인지상정. 푸틴의 러시아와 에르도안의 터키는 어느새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자, 문제는 터키다. 터키가 비록 EU에는 가입하지 못했지만, NATO에는 가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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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과 푸틴

출처-<경향신문>

 

EU에 번번이 낙방하는 나라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번 날 잡고 EU에 관한 기사를 써보겠다. EU가... 이게 아무나 가입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간단히 말해서,

 

“나 EU 들어갈래!”

 

하면 넙죽넙죽 들어올 수 있는 데가 아니란 소리다. 당장 EU 집행위원회는 확대 담당 집행위원을 두고 EU 가입 대상국들과 가입 조건, 자격 등에 관한 협상을 한다.

 

“너희 민주주의 잘하냐?”

“법은 잘 지켜? 독재자가 나라 다스리는 거 아니지?”

“사법권이 독립된 거 맞아? 저번에 보니까 아닌 거 같은데?”

“인권 보장돼? 동성애자라고 무시하는 거 아냐?”

“시장경제 시스템 잘 돌아가? 갑자기 국가가 나서서 이상한 짓하는 거 아니지?”

“EU 들어오려면 EU의 법률체계 받아들이고, 경제통화동맹에 들어와야 하는 거 알지?”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EU와 후보국들 사이에선 30여 개의 세부 분야에 대한 협상, 검증 작업을 통해서 가입 협상을 해야 한다. EU와 NATO가 뭐 대충 그 지역에 있다고 아무나 막 들어오는 그런 데가 아니란 소리다.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보면서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 정치인들을 보면서 들은 생각이...

 

“하... 진짜 너희 알면서 그런 거야, 진짜 모르는 거야?”

 

였다. EU나 NATO가 막 받아들이는 곳도 아니고, 우크라이나는 EU와 NATO에 들어가기 위한 가입조건을 통과할 수도 없다. 들어갈 확률은... 한없이 0에 수렴한다고 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서 NATO 들어가겠다면서 그리 난리를 쳤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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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프랑스·독일·터키를 비롯한 NATO 국가들

출처-<나토 홈페이지>

 

터키는 EU의 전신인 EEC 시절부터 가입하겠다고 설레발쳤지만, 계속 무시당하고 있다. 1987년 가입신청을 했지만... 터키조차도 가입이 까다로웠다. 결국 쿠르드어 방송 허용과 사형제 폐지 같은 걸 받아들이고, EU가 내놓은 개혁안을 반영한 개혁법안이 통과된 후인 2004년 12월이 돼서야 후보국 지위에 올랐고, 2005년부터 가입 협상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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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연합(EU) 현황

출처-<위키피디아>

 

그러다가 키프로스 분쟁이 터지고, 결정적으로 2016년 터키 쿠데타가 터지면서 에르도안의 대대적인 숙청이 이어지자 지지부진 가입 협상은 뒤로 미뤄지게 된다. 하긴 뭐 2015년 11월에 발표된 터키의 가입자격 평가 보고서만 봐도 터키는... 유럽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이란 게 밝혀졌다. 이미 쿠데타 전부터 터키는 나가리란 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르도안은,

 

“터키는 유럽이다!”

 

라고 외치면서 EU가입이 최종 목표란 걸 설파했지만, EU 집행위는 가볍게, 

 

“응 조까”

 

를 시전했다. 젤렌스키가 EU 가입을 하겠다며, 질문지를 최대한 빨리 작성하겠다고 했는데...

 

“여러분 그거 다 쇼입니다!”

 

라는 게 흔히 이 바닥 전문가들의 평가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상황에서 죽었다 깨어나도 EU에 가입하기 어렵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