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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근육병아리는

 

요리에 관한 어떤 정식 교육도 받은 적 없으며

 

 오직 유튜브와 만화책으로만 수련 중인

야매 수산인으로,

 

 기사에 담긴 그 어떤 레시피도

성공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지난 줄거리

 

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의 농간으로 난데없이 딴지그룹 식사추진병이 된 근육병아리. 딴지 총수 김어준은 근병에게 회식메뉴로 참치를 잡아 오라는 미션을 하달하는데. 노량진에서 구한 참치를 어찌어찌 겨우 해체에 성공한 근병은 의기양양하게 회사에 승전보를 알리지만.. 전날 저녁 메뉴로 초밥을 먹은 편집장 죽돌은, 회식을 미뤄버린다. 당일 참치 드랍쉽에 실패한 근병 그리고 갈곳잃은 참치 살덩이들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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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피딴’이란 것 아나?”

 

“‘피딴’이라니, 그게 뭔데...?”

 

“중국집에서 배갈 안주로 내는 오리 알(鴨卵)말이야, ‘피딴(皮蛋)이라고 쓰지.”

 

“시퍼런 달걀 같은 거 말이지, 그게 오리 알이던가?”

 

“오리 알이지. 비록 오리 알일망정, 나는 그 피딴을 대할 때마다, 모자를 벗고 절이라도 하고 싶어지거든…”

 

“그건 또 왜?”

 

”내가 존경하는 요리니까…”

 

김소운의 <피딴 문답>. 월드컵의 열기로 온 나라가 뒤집어졌던 2002년 여름, 전주시 삼천동 어느 독서실에서 수능 기출 언어영역 문제집을 풀고 있던 근육병아리는 이 간지폭발하는 단락을 읽고 단전부터 끌올하는 전율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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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병은 그날로 결심했다. 나중에 꼭 피딴에 빼갈을 적시는 훌륭한(?)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소운 형님의 말씀을 좀 더 들어보자.

 

생각을 해보라구. 날 것 째 오리 알을 진흙으로 싸서 반년씩이나 내버려 두면, 썩어 버리거나, 아니면 부화해서 오리 새끼가 나와야 할 이치 아닌가 말야… 그런데, 썩지도 않고, 오리 새끼가 되지도 않고, 독자의 풍미를 지닌 피딴으로 화생(化生)한다는 거, 이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지. 허다한 값나가는 요리를 제처 두고, 내가 피딴 앞에 절을 하고 싶다는 연유가 바로 이것일세.”

 

그르타. 이 행님, 알고 있었던 것이다. 100년 후 이 땅에 드라이에이징, 웻에이징, 워터에이징, 기분탓에이징..등등 숙성 고기와 각종 숙성회의 대유행이 불어닥칠 거라는 것을.

 

숙성에 대하여 경례

 

익을 숙(熟), 이룰 성(成). 음식 속의 영양소들이 효소, 미생물, 염류등의 작용을 통해 분해되어 기존의 성질과 다른 특유의 풍미를 가지게 되는 것.

 

현대에서 숙성은 분명히 미식추구의 기술이지만, 인류 최초의 숙성은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의 숙성은 사실상 음식물 방치였을 터. 하루하루 수렵과 채취로 연명하며 다른 동물과 같이 지구에서 생존 경쟁을 하던 그때, 음식물이 방치되는 경우의 수는 세 가지 밖에 없었다.

 

1) 부족민의 필요 섭취량보다 음식물을 많이 확보했을 때

2) 부족장이 당분간 음식물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했을 때

3) 편집장이 전날에 스시를 먹었을 때

 

숙성은 본질적으로 음식이 썩는 과정이다. 부패를 향해 달려가는 고기가 음식으로서 가치 있는 기간의 최대치를 찾기 위해, 아마도 수많은 인류는 썩은 고기를 우적우적 씹어삼키며 위험한 도전을 해왔을 것이다. 오리알 껍질이 석회와 진흙 성분과 반응하여 삭혀지면, 안에 내용물이 맛있게 굳을 뿐만 아니라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썩은 새알들을 붙잡고 복통과 설사를 불싸지르며 우리에게 지혜를 넘겨준 수많은 고대 중국인들의 위대한 도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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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용감한 선인들의 희생으로 인류는 음식을 오래 보관하는 법을 하나 둘 깨우치고 발견하게 된다. 점점 굶어죽을 일을 줄여갔다. 그 덕에 우리는 기구를 만들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번영할 수 있었다. 숙성의 이해가 인류를 동굴에서 끄집어 낸 것이다.

 

냉장 기술의 발달로 언제든지 신선한 고기를 즐길 수 있는 지금에 와서도, 명절 때 삭힌 홍어와 가자미를 상에 올리며 염장된 햄과 소시지를 만들어 축제를 벌이는 이유는 아마도 그 자랑스러운 생존의 역사를 기념하고 싶은 거 아닐까. 과연 존경할 만한 요리들이다.

 

이 타이밍에 다시 한번 소운 형님의 말씀을 되새겨 보자.

 

“썩기 바로 직전이란 그 ‘타이밍’이 어렵겠군… 썩는다는 말에 어폐(語弊)가 있긴 하지만, 이를테면 새우젓이니, 멸치젓이니 하는 젓갈 등속도 생짜 제 맛이 아니고, 삭혀서 내는 맛이라고 할 수 있지… 그건 그렇다 하고, 우리 나가서 피딴으로 한 잔할까? 피딴에 경례도 할 겸…”

 

숙성회,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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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류보다 조류가 맛있습니다. 진화라는 것은 어쩌면, 맛있어지는 과정이 아닐까요."

 

영화 <김씨 표류기> 중 

 

생선보다 치킨이 맛있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숙성의 측면에서 보면 생선살이 닭고기보다 확실히 불리한 건 맞다. 뭍으로 올라온 해산물은, 육고기에 비해 취식 가능 시간을 오래 제공하지 않는다. 진화라는 것은 어쩌면, 좀 더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과정이 아닐까. 수산물이 풍부한 제주지만, 그곳의 오래된 전통음식들은 수산물보다 돼지고기를 재료로 하는 것들이 대부분인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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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지 한국 식문화에서 날로 먹는 생선은, 유독 '활어회'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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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80년대 경제 호황기, 해안가 인근 유원지에 형성된 활어 횟집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주문과 동시에 펄떡이는 생선을 잡아 바로 회를 쳐먹는 것이 가장 신선하고 맛있는 생선회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바다를 바라보며 회 한점에 쐬주한잔'

 

하는 그 로망은, 도심의 횟집에도 수조를 설치하게 만들었다. 수조에서 생선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어야 비로소 믿을 만한 접시를 내는 곳임을 인정받게되는 것은 한국의 독특한 외식문화다.

 

이후, 소비자들의 기호와 취향이 다변화되어 숙성회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생겨나면서, 생선회의 저변이 넓어지기시작했다. 이는 숙성회가 고급 일식집 담장을 벗어나 합리적인 가격대에 수준 높은 숙성회를 제공하는 지금의 이자카야나 스시집이 외식문화로 자리 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숙성의 구간

 

생선을 숙성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맛있어진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맛이 달라진다. 그 원리는 다음과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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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문과 독자들을 위해 ATP를 쉽게 풀어쓰고 싶지만 한글로 풀면 '아데노신 3인산'이고 영어로 풀면 'Adenosine triphosphate'라서 일만 더 크게 만드는 꼴이다. 그냥 '생선이 애초에 몸 안에 지닌 에너지' 정도로 퉁치고 넘어가자.

 

생선의 숨이 떨어지면 살에 있던 ATP가 IMP라는 걸로 분해되기 시작한다. IMP가 뭐냐면.. 이과망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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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노미야키를 떠올리면 된다. 그거 먹을 때 마요네즈 위에 꼬물대고 있는 가다랑어포. 톱밥같이 생긴 것이 입에 넣고 씹으면 별것도 아닌 게 졸라 좋은 감칠맛이 느껴지지 않은가. IMP는 바로 그 감칠맛 성분, 이노신산이다. 정리해보자.

 

생선이 죽으면, 체내의 에너지가 감칠맛으로 바뀐다.

 

이게 바로 숙성의 원리다.

 

이노신산으로 분해를 인위적으로 빠르게 하는 방법이 있는데, 가열이다. 생선을 굽거나 찌면 풍미가 한층 더 올라가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냉동 수산물이 신선물보다 맛과 식감이 떨어지는 원인도 이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데, 감칠맛으로 환전되어야 하는 에너지가 해동과정에서 수분과 함께 소실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에너지에서 감칠맛으로 전환되는 속도는 빠른데 비해, 감칠맛에서 부패로 넘어가는 속도는 느리기 때문에, 감칠맛이 다량 축적되는 시간이 생긴다. 바로 이 구간이 숙성회의 시간이다. 근육을 내주고 감칠맛을 뽑아내는 것. 어느 타이밍을 선택하느냐는 요리사의 취향에 달렸다. 좀 더 탱글한 식감을 즐길 것이냐, 감칠맛 위주로 조질 것이냐. 수많은 선택지가 있다.

 

생선도 될놈될

 

그렇다고 그동안 한국인이 즐겨왔던 활어회는 사후강직만 잔뜩 일어난 맛대가리 없는 살점이냐? 그건 아니라고 본다. 숙성으로 장르가 전환되는 것일 뿐, 즐기는 포인트가 다른 것이다. 원래 맛있는 건 뭔 짓을 해도 맛있다. 될놈될법칙 같은 것.

 

활어의 진미를 제대로 경험한 것은 예전 '닭 코스요리'를 취재하러 해남에 갔을 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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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닭고기의 맛과 해남인들의 입담에 홀라당 빠져버린 나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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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정신을 차렸을 땐, 완도항에서 출항하는 웬 낚싯배 아래 칸에서 숙취에 절은 채 발견되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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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때 배 위에서 갓 잡은 활어의 맛을 보았는데 그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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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였다.

 

납치 전문 해남 낚시꾼 : 참돔은 배에서 내리는 순간 맛이 가불제.

 

과연 그랬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생귤탱글한 식감의 회였다. 자연상태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던 걸 단숨에 끄집어 올린, '어획-산지경매-운송-현지경매-운송-소매'의 여정이 생략된, 가장 완벽한 컨디션의 횟감. 이동 과정에서 생선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횟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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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활어회를 취급하는 셰프님들은 매입해온 횟감을 바로 손님상에 내지 않는다. 바다에서 업장까지 오는 동안 물차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멀미나 토 쏠리고 승질이 잔뜩 난 생선들이 맛이 좋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수조에 하루 이틀 쉬게 해 컨디션을 회복할 시간을 준다. 이 과정을 '순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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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지인들과 수산시장에 가서 생선을 직접 골라야 할 일이 있다면, 이리저리 활개치고 다니는 애들은 제끼고 일정한 층에서 천천히 유영하고 있는 애를 고르자. 수조에 충분히 적응해서 평온을 되찾은 놈이란 증거다.

 

"아니? 왜 저기 펄떡이는 놈 놔두고 저 히마리 없는 놈을 사는 거야?"

 

일행 중 누군가 테클이 들어온다면, 못 들은 척하고 시장 상인 분께 쌍따봉을 날리자.

 

"사장님께서 수조 관리를 엄청 하시나 봐요. 순치가 잘되어 보이네요"

 

나의 숙성회 답사기

 

생선의 숙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빠져든 것은 오래 전 청산도 여행이 그 시작이었는데, 그때 나는 섬 중산간 마을 이장님 댁에 며칠 머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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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청산도는 11월에 접어들어, 물때가 좋아 물속에 막대기만 집어넣고 대충 휘저어도 진귀한 생선이 마구 올라오던 시기였다. 그 시기 마을 주민들에게 낚시는 생업을 마치고 하루 피로를 푸는 가장 인기 있는 레저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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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내가 머무는 기간 동안 동네에 회 뜰 줄 아는 베테랑 낚시꾼들이 섬 밖으로 원정을 나가서 주민분들이 심심풀이로 잡은 고기들이 갈 곳을 잃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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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이장님 댁에 기거하고 있는 서울 총각이 회를 뜰 줄 안다는 사실이 주민들 사이에 점점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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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동네 뻥튀기 장수마냥 저녁마다 밀려오는 일감을 신명나게 쳐내고 있었다. 사태는 점점 심각해져 청산도 이주와 마을 청년회장 출마를 강력히 권유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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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때. 차가워진 수온에 배때지에 기름이 잔뜩 올라, 저절로 알맞게 숙성된 여러 종류의 횟감을 마을 어르신들과 나눠 먹어본 이후, 눈을 뜨게 되었다. 이노신산의 마법에 대해. 시간이 지날수록 차오르는 풍미와 감칠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퀴즈탐험 숙성의 세계

 

눈을 떴다고 무언가가 공짜로 깨달아지지는 않는다. 숙성의 세계는 넓고도 심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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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살, 방혈, 수분 제거, 래핑, 진공, 보관 온도 조절 등 숙성 단계 중에 하나라도 무언가 잘못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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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물은 여지없이 폭망이다.

 

무엇보다 골 때리는 것은, 어종에 따라 중량에 따라 숙성이 먹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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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단단한 살성의 돌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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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량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긴 시간 숙성을 얼마든지 받아내는 결과를 보이는 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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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돔류인 참돔은 3kg 대에선 숙성기간이 48시간 경과해도 살성을 잘 유지하면서 감칠맛을 끌어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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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량이 2kg 아래로 내려가면 좋은 식감과 감칠맛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급속도로 짧아진다.

 

이게 또 꼭 중량만 변수로 볼 수 없는 게, 가장 중요한 원물의 컨디션이 애초에 어땠는지는 육안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숙성 전 단계에 걸쳐 생각지 못한 다른 변수가 작용했을 가능성도 제껴둘 수가 없다.

 

결국 답은 하나.

 

겸허한 마음으로 같은 생선을 졸라게 잡아봐서 빅데이터가 쌓여야 내가 원하는 숙성을 구사하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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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잡아본 이 새뀌의 숙성에 관해선 아무런 경험도 데이터도 없는 상황이기에 숙성 단계에 접어들어서도 해체 단계만큼이나 갈피를 잡기가 영 힘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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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활어에서 바로 숙성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선어 상태에서 숙성에 들어간다는 새로운 변수마저 추가되었다. 한마디로 어떻게 될지 1도 모르겠다는 거다.

 

숙성 1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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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후 24시간이 경과되었다. 전날 시장에서 집으로 옮기자마자 숙성지를 한 번 더 갈아 진공포장을 했지만 샘솟는 수분을 잡기에 역부족. 살결이 다 비쳐 보일 만큼 젖었다. 해체 때 느꼈지만 수분이 엄청 많은 녀석이다.

 

수분은 숙성 때에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 중 하나다. 척척해진 숙성지에 감싸 놓는 건 숙성이 아니라, 애써 비싼 퇴비를 만드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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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할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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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뽀송한 새 숙성지로 교체해 새로 진공포장을 한다.

 

숙성 2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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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척척. 아니 무슨 스펀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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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을 까보니 걱정과는 달리 수분감이 많이 잡혔다.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살은 좀 더 탱탱해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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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걱정했던 것은, 미처 뽑아내지 못한 핏기에 의해 생기는 비린내였다. 다행히도 별 이상이 없는 것 같다. 현재까진 크게 삽질하지 않은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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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살부도 이상 무.

 

무아지경 참치 한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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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 체크를 끝낸 블럭은 3차 숙성에 들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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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 테스트용 등살 한 블럭을 캐스팅해 본다. 숙성이 잘 들어먹고 있는지 맛이 궁금해 견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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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 제거.

 

미리 탈피해서 숙성에 들어갈 것인지, 껍질을 살려둔 채로 숙성을 시작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으나 한 면이라도 산소를 적게 노출하는 것이 유리하겠다고 판단했다. 최고의 튜닝은 역시 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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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합육 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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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합육이란 등살과 뱃살 사이에 분포한 부분이다. 철분이 많아 비리고 먹기에 적절치 못하다.

 

혈합육을 제거하고 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 잠깐 길을 잃었다. 단면 모양이 어딘가 낯설다. 여기서 한 번 더 컷팅이 들어가야 뭔가 어디서 본듯한 단면이 나올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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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거니 이거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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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넌 어디서 좀 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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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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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어. 얼리지 않은 신선한 생참치 아카미(적신)의 압도적인 산미가 혀를 두들겨 팬다. 와씨 졸라 맛있다. 해체할 때 주워 먹었던 자투리 살보다, 맛이 훨씬 안정되고 응축되어 있다. 일단 지금까지 숙성이 크게 나쁘지 않았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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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직사각형 모양을 잡은 등살 블럭은 좀 더 넓게 면을 따본다.

 

다 계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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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셰프 출신 노량진 엉클보스님이 그랬다. 어설프게 지을 바에야 즉석밥이 최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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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배합초도 시판용. 어설픈 자들은 모두 제끼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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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완전체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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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타야 힘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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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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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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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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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살 맛을 함보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방금 진공해서 넣어둔 뱃살을 다시 꺼낸다. 얘도 확인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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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기억을 더듬어 익숙한 모양을 찾아 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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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엄연한 혼마구로라고 주장하는 듯한, 청소년 참다랑어의 패기 있는 뱃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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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여기까지 온 내가 갑자기 자랑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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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름진 부위를 먹을 때, 고추냉이를 많이 올리는 것은 좋은 시도다. 매운맛은 기름과 반응하여 사그라들고 고추냉이의 좋은 향만 오롯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끔 내가 엿먹이려고 구라 치는 것으로 의심하는 자들이 있는데, 나같이 선량하고 진실된 사람을 못 믿으면 대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는지 마음이 먹먹해진다.

 

진짜다. 하나도 안 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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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이런 것도 있었다. 특수하게 포장해온 특수부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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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살.

 

이걸 뭐 회사에 가져가서 누구 코에 붙일까요 알아맞춰보세요 할 수 없으니 그냥 내가 맛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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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량이 많은 부위라 그런지 식감이 죽여준다. 적절한 산미와 씹을수록 올라오는 고소한 맛이 한우 육사시미와 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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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척추뼈에서 열심히 긁어온 갈빗살. 미식가들에게 꽤 알려진 부위다. 일명 네기토로. 참치 해체쇼에서 숟가락으로 긁어내서 시식용으로 내는 그 부위다.

 

네기토로의 어원은 세 가지가 있다.

 

1993년에 발행된 <月刊 消費者>에 따르면,

 

파와 궁합이 좋아 곁들여 먹다 보니, 문자 그대로 파(네기) + 뱃살(토로)가 되었다는 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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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어원은 2013년에 발간된 <菊池>에 나오는 내용인데,

 

도쿄 아사쿠사에 있는 킨타로 스시라는 가게에서 1964년부터 회나 초밥 재료로 쓰기 적절치 않은 힘줄 부분이나 자투리 살들을 모아 곱게 다지고 양념해 단골손님에게 주었는데 제법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원형이 되어 본격적으로 팔기 시작했는데, 당시 킨타로 스시의 마네야마 사다오 회장이,

 

"이 동네에 무기토로(보리밥에 마즙을 뿌린 음식)가 유명하니 갖다 붙이자!"

 

해서 네기토로가 되었다는 썰 이다. 한마디로 백종원의 '대패삼겹살'같은 네이밍 인것.

 

마지막으로 이케다 서점 편집부에서 2008년 편찬한 내용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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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기리 根切り(ねぎり)' 에서 비롯되었다는 썰인데 갈빗대에서 살을 파내는 이미지가 반영된 이름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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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 백종원이 지은 거든 땅을 파제낀거든 말든 뭐 내가 알바는 아니니, 아무튼 일단 쪼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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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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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스는 김에, 뭐 잘 어울린다 하니 파도 단무지랑 같이 쪼싸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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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에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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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위에 쪼쓴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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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돌돌

 

왜인지 '네기토로마끼'라고 부르기 싫어진다. 나도 네이밍 대열에 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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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천국 노량진점 리미티드 에디션 : 근병참치갈비김밥 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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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위에 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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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 단 +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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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로 이소베마끼(x)

참파단말이(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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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강력한 피날레를 하고 싶다. 왜인지 재료가 하나 빠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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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동 전설의 튀김집에서 새우튀김 긴급 아웃소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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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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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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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토마끼(x)

상수동주민협력김밥(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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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오마카세 참치 편 베타버전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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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서 할 때는 좋았는데, 누가 다 먹을지까지는 생각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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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내가 그렇게 앞날을 내다보고 살 줄 알았다면, 애초에 집에서 회칼 들고 설치며 노는 취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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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좋은 해결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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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술꾼들의 아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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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손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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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는 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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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이 크게 망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왜인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와 술이 쭉쭉 들어간다.

 

됐다 이제. 다 죽었다. 김치냉장고에 잠들어 있는 저 참치 살덩이들로 내일 딴지그룹에 진정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보여주리라..

 

그렇게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꿈에도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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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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