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영부인 사진으로 도배될 때 벌어진 일
지난 주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으로 2박 3일 동안 이뤄진 한‧미정상회담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북한은 바이든이 한국과 일본을 찍고 귀국길에 오른 직후 25일, 동해안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한 미사일 3발을 쏘며 요란하게 배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북의 미사일 발사가 유엔 안보리 위반이라는 성명을 냈다. 우리 군과 주한미군이 각각 현무-Ⅱ와 ATACMS(에이테큼스)를 각 1발씩 동해상으로 실사격하며 맞대응하는, 실로 오랜만에 쪼는 맛을 시전했다.
이번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중국과 러시아의 카디즈 도발과 상호 연계된, 북중러의 조율된 조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돌입하면서 미국과 전선이 그어졌고, 북의 도발에 의한 한반도에서의 제2전선 수요가 생겼고, 중국 역시 한국의 정권 교체로 인한 새 정부나 한미동맹의 변화 여부에 대해 테스트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사태는 지난 주말에 이뤄진 한미 정당회담 합의의 후폭풍이다.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전혀 맥을 짚지 못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심했다. 하얀 드레스에 하얀 장갑을 끼고 만찬장에 나타난 대한민국 영부인을 본 미국 대통령이 ‘뷰티풀’이라 따봉을 날렸다는 내용들이 지면을 수놓고 있을 동안 벌어진 일이다.
그래. 그건 알겠는데 중요한 건도
기사화해야 되잖아...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해 5월 미국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과 공동선언문, 2017년 10월에 발표된 제49차 한미 안보협의회(SCM)공동성명 전문을 함께 봐야 한다. 그리고 북의 핵 도발 상황이 심각했던 2016년 10월 박근혜, 오바마의 합의 사항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 이번에 윤석열 정부가 미국에 무엇을 내주었고, 무엇을 얻었는지 실체를 알 수 있다.
하나씩 디벼보자.
미국만 챙긴 실리
우선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을 한번 비교해보자. 작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순방하면서 작성한 합의문과 이번 합의문은, 격식에서부터 차이가 많이 난다. 양국 정상 간의 합의문이라고 하면 통상적으로 쓰는 용어들이 있다. 이번 합의문에 담긴 “미국이 대한민국에 핵우산을 보장하고…”, “확장억제를 제공하고…” 이런 표현들은 정상 간 합의문에는 보통 사용하지 않는 관용구들이다. 국방 당국 간의 용어를 그대로 옮겨버린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이번 한미 정상회담 직후 윤석열 정부와 일부 언론들은
가장 빠른 시일 내에 고위급 확장억제 전략협의체(EDSCG)를 재가동
을 합의 최대 성과로 내세웠다.
'확장억제전략협의체 재가동'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해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니 어쩌니’ 하면서 내세웠던 공약사항과 닿아있다. 2016년 9월 박근혜와 오바마의 정상회담 때 처음 도입했고, 2018년 초까지 운영되었다. 북한 핵실험으로 남북 관계가 심각하게 얼어붙을 때 도입되었다가, 2018년 초 문재인, 트럼프, 김정은 간의 대화가 본격화되면서 힘을 잃기 시작했다.
2016년 10월, 한미 SCM에서 ‘확장억제전략 협의체’를 가동한다는 논의가 이뤄진다. 이 확장억제전략 협의체는 미국의 전략 자산을 한반도 근해로 끌고 오는 것을 말한다. 확장억제를 어떻게 제공할지에 대해 협의하는 고위급 협의체다. 그걸 어떤 방식으로 끌고 오는지를 논의하는 틀이다.
‘확장억제’라는 말은 ‘미국의 동맹국이 적대국의 핵 공격 위협을 받는 경우 미국이 핵우산, 미사일 방어 체계, 재래식 무기를 동원해 미 본토와 같은 수준의 억제력을 제공한다’는 의미다. 이번 정상회담을 두고
“미국이 북한 핵에 맞서 핵까지 동원해 확장억제를 하겠다는 의지를 처음으로 내비쳤다."
라고 분석하는 기자들은 공부가 덜된 것이다. 확장억제라는 말 안에 핵우산을 사용한다는 의미가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미국의 전략 자산을 어떤 식으로 배치할 것이냐이다. 2016년 10월 논의 때는 한국이 미국에 상시순환배치를 제시했다. 미국은 당연히 펄쩍 뛸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항공모함, 전략폭격기, 전담 부대를 한반도에 상시로 배치하자는 말이니까. 이것은 국방비 부담과 직결된다. 미국이 그것을 수용할 리가 없었다. 결국 '정례배치'로 톤다운됐다. 정례배치는 필요할 때마다 신속하게 배치한다는 뜻으로, 상시순환배치와는 완전히 격이 다르다.
2017년 순환배치 합의가 이루어졌었다. 순환배치는 정례배치보다 격이 좀 떨어진다. 미국의 전략 자산이 한반도에 와서 며칠이라도 머물러야 '배치'다. 머무르지 않고 미국의 핵 폭격기가 괌에서 떠서 한반도 상공을 쑥 훑고 지나가는 건 '전개'라 부른다. 이 전개까지도 순환배치 안에 집어넣었다. 이 내용의 4항 정도를 이번 한미 공동선언문의 실질적인 세부 합의사항 1항에 해당하는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핵심축’에 그대로 가져다 필요한 문구만 살짝살짝 바꿔 넣은 것이다.
“양 정상은 북한의 안정에 반하는 행위에 직면하여, 필요시 미군의 전략 자산을 시의적절하고 조율된 방식으로 전개하는 데 대한 미국의 공약과, 이러한 조치들의 확대와 억제력 강화를 위한 새로운 또는 추가적 조치들을 식별해 나가기로 하는 공약을 함께 재확인하였다.”
대단한 미국의 전략 자산을 활용해 북의 핵억제를 강화한 것처럼 포장했지만, ‘시의적절’, ‘상호 간 조율되어 배치’, ‘전개’ 같은 단어들은 실은, 순환배치만도 못 한 합의가 되었다는 말이다. 순환배치만해도 미국의 정규성, 정기성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시의적절하고, 상호 조율된 배치라고 하면 정기적으로 뭘 한다는 뜻은 없다. 미국이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소용없는 것이고, 핑계를 대도 뭐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전 합의와 비교했을 때 진일보했는지 후퇴했는지를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다. 2017년 10월 SCM에서는 ‘한반도 내에서 훈련한다’는 문구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반도와 그 주변으로’ 어쩌고 하면서 그 범위 한정이 없다.
“양 장관은 제6차 핵실험과 지속적인 탄도미사일 발사로 말미암은 안보 환경을 감안할 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동맹의 대비 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연합훈련을 지속 실시해야 하는 필요성을 재확인하였다.”
- 2017년 SCM
“이를 유념하면서, 북한의 진화하는 위협을 고려하여 양 정상은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의 연합연습 및 훈련의 범위와 규모를 확대하기 위한 협의를 개시하기로 합의하였다.”
-2022년 한미 정상회담
여기서 우리 정부의 외교팀이 미국에 완전히 밀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디까지인지 규정이 하나도 없고, 일본 자위대니 뭐니 다 열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재인 외교, 윤석열 외교, 무엇이 달랐나
남중국해 문제 또한 그러하다. 미국이 일본의 자위대를 남중국해로 끌어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남중국해에서 미국이 중국과 극한상황을 맞닥뜨릴 때 함께 마주해야 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남겨둔 것이 가장 큰 패착이다.
미국 백악관과 한국 대통령실이 핫라인을 개설했다는 것 또한 미국에 전적으로 유리한 사항이다. 미국에 간섭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랬다면 억지력 면에서라도 뭔가를 얻었어야 했는데, 이번 합의문에서는 찾을 수 없다.
설상가상, 중국을 고립화하는 인도- 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선제적으로 가입해 중국과의 외교는 고려하지 않는 꼴이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남중국해 및 여타 바다에서 평화와 안정, 합법적이고 방해받지 않은 상업을 유지하고…”
라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협력 합의 내용에 버젓이 ‘남중국해’를 명문화한 것만 봐도 그렇다. 중국 엿 먹으라는 소리인 걸 알고 한 건지 모르겠다. 대중국 반도체 수출이 60프로가 넘고, 무역 의존도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런 무리수를 두게 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얻어야 셈법이 맞는데, 합의문 어딜 봐도 그런 건 없다.
작년 5월 문재인과 바이든 간의 한미 정상회담은 안보동맹에서 경제안보동맹으로 격상한 대등한 합의였다. 적어도 호구 잡히고 그러진 않았다. 당시의 일본은 총리가 미국까지 갔는데 바이든과 2미터 떨어진 식탁을 마주하고 앉아, 마스크 두 겹이나 끼고 햄버거만 접대하는 것에 비해 한국은 대통령을 G7에 초청까지 하면서 예우했던 것과 비교해도 알 수 있다. (관련 기사 링크)
이번에는 완전히 정반대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을 순방하고 가면서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고 했으니 한국으로선 완전히 뒤통수 까인 셈이다.
지금 좋아할 때가 아니라고...
출처 - 링크
윤석열식 외교는 왜 한국의 영향력을 줄이는가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북한을 두고 강경하다 못해 적대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선거용인지 진심인지는 모르겠으나, 세상엔 공짜가 없다. 미국의 한국 홀대는 그것에 대한 영수증으로 봐야 한다. 남북 관계가 흐트러지면 대외교섭력이 확 떨어진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급격하게 남루해진 한국의 협상력은 그 자명한 증거다.
미국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렇게까지 우리 정부를 깔아뭉갠 것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극도의 불신이 깔려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은 민주당 정권이고, 과거의 ‘전략적 인내’와 다른 해결법을 모색하고 있다. 주한미군 재배치도 그 일환에서 봐야 한다.
그런데 ‘비핵화’ 우선을 주장하는 윤석열 정부와는 기조가 맞지 않고, 선거 과정에서 북을 향해 도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에게 불안한 인물이다.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바이든이 전임인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려 했다는 사실은 북을 향한 메시지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구축한 평화, 대화의 프로세스가 아직 미국에게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 무슨 말인진 알겠는데
이러면 미국과의 협상 카드를 잃게 된다고...
그래서 한미 정상회담 합의문에 적시된 북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문구는 구별해서 봐야 한다. 이 문구 때문에 미국의 대북 기조가 변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고, 한편에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 ‘비핵 개방 3000’의 시대로 돌아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MB정부의 외교, 안보, 대북 관계를 담당했던 김태효, 김성한 등 MB맨들이 윤 정부에 귀환했기 때문에 이러한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완전한 비핵화’는 늘 써왔던 용어이다. 다만 과거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북한의 거부감이 심각해, ‘완전한 비핵화’로 써왔던 것이다. 미국의 주적이 중국이 된 이상, 북한 문제는 전략적으로 인내하긴 어렵다.
중국 중심으로 전력을 재배치해야 하는 미국의 가장 큰 문제는 주한미군, 주일미군이 극동에 너무 치우쳤다는 점이다. 작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시킨 것도 해외 주둔 미군 전력 재배치의 일환이다. 중동, 아프간의 미군을 인도-태평양으로 몰려고 한 것이고, 다음으로 중요한 건 인도-태평양 안에서 전력을 어떻게 재배치할 것이냐의 문제다.
그럼 주적이 중국이므로, 중국을 중심으로 전력을 재배치해야 한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가 주한미군, 주일미군이다. 이 주한미군, 주일미군은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북한을 상대로 한, 냉전 시대 배치 형태다. 헌데 주적이 중국으로 바뀌었다면 이 배치 형태도 바뀌어야 하고, 바꾸려면 북한과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트럼프가 북한을 포용하는 전략을 취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정은을 인정하고, 친서를 주고받으면서, 긴장을 완화한 다음 주한미군 주둔비 인상이라는 카드를 내놓았다. 바이든에게도 주한미군, 주일미군 재배치는 반드시 풀어야 하는 과제다. 우크라이나 문제를 연내 해결하고 다시 중국 포위 전략에 집중해야 하는 미국이기에, 대북 문제는 다시 전략적 인내로 후퇴하기 어려울 것이다. 새로운 전선으로, 새로운 외교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정부가 비핵화를 전제로 남북문제에 접근하게 되면 과거의 실수만 되풀이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며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이 그렇게 최선을 다해 남북관계에 신경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남북관계에서 한국이 북한 주적만 외친다면, 당연히 미국은 한국이 북한에 대한 협상력이 없다고 판단할 것이며, 이는 국제외교 테이블에서 북한문제에 관한 한국의 의견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된다. 즉, 미국과 중국 사이의 국제외교에서 한국의 영향력은 줄어들며, 유사시에도(북한 수뇌부 붕괴 등) 별로 중요한 파트너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대통령의 외교팀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남북관계에서 가지는 영향력과 협상력이 경제는 물론, 국제외교 테이블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행사하며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주요 포인트임을 인지하고 그렇게 최선을 다한 것이다.
이것이 미국 언론에서 문재인을 "협상가"라고 칭송하는 이유이며 지난 정부에서 한국 정부의 외교적 영향력이 커진 이유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의 철학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랜 기간 쌓아온 공든 탑은 지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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