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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5편의 글을 기고하면서, 필자의 의견과 다른 댓글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길게 이야기하시는 분들에게는 예의상 댓글을 달아드리고 있습니다. 어차피 인터넷 기사란 것이 일방향이 아니고 쌍방향이란 점을 이해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글에 대한 논리적 댓글이 발전해서 반대 방향의 글도 기고 되는 그날까지 논리적인 반론은 환영합니다.

 

사회 시스템인 자본주의와 엔지니어를 엮는다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엔지니어라고 쓰고 회사원이라고 읽어도 무방한 이야기들을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어차피, 엔지니어도, 마케터도,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회사란 조직은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생활의 자본주의적(?) 삶과 그에 맞는 연구소 문화, 회사 문화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가장 인간적 부품

 

앞서 대기업들이, '연구원들은 핵심 인력이고 우수한 인재들을 채용한다'는 명분으로 수도권에 연구소를 유치한다고 말했습니다. 필자는 실상 대부분 연구원들은 학력이 높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지정된 개발 프로세스내에서 자신에게 할당된 일만 하는 연구원이 얼마나 우수한 인력이냐 하는 것은 구태여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선 연구원들은 회사에서 대외적으로 연구원이 핵심 인력이라고 이야기하니 자신이 회사에 매우 필요한 핵심 인력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회사에 매우 중요한 일이고, 자신이 없으면 회사가 굴러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요.

 

사실 회사에서 일정부분 역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하는 생각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연구소에서는 그 핵심 인력(?)을 핵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직종에 있는 사람이건, 어떤 직급에 있는 사람이건 그 사람을 핵심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직급이 높아지면 그걸 잘 알기 때문에 더더욱 회사에 매달리는지도 모릅니다. 좀 더 건조하게 말하자면 연구원들은 개발 프로세스란 생산라인에 배속된 부품 정도로 생각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인간적인 부품이 회사에는 매우 중요한 부속이니, 수도권에 연구소를 차려야 한다는 논리는 정말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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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필자가 보건대 최근에 주목을 받는 A.I. 기술이 연구소 부품을 대체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어차피 연구원 말고 다른 부서의 회사원도 부품 그 이상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굳이 연구원이 부품 취급받는다고 이야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거대논리를 펴는 기업의 시각이 못마땅하기 때문이지요. 어차피 기업의 홍보업무에는 단순히 제품의 홍보뿐만 아니라, 이처럼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업무도 하는 부품(?)이기 때문에 이해는 가지만, 한국의 산업을 이끌 핵심 인력이라고 포장하고선 부품 취급하는 문화가 참 불만이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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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중앙일보 기사캡쳐>

 

지난 2022년 1월 21일 자 중앙일보 기사입니다. 제 기억으로 이런 글들은 주로 매경이나 중앙 같은 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신문에서 흔히 내는 기사들입니다. 기사 내용은 안 봐도 비디오인데, 어떤 기술 전문가가 중국 어느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통해 얼마 정도의 핵심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되어서 산업의 피해가 어느 정도라는 것이지요.

 

이런 기사들이 노리는 효과는 뻔합니다. 기업들의 핵심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면 국가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준다 라던가, 이렇게 해외로 나가는 개인에 대해서 매국노의 타이틀까지 덮어씌우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런 기사 볼 때마다 우스운 게

 

'그 인력이 해외로 나가기까지 도대체 그 회사는 그 인력을 위해 무얼 했는지'

 

입니다.

 

좀 되묻고 싶습니다. 더구나 이 기사에 따르면 퇴직 인력입니다. 나이 먹어서 회사 잘라 놓고 그 인력이 중국의 다른 회사로 스카우트 되는 것을 지적하는 기사라는 것이지요. 대개 이런 기사들은 정말 기자가 회사 쪽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보도자료를 그대로 신문에 싣는 것 그 이상도 아닌 경우도 있지요. 기술 유출이란 단어가 주는 공포심을 이용해서 어느 개인을 매도하는 기사라고 봅니다.

 

현대 기술의 기술 유출이란 것은 어느 한 사람 혹은 몇몇 사람이 유출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기업은 이미 어느 개인에게 기술이 집중되고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려고 “지식재산권”의 발명자 항목에 기업의 이름을 넣어두고 있습니다. 즉, 이 기술이 유출되었을 때, 특허권자에 해당 기업이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지요. 사실 이런 기술 유출에 대한 방지책을 마련하는 것도 필자와 같은 기술 기획 담당자의 할 일입니다.

 

더불어 저 기사에서 이야기하는 기술이란 실체는 어느 개인 몇몇이 유출한다고 해서 100% 유출되는 것도 아닙니다. 흔히들 기업의 핵심 기술이란 것이 어느 사람의 창의적 생각에 기반해서 나오는 매우 혁신적인 무엇일 거로 생각하지만 사실 기업의 핵심기술은 그 기술을 구현해내는 장비와 함께 구현되는 때가 많습니다. 즉, 특정 기업의 핵심 기술은 그 기술을 개발한 인력과 그 기술을 구현해내는 장비와 한 묶음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 장비를 제작·구현하는 과정에서 해당 국가의 산업 기술 수준과 연관되는 때도 많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김 Tech'라는 사람이 개발한 A라는 기술을 이용한 장비 K는 오직 한국이라는 산업 기술 환경에서만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반도체와 같이 첨단산업일 경우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나 우리가 알고 있는 기술이란 불분명한 실체를 그나마 제대로 이야기했다고 봅니다. 위의 기사처럼 특정 인력 몇몇이 경쟁사에 가서 기술 개발해도 한국에서 만든 그 장비만큼의 품질 수준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길게는 5년, 짧게는 1년 이상 해당 기술을 구체화해내는 시간이 소요되게 됩니다.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는 기업에서는 기술이 유출된 이후 1년, 2년 동안 가만히 있을까요? 그 장비에 추가 기술을 더 얹어서 다음 세대의 장비를 개발하겠지요. 우리가 아는 산업의 기술 경쟁은 그렇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흐름입니다. 우리도 80년대, 90년대 그렇게 기술 개발했었지요. 일본에서 퇴직한 금형 전문가 불러서 연수도 하면서 말입니다.

 

연구원이 근무할 때는 부품 취급을 하면서 그만두고 다른 곳에 가면 기술 유출이란 딱지를 붙이는 이 기사들은 철저하게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사들입니다. 기사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업은 기술개발하려고 노력하는데 개인의 사적 이익으로 인해 그 기술이 외부로 유출된다는 식의 인식을 심어줍니다. 정부가 이런 부분을 보상할만한 또 다른 무엇(?)을 내놔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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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이상적인 역할과 책임

 

한국 사회에서 횡행하는 역할과 책임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소위 전문인력이라 하는 개발자나 디자이너들이 일정 정도 실무를 하고 나면, 그 실무자에게 관리 업무를 줍니다. 관리업무가 적성에 맞는다면 별문제가 없지만, 이상하게도 개발과 디자인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관리업무를 매우 싫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해가 가는 것은 관리 업무가 갖는 난해함 때문이지요.

 

사람이 사람을 관리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요? 그러나 한국 사회의 연구소나 조직은 일정 정도의 연차가 되면 관리 업무를 배정합니다. 더 연차가 되면 아예 관리직으로 배치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급변하는 개발환경이나 도구들을 익히기 위해 끊임없이 학습해야 하는 개발 직군들이나 디자인 직군들이 실무에서 손을 놓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새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되어서 관리만 하는 형태로 변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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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디자인

 

학습 능력이나 역량이 뛰어난 사람은 관리 업무와 함께 학습을 병행하면서 실무와 관리를 같이 수행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이고 일정 수준이 넘어가면 더 이상 실무에 관여하기 힘든 구조로 바뀝니다. 아마도 기업 연구소의 CTO라고 하는 사람들이나 그즈음에 이르는 사람들이 가진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연구원이나 (디자이너를 포함한)개발직군과 같은 전문성 있는 직군들은 역할 부분만을 강조하고 책임 부분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봅니다. 관리 책임이나 성과 책임 같은 부분들이 특히 그러하지요. 연구소에서 일해본 필자의 경험으로 봤을 때 작금과 같이 전문직에게 책임을 강조하는 까닭은, 위에 있는 이사나 연구소장과 같은 사람들이 너무 게을러서로 보입니다. 물론 그 사람들이 평사원 생활할 때도 그러했던 것이라 당연한 거로 알 터이지요. 세상이 변했는데 그 사람들은 아직 30년 전 모습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름 선진국이라고 이야기하는 미국의 디즈니 이야기 잠깐 드릴까요? 80년대, 90년대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아닐 때, 즉 셀 애니메이션(cel animation,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제작 기법으로 셀룰로이드라는 투명한 플라스틱 및 필름 위에 수작업으로 채색하여, 배경 위에 놓고 촬영할 수 있는 편집)이 주류일 때 한국에서 일하던 셀 애니메이션 실무자들이 꽤 많이 미국 디즈니로 건너갔습니다.

 

셀 애니메이션을 하던 사람들은 어느덧 디지털 애니메이션 실무자로 바뀝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서라면 관리직군으로 소속이 바뀌어 사람들을 관리해야 할 사람들이 현업에서 계속 근무합니다. 그리하여 디즈니에는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아직도 마우스를 잡고, 그림을 창조하고, 배경을 그립니다. 즉 전문 직군에 있는 사람들이 관리책임을 부담하지 않고 계속 실무에서 전문성을 키워나간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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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 월트디즈니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수석 애니매이터로 일했던 김상진 감독

출처-<동아사이언스>

 

한국 연구소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문 직군은 관리 업무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관리 업무가 직급에 따른 업무가 아니라, 개인의 적성에 따른 직무라는 인식들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한국에서 관리 직무는 직급이 높은 사람이 하는 업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관리업무가 대상 연구원들의 업무 특성이나 성과 지표들을 주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업무들이기 때문입니다. 근태를 관리하고 성과에 대해서 평가하는 관리직이 아니라, 연구원들의 성과를 지원(서포트)하는 업무 형태로 바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연구소가 좀 더 창의적이고 전문성이 축적되는 곳이 됩니다.

 

10년째 혁신이 없는 가장 잘 팔리는 제품

 

애플 아이폰 3GS부터 8까지 꼬박꼬박 아이폰만 사용하다가 그놈의 통화 녹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안드로이드로 갈아탄 필자 입장에서 매년 발표하는 애플의 아이폰을 보면 대중의 시각과 기자의 시각이 확연히 다른 것을 느낍니다. 한국 기자는 신제품이 나오면 어김없이 혁신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말 혁신이 없는 걸까요? 한때 제품 기술 연구소에서 근무했던 실무자로서 애플의 아이폰을 보면 정말 다양한 혁신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도대체 애플은 어떻게 개발하길래 이런 제품을 만드는 것일까 고민을 여러 차례 다양하게 했습니다.

 

한국 기자들이 말하는 부족한 혁신(?) 이면에 깔린 거대한 혁신은 제품을 설계하고 조립하는 과정의 세밀함과 개별 부품 간의 조합, 그리고 그 부품이 최소화되어 너무 빈약해 보이기까지 하는 내부 모습입니다. 제품 개발 혁신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옛날 그러니까..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연구소 선배들이 일본 제품을 벤치마킹한다고, 일본 출장 가서 한 보따리 사 온 워크맨을 분해해 보고 느낀 감동(제 연구소 선배들 이야기입니다. ^^)과 비슷합니다. 어떤 넘지 못할 장벽이 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나온 M1 Ultra에서 보인 두 개의 M1을 붙이는 방식은 제외하고, 그 이전 아이폰 3GS부터 12, 13에서 보이는 제품 내부의 모습은 매우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실제 아이폰이 출시되면 삼성·LG의 연구원들이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팀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제품 설계를 변경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기술적인 측면만 놓고 보면 삼성이나 LG에서도 접근할 수 있습니다. 삼성 갤럭시 휴대폰을 분해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2010년도 중반부터 삼성의 갤럭시도 그런 애플의 제품 설계 철학을 벤치마킹해서 어느 정도 그 수준을 따라간 상태입니다. 그런데 조직적인 측면, 즉 개발 문화와 관련한 측면은 쉽게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애플의 혁신은 제조 기술과 S/W 혁신을 만든 연구소의 기업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지극히 폐쇄적인 애플 내부의 비밀주의라 해도 간간이 들려오는 이야기는 애플의 내부에는 혁신을 관리하는 문화가 있다고 하더군요. 혁신이란 것이 관리할 수 있는 것인지, 그런 혁신을 내부에서 관리한다는 것이 처음에 이해하지 못 했습니다. 애플의 한국 협력사에서 일하는 예전 후배 동료에게 물어보고, 애플에서 일했던 이스라엘 엔지니어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약간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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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헤럴드경제>

 

흔히들 혁신이란 것이 어느 개인의 집중적 고민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제품이란 것이 만들어진 이후의 혁신은 철저한 사용성에 기반해서 만들어집니다. 조각조각 들려오는 애플 연구소의 혁신 관리 방식은 순환이라고 하더군요. 애플의 연구소는 개발 업무에 집중하는 조직도 있지만, 개발 업무 이외에 실제 제품을 테스트하고 사용해보는 조직도 광범위하게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실제 제품을 개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된 제품을 내부에서 정말 닳고 닳을 때까지 사용하는 조직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두 개의 조직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특정 사이클마다 상호 교체되며 만들어진 기술·제품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하고 사용하여 만듭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사용성에 대한 부분을 신뢰성 검증이란 이름으로 부릅니다. 제품·부품의 내구성이나 사용성에 대한 테스트 용도로 사용하지만, 그 범위가 제한적이라 감히 사용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쑥스러울 정도이지요.

 

개발업무에 배속되면 정신없이 개발업무에 집중하고, 그다음 사이클에서 사용성 업무에 집중하는 형태가 되기 위해서는 연구소의 인력이 무엇보다 충분해야 합니다. 한국의 연구소 신뢰성 검증을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위한 최소한의 사용성 검증이라 이해한다면, 좀 더 광범위하게 제품의 사용성을 검증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기존 연구소 인력이 2배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과연 한국의 연구소에서는 그런 걸 인정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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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혁신을 말하지만, 혁신을 만들 문화는 만들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부족한 인력과 그 부족한 인력을 가장 최적화된 인력이라고 이야기하는 관리 마인드의 연구소 운영이 가장 큰 문제라고 여깁니다. 혁신을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혁신을 이야기하는 아이러니가 바로 연구소에 있습니다. 개발 인력과 사용성 검증 인력이 최소 1:1이 되는 형태로 연구소 운영을 해야 혁신의 끄트머리라도 잡지 않을까 싶습니다. 

 

뻔히 보이는 길을 왜 안(못) 갈까요?

 

안드로이드 OS version 1.0 시절.. 안드로이드를 만들던 회사가 삼성에 인수를 요청했었는데, 삼성이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 이야기가 돌던 때, 댓글 반응 중 하나가 만약 삼성이 안드로이드를 인수했어도 지금처럼 안드로이드가 활성화되지는 못했을 것이라 한 내용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의견을 낸 사람은 한국 제조업의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문제는 단기 성과주의이지요.

 

사실 이 단기 성과주의는 한국이 성장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시장에 적응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단기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시장의 요구(needs)에 신속히 맞춰야 합니다. 그걸 빠르게 수행하다 보니 어느덧 시장에서 많은 점유율을 기록합니다. 만고불변의 전략이자 가장 자본주의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 단기 성과주의적 연구문화 환경은 3년 뒤, 5년 뒤에 올 성과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편입니다.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과 경쟁 환경을 들어서 3년 뒤, 5년 뒤의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핑계로 연구 개발의 우선순위에 장기적인 과제들은 뒤로 미뤄두는 특성을 띱니다. 언뜻 보면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연구 개발하는 상층부(일반 경영진을 포함)들의 책임 방조가 숨어있다고 봅니다. 단기적 성과에만 집중하여야 그나마 목숨을 유지 할 수 있을 터이니 말이지요. 단기적 성과에 집중하면 사실, 혁신이 필요 없습니다. 소위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만 잘 취해도 어느 정도 시장에서 성과가 나타날 터이지요.

 

그런데 시장 환경이 변하였습니다. 더불어 한국이란 국가가 지니는 위상이 달라졌버렸습니다. 불과 10년 전처럼 선도제품을 분해하고 벤치마킹을 해서 제품을 만들어서는 더 이상 시장을 주도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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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BS News>

 

실제 정부에서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해주는 정부 기술 과제들은 과제의 특성에 따라 1년, 3년, 5년, 10년과 같이 장·단기 연구개발 과제를 공모하고 있긴 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과제들 중에 제대로 된 성과들은 대부분 1년과 3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한국의 기업들이 단기과제에 강하다는 말이지요. 이런 단기 성과문화로 인해 지금의 제조업 강국을 이루었지만, 향후 10년간 이런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10년 전부터 그토록 이야기 들었던 중국과의 자리바뀜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간단하지만 나름 많은 고민을 통해 6편의 글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언제고 한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엔지니어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엔지니어 감성보다 인문학적 감성이 있던 터(?)라 다른 엔지니어들이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대변하는 정도입니다. 과묵하게 자기 일만 하는 순박한 엔지니어들의 의견을 대변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나의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한가지 원인만 있지 않다 보니,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지난 6편을 통해 고객과 회사 내 연구원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좀 더 근본적인 한국의 자본주의의 화신인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남겨두고 이만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뒤에 이어질 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연구소에 대한 이야기들과 일부 중첩되는 부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때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타워즈 덕후, 농구 덕후, 애플 덕후.. 라고 생각만하고, 실제로는 잘 모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