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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에 '연예인병'처럼 여의도에도 ‘여당병’이란 게 있단 이야기, 선배들에게 들은 적 있다. 말로만 듣던 그 질병의 실체를 국회밥 7년 만에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지금이다. 지금 민주당은 여당병을 앓고 있다.

 

여당병의 증세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의원과 보좌진들의 안일한 현실 인식. 무뎌진 감각, 당 내부 갈등, 의원 간 팀플레이의 부재. 직접 겪어본 것이 이 정도다. 앞으로 더 얼마나 후속 증상이 발현할지 모르겠다. 당 구성원 모두가 우리는 야당이라는 것을, 그것도 검찰공화국에서의 야당이라는 엄혹한 현실을 뼈저리게 깨닫는 그날까지, 증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 민주당은 전국 단위 선거를 싹쓸이하다시피 이겼다. 그만큼 파이가 커졌고 새로운 인재들이 민주당으로 몰려왔다. 민주당에 발을 걸치고 있었거나 민주당과 가까이 지냈던 인사들은 크고 작은 성공을 거뒀다. 민주당은 양적으로 질적으로도 매우 성장했다.

 

하지만, 모든 일엔 음과 양이 있기 마련이다. 지난 5년은 민주당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였지만, 당내에 흐르는 젖과 꿀이 구성원들을 현실로부터 무뎌지고 안일하게 만들었다. 성장이란 자신이 발 디딘 곳의 상황에 맞춰가는 거다. 민주당의 국회의원이나 보좌진들의 위기의식과 자기 계발의 스트레스는 야당의 그들보다 못했다.

 

"여당 보좌진 오래 하면 바보 된다”

 

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호시절에 정치를 경험한 청년 정치인, 젊은 보좌진 인재들의 위기의식 부재는 결국 훗날 실력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 연재 초반에 말한 '민주당의 진짜 리스크(관련기사 링크)'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 리스크가 처참한 현실이 된 것이다. 최순실 사태 때 새누리당 사람들처럼.

 

쓰리지만 해보자. 복기. 그래야 다음이 있다.

 

대선 이후, 여야가 크게 붙을만한 싸움은 총 3번 있었다.

 

1. 청와대 집무실 용산 이전

2.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협상과 본회의 통과

3. 윤석열 정부 인사청문회

 

민주당은 이 싸움들을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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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력 격차와 무혈입성의 치욕 

 

먼저, 청와대 집무실 용산 이전.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3월 20일, 윤석열 당선인은 난데없이 청와대를 용산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직접 브리핑까지 하면서.

 

그의 명분은 이랬다.

 

1. 제대로 일하기 위한 각오(?)

2. 국민과의 약속 실천(??)

3. 국민들과의 교감과 소통 용이(???)

 

이게 말이냐 막걸리냐는 일단 제껴두고, 그 과정에서 불거졌던 논란을 되짚어보자.

 

윤석열 당선인이 브리핑 과정에서 두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이 있었다. 브리핑 중에 국방부 지하 벙커의 위치를 지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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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도 지하 벙커가 있고 여기도 지하 벙커가 있고 비상시에는 여기 밑으로 다 통로가 연결돼 있기 때문에 비상시엔 여기서 NSC를 바로 할 수가 있습니다."

 

대통령 당선인이 전 국민 앞에서 2급 군사기밀을 친절하게 밝힌 거다. 이에 김은혜 당시 당선인 대변인은,

 

사실상 광활한 잔디밭을 하나 짚은 게 보안시설 누출이란 주장엔 동의하지 않습니다. B-2 벙커는 이미 많은 분께 공개된 바가 있기도 하고요.

 

라고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지만, 이것을 기밀 누설로 볼 것이냐 해프닝으로 볼 것이냐의 다툼의 여지가 있었다. '일부 공개됐다고 해도 적법 절차에 따라 기밀이 해제되지 않는 한 기밀성이 사라지자 않는다'라는 군사상 기밀에 관한 1994년 대법원의 정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당선인의 브리핑은 해프닝으로 지나갔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무리하게 집무실 이전을 밀어붙이자, 무당 논란까지 일어났다. 에버트 인권상을 수상한 국민들이 사는 나라에서, 정권 교체 이후 일어난 첫 정치적 쟁점이라기엔 너무나 황당한 것이어서 누구도 차마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을 꺼내지 못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와 가깝다고 알려진 역술인들의 강연 영상과 자료가 SNS에 떠돌았다. ‘청와대에 귀신들이 많다’라고.

 

명분 없이 졸속으로 밀어붙이는 인수위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추진은 민주당이 싸우기에 매우 좋은 전장이었다.

 

1. 청와대가 북악산과 인왕산으로 둘러싸여져 북한으로부터 직격을 받지 않는다는 안보적 이점.

2. 이전으로 인한 시내 교통체증, 이전 비용 문제에 관한 용산 주민 의견수렴이 없었다는 점.

3. 용산공원 오염 문제

 

싸울 지점은 쌔고 쌨었다. 그러나 어떠했나. 사실상 무혈입성이었다. 심지어는 반드시 5월 10일 00시에 현재의 청와대를 개방하겠다고 밀어붙여서 문재인 대통령은 5월 9일에 청와대를 비워줘야 했다. 전임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마저 침범당했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건, 애초에 윤석열 후보 공약에는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이 없었다는 것이다.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드린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

 

이런 황당한 말을 그냥 눈뜨고 지켜본 거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대해서 당시 여론도 불리한 것으로 조사됐었다. 여론 지형도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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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그렇지만 민주당은 어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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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막무가내의 엄호사격도 그대로 맞았다.

 

당시 신문에서는 김정숙 여사의 브로치, 옷이 얼마며, 영부인이 명품을 사랑한다는 물타기 기사들이 쏟아졌다. 국민의힘에서는 김정숙 여사의 옷값 공개하라며 되레 큰소리를 냈다. 그 와중에 김건희 여사의 치마는 5만 원대라는 둥 완판됐다는 둥, 시즌 핫 아이템이라는 둥 검소함을 강조한 패션이 눈길을 끌고 있다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뉴스가 같이 걸렸다.

 

여당이 된 야당은 이토록 성실하게 전투에 임했다. 야당이 된 여당은 쉬운 싸움마저 허무하게 내줬다. 대선 패배 이후 전열을 가다듬지 못하고 구성원들의 팀플레이가 사라진 민주당에서 겪은 가장 치욕스럽고 무기력했던 전장이었다.

 

143명 출석은 정말로 위험했다 

 

설마 했던 일이 벌어졌다. 최초의 검사 출신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우려했던 일들이 너무도 대범하고 노골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대통령과 가까웠던 검사들이 행정부를 하나둘 장악하며 출세하고 있다. ‘윤석열 사단’ 특수통 검사들은 검찰 지휘부에 전진 배치됐다. 바야흐로 검사 전성시대다. 검찰의 칼끝이 지난 정부와 민주당을 향하게 되는 건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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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이래로, 검찰 권력을 개혁하고자 했던 정권은 단 한 번도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탄생은, 정치권력은 검찰권력과의 대결에서 완벽히 패배하게 되었으며 선출직 정치인들은 검찰 밑으로 들어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현실에 대해서 여야를 떠나 많은 정치인들은 매우 자괴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과연 몇이나 그럴까.

 

민주당은 이 처참한 현실을 앞두고 윤석열 정부 출범 이전에 검찰 수사-기소권을 분리해 최소한의 견제 장치를 마련했어야 했다. 대통령 집무실 졸속 이전에 대해서는 침묵하던 언론이 민주당의 검찰개혁 움직임에 대해 ‘졸속 처리’, ‘입법 독재’, ‘지금까지 뭐 하다가 이제 와서?’라는 프레임을 씌우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이러한 프레임에서도 기민하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버젓이 얼굴을 드러낸 성 접대 동영상 속 김학의 차관은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받았고, 한동훈 검언유착 사건은 아이폰 비밀번호를 풀지 못해 무혐의 처분이 났다. 김건희 여사, 장모, 대통령 본인 관련 모든 수사들이 이런 식으로 일단락될 것이다. 이게 문제고 이걸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 모르는 자. 없다. 사실상 검찰 개혁의 명분도 민주당이 쥐고 있었다는 말이다.

 

서두른다거나 성급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검찰을 개혁하자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말은 곧 성급하다고 말하는 건 결국 개혁에 반대하는 꼴이 된다는 논리도 민주당은 가능했다. 그러므로, 검찰 출신들이 행정부를 장악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 설령 서두르는 모양새라도 추진하는 것이 옳은 것 아니냐고 민주당은 강하게 반박했어야 했다. 검찰 수사권 조정은 20년을 넘게 논의되어 오던 문제다. 졸속은 공약에도 없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이 졸속이다. 이런 민주당의 주장과 논리가 밖으로 터져나가지 않았다.

 

언론은 이 구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도 성실했다. 검찰 개혁을 서두르는 민주당 내부의 ‘반대 목소리’에만 볼륨을 키워줬다. 양향자 의원, 조응천 의원, 김오수 청장 등의 의견이 큰 헤드라인을 박고 나가며 민주당의 내부 혼란을 일으켰다. 밖에서 들려오는 북소리는 크고 두렵다. 민주당 의원과 보좌진들 스스로도 내부 동력을 잃고 자신감을 잃어 갔다.

 

‘우리가 정말 성급하게 밀어붙이는 건 아닐까’

 

라고 옷깃을 여매는 사람이 늘어났다.

 

물론 국민의힘도 우왕좌왕은 있었다. 박병석 의장 중재안을 합의 후 파기하면서 다시 한번 민주당에게 명분을 쥐여주는 꼴을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국민의힘은 본회의 필리버스터를 예고했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회기 쪼개기’로 맞서면서 강대강 전면전을 예고했다. 국회법상 필리버스터는 회기 종료와 함께 강제로 종결되기 때문에 임시국회 회기를 2, 3일로 쪼개서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작전이었다.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회로 회기를 나눠서 회의를 개최해야 한다.

 

강대강 전면전이라고 해도 이러한 작전이 서로 만나면 쪽수가 많은 민주당이 이긴다. 그러니까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민주당이 회기 쪼개기로 통과시키면 국민의힘은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민주당에서 회기 쪼개기 카드를 꺼낸 순간 승부는 이미 끝난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 의원들이 방심했던 것일까. 여기에 다들 모른 채로 지나간 장면이 있다. 회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회기를 나누는 안건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가 돼야 한다. 본회의 의안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게 되어있다. 민주당은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통과일 줄 알았는데...

 

회기 쪼개기 법안 표결에 민주당 167명 의원 중 143명만 출석했다.

 

만약 국민의힘에서 반대 표결을 던지기 위해 들어온 65명이 없었다면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 할 뻔했다. 국민의힘에서 전면 보이콧했으면 민주당 단독 표결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과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고 당론으로 채택된 법안 통과를 위한 첫 표결에 출석조차 하지 않은 민주당 의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국민의힘에서 출석해서 회기 쪼개기 법안이 겨우 통과됐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바보 같은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알만한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안일해도 너무 안일했다. 병세로 치자면 혼수상태였다. 여당병을 완치하려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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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의 실제 권력과 무너진 대오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장관 후보들이 지명되기 시작했다. 인선된 후보들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2030 청년들의 분노를 자양분 삼아 집권한 정치집단에 의한, 늙은 기득권 남성들의 정치 전면 등장’

 

정치권이 인사청문회 정국으로 넘어가면서 장관 후보에 대한 의혹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치 밥 먹고 사는 나도 뉴스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매일 쏟아지는 장관 후보자 의혹들은 하나하나 읽기에 버거운 수준이었다. 베스킨라빈스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모든 후보가 다채로운 의혹이 쏟아내는 것도 대단한 진풍경이었다.

 

군계일학이라 해야 할까. 민주당 입장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후보가 있었다. 바로 법무부 장관 한동훈 후보. 그가 받고 있는 의혹의 죄질이 다른 자들에 비해 특별히 더 나쁘다기보다 그가 장관이 됐을 때 민주당과 대한민국 민주주의 전체에 가장 해롭기 때문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에 민정수석실을 폐지했다. 법무부는 공직자 인사 검증 조직을 신설했다. 한동훈 장관은 민정수석의 역할까지 하게 된 것이다. 민정수석 직은 청와대 권력 서열 TOP5 안에 든다는 말이 있다.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 중 최고 권력으로 꼽히는 요직이다. 새가 날아가기도 전에 그의 헛기침에 날개를 저는 자리가 그 자리다.

 

윤석열 정부에서 한동훈은 법무부 장관 + 검찰총장 + 민정수석의 권력을 모조리 흡수한 괴물이 되었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인사권, 감찰권으로 검찰을 완전히 장악했고 과거 민정수석의 권한으로 다른 부처 공무원들을 모조리 검증할 수 있는 정보 권한까지 손에 쥐어졌다. 법무부, 검찰, 민정수석으로 분리되어 있던 사정 시스템 전체가 한동훈 장관의 통제하에 들어갔다. 뿐인가. 대통령과 직접 소통하는 사이이며, 영부인과는 갠톡도 주고받는 공적으로 사적으로 완전 밀착된 인사다.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누구든지 검찰 포토라인에 세울 수 있는 구조가 완성되었다.

 

끝이 아니다. 법무부 장관은 직권으로 상설특검을 발동할 수 있다. 민주당의 검찰 수사권 조정 법안이 시행되더라도 한동훈 장관은 상설 특검으로 수사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또한, 한국형 FBI가 설립된다고 하더라도 법무부 산하로 들어갈 가능성도 높다. 무슨 수를 쓰든 한동훈 천하를 막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 역사를 아무리 뒤져봐도 그보다 막강했던 신하는 몇 없다.

 

장관의 인사청문회 국면은 정부와 여당에 유리하다. 국무총리는 임명 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하지만, 장관 후보에 대해서 야당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는 것뿐이다. 청문보고서 미채택은 실효가 없다.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면 그걸로 끝이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의 인사청문회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큰 싸움이 벌어질 전장이었지만, 청문회에서 결정적인 무언가가 터지지 않는 한 한동훈 후보가 장관이 될 가능성은 불 보듯 뻔한 일이긴 했다. 판을 엎을만한 것이 청문회장에서 터지는 일은 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결과가 예측되는 청문회였다. 하지만 그래도 민주당의 중요한 역할이 있었다. 야당의 역할은 촘촘한 질문 공세로 후보가 가진 생각과 철학이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청문회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후보와 후보를 지명한 대통령의 자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여지를 남겨야 한다.

 

의원들에게 주어지는 질의 시간은 1인당 7분, 5분, 3분. 1인당 최소 15분씩 장관 후보에게 질문할 시간을 보장받는다. 법제사법위원회에는 박광온 위원장을 포함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10명, 무소속 2명(민형배, 양향자)이 있다. 그러니까 아주 곤란하고 난처한 질문을 할 야당 의원들 10명이 포진해 있는 셈이다. 한동훈 장관 후보는 최소 150분간 민주당이 준비한 어려운 질문들에 답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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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17시간 30분이 걸린 긴 청문회 끝에, 한동훈 후보자는 결국 법무부 장관이 됐다. 많은 언론들은,

 

“결정적 한 방은 없었다”

“민주당 완패”

 

같은 헤드라인을 뽑았다. 최강욱 의원, 김남국 의원, 김종민 의원 등의 실수만을 거듭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의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 보여줬던 언론의 가혹함은 반대로 적용되었다.

 

뼈아프게 돌아본다. 과연 언론 탓만 할 일이었는지. 아니었다. 민주당의 한동훈 후보자 인사 검증에는 팀플레이가 없었다. 각각의 의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질의 기회를 단절된 채로 쓰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후보 입장에서 그 시간만 버티면 되는 전략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한 가지 주제를 물고 릴레이로 늘어졌다면, 후보자는 좀 더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이 인사가 무리한 강행이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느꼈을 것이다.  

 

나의 투병일지

 

우리 민주당은 이제, 청문회 아이템을 의원들 간에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보좌진들끼리 모여 서로의 무기를 크로스체크하며 대오를 형성하는 그런 전투적인 야당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나는 박근혜 정부 시절, 야당인 민주당에서 국회 일을 시작했다. 야당의 야성을 나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위에 처절하게 늘어놓은 뼈아픈 복기들은 결국 민주당의 보좌관인 나에 대한 반성과 다름없다.

 

나는 얼마나 치열했고 뜨거웠는가. 광화문에 촛불이 가득 찼던 그날부터, 초라한 지방 선거 성적표를 받아든 오늘까지. 한 장면 한 장면 복기해본다. '정신 차리자' '반성해야 한다' 그런 흔한 말, 차마 나오지 않는다.

 

'실력을 기르자'

 

이것밖에 남지 않는다. 따뜻한 여당 사무실에서 시작한 후배들과 야당 시절의 칼바람을 기억하는 선배들과 손잡고,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한 가지 다짐이 있다.

 

우리가 다시 여당이 되어도 되찾은 야성을 절대 잊지 않도록 노력할 거다. 오늘의 이 투병 일지를 징비록 마냥 여의도의 모든 라떼가 마르고 닳도록 후배들에게, 동료들에게, 이야기하고 이야기할 거다. 이 끔찍한 여당병, 다시는 앓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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