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다, 일단 인정
졌잘싸도 아니고 그냥 졌다. 투표율이 크게 하락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뚜껑을 까고 보니 예상보다 처참했다. 5+a를 기대했는데, a는 간데없고 5도 간신히 얻은 셈이다. 14대2로 압승했던 4년 전을 생각해 보면 격세지감만 느껴질 뿐이다.
출처-<연합뉴스>
뼈 때리는 투표율
원래 지방선거는 대선이나 총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지게 마련이고, 투표율도 낮은 편이다. 문제는 이번 지방선거의 최종투표율이 50.9%에 불과, 역대 전국단위 선거 중 3번째(역대 전국 선거 최저투표율은 2008년 총선 46.1%), 지방선거 중 2번째로 낮은 투표율(역대 지선 최저투표율은 2002년 지방선거 48.8%)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77.1%)은 물론 4년 전 지방선거(60.2%)와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치다.
위에 언급한 역대 투표율 낮은 선거들이 대부분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일방적인 압승으로 끝났던 것만 봐도 애초에 불리한 선거였던 셈이다. 이번 선거와 가장 비슷한 투표율을 기록했던 2006년 지방선거(51.6%) 역시 한나라당의 압승과 열린우리당의 참패로 귀결되었으니...
사전투표와 본투표로 나눠보자면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해진다. 지난 대선의 경우 투표율은 77.1% 사전투표율은 36.9% (당일 투표율 40.2%)에 달했지만 이번 지방선거의 경우, 투표율은 50.9%, 사전투표율은 20.6% (당일 투표율 30.3%)에 불과했다. 전체투표율이 26.2%P나 떨어진 것도 그렇지만 사전투표율이 16.3%P 떨어진 반면 당일 투표율은 9.9%P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사전투표에 민주당 지지층이 많이 참여하고, 당일 본투표에는 국민의힘 지지층이 더 많이 참여한다는 걸 감안해보면, 상대적으로 민주당 지지층의 기권이 더 두드러진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만일 사전투표의 하락률이 당일 투표와 비슷했다면 전체 투표율이 57.3%로 올라가게 되는데, 이 경우 민주당이 압승했던 2018년 지방선거(60.2%)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비교적 선전했던 2014년 지방선거(56.8%)나 2016년 총선(58.0%)의 투표율에 육박했을 테니 결과도 달라졌을 것이다.
결국 민주당 지지층의 대거 기권이, 근소한 차이였던 충청권 광역단체장이나 수도권 기초단체장 선거의 패배와 맞물려 더욱 뼈아프게 느껴지는 상황이다.
출처-<연합뉴스>
그들은 왜 투표장에 오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3개월, 새 정부 출범한 지 3주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크다. 모든 언론매체의 관심이 윤석열 대통령과 새 정부에 쏠리는 상황. 취임식은 물론 청와대 개방, 한미 정상회담, 방역지원금 지급과 대기업들의 대규모 투자 계획 발표까지 각종 굵직한 이벤트들이 쏟아져 나오며 여당 지지층에게는 투표할 명분을 마련해 주었다. 반면 야당 지지층은 대선 패배의 후유증 때문에 '정치 뉴스 보고 싶지도 않다'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나마 나오는 기사마저 부정적인 것 일색이었으니 투표장에 가기도 싫었던 것이다.
원래 미국에서도 대통령 취임 100일까지는 '밀월 기간(honeymoon period)'이라 하여 언론과 야당도 비판을 자제하고 새 정부에 협력하는 게 관례라지만, 이번 윤석열 정부의 경우, 취임 초반 용비어천가식 언론보도가 심했다. 가령 문제가 많았던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처음부터 지명철회가 순리였음에도, 마치 간을 보듯 한덕수 총리 후보자 인준안이 가결되고 나서야 자진해서 사퇴하자 형식으로 거취를 정리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많은 언론은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신, 인간적인 의리 또는 뚝심의 리더십을 강조하다가, 뒤늦게 자진사퇴하자 협치를 선택했다며 띄워주기 바빴다.
또한 능력을 유일한 인사원칙으로 내세우며 성별·지역 안배는 고려하지 않겠다고 하다가 외신의 지적을 받고 뒤늦게 화풀이하듯(?) 교육부총리·보건복지부 장관·식약처장·특허청장 등 줄줄이 여성 각료들을 인선하자, '여성에 과감한 기회를 부여했다'든지 '약속을 지켰다' 등 찬양이 넘쳐났다.
반대로 야당에 대해서는 갈등을 부각하거나, 긍정적인 부분은 최소화하고 비판 일색의 보도로 일관하여 민주당을 찍을 수 있던 중도 부동층이나 라이트 지지층의 발길을 멀어지게 만든 것이다.
대표적으로 선거 막판 이슈가 되었던 김포공항 이전 공약에 대한 보도를 들 수 있다. 정치인의 선거공약은 1. 당장 시행할 것 2. 임기 내에 추진할 것 3. 장기적으로 시간을 갖고 검토해 볼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중 김포공항 이전은 3번에 해당하는 장기 검토 과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언론은 마치 윤석열이 청와대 옮기듯이, 이재명이 당선되자마자 김포공항 뚝딱 헐어버리고 아파트 지을 것처럼 호들갑 떠는 국민의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적기 바빴으니 민주당 지지층마저 '헐'하면서 말문이 막혔던 것이다.
반면 황당하기로는 SF소설 급이었던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지사 후보의 '하이퍼루프'나 유정복 국민의힘 인천시장 후보의 '한중 해저터널' 공약에 대해서는 검증은커녕 이렇다 할 언급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성 비위 의혹을 둘러싼 당내 갈등과 관련해서도 확인되지 않은 의혹만으로 민주당을 성 추문 정당으로 몰아가는 보도가 행해지었지만, 이준석 대표의 성 상납 의혹이나 윤재순 대통령 총무비서관의 논란과 관련해서는 이렇다 할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스리슬쩍 넘어가는 중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의 대응 또한 아쉬운 지점. 개별 케이스마다 다르겠지만 성추행, 성희롱했다고 거론된 의원들 나름대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데 먼저 사실관계를 정확히 밝히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사실 확인 없이 일단 단호한 조치만 앞세운다면 해당 의원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고, 당에도 무관용 조치의 엄정함보다는 소속 의원이 성추행을 저지른 정당이라는 낙인만 남게 될까 봐 우려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고 말았다.
결국 문제는 리더십이다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당 대표와 비대위는 리더십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선거를 앞두고 무언가 보여주어야겠다는 의욕이 너무 앞섰던 걸까. 어느 정당이나 내부 갈등은 있을 수 있고 민주당도 예외는 아니라고 보지만, 갈등을 해소하는 프로세스라는 측면에서 정무적 감각이 부족한 모습이 많이 엿보였다.
가령 선거 막판 제기된 586세대의 퇴진 같은 경우,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의견이기는 하나 정작 우리 당 간판으로 내세운 서울시장 후보부터가 전형적인 586세대라는 걸 생각하면 본의 아니게 아군 진지에서 수류탄을 터뜨린 것처럼 되어 버렸다. 다수의 586세대 후보가 민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한 이상, 어차피 민심의 선택을 받으면 살아남는 것이고 선거에서 패하면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나게 되어 있었다는 점에서도 용퇴론은 딱히 의미 있어 보이지 않았다(개인적으로는 윤호중 위원장을 비롯한 당내의 반발도, 쓸데없이 논란을 크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는 점에서 아쉽게 느껴진다). 차라리 박지현 위원장이 그 옛날 3김씨의 '40대 기수론'처럼 '2030 기수론' 같은 걸 내세워 586 세대와 선의의 경쟁을 시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뿐.
결국 문제는 정권을 되찾을 수 있는 강한 리더십으로 귀결되는데, 다음 총선까지 당을 지휘하게 될 새 당 대표에 이재명 상임고문이 출마할지 여부가 관건이 되리라고 본다.
당선이 확실시되자 감사 인사하는 이재명
출처-<한겨레>
국민의힘의 경우, 차기 구도는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오세훈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에, 내각에 참여중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그리고 이준석 대표의 5파전 정도로 예상해 볼 수 있다. 결국 여기도 내년 6월로 예상되는 전당대회에서 친 윤석열계의 지지를 받을 안철수 의원과 반 윤석열계를 대표할 이준석 대표 중 누가 승리할지에 따라, 2024년 총선 라인업이 짜일 것으로 보인다.
선거는 결국 구도가 제일 중요하다
따지고 보면 야당이 승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부·여당의 실책에 따른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명색이 3번에 걸쳐 15년이나 집권했던 정당이 감나무 밑에 누워서 감이 떨어지기만 기대하는 식의 정치를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결국 앞으로 총선까지 남은 1년 10개월 동안 정책을 개발하고, 지역당 조직을 정비하며, 인재를 육성해 민주당 바람을 일으킬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김동연 경기지사와 우여곡절 끝에 민주당에 돌아온 김관영 전북지사, 야권 분열과 김포공항 이전 공약의 역풍을 뚫고 금배지를 단 김한규 의원, 영남 유일의 민주당 당선자가 된 장충남 남해군수, 서울 구청장 유일의 3선 고지에 오른 정원오 성동구청장 등의 인재들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다. 그밖에 전멸할 거라는 예측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수도권과 중부권의 시장, 군수, 구청장 당선자들, 각 지역 풀뿌리 조직을 지켜줄 기초, 광역의원 당선자 모두에게 감사와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아쉽게 패한 후보들에게도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전하며, 선거는 끝났지만 정치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김대중(1954년 국회의원 선거부터 3번 연속 낙선), 노무현(1992년, 1996년, 2000년 국회의원 선거 및 1995년 부산시장 선거 낙선) 그리고 이재명(2006년 성남시장 선거,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게도 쓰디쓴 낙선의 시간이 있었다. 한번 패했다고 낙담하지 말고, 철저하게 지역에 밀착하여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파고든다면, 2024년 총선, 2026년 지방선거는 물론 2027년 대선도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웃을 그날까지 건투를 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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