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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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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열린책들>

 

 

 

크레타를 향해

 

크레타, 반짝반짝 빛나는 지중해의 보석이다. 에게해 밑에 자리 잡은 살아 있는 신화가 있는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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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 이집트에서 불어온 뜨거운 바람이 힘들게 힘들게 지중해를 건너 이곳에 도착한다.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의 훈풍과 만나 잠시 땀을 식히는 듯하더니 곧 회오리가 되어 몸부림치며 용솟음친다. 위로는 발칸반도를 바라보고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아나톨리아의 투르크 전사들을 향해 불안한 마음으로 손을 내젓고 있다. 아래에 자리한 레반트 지역을 향해서는 그 넉넉한 가슴으로 어서 오라고 요염한 유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문명의 교차로이다. 이곳에서 유럽 최초의 문명, 미노스 문명이 탄생했다. 그래서 여전히 살아있는 신화가 있다. 이곳의 사람들은 3000년 된 올리브나무에서 지금도 열매를 수확하고 있고, 낯선 길을 걷는 여행객들에게 미노타우로스가 나타나 미궁으로 끌고 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섬이다.

 

다른 어느 곳도 이렇게 쉽게 사람의 마음을 현실에서 꿈의 세계로 옮겨 놓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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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크레타섬의 올리브 나무.

 

크레타, 피의 역사를 가진 섬이다.

 

보석은 탐욕의 대상이다. 그 누구도 이 섬을 갖고 싶다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로마제국부터 오스만제국까지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이 섬을 가지려 했고 또 지배했다. 히틀러까지도 이 섬에 공수부대를 투하했다. 크레타 사람들은 패배하되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유와 독립을 위해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피를 흘렸다. 그리고 드디어 자유를 쟁취했다. 그래서 크레타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자유를 사랑한다. 스스로를 ‘그리스인’이라 하지 않고 ‘크레타인’이라 칭하는 것은 그 자부심의 표현이다. 이 자부심이 오늘날에도 크레타가 그리스 진보좌파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테네의 항구 도시 ‘피레에프스’에서 ‘나’는 운명처럼 조르바를 만났다. 고통받는 조국 그리스와 그리스인들을 위해 카프카스로 가 싸우자는 친구의 말을 거절했다. 친구는 ‘나’에게 ‘책벌레’라고 했다. 무언가를 해야 했다. 먹물의 삶이 아닌 육체의 삶이 필요했다. 고향 크레타섬의 갈탄 광산을 개발하기로 했다. 그때 짐승 같은 남자 조르바가 나타나 다짜고짜 자신을 크레타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조르바는 짐승이었다. 알렉시스 조르바, 도자기를 만드는 녹로를 돌리는 데 방해가 된다고 자신의 집게손가락을 스스로 자른 사람이다. 그 무엇도 가진 것이 없지만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다. 그 무엇에나 만족하는 사람이다. 피처럼 붉은 포도주나 럼주에 취해  ‘산투르(이란 현악기)’를 연주하면 비잔티움의 황제보다 더 부자가 되는 사람이다. 세상 그 무엇도 붙잡아 놓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공갈 비슷한 격렬한 태도에 ‘나’는 조르바의 마법에 걸려버렸다. 둘은 크레타로 가 같이 광산을 개발하기로 했다. 늙은 조르바는 ‘나’를 ‘젊은 두목’이라고 불렀다. 조르바가 요구한 계약 조건은 단 하나였다.

 

“분명히 해둡시다. 나한테 강요하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이런 문제에서만큼은,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나’는 조르바와 함께 크레타로 향했다.

 

‘크레타’ 나는 나직이 불러보았다. ‘크레타......’ 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사랑

 

수많은 시인들이, 예술가들이 자신의 모든 재능을 동원하여 사랑을 묘사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랑은 성스럽고 아름다우며 때로는 죽음을 뛰어넘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솔직해지자. 사랑에 대한 온갖 미사여구에 현혹되지 말고 냉정하게 말해보자. 인간이 동물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사랑이란 결국 본능인 것이다. 강요된 사랑의 관념이 우리를 세뇌시켜 온갖 환상을 추구하게 만들지만, 동물같은 남자 조르바는 그 환상에 현혹되지 않았다.

 

‘나’와 조르바의 크레타 생활은 ‘오르탕스’ 부인의 여인숙에서 시작되었다. 늙었지만 오르탕스 부인은 육감적인 여자였다. 첫 만남부터 조르바는 오르탕스 부인의 엉덩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르탕스 부인이 마련한 첫 식사가 시작되었다. 오르탕스 부인은 낡고 달아빠진 리본들이 붙었지만 가장 아끼는 드레스를 입고 요염하게 허리를 흔들며 너그럽게도 앞섶을 활짝 열고 만찬에 참석했다. 영혼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은 육체라는 이름의 짐승이었다. 세 사람은 이 짐승에게 맛난 음식과 포도주를 실컷 먹였다. 만찬이 진행될수록 술에 취해갈수록 세상은 더 아름다워졌고 오르탕스 부인은 점점 젊어져 얼굴의 주름살이 사라지고 있었다. 늙은 과거의 여가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조르바는 정열적으로 산투르를 연주했다. 조르바가 ‘나’에게 말했다. 

 

“두목, 이 여자 분위기가 잡혔어요. 제발 우리 둘만 좀 있게 해줘요.”

 

그날 이후 조르바와 오르탕스 부인은 연인이 되었다. 조르바는 오르탕스 부인을 ‘나의 세이렌(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인간 여성의 얼굴에 독수리의 몸을 가진 전설의 동물)’, ‘나의 부불리나(그리스 독립 전쟁의 여걸)’이라 부르며 진심을 다했다. 문제는 조르바라는 사람에게는 오직 ‘지금’과 ‘여기’만이 있다는 것이다. 오르탕스라는 애인이 있어도 ‘지금’ 눈앞에 또 다른 여인이 있고, ‘여기’에 오르탕스가 없다면 거리낌 없이 새로운 여자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인간이 바로 조르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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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리스인 조르바' 中

 

‘나’가 준비한 자금이 다 떨어져 갔지만 갈탄 광산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일을 서둘러야 했다. 조르바는 ‘나’가 준 돈을 들고 갈탄광산에 필요한 공구와 자재들을 사기 위해 사흘 일정으로 시내로 갔다. 진하게 분칠한 오르탕스 부인과 꼭 사흘 만에 돌아와야 한다는 ‘나’의 배웅을 받으며 조르바는 떠났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도 조르바는 돌아오지 않았다. 엿새째 되는 날, 조르바가 보낸 편지가 도착했다. 여러 장에 해당하는 길고 긴 편지였다. ‘두목! 자본가 나으리!’로 시작하는 이 긴 편지의 내용은 의외로 간단했다. 공구 사라고 마련해 준 돈을 유흥비로 탕진했다는 내용이었다. 조르바는 논리, 도덕, 정직성 따위의 삶의 껍질을 깨버린 원시인이었다. 그는 원숭이 껍질을 처음으로 벗어던진 원시인처럼 현재, 여기에서 긴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전부인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어린아이였다. 

 

화를 내야 했지만 ‘나’는 조르바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떠 올렸다. 그의 존재감으로 가득 찼던 나날들이었다. ‘나’는 그로 인해 모든 추상적인 관념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살아 있는 육체의 존재를 부여할 수 있었다. ‘나’는 ‘조르바에게 복 있을진저.’라고 중얼거리며 전보를 쳤다.

 

즉시 돌아올 것

 

 

애국심

 

‘나’와 조르바는 갈탄 광산 근처 해변에 오두막을 세웠다. 일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둘의 오두막 생활이 시작되었다. 조르바와 함께하는 생활이 계속될수록 왠지 나의 부끄러움은 심해졌다. 조르바는 무식한 사람이고 ‘나’는 수백 권의 책을 읽은 사람인데 정체 모를 부끄러움이 ‘나’를 지배했다. 금욕을 당연한 미덕이라 여기는 ‘나’에게 식도락가 같은 표정으로 갓 구운 맛있는 빵에 버터와 꿀을 발라 먹고 있는 조르바의 모습은, 먹는 과정이 진행될수록 점점 행복해하는 조르바의 모습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태양에 검붉게 탄 그의 피부를 보며 ‘나’의 섬약한 손과 창백한 얼굴, 그리고 진창에 굴러보지 못한 인생이 ‘나’를 부끄럽게 하기도 했다. 

 

어느 날 오두막의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조르바에게 전쟁에 나간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조르바가 인상을 쓰며 찌푸리며 무슨 전쟁이냐고 반문하자 ‘나’는 다시 조국을 위해 싸워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조르바의 대답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애국심은 이데올로기 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것이다. 애국심의 이름으로는 못할 것이 없는 이유였다. 애국심은 그 어떤 행위에도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약탈과 방화 심지어 살인마저도 애국심에 의한 것이라면 허용이 되니 말이다. ‘나’는 애국심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을 품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조르바는 조국을 위한 전쟁을 ‘터무니없는 수작’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깨끗이 잊었노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조르바의 이 말은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나’는 조르바에게 진지하게 물었고 조르바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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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 나는 당신이 들으면 머리카락이 쭈뼛할 짓도 조국을 위해서랍시고 태연하게 했습니다. 나는 사람의 멱도 따고 마을에 불도 지르고 강도질도 하고 강간도 하고 일가족을 몰살하기도 했습니다. 왜요? 불가리아 놈, 아니면 터키 놈이었기 때문이지요.”

 

“요새 와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놈, 이런 식입니다. 그리스인이든 불가리아인이든 터키인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놈이냐? 요새 내게 문제가 되는 건 이것뿐입니다.”

 

“내 조국이라고 했어요?...... 당신은 책에 쓰여 있는 그 엉터리 수작을 다 믿어요? 당신이 믿어야 할 것은 바로 나 같은 사람이에요.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나는 그 모든 걸 졸업했습니다.”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삶을 구속하는 것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애국심과 같은 강한 이데올로기야말로 더 길고 무거운 사슬이 되어 인간의 몸과 마음을 묶어 놓는 것이었다. 조르바는 이 사슬을 끊은 사람이었다. 조르바에게 애국심은 더 이상 사고와 행동을 제약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조르바가 ‘졸업’이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그것을 ‘해방’이라고 받아들였다. 조르바가 ‘나’에게 당신은 어떠냐고 물었을 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몹시 부러웠다. 애국심마저도 어찌할 수 없는 그의 자유로운 정신이 부러웠다.

 

 

종교

 

“하느님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데 굶어 죽으면서 하느님께 감사하는 건 미친 짓이다, 이렇게 말이오. 당신의 그 엉터리 설교를 들어서 저 불쌍한 악마 아나그노스티에게 득 될 게 뭐 있겠어요”

 

사람들을 눈뜨게 해 주고 싶다는 ‘나’에게 조르바가 한 말이다. 조르바는 사람들을 그냥 놔두라고 했다. 아나그노스티같은 늙은 신자에게 그대로 꿈꾸며 살다 죽게 하라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그리스인들은 독실한 신자였다. 당연한 일이다. 비잔티움 제국과 역사의 한 부분을 함께 한 그리스는 그리스 정교의 발원지이자 본산이니 말이다. 그리스인들에게 종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태어나는 순간 받아들여야 할 일종의 운명 같은 것이었다.

 

‘나’의 생각에 종교는 낡은 세계의 상징이었다. ‘나’는 그리스와 크레타 섬의 민중들이 겪는 고통의 일정 부분은 낡은 세계가 원인이라 생각했다. 조르바는 ‘나’에게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는 행위의 조건을 제시했다. 사람들을 꿈에서 깨우고 싶다면 다음의 조건을 만족시키라고 말했다.

 

“만에 하나, 그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지금의 암흑 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면 또 모르겠소......” 

 

‘나’는 조르바의 조건을 충족할 수 없었기에 할 말이 없었다. ‘나’에게 있어 타파해야 할 세계는 분명했으나, 그 폐허 위에 새로 세워야 할 세계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래의 세계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나 낡은 세계는 구체적이고 견고했기 때문이다.

 

갈탄 광산 사업을 위해서는 산에서 목재들을 운반할 케이블 고가 선로가 설치되어야 했다. 선로가 설치될 숲의 소유권은 수도원이 갖고 있었다. ‘나’와 조르바는 아침 일찍 계약서를 들고 수도원으로 향했다. 수도원장은 탐욕스러운 인물이었다. 수도원장이 요구한 금액은 ‘나’와 조르바가 예상한 것을 훨씬 뛰어넘는 액수였다. 조르바는 여색에 빠져 ‘나’의 사업 자금을 낭비한 것에 부채감을 갖고 있었다. 조르바는 이 계약의 액수를 깎음으로써 그 부채감을 해결하려고 했다.

 

조르바의 희망은 실현되었다. 고요한 수도원의 한밤중에 총소리가 들렸다. 그 총소리의 희생자는 데메트리오 신부의 수련사인 금발의 젊은 미남 수도승이었다. 동성애자인 데메트리오 신부의 질투가 불러일으킨 살인 사건이었다. 

 

“이 더러운 인간들! 이 악당들아!” 조르바는 도망치는 수도승 뒤에다 대고 침을 뱉었다. 

 

  “사제, 수녀, 수도승, 교회지기, 불목하니, 죄다 내 침이나 받아라!” 그는 또 한 번 침을 뱉었다.

 

수도원은 살인 사건의 전말을 파악한 조르바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조르바의 요구대로 계약 금액을 깎아 주었다. 깎은 만큼의 금액을 건네주는 조르바에게 ‘나’는 이유를 물었다. 조르바는 자세한 사정을 묻는 ‘나’에게 말했다.

 

“두목, 자꾸 캐묻지 마시오. 더러워 올라올 지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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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나’의 갈탄 광산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완벽하게 실패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4월이 되었다. 케이블 고사선이 완성되었다. 철탑과 케이블 도르레 모두 완벽했고 아침 햇살에 번쩍였다. 산꼭대기에 쌓여 있는 거대한 소나무 목재들을 이 케이블에 매달아 내려보낼 예정이었다. 이날을 위해 조르바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와이셔츠에 재킷에 구두까지, 한껏 차려입었다. 지역 유지들까지 모두 참석했고 수도원의 수도승들도 참석했고 수도원장도 참석했다. 수도원장이 기도문을 읊었다.

 

“주여, 오 주여, 이 건물을 반석 위에 세우시어 물도 바람도 흔들지 못하게 하시고.......”

 

조르바가 산 위의 인부들에게 신호를 보냈고 시운전이 시작된 순간 파국은 벼락처럼 모인 사람들을 덮쳤다. 케이블에 매달린 통나무에 악령 같은 가속도가 붙었고 통나무는 불타올랐다. 철탑은 흔들렸고 사람들은 도망쳤다. 노새들은 고삐를 끊고 도망쳤다. 네 번째 통나무가 내려올 때 철탑들이 카드장처럼 차례차례 쓰러졌다. 불타오르는 통나무 파편들이 튀어 올랐고 모두 도망쳤다. 이제 해변에는 ‘나’와 조르바만이 남아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둘은 이날의 잔치를 위해 준비한 양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술잔을 부딪치며 토끼 피처럼 붉은 포도주를 마셔댔다. 크레타 포도주의 맛은 기가 막혔다. 점점 인생의 슬픔이 잊히고 혈관에 힘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양고기를 깨끗이 먹어 치웠을 때 세상이 좀 더 밝아진 느낌이 들었다. 조르바가 말했다.

 

“두목! 당신에게 할 말이 아주 많소. 사람을 당신만큼 사랑해 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쌓이고 쌓였지만 내 혀로는 안 돼요. 춤으로 보여 드리지! 자, 갑시다!”

 

조르바는 자신의 감정과 진심을 말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는 육체로 그것을 표현했다. 

 

조르바가 춤추는 것을 보고 있으니, 인간이 자신의 무게를 이기기 위해 펼치는 그 환상적인 몸부림이 처음으로 이해되었다. 나는 조르바의 끈기와 그 날램, 긍지에 찬 모습에 감탄했다. 그의 기민하고 맹렬한 스텝은 모래 위에다 인간의 신들린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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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조르바는 함께 춤을 추었다. ‘나’는 차츰 대담해졌고 ‘나’의 가슴은 새처럼 날아오르고 있었다. 이것이 조르바의 언어였다. 지칠 때까지 춤을 췄고 웃고 떠들며 장난쳤다. 흩어진 케이블 선과 무너진 철탑들이 저무는 햇살을 받아 길게 그림자를 늘였다. 둘은 지쳐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리고 서로의 팔을 베고 곯아떨어졌다. 

 

 

죽음 

 

우리의 이별은 칼로 벤 듯이 깔끔했다.

 

‘나’는 남은 모든 자재와 장비를 조르바에게 주었다. 그리고 이별의 술잔을 기울이며 다시는 조르바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울고 싶었다. 그의 품에 뛰어들어 울고 싶었다. 조르바의 ‘영원히’라는 말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별을 받아들여야 했다.

 

“두목, 날 용서해 주셔야겠소. 나는 시커먼 촌놈이오. 하려는 말이 구두에 진흙 들러붙듯이 자꾸 이빨에 들러붙어요. 나는 아름다운 문장이나 인사치레 같은 게 안 돼요.”

 

‘나’가 조르바와 헤어진 후 5년이란 세월, 공포의 5년이 흘러갔다. 그동안 자유를 위해 카프카스 전선으로 떠난 친구는 죽었고 세상은 격렬한 변화에 시달렸다. 지리적 경계선들이 춤을 추었고, 나라들의 영토는 아코디언처럼 확장과 수축을 반복했다. ‘나’는 고통스럽게 조르바와의 추억을 외면하고 또 외면했다. 조르바와의 추억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나’는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손에 이끌려 미친 듯이 조르바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가 겪은 조르바의 연대기가 완성되었다.

 

조르바의 이야기를 탈고한 후, 펠로폰네소스의 산 뒤로 붉은 해가 질 즈음, ‘나’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는 세르비아에서 온 것으로 독일어로 되어 있었다. 그 편지에는 조르바의 최후가 담겨 있었다.

 

“선생님, 이리 좀 오시오. 내겐 그리스에 친구가 하나 있소. 내가 죽거든 편지를 좀 써주시어, 최후의 순간까지 정신이 말짱했고 그 사람을 생각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잠깐만 더 들어요. 신부 같은 게 내 참회를 듣고 종부성사를 하러 오거든 빨리 꺼지는 건 물론이고 온 김에 저주나 잔뜩 내려 주고 꺼지라고 해요!”

 

그러나 그는 우리 모두를 한쪽으로 밀어붙이고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창문가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창틀을 거머쥐고 먼 산을 바라보다 눈을 크게 뜨고 웃다가 말처럼 울었습니다. 이렇게 창틀에 손톱을 박고 서 있을 동안 죽음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편지에 담긴 조르바의 최후였다. 조르바의 생전 부탁으로 그 마을의 교사가 보낸 편지였다. 조르바는 ‘나’에게 자신 몸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던 산투르를 남겼다.

 

 

인생, 네 멋대로 해라

 

인간으로 태어나는 순간 한 사회에 소속된다. 특정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사회는, 그리고 사회를 대신하는 첫 존재인 부모는 이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축하하며 동시에 그의 인생을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진지하게 관여한다. 그래서 탄생과 동시에 그에게 선물을 선사한다. 그 선물은 지게이다. 죽는 순간까지 그 어떤 무거운 것을 얹어도 절대 망가지지 않을 튼튼한 지게를 선물한다.

 

새로 태어난 존재가 자라면서, 그 존재의 인생이 시작됨과 동시에 ‘사회화’라는 이름의 길들이기가 시작된다. 선물로 받은 등에 달린 지게 위에는 차곡차곡 짐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교육이라는 짐이 얹히고, 취업, 내 집 마련, 결혼과 출산, 교양과 예절, 도덕과 법률, 노후 대책이라는 이름의 협박 같은 짐들이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모두가 욕망과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짐들이다. 만약 부모가 종교인이라면 혹은 그 사회가 종교의 지배를 받고 있다면 신과 율법이라는 짐이 추가된다. 한국 사회라면 아마도 ‘체면과 남의 시선’이라는 짐도 추가될 것이다. 자유롭게 발을 떼어 사뿐사뿐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도 중력의 법칙은 무섭게 작용한다. 등에 진 무거운 짐에 작용하는 중력은 발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하늘이 아닌 오직 땅에만 발을 붙일 것을 허락한다. 

 

인간은 자유로워야 한다. 개인에게는 자유가 필요하다. 자유로울 때만 인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유 의지가 아닌 타의에 의한 사고와 행동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길들여진 짐승, 가축의 것이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곧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처음에는 계급의 자유를 위해 싸웠고 계급의 자유를 형식적으로라도 쟁취한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행동과 사고를 방해하는 것이라면 모두가 투쟁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평생을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인간 자유를 위해 싸운 미하일 바쿠닌은 자유를 방해하는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을 죽여야 한다고까지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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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 보면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진리가 몇 개 있다. 먹물이 아니어도 가방끈이 짧아도 알 수 있는 단순한 사실들이다. 그중의 하나가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대립하는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 자유롭고 싶다면, 타인의 의지가 아닌 자기 자신의 의지로 살고 싶다면 등 위에 얹힌 짐을 하나씩 버려야 한다. 무거운 짐과 자유는 양립할 수 없다. 둘 중의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욕망을 버리고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우리 사회가 내게 강요하는 것들을 버려야 한다. 용기를 내어 내 인생에 가해지는 간섭과 협박에 맞서야 한다. 등짝 위에 얹힌 짐들을 하나씩 버려가면서 내 몸은 조금씩 가벼워진다. 가벼워지는 만큼 내 발은 땅이 아닌 하늘을 향해 자유롭게 도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윗글의 ‘나’가 갈탄 광산 사업에 실패하여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오히려 해방감과 자유로움에 행복해 진 것은 욕망이 사라진 만큼 몸이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돈, 사람, 고가선, 수레를 모두 잃었다. 깡그리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그렇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크레타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리스인이자 동시에 크레타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묘비명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 묘비명은 그가 생전에 준비해 둔 것이었다. 여덟 번째 인생탐구의 마무리는 그 묘비명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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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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