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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세일즈맨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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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민음사>

 

 

유능한 세일즈맨에게 닥친 경제 공황

 

1928년까지, 유능한 세일즈맨 윌리 로먼의 인생은 꽤 쓸만한 것이었다. 미국은 세계의 자본가로 득세하여 의기양양하게 큰형님 행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있었으며 민주당 경선에서는 북부와 도시 지역을 대변하는 앨 스미스가 당선되었다. 곳곳에 진보와 변화의 바람이 불던 생명력 넘치는 미국이었고 물론 돈도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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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까지 미국의 경기는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 中

 

윌리 로먼은 봉급 외에 거래 커미션으로만 주당 170달러를 벌어들였고 빨간색 쉐비를 밟으며 자신의 인생을 즐기기도 했다. 회사의 회장이 직접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친근감을 보였고, 자신의 아들을 안고와 그에게 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윌리는 사장의 아들에게 ‘하워드’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는 아내 린다를 사랑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실크 스타킹을 사줄 애인도 하나 있었다. 사랑하는 두 아들, 비프와 해피 역시 그의 인생에 더 큰 행복감을 주었다.

 

윌리 : 너와 해피와 나. 내가 도시들을 보여 주지. 미국은 아름다운 도시와 멋지고 훌륭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그 사람들이 뉴잉글랜드 전역에서 나를 알아본단다. 내가 너희들을 데리고 가면 그야말로 대환영이지. 왜냐하면 얘들아, 아빠에겐 친구들이 있거든. 뉴잉글랜드 어딜 가든 주차할 수 있고 경찰들이 자기들 차인 양 지켜 주지.

 

장래가 촉망되는 첫째 아들 비프는 그의 자랑이었다. 두 아들 비프와 해피 중 첫째인 비프는 잘생긴 외모와 강인한 육체를 갖고 있었다. 윌리는 자신의 아들이 엄청난 연봉을 받는 미식축구 스타가 되리라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친한 친구 ‘찰리’와 그의 아들이자 비프의 친구인 ‘버나드’에게 늘 비프 자랑을 했다.

 

윌리 : 아, 그래? 이 경기가 끝나고 나면 찰리 자네는 완전히 기가 죽을걸. 비프는 레드 그레인지에 버금가는 최고의 미식축구 선수로 불리게 될 거야. 연봉만 25,000달러는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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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나의 아들! 으하하~

출처-드라마 <세일즈맨의 죽음>

 

1929년, 검은 목요일, 대공황이 미국을 덮쳤다. 

 

그리고 길고 긴 불황이 시작되었다.

 

호황의 열매는 늘 가진자들의 것이었고, 불황의 고통은 늘 없는 자들이 떠안아야 하는 것이었다. 윌리는 길고 긴 불황을 터널을 지나며 늙어 버렸지만, 항상 돈을 벌어야 했다. 그리고 그의 희망이자 자랑이었던 큰아들 비프는 서른네 살에도 저임금 노동자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린다 : 저기, 프랭크에게 3달러 50센트예요. 그 밖에 이런저런 것들 다 해서 15일까지 120달러는 있어야 해요.

 

윌리 : 120달러! 이런 빌어먹을, 경기가 좋아지지 않으면 어쩌라는 건지 알 수가 없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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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대폭락 이후 뉴욕증권거래소 앞

재무성 건물에 몰려든 군중.

출처-<위키피디아>

 

 

저임금 노동자가 된 세일즈맨 윌리

 

윌리 : 피곤해 죽을 지경이야. (플루트 소리가 잦아들었다. 윌리는 린다 옆 침대에 앉는다. 좀 멍하니) 할 수가 없어. 도저히 할 수가 없어, 여보.

 

늙은 윌리에게 세일즈맨의 삶은 이제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몇백 킬로미터를 운전하는 것도, 그리고 소득 없이 지쳐서 다시 돌아오는 것도 모두 너무나 힘든 것이었다. 윌리는 운전하며 자주 사고를 냈다. 그리고 늘 피곤함에 찌들어 있었다. 

 

힘겨운 현실은 윌리를 과거로 도피하게 만들었다. 윌리는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렸고 그 시절의 사람들을 불러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것이 윌리가 혼잣말을 하기 시작한 이유였다. 

 

과거의 사람들을 불러올 때에는 제일 먼저 그의 형 ‘벤’이 나타났다. 벤은 모험심과 도전 정신이 강했다. 어디선가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고 했다. 윌리는 주변 사람들의 놀라워하는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주 벤과 혼자만의 대화를 나누었다. 윌리는 허공의 벤에게 하소연했다.

 

윌리 : 지독하게 피곤해요, 형님.

 

점점 심해지는 윌리의 중얼거림과 혼잣말에 주변 사람들은 당황해하고 때로는 비웃기도 하였다. 아들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직 아내 린다만이 그를 이해하고 위로할 뿐이었다.

 

린다 : 1,100킬로미터를 달려서 가도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반겨 주는 사람도 없어. 동전 한 푼 벌지 못한 채 다시 1,100킬로미터를 달려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 것 같니? 그러니 왜 혼잣말을 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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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아버지의 과도한 기대감이 아들에겐 부담감으로 

 

저임금 노동자가 되어 집을 나가 떠도는 큰아들 비프는 여전히 윌리에게 희망이었다. 윌리는 결코 비프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않았다. 모든 아버지가 그렇듯이 힘들게 힘들게 하루를 살아가는 그에게 비프의 존재는 일종의 위로였고 미래에 대한 보증이었다. 더군다나 비프에게 한때 불륜의 현장을 들켰던 것이 원죄의식이 되어 윌리는 비프에게 집착에 가까운 기대감을 내비치고는 했다.

 

윌리 : (동정심과 결단이 얽혀) 아침에 그 아이를 좀 봐야겠소. 잘 얘기해 봐야지. 세일즈 자리를 주선해 주어야겠어. 곧 거물이 될 거야. 제기랄! 고등학교 때 아이들이 그 아이를 얼마나 따라다녔는지 기억나오?

 

짧은 일이 끝나면 비프는 집에 돌아왔다. 윌리는 비프를 사랑했지만, 그의 지나친 기대감은 곧잘 과열되어 부자간의 언쟁으로 번지고는 했다. 부자간의 격렬한 싸움 끝에 어머니 린다가 말해준 아버지의 비참함이 비프의 마음을 증오에서 연민으로 바꾸었다. 더군다나 아버지 윌리의 혼잣말과 중얼거림 속에는 비프, 자신과의 대화가 가장 자주 나타났다. 비프는 아버지의 기대감에 부응하고 싶었다. 비프는 간절하게 아버지의 바람에 응답하고 싶었다. 그런 비프에게 마지막 희망이 떠올랐다.

 

비프 : 빌 올리버 사장 생각나?

 

해피 : 그럼, 올리버는 이제 엄청난 거물급이야. 그 밑에 들어가 다시 일하게?

 

비프 : 아니, 내가 관둘 때 올리버가 한마디 했거든.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비프,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찾아와.”라고.

 

비프는 전에 잠시 일했던 곳의 사장 올리버를 찾아가 사업자금을 빌리겠다고 했다. 형제는 함께 들떠서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미래는 활짝 피어올랐고 형제의 가슴에는 그동안 겪었던 모든 비굴함과 암울함이 눈 녹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비굴함이 사라진 자리에는 새롭게 자부심이 싹 터 올랐다. 형제의 계획은 ‘스포츠용품 사업’으로 구체화되었고, 둘은 빛나는 눈빛으로 윌리에게 희망을 전염시켰다.

 

해피 : 아버지, 형이 빌 올리버 사장을 만나러 간대요.

 

윌리 : (관심을 보이며) 올리버 사장? 아니 왜?

 

비프 : (신중하게, 나름대로 애쓰며) 올리버 사장은 항상 제게 장사 밑천을 대 주겠다고 했거든요. 이제 사업을 해 보고 싶어서 장사 밑천을 좀 꿀까 하고요.

 

린다 : 너무 근사하죠?

 

해피 : 더 들어 보세요! 둘이서 농구팀 둘을 만드는 거예요. 아니면 수구팀을 두 개 만들던가. 서로 경기를 하는 거죠. 100만 달러짜리 광고가 될걸요. 형제 둘이서 말이죠. 로먼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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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온 가족이 뜨겁게 달아 올랐다. 윌리는 드디어 비프가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날아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비프에 대한 자신의 기대감이 틀리지 않았음에 스스로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답게 흥분을 가라앉히며 근엄하게 아들에게 충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린다 : 내일은 근사하게 아침을 차려 줄게.

 

윌리 : 내 말 좀 끝내게 해 주겠소? (비프에게) 서부에서 사업하고 있다고 말해라. 농장 일이 아니라.

 

비프 : 그러죠, 아버지.

 

린다 : 다 잘될 거라고......

 

윌리 : (바로 린다의 말허리를 자르며) 그리고 너무 깎지는 마. 15,000달러 이하론 안 돼.

 

윌리는 젊은 영웅 같았던 비프의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이제 비프는 올리버 사장에게 15,000달러의 사업 자금을 빌려 스포츠용품 회사를 차릴 것이다. 그리고 비프는 별처럼 빛날 것이다. 윌리 로먼의 아들 비프 로먼은 화려하게 불꽃처럼 타오를 것이다.

 

윌리 : 왜냐하면 너에게는 훌륭한 싹이 있거든, 비프. 그걸 기억해라. 네겐 모든 훌륭한 싹이 다 있어...... (지쳐서 드러눕는다. 비프가 걸어 나간다) 

 

 

35년 노동자의 첫 부탁

 

아들 비프에게 희망이 생긴 것과는 별도로, 그로 인해 부푼 가슴과는 별도로, 현실은 현실이었다. 당장 돈이 필요했고 지쳐버린 몸으로 일할 수 있는 내근직이 필요했다. 윌리는 자신이 지어준 이름으로 이제는 사장이 된 하워드를 만나야 했다. 

 

윌리가 35년이라는 세월을 바친 회사였다. 회사는 윌리의 인생의 부분이 아니라 자체였다. 그 사이에 불황 속에서도 회사는 굳건했고 자신이 최초로 모셨던 사장의 아들 하워드가 새로운 사장이 되었다. 윌리에게는 하워드 사장에게 내근직으로 전환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성 있는 것이었다. 

 

내근직으로 일하게 되면 더 이상 힘겹게 물건을 팔고 그 수당으로 먹고살지 않아도 되었다. 내근직이 된다면 물건을 팔지 않아도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불도 부탁할 생각이었다. 

 

린다 : 그리고 여보, 가불을 좀 해 달라고 하는 것도 잊지 마세요. 밀린 보험금이 있어요. 지금 유예 기간이에요.

 

윌리 : 그게 100......?

 

린다 : 108달러 68센트예요. 또 생활비도 조금 모자라요.

 

윌리 : 왜 모자라?

 

린다 : 음, 당신 자동차 수리비가 컸고......

 

린다 : 그리고 냉장고 할부가 한 번 더 있고......

 

윌리가 하워드 사장을 만나기 위해서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잠시 모습을 보였던 사장은 윌리에게 조금 더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윌리에게 새로 산 녹음기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150달러를 주고 샀다는 그 녹음기에는 일곱 살 난 사장의 딸이 부르는 노래가 녹음되어 있었다. 

 

아빠와 딸의 즐거운 대화도 녹음되어 있었고, 미국의 주도를 외우고 있는 아들의 목소리, 사장 아내의 목소리도 녹음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힘겹게 들어내며 윌리는 내근직을 원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윌리 : 이유를 말씀드릴게요.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사장님, 제가 좀 지쳤답니다.

 

사장은 거절했고 윌리는 호소했다.

 

윌리 : 하워드 사장님, 제가 언제 다른 사람들처럼 부탁드린 적이 있습니까. 하지만 저는 회장님이 사장님을 안고 오셨을 때부터 회사에 있었습니다.

 

하워드 : 알아요, 로먼 씨, 그러나......

 

윌리 : 회장님은 사장님이 태어나셨을 때 제게 오셔서 하워드란 이름이 어떠냐고 물어보셨지요. 지금은 천국에서 고이 쉬고 계시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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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우리 회사를 위해 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윌리의 호소는 소용이 없었다. 하워드 사장은 단호했다. 자리가 없다고 했다. 윌리는 절박해졌고 자신을 대하는 사장의 태도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윌리 : (점점 화가 나서) 사장님, 먹고 사는 데 주당 50달러면 됩니다.

 

하워드 : 하지만 당신을 어디에다 배치하란 말이오?

 

절박함과 분노는 눈독듯 사라지고 절망감만이 남았다. 윌리는 자신이 인생을 바친 회사, 자신이 모셨던 사장의 아들에게 그의 선친과 함께 나눴던 우정을 마지막 무기로 호소했다.

 

윌리 : 주당 40달러만 있으면, 그것만 있으면 됩니다. 40달러입니다, 사장님.

 

윌리 : (붙잡으며) 사장님 아버지 얘기라니까요! 바로 이 책상위에서 약속을 했단 말입니다! 저는 이 회사에서 삼십사 년을 봉직했는데 지금은 보험금조차 낼 수 없는 형편입니다!

 

윌리는 후회했다. 감히 사장에게 소리를 지른 것,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감히 분노를 표출한 것에 대해 후회했다. 내근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꿈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이제는 직장이 사라지게 생겼다. 윌리는 하워드 사장에게 다시 보스턴으로 가 물건을 팔겠다고 말했다. 그런 윌리에게 하워드 사장이 말했다.

 

하워드 : 로먼 씨, 더 이상 보스턴에 안 가도 됩니다.

 

윌리 : 아니, 왜요?

 

하워드 : 더 이상 우리 회사를 위해 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윌리는 또다시 추억 속의 벤 형님을 불러왔다. 중얼중얼 벤 형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힘겹게 찰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워드 사장과의 면담이 가져온 절망과 분노, 그리고 당장 필요한 돈이 없다는 현실 앞에서 윌리는 유일한 친구인 찰리를 또다시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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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에게 갚지도 못할 돈을 또다시 꾸면서, 그리고 찰리의 아들 버나드가 유명한 법률가가 되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작은 파편으로만 남아 있던 마지막 자존심까지 무너진 상태였다. 그나마 아들 비프가 윌리를 쓰러지지 않도록 간신히 지탱해주었을 뿐이다. 윌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찰리에게 아들 비프가 올리버 사장을 만나는 일에 대해 말했고 찰리는 행운을 빌어 주었다.

 

 

아버지의 과도한 기대감이 만들어낸 거짓 기억

 

‘6번가 근처 48번가에 있는 프랭크 스테이크 하우스’, 파국이 시작된 곳이었다. 이곳에 모여 처음으로 삼부자가 근사한 외식을 하기로 했다. 비프의 아이디어였다. 비프는 이곳에 올리버 사장이 투자한 15,000달러를 들고 나타나 아버지에게 최고의 식사를 대접할 생각이었다.

 

보통 선의의 거짓말은 아예 아무 근거 없이 시작되지는 않는다. 작은 단서가 있고 거기에 상상력과 희망이 더해져 부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스스로가 매몰되어 가면서 나중에는 자기 자신도 진심으로 믿게 되는 것이다. 비프가 올리버 사장과 일한 적은 있으나 그것은 잠깐이었고 둘은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었다. 

 

비프는 올리버 사장과 함께 세일즈한 적이 없었다. 그는 단지 물품 배송 직원으로 잠깐 일했을 뿐이다. 오랜 대기 끝에 간신히 올리버 사장을 볼 수 있었으나 그는 비프의 얼굴을 알지도 못했다. 

 

비프 : 내가 올리버 밑에서 세일즈맨이었다는 생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 나조차도 내가 그 밑에서 세일즈를 했다고 믿었으니! 사장이 나를 힐끗 보았는데, 그때 난 깨달았어. 내 인생 전체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거짓말 덩어리였는지! 우리는 지난 십오 년 동안 꿈을 꾸고 있었어. 나는 물품 배송 직원이었어.

 

비프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현실 앞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순식간에 그의 도벽을 발동시켰다. 비프가 한 것이라고는 아무 이유도 없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끌려 올리버 사장의 만년필을 훔쳐 온 것뿐이었다. 비프의 고백 앞에 동생 해피는 진심으로 사태가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기에 형에게 일단 아버지에게는 거짓말을 할 것을 부탁했다.

 

지친 모습으로 윌리가 두 형제 앞에 나타났다. 윌리와 비프의 대화가 시작되면서 부자 사이에 술이 오가기 시작했다. 비프는 술기운 때문에 공중에 뜬 느낌이었다. 그리고 조금씩 사실을 말하기 시작했고 끝내는 진실 모두를 토해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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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프 : 아버지, 오늘 밤에 사실을 직면해 보자고요. 허풍 떨어서 되는 건 하나도 없어요. 저는 물품 배송부 직원이었어요.

 

윌리는 비프의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윌리 : 올리버 사장을 만났니?

 

비프 : 아버지, 제발!

 

윌리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분열과 환각, 그리고 착란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의 귀에는 끊임없이 그를 찾는 호텔 전화 교환원의 목소리, 비프가 수학에서 낙제했다고 알리는 찰리 아들 버나드의 목소리 등이 마구 뒤섞여 이명이 되어 들려왔다. 

 

특히 자신의 불륜 현장을 지켜보는 어린 비프의 모습이 어지럽게 떠올랐다. 헛소리 비슷한 말을 중얼거리던 윌리는 나중에는 비프에게 존재하지도 않는 올리버 사장과의 점심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윌리 : 비프, 내일 점심 식사에 가거라. 그러지 않으면......

 

비프 : 못 가요. 그런 약속 같은 거 없어요!

 

해피 : 형, 미쳤어?

 

윌리 : 너 반항하는 거냐?

 

비프 : 그렇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에이, 젠장!

 

윌리 : (비프를 때리고 식탁에서 벗어나 비틀거린다.) 이런 빌어먹을 놈!

 

윌리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혼미한 상태로 화장실로 갔다. 윌리가 화장실로 들어가자 비프와 해피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눈여겨 봐두었던 여자에게로 가 같이 놀 것을 제안했다. 눈앞의 사태에 의아해하는 여자의 질문에는 윌리는 아버지가 아니라고 둘러대며 셋은 신나게 놀기 위해 식당에서 빠져나갔다.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세일즈맨의 죽음

 

윌리는 20,000달러를 벌기로 했다. 아들 비프에게 사업 자금을 대주고 싶었고, 아내 린다는  더 이상 빚에 시달리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윌리는 다시 벤 형님을 불러왔다. 그리고 허공에 나타난 벤의 환상과 중얼중얼 대화를 시작했다.

 

윌리 : (벤이 오른편에 나타나 천천히 다가오자 동작을 멈춘다) 자, 이제 생각해 봐요. 너무 빨리 대답하지 말고. 20000달러가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요. 보세요, 형님. 저와 함께 이 문제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생각해 보자고요. 전 얘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고 마누라는고생을 너무 많이 했어요. 아시겠어요?

 

벤 : (뻣뻣하게 서서 생각한다) 얼마라고?

 

윌리 : 최소 20,000달러라니까요. 빳빳한 놈으로다 딱 보장이 되어 있단 말입니다.

 

벤 : 남들 앞에서 우스운 꼴 당하는 것은 아니겠지. 약관대로 지불해 주지 않을지도 몰라.

 

역시 벤 형님은 냉철했다. 돈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면 제일 먼저 보험 약관부터 확인해야 하는 것이었다. 윌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벤에게 자신이 죽으면 미국 각지에서 조문객들이 올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리고 아버지를 추모하는 그 인파 앞에서 비프가 놀랄 것이라고 말하며 들뜨기 시작했다. 벤이 사라졌다.

 

비프 : 저는 사람들의 리더가 되지 못하고,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예요. 열심히 일해 봤자 결국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세일즈맨일 뿐이잖아요. 저는 시간당 1달러짜리예요!

 

악에 받친 말을 토해내는 비프의 모습을 보며 윌리는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잠을 자기 위해 가족들이 사라지자 윌리는 침실에 자신을 기다리는 린다를 뒤로 하고 자동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윌리를 태운 자동차는 굉음을 내며 죽음을 향해 광란의 폭주를 시작했다.  

 

윌리의 예상과는 달리 그의 장례식에는 그 누구도 오지 않았다. 오직 아내와 아들들, 그리고 찰리만이 윌리를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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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 미안해요, 여보. 울 수가 없어요. 알 수가 없네요. 왜 그런 짓을 했어요? 도와줘요, 여보. 난 울 수가 없어요. 당신이 그냥 출장 간 것 같기만 해요....... 여보. 오늘 주택 할부금을 다 갚았어요. 오늘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집에는 아무도 없어요. (린다의 목구멍에서 흐느낌이 솟아오른다) 이제 우리는 빚진 것도 없이 자유로운데......

 

 

내 인생이 비극인 이유

 

한 개인의 인생은 그가 속한 체제가 만들어 낸, 일종의 파생상품이다. 즉 우리 삶의 양태는 자본주의의 결과물에 해당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구르는 눈덩이이다. 눈덩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뿐이다. 멈춰서 결국에는 사라지거나 끝없이 굴러서 점점 몸뚱이를 키워야 한다. 제3의 길은 없다. 오직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고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남들을 멈추게 하고 나는 굴러야 한다. 재화는 한정된 것이기에 내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돈을 잃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싸움은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말로부터 ‘성공 신화’라는 말까지, 다양한 표현으로 치장된다. 

 

결국 사회는 정글이 되었고 그 속에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는 남을 이기는 것이 되었다. 윌리가 환상으로 불러온 그의 형님 벤의 목소리는 이런 시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진리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벤 : 얘들아 나는 열일곱 나이에 정글 속으로 걸어 들어가 스물한 살에 걸어 나왔지. (소리 내어 웃는다) 부자가 되어서 말이야.

 

벤 : (비프의 무릎을 토닥이며) 모르는 사람과는 절대 공정하게 싸우지 마라. 얘야. 그래서는 절대 정글을 빠져나오지 못한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만든다. 승자에게 주어지는 상금이 커질수록 승리의 매력은 커지게 되며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볼만한 싸움이 만들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적은 승자와 보다 많은 패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한 명의 승자를 위해 천 명, 만 명의 패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승자독식’이라는 자본주의의 경쟁 원리이다.

 

매주 로또 당첨자는 나온다. 문제는 그것이 나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로또 당첨이 주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 앞에서 종종 이 사실을 망각한다. 그래서 로또를 산다.

 

승자독식은 로또와 마찬가지이다. ‘독식’은 달콤하지만, 그것이 나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경쟁자가 많을수록 내가 이길 확률은 점점 더 희박해진다. 확률상 분명히 나는 패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보다 많은 패자를 만들어내는 체제에 동의하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경쟁에서 패배한 부모가 자기 자식은 이길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패배한 그 정글 속으로 서슴없이 자기 자식을 밀어 넣고 있다. 늘 부모들은 ‘열심히 공부해라, 그러면 넌 1등급이 될 것이고 명문대에 진학하여 부자가 될 것이다.’고 말하며 자식들을 독려한다. 이 말은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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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베리타스 알파>

 

100명의 학생 모두가 자신의 모든 것을 집어넣어 잠도 안 자고 공부해도 그중에 1등급은 오직 4명에게만 주어진다. 승리할 확률이 희박한 경쟁과 그것이 주는 패배의 상처가 대물림되고 있다. 사장과 사장 아들, 이 둘의 대를 잇는 시간 내내 충성심을 보였지만 결국엔 해고되고 자살을 선택하는 윌리의 어리석음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윌리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니까 말이다.

 

“자본주의는 가장 사악한 사람들이 공공의 선을 추구하기 위해 가장 사악한 행동을 하리라는 놀라운 형태의 믿음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

 

왜, 나 또는 우리의 인생은 비극인가. 

 

죽을 것이 명확한데도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날벌레들처럼 이길 수 없는 경쟁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승자독식이라는 헛된 꿈이 주는 달콤한 상상 앞에서, 그 비인간적인 체제 속으로 자신의 자식들까지 밀어 넣고 있기 때문이다. 정글을 인간 사회답게 바꾸기보다는 자신이 정글의 최상위 포식자가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의 사슬을 끊기는커녕 더욱 강고히 하는 것에 자신의 힘을 보태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 인생을 비극으로 만드는 이유이다.

 

인생을 살면서 얻는 교훈 중의 하나가 좋은 예감보다는 불길한 예감이 잘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길한 예감 앞에서 사람들은 미리 대비책을 마련하려 애를 쓴다. 최근에 있었던 두 번의 선거, 대선과 지선에서 우리 사회는 다시금 정글을 선택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도생 시대의 도래’를 말한다. 불길한 예감이 잘 맞는다는 말을 믿는다면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오늘도 이길 확률이 희박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각자도생의 길을 마련하기 위해 싸움을 펼치고 있는 모든 사람, 이들의 안녕을 빌며 아홉 번째 인생탐구를 마무리한다.

 

“부디 안녕들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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