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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근육병아리는

 

요리에 관한 어떤 정식 교육도 받은 적 없으며

 

 오직 유튜브와 만화책으로만 수련 중인

야매 수산인으로,

 

 기사에 담긴 그 어떤 레시피도

성공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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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닭고기

 

일본어에 '네코마타기(猫跨ぎ, ねこまたぎ)'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자면, '고양이도 뛰어넘어간다'. 생선이 드럽게 맛이 없어서 고양이한테 줘도 안 먹는다는 뜻이다. 지역마다 그 쓰임이 조금씩 달라서, 산란을 끝내 몸에 기름기가 빠진 연어를 뜻하기도 하고 소금에 절인 자반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이 표현의 어원은 바로 참치다.

 

참치에 환장하는 일본인들이지만 일본열도에서 참치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냉장 기술이 없던 에도 시대에 어쩌다 잡힌 참치는 애물단지였다. 몸 안에 피와 기름을 잔뜩 머금고 있는 참치는 부패 속도가 엄청나서 온전히 식탁 위에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등살은 그나마 간장에 절여서 먹었지만, 기름기가 많은 뱃살은 염분으로 방부처리도 되지 않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퇴비로 썼다. 

 

먼 바다에 살며, 피 많고 기름이 많아 좀 먹어 볼라 치면 썩어버려서 고양이도 퉤퉤하는 생선.

 

냉동, 냉장 기술이 발전하기 전까지 참치 맛을 제대로 알 수 없었던 인류가 그 맛을 재평가하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04년 '정어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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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마약왕같이 생겼지만 이 양반은 천조국의 참치왕 알버트 P. 하프힐이라는 아저씨다. 오하이오에서 교사를 하다가 때려치우고, 캘리포니아에서 식료품 사업을 했다. 알버트 회사의 주력상품은 정어리 통조림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식료품이었던 정어리 통조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던 그의 회사는 제법 잘 나갔다.

 

공장장 : 사장님 큰일 났어요.

 

알버트 : 왜 뭔데, 무슨 일이야?

 

공장장 : 정어리가 안 잡힌대요.

 

알버트 : 뭔 소리여 그게? 갑자기 왜?

 

공장장 : 몰라요. San Pedro Bay에 정어리가 갑자기 씨가 말랐대요.

 

알버트 : 와 시바 그럼 어떠카냐.. 아직 공장 대출도 다 못 갚았는데.. 조땠네..

 

눈앞이 캄캄해진 알버트 아저씨. 갑자기 그의 머리를 스쳐가는 게 있었는데,

 

알버트 : 내가 전에 이태리 출장 갔을 때 말이야, 걔네들은 다른 생선도 통조림해서 먹든대.. 그게 꽤 먹을만했거든.

 

공장장 : 그게 뭔데요?

 

알버트 : 그게 뭐였더라.. 하.. 씨.. '튜나' 였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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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줄 타는 각고의 노력 끝에 1907년, 우리의 알버트 아저씨는 참치캔 개발에 성공한다. 참치 살덩이를 쪄서 올리브유나 목화씨유 같은 샐러드 오일에 절이는 지금과 같은 방식을 착안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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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활로를 뚫은 알버트. 바로 영업에 나선다.

 

알버트 : 이거 우리 신제품인데 함 써보실?

 

식료품점 : 이게 뭐요?

 

알버트 : 참치라는 거요. 담백하고 고소한 게 맛있어.

 

식료품점 : 뭐야 이거 무서워. 정어리나 갖다 줘요.

 

그르타. 참치는 당시 미국인들에게도 퇴비로나 쓰지 일절 먹을 일이 없던 듣보잡 생선이었던 것이다.

 

알버트 : 하씨.. 공장장..어트카지. 일단 먹어보면 알 텐데.. 참 좋은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

 

공장장 : 그니까여.. 하얗고 살결이 부드러운 게 치킨이랑 삐까 뜨는디.

 

알버트 : 응? 잠깐. 치킨, 그거 좋은데?

 

"Chicken of the Sea"

 

'바다의 치킨'이라는 알버트의 마케팅은 대성공이었다. 참치 통조림은 하얗고 순한 맛이 나는 고깃덩어리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첫해에 700개만 팔리던 것이 7년 후 부터는 40만 개로 판매량이 급증했다. 바야흐로 대 참치 시대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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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참치의 기원

 

우리도 참치의 역사는 짧다. 국제 최대 참치어업 관리 기구인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의(WCPFC)의 주요 회원국이며, 세계적인 어획기술이나 어획량으로 짱먹고 있는 대한민국이지만, 불과 40년 전만 해도 한국인들에게 참치는 그게 뭥미? 였다.

 

'참치'가 식재료로서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39년 7월 27일 동아일보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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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새치, 참치, 다랑어 등은 구주와 조선에서 접근한 해안에 많이 첩식하고 있는 어족으로, 제주도 근처에는 매년 백척이상의 어선이 와서 다량으로 어획해가는 유명한 어류인데 1미에 백원내외로 매매되는 대어이다.

 

그런데 이것은 조선인의 식료로는 많이 사용되지 않고 우수한 이출품으로 기대되는 바가 만헛든것인데 이것을 총으로 쏘아서 잡는 방법이 최근에 발명되어 식산국에서 시험하고 있다.

 

조선총독부 식산국에서, 조선 근해의 참치들을 어떻게 하면 쌈빡하게 약탈해갈 수 있을까 이래저래 짱구를 굴렸다는 내용이다. 냉장 기술의 발달로 이제 막 참치 맛을 알기 시작한 일본인들에 비해 조선인들은 식재료로서의 참치를 아직 접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인이 처음으로 참치를 먹은 기록은 광복을 맞이한 다음 해,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져 미국 군정이 통치하고 있던 1946년이다. 참치 맛을 본 이는 '고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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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취 군정장관은 변변히 먹지 못하고 외롭게 지내는 고아들에게 맛있는 생선 선물을 보내어 장관의 따뜻한 인정미의 일모를 보여주고 있다. 군정장관은 수일 전 국립 육아원에 있는 사십오 명의 어린이들에게 참치와 방어를 선물로 보내었는데 아동들은 장관의 후의에 감동하야 서울 부근의 각 후생시설의 아동들과 같이 이 선물을 노느기를 희망하였으므로 이를 허락하야 서울 지방의 기타후생기관도 이 생선을 노나 받었다.

 

경향신문 1946년 10월 27일

 

오늘날에 참치와 방어는 대표적인 고급 횟감이지만, 당시에는 상품성이 없던 어종이었다. 설마하니 공사다망한 미 군정장관이 고아들을 먹이려고 동해안 항구를 뒤졌을 리는 없을 거고, 아마도 아이들에게 전달된 생선은 군에 보급된 식재료로 만든 '구호물품'이었을 터. 해방 직후 냉장 시설도 변변치 않았을 테니 통조림이거나, 아니면 고양이도 먹기 전에 심하게 고민 때리는 상태였을 것이다.

 

'미식으로서의 참치'의 기록은 그로부터 무려 33년 후다. 1960~70년까지 원양어업이 꾸준히 성장하면서, 갖다 팔기에 바빴던 참치가 드디어 우리 식탁 위에 데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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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만 되던 원양참치(일명 마구로)가 국내 최초로 일반에 공급된다. 오늘 20일경부터 백화점, 슈퍼마켓 등에서 300g 500g의 두종으로 절단된 횟감 원양 참치의 시판이 개시될 예정.

 

4개의 수산회사가 공동 출차한 유진물산에서 특수 절단기까지 도입. 원양 참치류를 가정용으로까지 보급하려는 것은 수출에만 의존하던 원양어업이 타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소비자 특히 생선회를 즐겨 찾는 일반인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참치류는 종류와 어종별로 크기가 다양해 지금까지 시중에서는 작은 종류의 근해 참치를 소금구이해 먹는 정도만 가능했다. 일부의 큰 요식 업소에서 나 원양 참치로 회를 내놓았으나 큰 참치의 구입도 어려웠고 보관상의 문제도 많았던 것이 그간의 사정.

 

일반적으로 0도 이하의 냉장상태면 선도 유지가 가능하다고 하나 생선류 특히 기름이 많은 참치류는 연하 50도 이하의 냉동 이어야만 냉동상태가 풀려도 선도와 품질이 제대로 유지된다. 그러나 그동안은 영하 15~20도에 저장돼 2개월만 지나면 고기색이 변하는 등 횟감으로는 부적합했었던 것. 이번에 시판되는 참치는 영하 50의 최저온냉동법으로 저장, 시중에 내놓겠다고 한다.

 

매일경제 1979년 2월 5일

 

드디어 참치를 먹게 되어서 설레고 기쁘다는 기사 같지만, 이 글 안에는 한국 식문화사를 뒤흔들게 되는 굉장히 의미심장한 지점이 있다. 참치 내수 시장이 열린 이유가,

 

'수출에만 의존하던 원양어업이 타격을 받았기 때문'

 

이라는 것.

 

그때 바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국 참치왕의 탄생

 

1960년대, 경제 개발과 성장에 박차를 가하던 정부는 1966년 수산청을 발족하면서 수산 진흥정책에 막대한 예산을 때려붓게 된다.

 

당시 주력사업은 원양어업이었다. 싼값에 사들인 일본 중고 어선에 성실하고 기민한 코리안 마도로스들이 올라타 세계 원양 시장을 빠른 속도로 정복해나갔다.

 

이때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선장 하나가 명동에 사무실을 내고 수산청에 선박 도입 신청서를 제출하는데,

 

이 배가 한국 최초의 탑재 모선식 연승어업용 중형 어선, '제31동원호'였다.

 

원양어업의 성공으로 승승장구하던 '동원산업'은 70년대 말 2차 석유파동과 국내외 경기 불황으로 잠시 주춤하게 되는데, 설상가상 미국과 무역마찰을 겪게 된다. 세계 최대 참치 통조림 제조회사인 스타키스트가 일방적으로 동원의 참치 공급 물량을 결정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동원그룹 창립자 김재철 사장은 승부수를 띄운다.

 

"햐 양놈들 이거 갑질 쩌네. 뭔가 수를 내야지 안 되겠어."

 

"어쩌시려구요. 사장님"

 

"내가 전에 미국 갔을 때 LA에 있는 미국 참치캔 공장을 가봤는데 말이야. 조또 뭐 없더라고. 그 정도 설비면 지금 우리도 충분히 돌릴 수 있지 않을까?"

 

"요새 경기도 안 좋은데 괜찮을까요?"

 

"곧 국민소득 2천 불 넘을 텐데, 우리도 이제 참치캔 먹을 때가 된 거 같아. 묻고 따블로 가자구"

 

국내 최초 참치 통조림 '동원참치캔'이 이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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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재철 사장도 80년 전 알버트 아저씨랑 같은 고민에 봉착한다. 당시 한국인들에게 참치는 너무도 생소한 식재료였던 것이다.

 

낯선 음식이 주는 두려움은 태고 때부터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인간의 생존 본능이다. 음식이 낯설다는 것은 상품으로서 치명적이다. 어릴 때부터 이유식으로 참치죽을 먹고, 중고딩 시절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씹으며 피씨방을 다니고, 엠티 가서 참치 넣고 찌개 끓여 소주를 마시고, 군대 가서 참치 뽀글이를 끓여 먹어 본 지금 사람들에게 참치는 소울푸드가 되었지만, 당시 사람들에겐 '알바트로스 넓적다리 구이'만큼이나 진입장벽이 높은 거였다.

 

알버트 아저씨가 참치를 친숙한 '닭고기'로 접근시켰다면, 동원참치는 좀 다른 방향으로 갔다. 제품명에 '살코기'를 붙인 것이다. '소고기만큼이나 비싸고 영양가 있는 두툼한 고깃덩어리'라는 고급화 전략이었다. 실제로 첫 출시 때 가격은 950원으로 고가였다. 당시 짜장면이 500~60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지금 물가로 한 캔에 만원 정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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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잘나가던 백일섭 아저씨를 TV 광고 모델로 기용해서 홍보비를 마구 때려 넣으며

 

'막 헬기까지 동원한 첨단 어업기술로 건져 올린 영양가 개쩔고 맛있는 선진국형 고오급 식품.'

 

이라는 동원참치의 고급화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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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 2년 후인 84년 추석. 처음 출시된 참치선물세트는, 조미료나 식용유를 밀어내고 출시 첫해에 30만 판매고를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어획기술 발달로 인한 공급량 증가로 고급 식품이었던 참치캔의 가격은 점점 더 저렴해졌다. 한국의 식문화에 완벽하게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상위호환 1 : 참치 김밥

 

캔 뚜껑만 따면 언제든지 바로 먹을 수 있는 완벽한 식품. 참치캔의 이러한 간편성은 한국 식문화에 여려 변주를 만들어 냈다.

 

90년대 외식체인 사업의 붐을 타고 혜성처럼 등장한 메뉴가 있었으니 바로, 참치김밥. 메뉴 고급화에 참치캔이 콜라보 된 것이다. 다른 부재료와 달리 캔 속에 들은 참치는 따로 밑 작업 없이 바로 투입될 수 있으니 업장에서도 안성맞춤이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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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전문점의 메뉴는 본격적인 식사용이란 점이 특징. 참치와 김치를 깻잎으로 감싸서 속을 만든 독특한 김밥으로 이름난 서울 방배동 카페골목의 <서호김밥>. 주인 이혜주씨는 "김밥 한 롤에 밥 한 공기가 다 들어간다"며 "여기에 다시 온갖 채소와 고기를 넣으니, 김밥 1줄이면 비빔밥 한 그릇 먹은 것과 똑같다." 고 말했다.

 

조선일보 1995년 11월 25일

 

국산 참치캔 출시 40주년. 전 국민 DHA 상승과 단백질 공급에 일조한 동원참치 김재철 창립자의 높은 기상을 기리고자, 다짜고짜 참치 김밥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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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캔은 본디 가다랑어 살을 쪄서 만드는 것이지만, 집에 회식하고 남은 참치가 남아있으므로 기왕 미친 짓을 하는 거 생 참다랑어 살로 참치마요김밥을 마는 최초의 인간이 되어 보는 것이다.

 

맞다. 이거 하려고 앞에 주절주절 참치의 역사를 길게 깔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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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쪼사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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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아볼까 어쩔까 하다가 참치의 고유한 맛을 보존하는 차원에서 직화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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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다 익어버리면, 허무하게도 참치캔과 맛이 똑같을까봐 미디움 정도에서 토치질을 멈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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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와 환장의 짝꿍 마요네즈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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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그러면 좋을 거 같아 후추와 파슬리가루도 투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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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맛 코팅 상위호환 참치마요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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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가가 올라갈수록 이 김밥의 병맛미가 더 깊어질 것이므로, 숲속의 버터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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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스페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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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동 서호김밥 이혜주 사장님의 기운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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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고르게 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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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무지와 오이를 적절하게 쌓아 고랑을 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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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수커버를 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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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재료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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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돌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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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참치 탄생 40주년 기념 참다랑어 참치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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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0원 (VAT 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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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있나요. 김재철 회장님.

 

상위호환 2 : 참치 김치찌개

 

외식에서 참치가 김밥으로 스며 들었다면, 가정에서는 찌개 재료로 각광받았다. 특히 참치의 담백함과 녹진함은 한국인의 소울푸드 김치찌개와 아주 좋은 궁합을 이뤘다.

 

재료 준비부터 보관까지 돼지고기 같은 신선육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간편함은 두말하면 턱이 아프다. 찌개 재료로 참치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면, 후발 주자였던 사조산업이 승부수로 찌개용 참치를 따로 개발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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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참치를 때려잡고야 말겠다는 사조참치의 그 패기를 가슴에 새기며 참다랑어 김치찌개를 끓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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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중간 뱃살 덩이를 재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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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위해 급랭시켜둔 참치 턱살들.

사실 기름기와 풍미로는 여기가 진또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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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질한 턱살로 먼저 육수를 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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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로 썬 뱃살 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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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이 할머니가 담근 묵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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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쾌하게 한 포기 다 때려 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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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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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춧가루 다진 마늘.

 

생물을 넣어서 끓여 그런가, 국물 맛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프레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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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솟구치는 가다랑어의 기상과 같은 사조의 꿈을 담아, 감칠맛을 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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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토핑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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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대기업의 콜라보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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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깜짝 놀랐는데, 냄새가 참치캔으로 끓인 그것과 거의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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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참다랑어의 풍미를 가다랑어 통조림으로 구현해버린 동원과 사조의 승리일까.. 참치액 때문에 그러나..?

 

살짝 허무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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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좀 다르다. 촉촉한 살점을 베어 무니 입안에 육즙이 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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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참치 턱살. 거의 등갈비 수준.

 

상위호환 3 : 고추 참치

 

90년대에 들어서도 사조의 도전은 계속되었다. 92년, 사조의 야심작 조개 참치와 고추 참치가 출시된다.

 

너무 의욕이 앞섰던 것일까. 사조는 브랜드 마케팅에서 엄청난 무리수를 두게 되는데,,

 

설마 조개와 고추라는 부재료를 그런 의도로 선정하진 않았을 테지만,, 막짤에서 장재근 아저씨가 이거 실환가 싶은 엄청난 대사를 쳐버린다.

 

 

90년대는 어마어마한 시대였구나 싶지만.. 당시의 성인지 감수성에도 논란이 된 광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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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92년 8월 7일

 

아무튼. 이러한 사조의 도전은 그래도 '고추참치'라는 스테디셀러를 남겼다. 자취생들의 필수품이자 말년 병장들의 똥국디펜스 아이템이 된 고추참치의 시작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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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사조의 도전정신을 기리며 사조 고추참치를 카피해 보고 싶었는데,, 동네 마트를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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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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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수 없이 동원 고추참치를 레퍼런스 삼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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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분표를 분석한 결과 내가 도모할 수 있는 주요 유닛은 이렇다.

 

고춧가루, 감자, 당근, 양파, 토마토 페이스트, 카놀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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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는 믿을 수 없는 법. 실물을 확인해보자.

 

고추기름, 적당량의 참치 살코기, 감자 12조각, 당근 9조각, 소스에 뭉개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정량의 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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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일단 채소를 분석대로,

 

감자 : 당근 : 양파 = 4 : 3 : ?

 

비율에 맞게,

 

감자 400조각, 당근 300조각, 양파 꼴리는 대로

 

썰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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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임. 세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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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에 카놀라유를 넉넉히 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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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히 기름에 채소가 볶아졌을 즈음 불을 끄고 고춧가루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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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고추참치인데 고추기름이 흥건해야지 않겠나.

 

마, 그런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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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는 못 참지 편 대망의 마지막 쓰리피스.

 

잘가.. 만나서 반가웠고 당분간 보지 말자.

참치는 사먹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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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참치에서 '토마토 페이스트'란 무엇인가.

이것이 내가 찾은 해답이다. 암튼 대기업이 만들면 일단 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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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떻게든 해줄 거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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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을 추가하고 재가열.

스테이크에 버터 끼얹듯 졸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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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잡힌 점도.

양파가 녹아 사라지면서 뭔가 굉장히 비슷한 비주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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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거 그럴싸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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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참치의 핵. 고추기름 구현 성공.

 

과연 살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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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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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못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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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뒀다가 살에 소스가 더 베서 먹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갑오징어 편도 해야 하니 아쉽지만 여기서 고만 마무리하도록 하자.

 

이상이다.

 

그동안 <참치는 못 참지>편을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압도적 감사를 드리며,

 

이만 뿅!

 

-참치는 못 참치 편 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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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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