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근육병아리는
요리에 관한 어떤 정식 교육도 받은 적 없으며,
오직 유튜브와 만화책으로만 수련 중인 야매 수산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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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잡아먹는 생선
오징어는 왜 오징어일까.
이럴 땐 역시 조선의 맛칼럼니스트 흑산도 손암 선생님께 여쭤보는 게 답이다.
이놈은 매일 물 위에 떠있다가 까마귀를 현혹시킨다. 날아가던 까마귀는 오징어가 죽어 물이 둥둥 떠다니는 줄 알고 달려들어 쪼려 한다. 그 순간 이놈이 까마귀를 잽싸게 낚아챈 뒤 물속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래서 ‘까마귀 도적’이라는 뜻의 오적(烏賊)이라고 했다.
손암 정약전 <자산어보>
오징어가 까마귀를 스틸해가는 이 유튜브각 나오는 장면을 선생님이 직접 보신 건 아닌듯하다. 중국 남북조 시절(557~589) 심회원이란 자가 쓴 <남월지>라는 주석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름은 빌려왔지만 조선의 '오적어'는 유독 맛이 좋았나 보다. 문종 2년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이,
"니네 오적어맛이 그르케 쥑인다매? 맛좀 봤으면..."
이렇게 대놓고 말해서, 가는 길에 2000마리나 싸서 선물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성종 9년에는 중국 황제가,
"야 사신 시펄러마! 니만 취팔러마? 나도 무보자!!"
해서, 마른 전복 마른 문어와 함께 진상품 목록에 올렸다. 암튼 오지게 맛있었는 듯.
그런데 이때의 대존맛 오적어는, 우리가 흔히 아는 그 오징어가 아니다. 정약전 선생은 <자산어보>에서 오적어의 생김새를 이렇게 묘사한다.
"등에 긴 뼈가 있다. 살은 매우 무르고 연하며, 알이 있다. 주머니 속에 먹물을 가득 채우고 있다. 누군가 침입하면 곧 먹물을 내뿜어서 현혹시킨다."
등에 있는 긴 뼈. 그르타. 원래 오징어라 부르던 것은, 지금의 오징어가 아닌 '갑오징어' 였던 것이다.
〈어도(魚圖)〉(부분), 작자 미상, 조선 후기,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뼈대있는 오징어
그른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중학교 때 생물쌤이 오징어는 무척추동물 이랬는데... 척추가 없는데 뼈가 어떻게 박혀있는 건가...
출처 - 위키미디어
그 비밀은 바로 이 공룡이 가지고 있다. 이름하야 오르토케라스.
꼬깔콘같이 생긴 게 뭔가 좀 조빱같아 보이지만, 이 분은 고생대 원시 바다를 지배한 무시무시한 두족류계의 단군 할배다. 이 양반이 얼마나 대단한 양반이냐면,
지금도 고가로 거래되고 있을 정도로 고생대부터 오늘날까지 쩌는 존재감을 자랑한다.
아무튼, 다량의 화석으로 남을 만큼 단단했던 원뿔 모양의 껍데기가 살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는 방향으로 퇴화되어 오늘날의 매끈매끈한 두족류로 진화했다. 갑오징어는 조상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지 않고 타원형 형태로 몸 안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흔히 오징어라고 부르는 것은 살오징어다. 얘도 조상님의 흔적은 남아있다. 오징어 덮밥 같은 걸 먹을 때 미처 손질이 안되어 달려 나오는 투명하고 기다란 이물질을 기억하는가. 그게 바로 살오징어 뼈의 퇴화 흔적이다. 흑산도 정 선생님은 그래서 살오징어에게 '고록어'라는 별칭을 붙여주셨는데,
'종잇장처럼 얇은 뼈를 가지고 있는 귀중한 고기'
라는 뜻이다.
가까운 바다에서도 쉽게 잡히는 갑오징어는 한반도 사람들에게 오랜 기간 친숙한 '오징어'였다. 후에 어업기술 발달로 살오징어의 대량 어획이 가능해지면서 '오징어'라는 타이틀을 지금의 살오징어에게 내주게 되었다. 아직도 북한에서 '오징어'는 뼈가 있는 갑오징어만을 뜻한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어쩌다 보니 딴지그룹 회식추진맨으로 인사발령 난 근병은, 회식용 갑오징어를 구해야 할 운명에 처했다. 흑산도 아저씨는 왜 괜한 소릴 하셔가지고...
중국 황제에게 갖다 바칠 오징어를 찾느라 발등에 조선 팔도를 다 뒤지고 다닌 예조좌랑의 심정으로...
그곳으로 향한다.
가는 날이 장날
자정이 좀 지난 시각, 노량진.
막 출근한 중도매인들과 출하주들이 곧 있을 경매를 준비하는 시간대다. 중도매인도 아니고 출하주도 아니고 수협 직원도 아니고 동작구 고양이도 아닌 딴지 회식추진맨이 이 시간에 꾸역꾸역 노량진에 출근한 이유는 하나다. 바다가 지랄맞기 때문이다.
6월은 갑오징어의 달이다. 산란을 앞두고 살크업한 갑오징어들이 봄부터 본격적으로 노량진에 진격한다. 그중 6월은 그 퀄리티나 물량면에서 가장 피크다. 물량이 터진 날에는 산더미처럼 올라온 갑오징어를 쳐내느라 노량진 경매장의 바닥이 보령머드축제마냥 시커멓게 물든다.
2020년 6월, 갑오징어 물량 터진 날.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시즌이 그러하다는 이야기고. 내가 가는 날에 물량이 어찌 될지는 중도매인들도 모르고, 수협 조합장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른다. 오직 용왕님만 알뿐. 전날에 바다가 사나워서 갑오징어배가 나가지 못하면 노량진에 갑오징어는 씨가 마른다. 날씨가 좋다고 무조건 잡히는 것도 아니다. 수온이든 뭐든 하튼 모종의 이유로 갑오징어가 기분 나빠서 먹이활동을 하지 않으면 그냥 꽝인 거다.
뿐만 아니다. 군산 앞바다는 물때가 좋아 만선을 했지만 보령 앞바다는 파도가 높아 영 조황이 좋지 못한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물량 부족으로 노량진에 깔린 갑오징어 값이 나로호처럼 치솟는다. 중도매인들마다 일정하게 물건을 공급하는 거래처들이 있으므로 평소처럼 경매가 끝나고 어슬렁 어슬렁 갔다가는 오징어 먹물도 구경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혼자 먹고 말 거면, 갑오징어가 없으면 한치를 사다 먹으면 되고 그것도 없으면 오징어땅콩이나 사다가 집에서 맥주랑 먹고 자면 되지만 나는 그룹 중흥의 사명을 띠고 노량진에 온 딴지의 식사추진맨이 아닌가. 모든 포세이돈의 몽니로부터 변수를 줄이려면, 경매가 시작되기 전에 사이즈를 보는 게 유리하다. 내가 이렇게 일을 열심히 한다. 보고 있나요 총수님.
아니나 다를까. 경매대 앞에 깔리는 갑오징어 박스의 모양새가 심상치 않다.
없는 건 아니지만 많은 것도 아닌 느낌.
아무래도 쎄하다. 중도매인들이 물건이 깔리기도 전에 박스 사이를 오가며 각을 재고 있다. 십중팔구 나처럼 반드시 오늘 갑오징어를 구해야 하는 거래처를 둔 중도매인들일 터.
이들이 경매전에 이렇게 움직인다는 건 좋지 않은 신호다. 오늘 갑오징어 값이 떡상할 거란 이야기. 이렇게 물량이 적은 날은, 중도매인 아저씨들이 거래처 물량 맞추느라 나처럼 뚜벅이들에게 내줄 여유분이 없을 것이다. 얼굴에 먹물을 그지처럼 묻히고 가서 돈다발을 들고 엉엉 사정을 해도 별 수 없다. 거래처와 신용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들이니까.
도와죠요럭키짱
자고로 짱중에 짱은 빽짱이라고 했다.
내가 쌈을 잘하는 거보다 쌈 잘하는 동네형과 친하게 지내는 게 훨씬 큰 힘을 갖는다는 것을, 나는 일찍이 깨달았다.
출처 - 네이버 웹툰 <돌아온 럭키짱>
이 구역의 캡짱. 엉클마린 보스에게 전화를 건다.
근육병아리(이하 근병) : 도와죠요 보스님.
엉클마린 보스(이하 엉클보스) : 응? 이 시간에 무슨 일?
근병 : 갑오징어 좀 사주세요 엉엉.
엉클보스 : ㅋㅋㅋ 너 어딘데?
다른 물건 보러 갔다가 갑오징어 섹션으로 와주신 우리의 럭키짱.
엉클보스 : 음...
엉클보스 : 음흠...
엉클보스 : 이거 좋네.
맨 앞줄 아구찌 갑오징어를 짚는 엉클 보스.
아구찌란 '당일 최고의 물건'이라는 뜻이다. 다른 말로는 '아사이찌'. 일본에서 건너온 업장 용어로 추정된다.
아사이찌는 한자에 따라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일(朝一), 또는 아침에 여는 장(朝市)이란 뜻이다. 허나 아구찌라는 단어는 정체불명이다. 굳이 한자를 추측하면 開口(アグチ-아구치)인데 입을 연다든가, 외부를 향해 열어두는 것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부자연스럽지만 열다를 뜻하는 '아쿠(開)'에 가격을 뜻하는 '치(値)'붙일 수도 있겠으나 일본인의 한자감각으론 어색하다. 시장 상인들도 유래를 모르고 일본인이 들어도 이상한, 노량진 세계의 재미난 단어 중 하나다.
아무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고 갑오징어 초과수요의 이 아사리판에서, 우리의 럭키짱은 최상품을 구해다 주겠다는 졸라 카리스마 있는 선언을 한 것이다.
마침내 시작된 경매. 물량이 적으므로 순식간에 끝날 것이다.
아구찌를 노리는 엉클 보스의 늠름한 뒷태.
순식간에 갑오징어 박스가 눈 녹듯 사라지고,
그렇게 이날 노량진 아구찌 갑오징어 6박스는
딴지의 품에 안기게 된다.
엉클보스 : 다른 경매 마저보고 갈게, 작업장 먼저 가 있을래?
홀연히 다른 경매 섹션으로 떠나는 우리의 캡짱.
28 번뇌
여기는 노량진 수산시장 지하 1층, 엉클마린 작업장.
놀면 뭐 하나.
주인 없는 빈 작업장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바로 작업을 시작해본다. (bgm. 이글파이브 - 오징어 외계인)
일단 오늘 산 갑오징어를 연병장에 집합시켜보자.
뭔가 딴지스의 기운이 물씬 풍기면서 반갑고 애틋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노심초사하다가 확보에 성공했을 땐 로또 된 거처럼 기뻤는데, 이 많은 걸 손질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손마디가 뻐근해지고 나는 왜 새벽에 아무도 없는 노량진 지하에서 이러고 있을까 현타가 먹물처럼 번져오지만,
마음을 다잡고.
첫 타자를 타석에 올려본다.
단단한 뼈 쪽 껍질을 살살 잘라서
갑 적출.
오르토케라스 가문의 뼈대있는 자식임을 증명하는 빠각빠각 한 갑.
모자를 벗기고,
살점을 분리해서 따로 모은다.
이 짓을 28번 반복.
쳐내도 쳐내도 끝도 없는 대왕 꼴뚜기왕자들의 물량공세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적출 작업 끝.
이젠 내장이 있던 자리의 이물질을 한 땀 한 땀 제거, 세척할 차례.
역시 이 짓도 28번 반복.
수(水)작업 마무리.
이때 뭔가 7부 능선을 넘은 기분이었는데,
아니었다.
늘 그렇듯, 횟감에 수분은 치명적.
키친타올로 온몸 구석구석 남은 수분과 점액질을 제거해줘야 하는데,
문제는 이게 여전히 28마리라는 것. 뭔가 올랐던 산을 계속 다시 오르는 기분.
반복 재생 중인 작업곡이 스피커를 타고 빈 작업장에 처연히 울려 퍼진다.
오징어 열 세 다리~ 그녀는 두 다리~
오징어 세모 머리~ 그녀는 계란 머리~
오징어 이상했죠~ 그녀와 나는 왜 다를까요~
이 노래가 이렇게 슬픈 노래였구나..
끝이 보인다.
숙성지로 잘 감싸고,
빡시던트한 래핑으로 갑오징어 공수작전 마무리.
도저히 이걸 회사까지 들고 갈 자신이 없다.
택시 트렁크에 실었다간 기사님도 오징어 외계인 마수에 걸려 슬퍼지실 듯.
퀵서비스 기사님 : 여기 업장인가요?
근병 : 아뇨.. 그냥 회사에요.
기사님 : 이 그룹은 대체 뭐 하는 그룹이길래 새벽부터 연어 박스를 보내요?
근병 :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희가 뭐하는 회사인지...
다음 화
<계속>
작업장 제공과 천금 같은 갑오징어 확보에 힘써주신,
노량진 수산시장 90번 중도매인 엉클마린(링크) 일동 여러분께 폭풍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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