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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의 어깃장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은 나라가 어디일까? 누가 뭐래도 튀르키예(Türkiye; 2022년 6월 24일부터 한국은 공식 변경한 국가명을 쓰기로 하였다. 튀르키예는 튀르키예어로 '튀르크인의 땅'을 뜻한다. 함께 익숙해져 보자)다. 역내의 정치 구도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별 탈 없이 잘 지낼 때 튀르키예의 입지는 상당히 축소됐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긴장 관계가 높아지면? 반대로 튀르키예의 몸값이 올라간다.

 

이 지역의 긴장 관계가 올라갔을 때 보면, 튀르키예는 자기들의 목소리를 냈다. 대표적인 예가 2008년 조지아 전쟁 때였다. 이 당시 러시아가 조지아를 침공해 들어가자 미국은 늘 하던 대로,

 

"흑해로 우리 함대를 투입 하자!"

 

라고 했는데, 튀르키예가 중간에서 딱 막아섰다.

 

"보스포루스 해협이 너희 안방이냐? 들어오고 싶으면 막 들어올 수 있는 데로 보여?"

"야 이 미친색희야! 너 NATO야! NATO 몰라? 우리랑 같이 러시아 막으려고 만든 게 나토야!"

"아니 뭐... 그냥... 러시아 이야기도 들어보자는 차원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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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보스포루스 해협은 흑해로 통한다

지도출처-<구글맵>

 

나중에 미 제6함대와 나토 혼성함대가 흑해로 들어가 러시아 흑해 함대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이미 상황은 다 끝난 상태였다. 한 줌도 안 되는 조지아 해군을 러시아 흑해 함대가 싹 쓸어버렸다. 조지아의 포티(Poti) 항을 포함해 주요 항구를 틀어막은 상태였다. 이 당시 러시아는 조지아 내로 물자가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수후미(Sukhumi)·포티(Poti)·바투미(Batumi) 등등 주요 항을 아예 봉쇄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뒤늦게 들어온 6함대와 대치했지만, 이때는 이미 게임이 끝난 상황이었다. 여기서 주목해 봐야 하는 게 튀르키예의 어깃장이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결국 개방하긴 했지만, 미국과 나토의 정책에 어깃장을 놓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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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수후미·포티·바투미 등 주요항 위치

출처-<물류신문>

 

조지아 전쟁이 미국 행정부에 준 충격이 꽤 컸다. 이 당시 미국 네오콘들이 공을 들였던 게 바로 조지아였다. 러시아의 입김이 부는 땅에 들어가 미국 '나와바리'로 바꿔 놓고, 러시아를 견제하고, 동시에 흑해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던 '거대한 포석'이었다. 한순간에 이 모든 그림이 엉망진창이 됐던 거다. 이 와중에 튀르키예가,

 

"야, 여기 들어오려면 내 이야기도 들어봐야지!"

 

라면서 몽니를 부린 거다. 미국 입장에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을 터이다.

 

이런 튀르키예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직전까지만 해도 꽤 '수세'에 몰렸다. 미국과 강 대 강의 끝없는 대치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덜컥 전쟁이 터졌다.
 

양쪽과 친한 친구라서 터지는 존재감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두 나라 모두와 '특수관계'다. 2021년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에 45억 달러나 투자한 최대 투자국이다. 무기 수출에서도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의 주요 파트너이다(바이락타를 포함해서 수많은 장비를 사 간 게 우크라이나다). 이렇게 보면 튀르키예와 우크라이나만 친한 거 같은데, 이제까지의 연재를 보면 알겠지만 러시아와 튀르키예 사이도 꽤 돈독하다. 러시아는 튀르키예에 식량(주로 곡물)과 에너지(천연가스 등)를 수출한다. 튀르키예는 러시아에 채소와 과일 같은 신선식품과 '인적 자원'을 수출한다(꽤 많은 노동자가 러시아로 넘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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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Black Sea)를 두고 이웃하는 우크라이나·러시아·튀르키예

출처-<위키피디아>

 

이러다 보니 튀르키예가 양쪽의 중재를 맡은 거다.

 

"아이참, 이렇다니까... 내가 신경을 안 쓰면 애들이 서로 싸운다니까, 나 참... 귀찮지만 어쩌겠어? 이게 운명인데, 역시 이 동네는 내가 없으면 동네가 잘 안 돌아가. 아이참 귀찮아~"

 

이러면서 한껏 존재감을 뽐내는 터다. 그러다 보니 우크라이나 쪽에서 새로운 '제안'을 넣기도 했다.

 

"오케이! 우리 나토 가입 포기할게, 대신에 우리도 무작정 포기할 순 없으니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해 주라."

"그게 뭔데?"

"그러니까...미국, 영국, 튀르키예가 우리 안전을 보장해 주라."

 

이 정도면 튀르키예의 '위상'을 이해할 거다. 적어도 이 지역 내에서는 미국·영국과 동급인 게 튀르키예다. 실제로 튀르키예는 그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핵심은 튀르키예의 뜨뜻미지근한 태도다. 당장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보여준 튀르키예의 모습이 바로 튀르키예의 실체다.

 

"러시아의 침략행위를 규탄한다! 하지만...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는 않을 거야."

"불쌍한 우크라이나에 우리 무기를 수출하겠다! 하지만... 러시아 무기를 보내진 않을 거야."

 

이율배반이라고 해야 할까? 표리부동이라고 해야 할까? 튀르키예는 언제나 이런 식의 외교를 보여줬다. 더 놀라운 건 튀르키예는 곧잘 자신들이 NATO 가입국이란 걸 까먹는 점이다.

 

"일부 나토 국가들이 러시아를 약화하려고 전쟁을 지속하길 원하는 거 같다. 러시아군의 단계적인 철수를 위해서는 상호주의에 따라서 이에 상응하는 경제 제재 완화가 필요하다."

-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튀르키예 외무부 장관의 발언 中 발췌

 

이 발언을 보고, 누가 튀르키예를 나토 가입국이라고 생각할까? 균형자 외교의 핵심은 양쪽 세력이 충돌을 벌일 때 빛을 낸다는 거다. 튀르키예는 지금 최고의 '기회'를 맞이했다. 튀르키예는 러시아 편인 듯 러시아 편이 아닌 짓을 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편인 듯 우크라이나 편이 아닌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미국과 NATO의 입장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일 테다.

 

입 틀어막고 내색 안 하지만 삐져나오는 회심의 미소

 

그렇다면, 이게 나쁜 것일까? 당하는 입장에선 짜증 나겠지만, 튀르키예 입장에서는 충분히 잘해 나가고 있고, 잘하는 짓이다. 언제나 말하지만, 국제정치는 '경찰 없는 세상'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 이익이다. 의리고, 체면이고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국익이 가장 중요한 게 국제정치다.

 

튀르키예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자신의 몸값을 가장 비싸게 부르며 최대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 이걸 두고 뭐라 한다면, 그 사람은 외교를 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내 이익을 위해서 싸워야 하는 국제정치에서 낭만에 젖어서 협상에 들어갔다간, 나라가 거덜 날 거다.

 

튀르키예는 보스포루스 해협이라는 천혜의 지형과 미-러 두 강대국의 대결이란 정치적 역학을 활용해 지금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배워야 한다. 밖에서 바라보면,

 

"튀르키예 저색희들 저거 사람 덜됐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저거 또 어깃장은 왜 이렇게 거는 거야? 지들이 나토인 거 모르나?"

 

이렇게 욕할 수도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어깃장을 놓는다는 건 그만한 '카드'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진 거 없이 설치면...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두들겨 맞지 않으면 다행이다). 튀르키예가 저러는 이유는 자신들만의 카드가 있고, 그 카드를 가지고 최대한 이익을 얻겠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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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 중립국 지위를 유지한 두 나라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안보 위협이 커지자 나토에 합류하기로 했다. 그러나 튀르키예가 어깃장을 놓아 가입하지 못했다. 두 나라가 쿠르드족의 분리독립을 지원하고 튀르키예에 무기 금수조치를 취했다는 연유에서였다. 나토 회원국이 되려면 기존 회원 30국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한다. 

 

그러다가 2022년 6월 28일 튀르키예가 두 나라의 나토 가입을 찬성한다는 양해각서에 두 나라 대표와 함께 서명했다. 스웨덴·핀란드는 양해각서에 튀르키예가 요구해온 대로 쿠르드족 무장 조직인 인민수비대(YPG)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쿠르드 노동자당이 '금지된 테러 단체'임을 확인했다. '쿠르드노동자당과 모든 다른 테러 단체 및 그 연장 조직'의 행위를 막기로 했다. 아울러 튀르키예 무기 수출금지를 없애는 내용도 담았다(참고로 당시의 위 사진은 왼쪽부터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 막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 사진 출처-<로이터>)여기서도 튀르키예는 여지없이 존재감을 뽐낼 만큼 뽐내며 얻을 바를 얻은 셈이다.

 

단순히 튀르키예를 욕하기 이전에 이들의 모습을 보고 배울 점은 배워야 하겠다. 아니, 적어도 그들을 욕하지는 말자. 최대한 국익을 챙겨가는 것. 그게 국제무대에서 살아남는 법이니 말이다.

 

추신: 다음엔 딴지스들이 댓글에 달아주신대로 EU에 대한 썰을 풀어볼까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