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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편의 연재 기사(전쟁, 나토, 그리고 튀르키예)를 쓰면서 편집부로부터 'EU에 대한 썰도 함 풀어달라!'는 독자 요청이 있었다고 들었다.  

 

일단 알아뒀으면 하는 개념이 2개 있다. 이 2개 개념이 ‘유럽연합’ 탄생 이유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건 아니다. 가볍게 듣기 바란다.

 

① "중국은 과도하게 통일돼 있고, 유럽은 과도하게 나뉘어 있다."

② "독일인이 애국심을 가졌을 때 좋게 끝난 적이 없다."

 

중국은 하나, 유럽은 40여 개국 

 

첫 번째 개념부터 말해야겠다. 중국이 과도하게 통일돼 있다는 건 그 역사만 봐도 알 수 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의 첫 시작을 보자.

 

『천하대세(天下大勢), 분구필합(分久必合), 합구필분(合久必分)』

 

‘천하의 큰 흐름은 분할한 지 오래면 반드시 합하게 되고, 하나로 합쳐진 지 오래되면 반드시 나눠진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게 중국의 지형이다. 무미건조하게 말하자면 중국은 황하와 장강. 이 두 개의 큰 강이 대륙을 나누고 있다. 까놓고 말해 중국의 문화라는 건 황하문명과 장강문명으로 나눌 수 있다.

 

황하(黃河)의 지류인 위수(渭水)지역, 그러니까 지금의 서안(西安) 부근에 도읍을 정한 주(周)나라가 바로 황하문명(黃河文明)의 대표주자다. 남쪽의 양자강(요즘은 장강으로 명칭이 통일됐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문명이 장강문명(長江文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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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중국은 이 두 개의 강을 중심으로 역사가 움직였고, 언제나 나눠지고 합쳐지고를 반복했다. 이와 반대로 유럽은 그 좁은 땅덩어리에 40여 개국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유럽은 강과 운하로 국경선이 그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인 강만 보더라도 다뉴브강(도나우강), 라인강, 엘베강, 볼가강, 센강 등등 수많은 강과 그 지류들이 거미줄처럼 퍼져있다. 강을 중심으로 운하가 발전됐고, 이게 교통의 중추가 된다.

 

철도와 고속도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인간 문명에 있어서 물류의 중심은 ‘운하’였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겠지만, 많은 나라가 이 운하를 통해 발전해 온 게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는 미시시피강과 그 지류로 연결된 물길이, 유럽은 수많은 강과 그 지류로 연결된 운하가 국가의 발전을 이끌었다.

 

문제는 유럽의 경우는 너무 많은 국가가 너무 ‘좁은 곳’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는 거다. 이러다 보니 전쟁이 끊이질 않았고, 국경선이 수시로 바뀌기 시작했다. 뭐, 여기까지는 이해의 범주 안이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고, 좁은 곳에 사람 잔뜩 몰아넣으면 그 안에서 투덕거리고 분쟁이 생기는 게 당연지사다. 이런 다툼이 이어지다 보면, 힘 좀 쓰는 애들이 나와서 일진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소위 말하는 유럽 5대 강국 이란 녀석들인데... 영국·프랑스·독일(프로이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러시아다. 18세기부터 국제사회는 이 5대 강국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범국 독일이 준 메시지

 

여기서 주목해 봐야 하는 게 바로 프로이센이다. 이제 두 번째 개념을 말해야 하겠다.

 

"독일인이 애국심을 가졌을 때 좋게 끝난 적이 없다."

 

이 개념은 많은 걸 함축하고 있다. 크게 보자면 두 가지 의미다.

 

하나, 민족주의의 위험성

둘, 19세기 이후 독일의 인정투쟁.

 

지금의 근대국가를 만든 근간에 있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사람들은 프랑스 대혁명이 전 세계에 민주주의를 전파했다며 칭송하지만, 프랑스 대혁명이 수출한 진짜 핵심 ‘가치’는 ‘민족주의’였다. 근대 국가들은 그때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민족’이란 개념으로 뭉치기 시작했다(그 이전까지 ‘피’를 통한 동질성은 귀족계층의 전유물이었다). 민족이란 개념이 있었기에 국가는 대단위 징병이 가능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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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소식을 접한 피지배 민족들은

 자유와 독립 쟁취 의식에 고취된다

 

나라 이름 독일(Deutschland)이 단수 명사가 된 게 16세기 무렵이다. 그나마 이 개념도 언어적인 개념에 머무르는 수준이었다. 지금 우리가 보고, 배우고, 느끼는 ‘현대의 민족’이란 개념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지금의 근대국가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민족주의가 퍼져나가면서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자, 문제는 이때 신흥 강호 ‘독일’이 등장해 버린 거다. 독일의 위치는 정말 절묘(?)했다. 5대 강국 중 맨 마지막으로 등장한 독일은 중부유럽 한 가운데, 그러니까 5대 강국이었던 프랑스와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사이에 등장했다. 더 나아가 독일이 진출할 수 있는 발트해와 북해에는 당시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보유한 영국이 앉아 있었다. 부정적으로 보자면,

 

"세계 1, 2, 3, 4등 국가의 국경 한 가운데 신흥 국가가 태어났다."

 

라고 볼 수도 있지만, 역으로 말하면

 

"이들의 국경선에 낯선 침입자가 등장했다."

 

라고 볼 수도 있다. 독일을 두고,

 

"독일은 선천적으로 포위됐다."

 

란 농담이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중부유럽의 신흥강호는 2번의 전쟁, 그러니까 보오전쟁(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싸워 이긴다), 보불전쟁(프랑스와 싸워 이긴다)에서 이긴 다음, 독일 제2제국을 선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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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독일은 5대 강국 중 하나가 된다. 이후 독일의 성장은 눈부셨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세계 제조업 생산에서 영국을 추월했다. 국력은 유럽대륙 내 최강국으로 떠오른다. 영국은 기존의 식민지를 기반으로 입지를 다지는 정도였다. 독일은 제조업이나 철강 생산·국내 총생산·인구수 등에서 영국을 이겼다. 그나마 영국이 믿을 만한 게 해군력인데, 이미 독일은 세계 2위 해군력을 보유하며(미친 듯이 함대 법을 제정해서 건함경쟁에 뛰어들었다) 영국을 압박했다.

 

이러다 보니 영국은 자연스럽게 긴장하게 된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진다. 20여 년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이 모든 전쟁을 독일이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독일 저 쌍노무시키들 다 때려잡아야 해! 아주 그냥 재기불능으로 만들어야 해!"

 

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듯하다. 

 

독일에 모든 돌을 던질 수 없다는 시각

 

이걸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독일 저놈들만 나쁜 놈으로 보기도 그렇지. 유럽에서 힘 좀 쓰는 놈들이 설치던 게 없었던 거 아니잖아? 프랑스 놈들이 나폴레옹 앞세워 온 유럽을 휩쓸었을 때 그때 우리 뭐 했어? 손에 손잡고 다구리쳤잖아! 지금도 워털루에서 뭐 빠지게 싸운 거 생각하면..."

 

"프랑스만 그래? 러시아는 또 어떻고? 프랑스가 사라지니까... 뭐가 뛰니 뭐도 뛴다고, 지들이 유럽의 헌병이랍시고 덤벼들었잖아. 그걸 또 크림반도까지 가서 죽네 사네 싸웠던 거 보면..."

 

그렇다. 독일 말고도 많은 열강들이 시시때때로 치고 나와서 난리를 쳤었다. 그때마다 유럽은,

 

"쪽수 앞에 장사 없다."

 

란 마인드로 다구리를 놨다. 그게 유럽의 경향성이다. 독일만 그랬던 건 아니다(전쟁의 사이즈가 유례없이 크고,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국가 단위로 저질렀다는 게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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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를 넘고 있는 나폴레옹

 

이전부터 유럽은 자신들의 문제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치고받고 싸우지 말고, 우리...대승적으로, 크게 크게 생각해 보자."

 

"크게? 뭘 더 크게 생각해?"

 

"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누군 프랑스, 누군 독일, 누군 네덜란드... 이렇게 나라가 쪼개져 있으니 전쟁이 날 수밖에 없어요. 차라리 유럽이란 이름으로 하나로 합치는 거 어때? 그럼 싸울 일이 없잖아!"

 

"야, 그렇게 되면 우리 주권은? 나라의 주권은 어떻게 되는 거야! 이걸 누가 찬성해?"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으로만 결합하고, 정치적으로는... 그래 그래, 동맹처럼 협력하는 거야! 그러면 개별 국가의 주권은 침해하지 않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지 않겠어?"

 

"사회적... 경제적으로만 통합하자고?"

 

"그래! 프랑스 밀을 영국으로 수출해야지만 영국이 먹고 살 수 있다면 영국은 자기가 먹을 밀가루를 지키려고도 프랑스를 침략하지 않겠지. 프랑스도 자기네 밀을 팔려면 영국과 사이좋게 지내야 할 거 아냐! 이런 식으로 경제적으로 끈끈하게 묶어 놓으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이런 이야기가 예전부터 있었다.

 

그리고 덜컥, 독일이 일으킨 두 차례 세계대전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나의 유럽을 위한 촉매제가 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