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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으로 거덜 난 이후, 한국전쟁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쟁을 치르고 나서 유럽은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근대국가의 핵심 토대인 '민족국가' 개념을 희석해야 했다. 이건 독일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독일 애들만 그러겠어? 이탈리아 못 봤어? 스페인 못 봤어? 쟤들도 2차 대전 때 민족주의에 찌들어서 이상한 짓 했었잖아!"

 

"야야, 승전국은 뭐 좀 다를 거 같아? 소련 봐봐! 쟤들 마더러씨야 외치면서 대조국전쟁 이러면서 싸웠어. 공산주의 애들도 민족주의 가져다 썼다니까!"

 

또 다른 전쟁을 막기 위해선 이 '민족주의'를 어떻게 해야 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수면 아래에서 생각만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덜컥 사건이 터졌다. 동북아 끝자락에 있는 이름 모를 나라에서 전쟁이 터진 거다.

 

"6.25 한국전쟁"

 

한국전쟁은 본격적인 냉전의 시작을 알린 것뿐만 아니라, 여차하면 소련이 서방세계를 침공해 들어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심어줬다(아니라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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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저 개백정놈이 언제 쳐들어올지 몰라!"

"당장 우리도 대비책을 강구해야 해!"

 

1950년 6월 25일에 터진 한국 전쟁은 유럽을 긴장하게 했다. 한쪽에 미뤄놨던 '유럽통합'이란 주제를 꺼내게 된다. 어쩌면 한국 전쟁은 핑계일 수도 있다. 이 당시 유럽은 뭉칠 수밖에 없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선 당장 눈에 들어오는 게 '민족주의'다. 독일 제3 제국이 발흥하게 된 원인이자, 극단적인 인종주의 전쟁을 일으키게 된 원인인 민족주의를 제어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유럽 개별 국가들의 주권을 일정 부분 제한해야 했다.

 

"히틀러 같은 망나니가 또 나오지 못하도록 극단적인 주장을 못하게 만들자!"

 

여기에 더해 당시 유럽의 상황도 생각해 봐야 한다.

 

"2차 대전 때문에 살림이 모두 거덜 났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라고!"

 

주인공 의자는 2, 플레이어는 3

- 엉덩이 싸움에서 밀리기 시작한 유럽 

 

없는 살림살이 속에서 힘을 발휘하려면 서로 힘을 모아야 했다. 경제권을 묶어 버리면 정치적인 면에서 좋고, 경제적으로도 시장 확대라는 순기능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냉전'이 문제였다. 소련이란 적이 코앞에 있는 것도 문제였지만, 이 '큰판(?!)'에서 알게 모르게 유럽이 소외되는 걸 이들은 견디지 못했다.

 

"아니, 돈 좀 있다고 유세야? 너희 그래봐야 유럽에서 쫓겨난 식민지 출신이야! 역사와 뿌리! 우리는 뼈대부터 다른 유럽인이야!"

 

"그래, 말 한번 잘했다. 저 소련 빨갱이 노무시키들, 배워먹지도 못한 저 빨갱이랑 싹수 없는 양키 놈들... 저것들 언제부터 큰소리쳤다고 저리 유세야? 자고로 세상의 중심엔 유럽이 있었어!"

 

유럽도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축으로 갈라진 세계정세 속에서 유럽의 설 자리는 없었다.

 

1945년 2월 전후, 세계의 판도를 정한 얄타 회담에서 이미 세상의 축은 미국과 소련으로 넘어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영국의 처칠 수상도 이 자리에 끼어 있었지만, 이미 들러리와 다를 게 없었다. 하물며 대영제국이 이럴진대, 독일에 먹혔던 프랑스와 다른 유럽 국가들이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뭉치면 인싸 흩어지면 병풍의 존재감

 

유럽은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려면, 뭉쳐야 한다! 뭉쳐야 저 빨갱이 놈들이나 양키 색희들한테 꿀리지 않고... 뭐 약간 꿀리겠지만, 그래도!! 말발이 먹힌단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처음 등장한 게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ECSC : 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이다. 한국 전쟁이 터지고 1년이 지난 1951년 4월에 프랑스·이탈리아·서독·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 등 6개 국가가 가입한 경제 공동체였다. 역사적인 유럽연합의 첫 행보였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이 나온다. 로베르 쉬망(Robert Schuman)이다. 프랑스 외교부 장관이자 그 유명한 '쉬망 선언(Schuman Declaration)'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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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쉬망

(Robert Schuman,1886년 6월 29일~1963년 9월 3일) 

유럽 연합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는다.

쉬망 선언 또는 쉬망 계획은 

훗날 유럽 연합(EU)결성의 모체가 되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의 석탄 철강 산업을 초국가적 기구 하에 통일해야 한다. ··· (중략) ··· 이 계획이 채택된다면 역사적인 '유럽연방(European Federation)'을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며, 오랫동안 전쟁물자의 생산에 맡겨져 왔던 지역들의 운명을 변경할 것이다."

- 1950년 5월 9일 로베르 쉬망의 발언 中 발췌

 

쉬망의 발언은 바다 건너 처칠의 지지도 받는다.

 

쉬망 선언은 단순한 경제 협력 차원이나 시장 확대의 문제 그 이상을 담고 있다. 발언을 잘 살펴보자.

 

"오랫동안 전쟁물자의 생산에 맡겨져 왔던 지역들의 운명을 변경할 것이다."

 

이게 뭘 의미할까? 그렇다. 프랑스와 독일이 전쟁 날 때마다 전리품으로 챙겨가고, 빼앗기고 했던 알자스-로렌 지역이다. 우리에게는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의 배경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일 거다(여담이지만 쉬망이 쉬망 선언을 한 배경에는 자신의 출신배경도 한몫했다. 쉬망이 바로 로렌지역 출신이다).

 

알자스-로렌 지역은 군사적으로는 프랑스 동쪽을 방어하는 천혜의 장벽으로 볼 수 있다. 전략적으로도 중요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더 중요했다. 알자스 쪽이야 포도주나 좀 나오고 그렇지만, 문제는 로렌이다. 이 지역은 석탄과 철광석이 무더기로 나오는 곳이었다. 특히나 철광석이 유명한데, 이 지역의 철광석 생산량이 프랑스 전체 철광석 생산량의 90%를 차지할 정도다. 이러니 전쟁이 났다 하면 여길 먹네 마네, 주네 마네 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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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MBC 화면캡쳐>

 

이 지역에 붙어 있는 곳이 독일의 루르, 자르 지역인데 이쪽도 독일 전체 석탄 매장량의 50%가 묻혀 있는 석탄 생산지였다. 즉, 이곳은 프랑스와 독일의 목줄이라는 소리다.

 

보불전쟁 때 알자스-로렌을 빼앗긴 프랑스는 제1차 대전이 끝나고 다시 이 땅들을 돌려받았다. 나중에 1차 세계대전 전쟁 배상금을 독일이 갚지 못하자 자르 지역으로 밀고 들어가 직접 현물로 배상금을 뽑아냈던 게 프랑스다. 이런 식으로 알자스-로렌과 자르 지역은 고통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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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MBC 화면캡쳐>

 

유럽 내 전쟁을 끊는 묘책

 

쉬망이 '전쟁물자의 생산에 맡겨져 왔던 지역들의 운명'이라는 말을 한 이유를 이제 알 것이다. 유럽에서 다음 전쟁이 일어난다면 필시 알자스-로렌과 자르 지역은 또다시 전화의 불길에 휩싸일 터이다. 첫 번째 타깃으로서 가장 가혹한 운명에 처할 것은 역사를 배우지 않았더라도 예측할 수 있다. 쉬망은 이 불행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었다.

 

"언제까지 전쟁 나면 동원되고, 전쟁 끝나면 전리품으로 팔려나가는 짓을 반복할 거야?"

"아니, 지역 자체가 전략적인 요충지라 그런 건데... 이건 뭐 운명이니 하고..."

"운명은 무슨! 극복 못할 운명은 없어!"

"뭘 어쩌자는 소리야?"

"전쟁을 막으면 돼!"

"......?!"

 

전쟁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뭘까? 바로 에너지가 되는 석탄과 무기를 만드는 철강이다. 이걸 국가가 아닌 제3의 기관에서 통제하고 그 명세서를 들여다볼 수 있다면 전쟁을 제어할 수 있다는 거다. 즉, 무기의 원재료를 어떻게 만들어서 어디로 흘러가게 하는지를 다 확인하고 통제한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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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유럽 연합 창시 핵심 멤버인 

프랑스 외교관 장 모네와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 6개 국가

프랑스·이탈리아·서독·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

 

그러면 최소한 회원국들끼리는 서로를 믿을 수 있다. 모두 다 주머니를 털어서 내보이는 상황인데, 어떻게 전쟁을 준비한다는 걸까?

 

쉬망이 말한 '유럽연방(European Federation)'도 꿈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