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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MMORPG 게임들을 떠올려 보자. 대부분 정액 요금제를 선택했었다. 정액 요금제는 중소과금러 유저들에게 매우 유리한 과금 모델이다. 정해진 가격만 지불하면, 모든 플레이어가 동일한 선상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MMORPG는 기본적으로 불평등이 누적되는 구조이다. 플레이 타임이 긴 유저를 그렇지 않은 유저가 때려잡는 건 여간해선 힘들기 때문이다. 고인물이 깡패인 판. 그러나, 정액 요금제 환경에서는 이런 문제점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정액제로 운영되는 게임의 운영자들은, 게임의 밸런스를 잘 유지하도록 노력한다. 유료 고객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당시 게임 개발사들은 최대한 많은 유저들이 오랫동안 재미있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이 시기 GM(운영자 아이디)들은, 유저가 부르면 직접 나타나서 고충을 해결하는 정도의 성의가 있었다.

 

와우가 올린 허들 : 한국형 과금 모델의 탄생

 

MMORPG의 게임 밸런스가 본격적으로 망가진 건, 게임회사가 돈을 받고 사기템을 풀기 시작하면서다. 게임 밸런스 유지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게임사가 앞장서서 균형을 파괴하는 사기템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게임 회사들은 대체 왜 이런 멍청한 선택을 했을까.

 

어떤 게임을 할 것인가는 취향의 문제이다. 사람마다 갓겜의 기준은 다르다. 다만, 취향에도 경향이란 것이 존재한다. 대중적인 취향이 있는가 하면, 호불호가 갈리는 마이너한 취향도 존재한다. 김치찌개나 달걀말이 같은 음식은 불호가 거의 없지만, 청국장이나 미역무침은 사람에 따라선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대중의 게임 취향을 다이아몬드라고 할 때, 초창기 MMORPG 게임 회사들은 유저수가 가장 많은 정중앙을 타겟팅했다. 다시 말해, 가장 대중적이고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김치찌개에 달걀말이 같은 게임을 내놓는 경쟁을 한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와우의 등장이다. 와우는 두말할 것 없이 혁신 그 자체의 게임이었다. MMORPG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라면,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든 미친 완성도가 있었다. 게다가 와우는 아직까지 정액 요금제를 고수하는 몇 안 되는 MMORPG이다. 정액제 요금도, 여타 게임과 비슷하거나 악간 저렴한 편이다. 높은 퀄리티와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와우는 다이아몬드의 정중앙, 그러니까 가장 대중적인 유저층을 게걸스럽게 빨아들였다. 결국 와우는 시장점유율 50%를 넘기며 MMORPG 게임 업계의 독과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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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이후에도, 서든어택, 롤, 배틀그라운드같이 재미있으면서도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온라인 게임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대중적인 유저층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극도로 치열해진 것이다. 이는, 다이아몬드 중앙을 공략할 대중적인 MMORPG 게임 만들기가 엄청나게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뜩이나 MMORPG 개발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와우의 성공은 게임 흥행의 허들을 더 올려버렸다. 게다가, 이제는 같은 유저층 (대중적인 유저층)을 놓고 경쟁하는 다른 장르의 게임들도 신경 써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 결과로, 국내 게임 개발사들은 MMORPG의 사업모델을 대대적으로 수정한다. 주요 타깃을 정중앙에서 상단, 즉 핵과금러와 헤비유저들로 바꾼 것이다. 더 많은 유료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팽창 정책을 포기하는 대신, 기존 유저들로부터 더 많은 과금을 유도하기 시작한다. 악명 높은 한국형 과금 모델이 이렇게 등장했다.

 

쇼미더머니 : 현질의 시대

 

그 시작은, 캐시 아이템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캐시 아이템은, 게임을 쉽고 편하게 만들어주는 소모형 아이템이나 게임 내 사용되는 재화를 의미한다. 캐시 아이템을 사용한 유저는, 더 많은 경험치를 얻거나 이동이 빨라지든가, 높은 확률로 강화에 성공하는 식에 어드벤티지를 얻는다. 캐시 아이템을 결제한 과금러는 이를 직접 사용하여 이득을 얻거나, 캐시 아이템을 필요하는 유저들에게 인게임머니를 받고 판매할 수 있다. 게임에 돈을 얼마나 썼느냐가 게임 밸런스의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사업적으로 봤을 때, 캐쉬아이템 도입은 매우 탁월한 결정이었다. 게임 개발사는 과금 의향이 있는 유저들을 대상으로 추가적인 매출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액 요금제에서 동시 접속자 감소로 지지부진하던 매출은, 캐쉬아이템 도입 이후 성장하기 시작한다. 유저수는 줄어드는데, 매출은 늘어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이, 확률형 아이템 도입이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플레이해서는 매우 얻기 힘든 아이템(ex_바람의 나라 용무기 8강, 쇄자황금투구)을 상품으로 제공하는 아이템 뽑기권을 게임사가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캐시 아이템이 게임에 필요한 재화를 판매하는 수준이었다면, 확률형 아이템은 아예 사기템을 돈 받고 풀어버린 꼴이 되었다. 게임 밸런스가 엉망진창와진창이 될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

 

스펙업의 필요한 비용을 확률로 만든 것은, 유저들로부터의 과금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스펙업의 비용이 정가로 높게 책정되어 있으면, 대부분의 유저들은 지를 시도조차 못한다. 하지만, 아주 낮은 확률로 원하는 아이템을 뽑을 수 있는 뽑기권을 팔면? 일확천금을 노린 유저들이 소액으로나마 도전해 볼 것이다. 어떤 스킬에 매겨진 가격이 천만 원이라고 치자(실제로 리니지에는 이런 스킬이 있다). 천만 원을 한꺼번에 지불하고 구입할 유저의 수는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하지만, 천만 원짜리 스킬을 0.1% 확률로 뽑을 수 있는 뽑기권을 만 원에 판다면? 생각보다 많은 유저가 일확천금을 노리고 도전한다. 누군가는 천만 원을 쓰고도 해당 스킬을 못 뽑겠지만, 어차피 핵과금러라면 뽑을 때까지 돈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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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아이템에 확률을 매긴 것만으로도 소비 감각이 흐려지는데, 여기에 재활용 시스템과 누적 보상 시스템이 추가된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다고 합리화하고, 좀 더 많은 돈을 게임에 쓰게 된다. 설마 그런 사람이 있겠나 싶겠지만, 이 글을 쓰는 내가 바로 그런 흑우중에 한 명이다.

 

운이 없을 걸 알면서도, 아이템에 눈깔이 돌아서 돈지랄, 많이 했다. 변명 같지만, 뽑기를 돌린다는 거, 생각보다 재밌다. 이 부분에 대해서 만큼은 국내 게임회사들이 공들여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제부터 뽑기까지, 온갖 이펙트를 집어넣어 ‘쪼는 맛’을 극대화한다. 파친코나 슬롯머신 저리 가라 할 만큼, 자극적이고 재미있다.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 개발사가 스펙을 파는 여러 방식 중에 하나일 뿐이다. 확률형 아이템이 금지되면, 게임 개발사는 분명 다른 판매 방식을 찾을 것이다. 핵심은, 게임회사가 돈을 받고 스펙을 팔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이다. 캐시 아이템이 처음 출시되고, 게임 회사가 본격적으로 스펙을 돈 받고 팔기 시작한 지 15년이 넘었다.

 

그 사이 게임 회사의 과금 유도는 점점 더 다양화되고, 지독해진다. 게임 회사는 서버 내 몇 개 존재하지 않던 사기템을 풀어버리는 것은 물론, 문양, 스킬, 변신, 펫, 초월 각인, 외변, 숙련도 같은 뽑을 거리를 계속해서 추가했다. 여기에, 아이템 세트를 완성했을 시 추가 효과를 부여하는 시스템, 뽑기를 많이 돌린 유저들에게 재 도전할 기회를 주는 누적 보상 시스템, 꽝이 걸렸을 때 나온 부산물들을 재 조합하여 다시 한번 뽑기를 돌릴 수 있는 합성 시스템 등 여러 가지 장치들이 추가되었다.

 

이러한 시스템들은 너무나도 복잡해서, 신규 유저나 오랜만에 복귀한 유저들은 이해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새로운 시스템이 추가되고, 과금 유도가 발생할 때마다 기존 유저들이 반발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스펙업에 드는 비용 또한, 새로운 시스템 혹은 등급(전설, 신화등급)이 추가될 때마다 비약적으로 올라갔다. 지속된 과금 유도가 누적된 결과, 리니지나 바람의 나라 같은 게임의 상위 계정은 억 단위 현금으로 거래된다. 더 소름 돋는 것은, 판매자는 아마도 판매금액의 5-10배되는 금액을 이 계정에 쏟아부어 왔을 것이라는 거다. 대부분의 계정 거래는, 투자액의 일부만 회수된다.

 

흑우들의 갈라파고스 : 유전유템 무전무템

 

게임사의 과금 유도는, 모바일 환경으로 넘어오면서 더욱 심각해졌다. 모바일 게임들은 대부분 자동 사냥 기능을 제공해서 MMORPG의 가장 큰 진입 장벽이었던 반복 사냥에 대한 부담을 크게 줄여주었다. 자동 사냥 기능을 통해, 게임에 집중할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도 PC나 핸드폰으로 하루 종일 사냥을 돌리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게임 플레이 타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과금에 대한 부담은 크게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재화가 ‘시간’에서 ‘과금’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모바일 MMORPG 게임 유저들은 과거 정액제에 해당하는 시즌 패스 혹은 VIP 이용권을 구입해야 한다. 여기에 스펙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다양한 패키지 상품 및 뽑기권이 출시될 때마다 과금을 해줘야 한다. 유저들의 과금에 대한 저항감은, 모바일 환경으로 넘어오면서 옅어진 게 사실이다. 정확히는 모바일 MMORPG는 원래 돈을 많이 써야 하는 게임이라고 유저들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 결과, 모바일 MMORPG를 출시했던 게임회사들은 돈방석에 앉았다. 지금도 모바일 매출 상위를 독식하는 것은, 리니지 IP를 기반으로 한 리니지 형제들 (리니지W, 리니지 M, 리니지 2M)을 비롯한 MMORPG 게임들이다. 부끄럽지만, 내가 지금까지 주식 투자로 가장 많은 돈을 벌었던 것도 MMORPG 게임을 운영하는 회사에 몰빵했을 때였다. MMORPG의 모바일화는, 게임회사와 그 투자자들에게 있어 엄청난 축복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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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게임 운영사는 스펙을 찍어내고 관리하는 게임 내 중앙은행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미친 듯이 화폐를 찍어내 버리면?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MMORPG 게임 내 캐릭터들의 스펙 또한 지난 15년 동안 어마어마하게 올라가버렸다. 드래곤볼형 스펙 인플레이션이 게임 내에서 벌어진 것이다. 이전이라면, 파티를 짜서 힘겹게 잡았을 몬스터들이 이제는 평타 한방에 녹는 일이 부지기수다. 게임 개발사들은 상위 플레이어들의 스펙이 올라갈 때마다, 더 쎈 몹을 등장시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문제는 스펙업 경쟁에서 뒤처진, 신규 유저나 과금에 예민한 유저들이다. 게임 내 밸런스가, 스펙업을 완성한 상위 유저들을 기준으로 책정되다 보니, 과금 없이는 더 이상 게임이 진행되지 않는 구간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과금을 통해 특정 장비나 스펙을 갖추지 않고서는, 뭔 짓을 해도 사냥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벽에 부딪쳤을 때, 유저는 과금을 해서 벽을 뛰어넘거나, 아니면 게임을 접을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게임의 재미가 점점 없어진다는 것이다. 과금을 통한 유저들의 스펙이 올라간다는 것은, 콘텐츠 소모 속도가 그만큼 빨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속도를 따라잡으려면, 게임 개발사는 기존 몬스터/ 던전을 재탕, 삼탕하는 식으로 콘텐츠를 쥐어짜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신규 몬스터는 대부분 기존 몬스터의 피통과 데미지만 뻥튀기한 뒤, 이름과 색상을 약간 변경하는 식으로 만들어진다. 이미 개연성이나 설정은 갖다 버린 지 오래다. 몬스터가 사용하는 스킬, 공략 패턴도 기존 몬스터를 복붙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게임 플레이 방식의 변화 없이, 내 캐릭터의 스펙이 올라가고, 몬스터의 스펙 또한 올라가는 업데이트가 반복된다. 이게 과연 재미있는 게임일까?

 

MMORPG 게임들의 높은 매출 이면에는, 기존 유저들의 이탈과 장르의 인기도 하락이 있었다. 새로운 과금 시스템이 도입될 때마다, 기존 유저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실제로 많은 유저들이 그토록 애정하던 게임을 떠났다. 또한, MMORPG는 핵과금러와 폐인들을 위한 게임이라는 인식이 널리 자리 잡았다. MMORPG로 새로 유입되는 젊은 친구들,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바람의 나라나 메이플스토리가 국민 게임이었던 내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 말이다. 기존 MMORPG 게임들은 더 이상 신규 유저들이 유입되기 힘든, 상당히 마니악한 장르가 되어버린 것이다.

 

게임 회사들이 이러한 유저들의 반발을 몰랐을까? 그럴 리가. 그럼에도 과금 유도를 늘려왔던 것은, 게임 회사들이 다수의 일반 유저가 아닌 소수의 핵과금러를 대상으로 장사를 했기 때문이다. 모두로부터 정액 요금을 받는 것보다, 과금 능력이 있는 유저들로부터 최대한 많은 돈을 뽑아가는 게 훨씬 이익이 될 거라고 판단했고, 실제로 그랬다. 지금까지는.

 

그들에 베팅에는 기꺼이 현질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든든히 버텨줄거라는 계산이 있었다. 그들은 누구일까. 

 

<계속>

 

추신

 

딴지스 여러분 덕에, 『재무제표가 만만해지는 회계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전에 쓴 딴지 연재물을 확장하여, 이때다 싶어 열쒸미 공부, 정리하여 낸 책입니다. 아마, 현직 회계사 중, 저만큼 회계공부를 싫어했던 회계사는 거의 없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저만큼도 공부를 안 했다면 못 붙으셨을 테니까요). 회계 공부를 싫어했던 제가 스스로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계실 독자분들 상정해 쓴 책이다 보니 재밌습니다(아마도...). 그동안 회계 공부가 하기 싫었다거나, 회계에 관심이 없었던 독자분들(사실상 전원)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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