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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생각과는 다른 나토 정상회의 의미

 

언제나처럼 잡담 와중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중, 윤석열 대통령의 나토 방문(!?)에 대한 기사를 써달라는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의 요청을 받고 눈만 껌벅였다. 잡담할 때야 이 얘기, 저 얘기 다 나오지만 막상 글로 정리하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는 시대가 변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시대는 변하고 있다. 그 한 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다. 끓는 물 속의 개구리라고 해야 할까. 

 

윤석열 대통령의 말처럼,

 

"얼굴 익히는 자리"

 

는 절대로 아니다. 그의 말처럼 39개 국가의 정상들을 모두 만나야 하는 다자외교의 한복판이었기에 얼굴 익히기에도 빠듯했을 수 있다. 만약 그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나토에 갔다면, 우리는 정말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레토릭 또는 수사가 아니다. 실제 위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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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나토 홈페이지>

 

그 '위협'에 대해 몇 개의 카테고리로 나눠서 설명을 하려고 한다. 그 전에 전제 2개만 걸어놓고 시작하겠다.

 

첫째, 윤석열 대통령과 그 부인을 둘러싼 의전 문제나 기타 소소한 에피소드는 무시하겠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가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버거웠으리라 본다. 다자외교는 외교의 꽃이자, 한 국가의 외교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다. 일대일로 만나는 양자 외교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전쟁터의 한복판에 당사자도 아니고, 초청받아 간 상황.

 

더구나 당사자는 외교 경험이 전무하다. 그의 입에서 '얼굴 익히는 자리'라는 발언이 나오는 게 무리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이 회의의 '역사적 무게'를 생각한다면 가볍게 웃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라 할 수 있다. 김건희 여사가 팔을 앞뒤로 흔들든, 윤석열 대통령이 눈을 감고 사진을 찍든, 노룩 악수의 굴욕을 받든 말든 그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국격의 문제는 잠시 잊자).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문제다.

 

진짜는 따로 있다. 우리는 본제(本題)에 집중해야 한다. 언론에서는 노룩이니, 눈을 감았네, 무시 당했네, 라며 호들갑을 떨지만, 더 중요한 건 2022년 6월 28일 열린 역사적인 나토 정상회의가 한국에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둘째, 이번 나토 정상회의 주인공은 '에르도안'이었다.

 

튀르키예는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도 여지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회담 내내 나토 정상들은 에르도안에게 끌려다녀야 했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가입이 가장 첨예한 쟁점 사안이었던 이번 정상회의에서 에르도안을 설득(?!)해야 하는 일이 급선무였다(에르도안과 튀르키예에 대해 더 알고싶은 분들은 이전 연재를 참고하시라. 전쟁, 나토, 튀르키예 1-6편(링크))

 

나토 사무총장과의 면담이라든가, 한국-핀란드 정상회담이 취소된다거나 하는 소소한(?!) 이야기들은 넘어가자. 이 모든 게 에르도안 때문이다. 이 문제를 가지고 윤석열 대통령을 탓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이건 대한민국 국격의 문제가 아니다. 튀르키예와 에르도안의 외교력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윤석열 대통령까지 영향을 받았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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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옌스 스톨텐베르그 NATO 사무총장,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

막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

사진 출처-<로이터>

 

그럼 본제(本題)에 집중해, 하나씩 나토 정상회의의 의미를 짚어보자.

 

2022년 6월 28일 있었던 나토 정상회의를 말하기 전에 2022년 6월에 있었던 국제 사회의 숨 가쁜 움직임들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나토 정상회의에 대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사건 몇 개를 말해야겠다.

 

① 브릭스 또 하나의 축으로

- 6월 22일부터 24일 브릭스 정상회의

 

2022년 6월 22일부터 24일까지 중국 외교부 주관으로 브릭스(BRICS :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 정상회의가 있었다. 이 회의의 핵심 주제는 23일 회담을 마치고 나온 '베이징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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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YTN>

 

"우리는 토론을 통해 브릭스 회원 확대를 추진하는 것을 지지한다."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이 모여 노는 곳에 다른 나라가 기웃거린 거다.

 

"야, 우리 여기 붙어도 돼?"

"어? 진짜? 우리랑 같이 놀고 싶은 거야?"

"응, 저것들이 자기들끼리 다 헤쳐 먹겠다고 우리를 무슨 찐따 꼬붕 취급하잖아."

"진짜? 너희 고생 많았겠다. 우리는 언제나 환영이지!"

 

이렇게 튀르키예·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아르헨티나·인도네시아가 브릭스의 문을 두드린다. 이 움직임은 눈여겨봐야 한다. 처음 브릭스(BRICs)란 용어가 만들어진 게 2003년이었다. 당시 골드만삭스는

 

"러시아·브라질·인도·중국 이 네 나라가 새로운 경제 대국이 될 거다. 2039년이 되면 지금 시장의 맹주인 G6를 모두 추월할 것이다."

 

라고 예상하며 신흥시장에 투자하라고 말했다. 이제 이 브릭스는 경제적인 목소리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블록화 되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기에 튀르키예와 사우디가 붙겠다고 나섰다. 튀르키예는 지난 기사에서도 언급했지만, 언제나 자신들의 이익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아니던가?

 

"지금 다른 쪽에 한 발 걸쳐 둬야 해! 나토에도 한 발 걸쳐서 미국이랑 유럽 쪽에 선을 닿아놓고, 브릭스에 들어가 러시아 중국하고도 한발 걸치는 거야! 지금 다져놓지 않으면, 나중에 우왕좌왕할 거야! 얼른 브릭스 들어가자!"

 

라는 발 빠른 계산으로 브릭스에 다가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관계는 최악이다.

 

"아니, 지가 뭐라고 날 욕해? 살다 보면, 말 안 듣는 놈 죽일 수도 있는 거 아냐?"

 

사우디의 빈 살만 왕세자가 자말 카슈끄지를 암살한 게 문제였다. 바이든은 이 사건에 대해 '너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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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왕실 인사이자 언론인이던 카슈끄지(오른쪽 인물)는

지난 2018년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됐다.

카슈끄지는 미국 워싱턴포스트(WP)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왕세자를 비판했던 인물이다.

출처-<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를 왕따 시켜야 해! 저것들 저거 사람 새끼들 아냐! 어떻게 사람을 토막 내 죽여? 사우디에는 무기도 안 팔 거야!"

 

이렇게 설레발친 게 바이든이었다. 그와 정반대로 자국 내에서 살인 사건을 목도한 에르도안은 뭔가 조처할 듯하다가,

 

"아니 뭐 살다 보면 사람 죽일 수도 있지 뭐. 음... 그래, 카슈끄지 살해사건에 연루된 사우디 용의자 26명은... 이거 사우디아라비아 문제잖아? 이것들 다 사우디 법원으로 이첩해!"

 

2018년 10월 이스탄불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있었던 카슈끄지 살해 사건은 2022년 4월 양국의 극적인 화해로 종결짓게 됐다. 그도 그럴 게 튀르키예는 지금 인플레이션 때문에 나라가 난리 난 상황이다. 사우디도 언제까지 이 문제를 질질 끌고 갈 수는 없었다. 게다가 양국은 자기의 이웃에 있는 이란이 미국과의 핵 합의(JCPOA : 포괄적 공동 행동계획) 복원 협상 타결을 앞두고 있어서 서로 파트너가 필요했다.

 

"씨바, 시아파 맹주인 이란이 다시 국제사회에 복귀하면 지역 안보가 흔들려! 지금 수니파들끼리 뭉쳐야 해. 우리도 친구들끼리 뭉쳐야 해!"

 

이런 상황에서 수니파 국가들의 맹주 격이며, 나름 힘 좀 쓴다고 하는 사우디와 튀르키예가 손을 잡은 터다. 바이든은 이미 대통령 되기 전부터,

 

"빈 살만 저거 사람 새끼 아냐!"

 

를 외쳤던 상황이다. 빈 살만(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다. 현재는 국방장관과 제2부총리를 역임하고 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의 아들이며 왕위 계승 서열 1위이자 사우디의 실세다. 자산규모는 만수르의 수십 배로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를 이끌고 있다)이 미국과 함께하기는 어렵다. 바이든은 사우디가 왕조 국가임을 간과했다. 더 큰 문제는 사우디가 석유 증산에 미온적이란 거다. 전 지구적인 인플레이션 위기 속에 석유라도 증산해서 물가를 잡아야 하는데, 사우디가 협조적이지 않다. 무슨 문제 터질 때마다 사우디에 다가가 석유 증산을 하라고 말하는 미국이 눈꼴시린 거다(실제로 사우디는 미국 말 듣고 증산했다가 피 본 경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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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살만

출처-<위키피디아>

 

"아니, 씨바 무슨 문제 있을 때마다 우리보고 증산하라고 해! 너희는 증산 안 하고 우리만 해서 피 보게 만드는데, 우리가 너희 꼬붕이냐?"

 

결국 OPEC+는 오는 7~8월 원유 생산 규모를 하루 64만 8,000배럴로 기존보다 50% 늘리기로 6월 2일 합의는 봤다. 문제는 사우디가 이래 놓고 원유가격은 올리기 시작한 거다. 사우디아라비아 원유의 60% 이상을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시장에 수출한다. 사우디가 미국 시장에 수출하는 아랍 경질유는 기존 가격을 유지했는데, 아시아 국가와 유럽에 보내는 물량의 가격은 대폭 올린 거다.

 

더불어 사우디도 이제 슬슬 다른 '구멍'을 파기 시작한다. 여기에 브릭스 가입 이야기가 나온 거다.

 

"미국 놈들 언제 뒤통수칠지 몰라! 우리도 친구들 만들어 놓자. 우리 혼자선 버겁지만, 떼거리로 덤비면 미국도 함부로 하지 못할 거야!"

 

브릭스의 핵심이 중국·러시아·인도다. 국제정치학자들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보는 것 중 하나가 중국·러시아·인도가 손을 잡는 경우다. 중국과 인도는 국경분쟁 등등으로(심지어 전쟁까지 한 나라가 아닌가?)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고 있지만, 만약 이들이 하나의 깃발 아래 뭉칠 수만 있다면...

 

"유럽 vs 유라시아 전선 형성"

 

이라는 최악의 형세가 된다. 여기에 사우디와 터키가 붙고, 한반도의 9배에 달하는 땅덩이에 2억 4,0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까지 붙는다면?

 

지금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슬슬 보이지 않는가? 세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② 6월 26일 G7 정상회의

 

나토 정상회의 직전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캐나다의 G7 정상회의가 독일에서 있었다. 이때 주요 회의 의제가 우-러 전쟁 때문에 폭등한 곡물 가격 안정이나, 우-러 전쟁에 대한 대책 등등(러시아 금을 어떻게 할 것이냐 등등)이 있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이 정상회의에 인도·인도네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세네갈이 초청됐다는 거다. 특히 주목해 봐야 하는 건 인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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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G7 정상회의에서 모디·바이든·트뤼도.

화기애애하다.

출처-<인도 총리실 트위터>

 

인도를 왜 초청했던 걸까? 간단하다.

 

"인도야 너희 왜 그래? 응? 러시아 저거 사람 새끼 아니다. 가만히 있는 우크라이나 막 패고 다니잖아. 사람이라면, 우크라이나 편을 들어줘야 하지 않냐?"

"야, 우크라이나 애들 살리자고 우리 애들 죽여야 하냐?"

 

툭 까놓고 말하자. 지금 러시아 석유가 어디로 팔려나가고 있을까? (한국도 러시아 석유 산다. 물론 대놓고 사는 게 아니라 건너건너 쿠션 먹여 들여오지만) 바로 아시아다. 지금 러시아를 살려주는 건 중국과 인도다. 원래 중국의 최대 석유 수입처는 사우디였는데, 지금은 러시아가 이를 빼앗았다. 여기에 인도... 인도는 우-러 전쟁 전보다 무려 25배나 많이 러시아 기름을 사들이고 있다.

 

"야, 북해 브렌트유보다 배럴당 37달러나 싼데 이걸 왜 안 사? 가뜩이나 경제위기다, 인플레이션이다 난리 났는데... 정의는 너희들끼리 지키고, 우리는 우리 국민들 삶의 질이나 지킬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G7 정상들이 부랴부랴 인도를 찾은 거다.

 

"인도야, 러시아 저러는 거 이번 참에 버릇을 고쳐야 해 응? 인도야 뭐가 필요해 응?"

 

인도는 모르쇠로 귀를 닫고 있다. 당장 싼 기름값도 기름값이지만, 인도 군사 장비의 상당 부분이 러시아에서 넘어온 거라(물론, 러시아에 사기도 많이 당했지만) 관계가 틀어지면 그 이후를 보장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전 세계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거다. 러시아가 당긴 방아쇠가 전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인도가 중국 러시아에 붙어서 유럽 對 유라시아 구도가 완성되면 미국의 구상은 완전히 박살 난다. 지금 인도는 쿼드에 한 발을 들이민 상태지만, 만약 인도가 중국과 러시아에 붙고, 튀르키예가 브릭스를 통해 중국 러시아와 가까워지면 어떻게 될까? 당장 인도양이 중국에 넘어간다. 그러면 미국의 對 중국 포위망은 무너진다. 중국의 일대일로가 힘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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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아주경제>

 

튀르키예가 러시아에 붙으면, 흑해가 열리는 건 둘째 문제고, 중동이 위협받는다. '기름'이 위협받게 되는 거다. 그러한 터에 지금 인도가 러시아 기름이 싸다고 잔뜩 사들이는 것도 모자라 러시아와 짝짜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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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이렇게 하는 거예요, 여러분"

출처-<경향신문>

 

미국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이어지는 터다. 

 

G7은 부랴부랴 정상회의를 마치자마자 스페인으로 건너가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당연히 한가하게 얼굴 익히러 나토 정상회의에 간 정상들은 없다.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고, 이 안에서 어떻게 하면 국익을 하나라도 더 챙길까 덤벼들었던 게 이번 나토 정상회의다. 

 

그 복마전에 관한 이야기는 7월 8일 금요일에 이어서 하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