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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까지와 같은 세상이 아니라 완전 다른 세상으로 접어든 거다. 빈말이 아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이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 대해 말할 때 ‘전환기적 정상회의(transformative summit)’가 될 거라고 말한 걸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한다. 회의 전부터 나토 정상회의 관계자나 참석한 이들은,

 

"이번 회의 때 앞으로 세계가 어떻게 움직일지 결정된다."

 

라는 각오로 모인 거였다. 다시 말하지만, 얼굴 익히러 간 사람 없다.

 

나토의 전략개념(Strategic Concept)은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나토 회원국들 간의 의견충돌을 봉합하는 수습책이기도 하다.

 

계 모임을 하나 해봐도 서로 지지고 볶고 하는 게 인간 사이다. 그 많은 나라들이 뭉쳐 있는데 말들이 왜 안 나왔겠는가. 프랑스 같은 경우는 나토를 탈퇴하면서 독자노선을 걷기도 하지 않았는가. 이게 비단 프랑스뿐만 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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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나토 정상 회의

출처-<NATO 홈페이지>

 

1949년 4월 창설 이후 나토 안에선 수없는 반목과 부침이 있었다. 그런데도 나토는 북대서양조약 체결 이후, 단 한 번의 수정도 없이 조약을 잘 지켜왔다. 그 핵심에는 바로 전략개념(Strategic Concept)이 있었다. 이 전략개념이 뭐냐면, 처음엔 군사적 전략이었다(물론, 정치적 의미도 포함돼 있지만).

 

1952년 12월에 나온 '전진 방위전략', 1957년 5월 '대량보복전략', 1968년 1월 '유연반응전략'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전략개념은

 

"소련 놈들이 내려오면 어떻게 대응할지 정리하자!"

 

라는 거였다. 이름만 들어봐도 딱 느낌이 올 거다. 대량보복전략이니 유연반응전략이란 걸 보면 냉전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자, 문제는 1991년 전략 개념(1991년과 1999년의 전략개념은 묶어서 말하는 게 맞을 거 같다)부터 문제가 터졌다.

 

"어... 소련이 무너졌네?"

 

나토가 싸울 적이 사라진 거다. 싸울 적이 사라졌으니 나토도 붕 뜨게 됐다(러시아가 나토에 들어오면 안 되냐고 할 정도로 ‘요상한 상황’이 연출되던 시기다). 이 시기 나토는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그 결과...

 

"우선 군사비 지출을 좀 줄여도 될 거 같고..."

 

"우리가 원래는 서유럽의 안정을 추구하는 게 목적이었는데, 이제 중부 유럽과 동부 유럽 쪽에도 신경을 쓰자."

 

"그래. 하는 김에 민주주의도 전파해서 좀 사람답게 살게 해보자."

 

"테러리즘도 문제니까 잘 살펴보고..."

 

이런 상황에서 1999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코소보 사태가 터졌다.

 

"아니, 저것들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인종청소를 해?"

 

"이거 나토인 우리가 그냥 지켜봐야 해?"

 

"아니!"

 

나토가 자기 방위 영역을 넘어서 지역에 나아간 거다. 이렇게 나토는 하나의 지역 중추로 뻗어나가게 된 거다. 그리고 대망의 2010년 제7차 전략개념(Strategic Concept)이 등장하게 된다. 이때쯤 되면 회원국이 28개국이나 돼서 뭔가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졌다. 그리고 안보 위협의 성격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그렇다. 911 테러가 터진 거다. 이제 새로운 형태의 안보 위협에 대응해야 했다. 문제는 2008년 불어닥친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때문에 다들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다.

 

이때부터 유럽 국가들은 미국에 은근슬쩍 안보를 기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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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O 유럽 회원국과 러시아.

스웨덴과 핀란드가 가입함으로써

2022년 7월 현재, 총 32개국이 되었다

 

2. 최근 10년, 나토의 분위기 

 

격세지감이라는 게 2010년 나토의 전략개념 모태가 돼 주는 게 올브라이트 보고서(Madeleine Albright Report : 국제정치의 대모 故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만든 거다)인데, 여기에 보면

 

"러시아랑 협력을 해야 해. 일종의 전략적 파트너쉽을 맺고, 잘 지내보자고."

 

이런 내용과,

 

"집단방위를 위해선 미사일 방어를 해야 해."

 

대목이 나온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러시아랑 잘 지내보자는 말이 나왔는데... 정말 세상사 모를 일이다(2010년 나토 전략개념에도 러시아는 ‘전략적 파트너’로 나오게 된다). 이걸 잘 생각해 봐야 하는 게 나토의 시작은 지역 내 안보 방위 동맹이었다. 그러나 2010년이 되면서 전 지구적인 안보 동맹의 형태로 변한 거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정치적인 기능이 확대"

 

됐다는 거다.

 

이 당시 나토 구성국들 사이에서 첨예한 갈등이 본격화되기도 했다.

 

"아니 나토란 게 유럽 내에서 서로 품앗이해서 공동 방위를 하자는 거 아니었어? 우리가 언제부터 지구방위군 역할을 했다고 그래?"

 

"유럽 안만 지키면 되는데, 왜 나토 국가 아닌 나라 분쟁에 개입해야 하고... 그리고 중동은 왜 가는 건데?"

 

재스민 혁명 당시, 나토군이 리비아 사태에 개입할 때 말들이 많았다. 고려해야 하는 게 있다. 초창기 나토와 달리 당시만 해도 나토 가입국 숫자가 28개국으로 훌쩍 늘어난 상황이 된 것이다. 나토를 주도하는 국가의 ‘생각’과 그렇지 않은 가입국 간의 의견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때쯤이면 ‘브릭스’에 대한 눈치를 슬슬 보게 됐다는 거다.

 

"이렇게 계속 유럽 밖으로 돌면 브릭스 애들도 슬슬 짜증 내 할 거 같은데?"

 

"그러게, 브릭스 애들도 지들끼리 뭉치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이렇게 치고 나가다간 충돌 일으킬 거 같은데..."

 

"다른 건 모르겠고, 유럽 지키는 것도 아니고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거 반대! 유럽 지키는 것도 아닌데 분담금을 왜 내야 하는데? 내가 지구 방위군 하겠다고 나토 가입한 줄 알아?"

 

슬슬 이렇게 분위기가 갈라졌던 게 이 시점이었다.

 

3. 이번 나토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었다 

 

2022년 6월 나토는 또 하나의 전략 개념을 내놓았다. 이번 전략 개념의 핵심은,

 

"러시아는 나토에 가장 큰 안보 위협이다... 한 마디로 나쁜 놈이다!"

 

"중국은 체제에 대한 도전(systemic challenge)을 하는... 애들이야."

 

라는 것. 이걸 종합해 보면,

 

"당장 발등에 불 떨어진 건 러시아고, 중국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손 봐야 할 놈들이야."

 

란 말이 된다. 이제 중국도 나토의 ‘적’으로 분류되기 시작한 터다. 이걸 말하는 자리에 윤석열 대통령이 자리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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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NATO 홈페이지>

 

윤석열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 전후, 중국의 관영 언론과 중국 외교부는 한국에 대해 어마어마한 경고를 날렸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나토의 지리적 범주가 아니지 않은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와 국민은 군사 집단을 끌어들여 분열과 대항을 선동하는 어떤 언행에도 결연히 반대한다!"

 - 중국 외교부 대변인 왕원빈의 6월 23일 자 발언 中 발췌

 

"윤석열 정부가 미국에 의존해 점차 외교적 독립성을 상실하면 중국과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 6월 28일 자 中 발췌

 

중국의 날 선 반응들이 하나둘씩 쌓여나가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일관되게 미국에 치중한 외교정책을 말해왔다. 이건 잘 생각해 봐야 하는 게, 어차피 한국은 조만간 미국과 중국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 시기를 앞당긴 건지, 아니면 이참에 확실히 노선을 정해 놓은 건지 그 사정이 애매하다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의 머리 속에 들어가지 않은 이상, 알 수 없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정보로는 어떤 ‘인센티브’도 생각하지 않고, 그렇다고 철학도 없이, 무턱대고 미국을 선택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향후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결정 중 하나인데 말이다. 

 

늘 말하지만, 국내 정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정치를 끌어들이는 것처럼 최악의 지도자는 없다.

 

중국에 있어서 한국은 상당히 독특한 지위의 국가이다. 당장 원유나 원자재를 제외하고, 중국과의 무역에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한 국가가 많지 않다. 그중에서 한국은 상당히 독보적인 존재이다. 이런 나라의 수장이 대통령 당선 전부터 미국과의 관계 복원하겠다고 선언했던 거다.

 

이건 단순히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다. 지면을 통해 자주 언급한 <거대한 체스판>... 이미 사반세기 전에 브레진스키 교수는 한국의 선택에 대해 말해왔다. 만약 윤석열 정부가 지금 ‘선택’을 한 거라면, 최소한 에르도안이나 인도 모디 총리처럼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한 후에 선택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현재로서 한국은 그 모든 카드를 날려 버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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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바이든,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출처-<NATO 홈페이지>

 

이 중차대한 시기에 한국은 외교적 퇴로를 차단해 버리고, 미국에 모든 걸 걸어버린 거다. 물론, 어느 순간에는 선택해야 했고 그게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 될 확률은 높다. 그런데, 그걸 이렇게 섣불리 내놔야 했을까? 내가 충격을 받았던 건 윤석열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 회담 성과에 대해 말한 대목에서였다.

 

"한미일 3자 정상회담이 이번 순방에서 가장 의미가 있는 일정이었다."

 - 윤석열 대통령이 귀국길에서 했던 발언

 

이 말을 들었을 때 눈만 껌벅였다.

 

"... 이건 아니잖아"

 

란 말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퍼즐이 맞춰졌다.

 

4. 모든 판돈이 사라졌다 

 

2022년 5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을 찾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취임 이후 최단 기간에 한미 정상회담을 했다며 자화자찬하는 분위기였다. 이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들어보자.

 

"안보는 결코 타협할 수 없다는 공통의 인식 아래 강력한 대북 억지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의 포괄적 전략동맹 강화와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에 참여하겠다고 밝히게 된다. 그리고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참여가 공식화됐다.

 

IPEF는 간단히 말해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출범시킨 경제협의체다. 중국은 IPEF를 두고는,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시도다!"라면서 격앙된 반응을 보인다... 이게 뭔지 대충 느낌이 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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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바이든 대통령 인스타그램 캡처>

 

너무 쉽게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반도체나 그런 건 다 빼고 이야기해보자). 이후 바이든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회담한다. 이때 기시다 총리의 발언을 들어보자.

 

"일본의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바탕이 되는 상당한 방위비의 증액 결의를 표명했고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강한 지지를 얻었다. ··· (중략··· 적 기지 공격 능력을 포함해 모든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겠다."

 

기시다 총리의 발언에 대해 바이든은 쌍수 들어 환영했다.

 

그럼 기시다 총리는? 나토 정상회의 내내,

 

"대북 억지력 강화를 위해 한미일 공조 강화가 필수 불가결한 문제이다."

 

"(북한) 핵실험이 이뤄진 경우, 공동 훈련을 포함해 한미일이 함께 대응하고자 한다."

 

아주 노골적으로 한미일 동맹을 깔아놓고 이야기 했다. 한미일 공조가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이 정도로, 그것도 일본이, ‘대놓고’ 말한다는 건, 그동안 국제정치와 전략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알 테다. 

 

"일본의 이익에 완벽히 부합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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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

 

 

그렇다면, 한국 측 입장은 뭘까? 윤석열 대통령의 워딩 그대로를 들어보자.

 

"한미일 간 북핵 위기 관련 안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

 

위험한 발언이 나오기 시작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 생각으로 이 말을 했던 걸까? 기다 아니다 떠나서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한국은 뭘 가져갔던 걸까? 당장 바이든은,

 

"대서양과 태평양의 민주주의 동맹과 파트너들이 한데 모여 우리 미래의 도전에 집중했습니다. 중국 등의 도전들에 대응해 규범에 입각한 질서로 수호했습니다."

-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연설 中 발췌

 

이 연설을 잘 살펴보면,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가 나토의 태평양 파트너국이 된 이유가 나온다. 이들은 이제 중국과 대놓고 적대시하겠다는 거다. 호주와 일본은 원래부터 그런 나라니까(오커스에, 쿼드에, 파이브 아이즈... 등등) 그러려니 하자. 한국이 여기에 들어선 거다. 대놓고 중국에 칼을 들이민 터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할 만한 대가가 돌아온 게 있을까? 대표적인 예가 나토 사무총장과의 회담이었다.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핵... 이거 진짜 위험하다. 한국 정부가 내놓는 대북정책... 이거 너희도 잘 알지? 이거 관심 좀 가져주고, 그래 협력 좀 해 주라."

 

라고 말하니까 사무총장은 너무도 당연하게,

 

"우리는 언제나 한국 정부 입장을 변함없이 지지한다. 앞으로도 쭉 계속 공조하자. 오케이?"

 

이런 반응이 돌아왔다. 정말 쌀로 밥 짓는 이야기가 계속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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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한테도 북한 핵 문제를 이야기했다. 돌아온 대답은,

 

"그럼 그럼, 우리는 너희 편이야. 언제나 너희 입장 지지할게."

 

라는 원론적인, 정말 또다시 쌀로 밥 짓는 소리가 돌아왔다.

 

뭘 한 걸까. 시대가 움직이는 한가운데 들어가 제대로 ‘병풍’ 노릇 해주고 온 거다. 만약 병풍 노릇을 하기로 했다면 제대로 대가를 받고 움직여야 했는데, 쌀로 밥 짓는 소리를 듣고자 너무도 쉽게 중국을 버렸다.

 

계속 강조했지만, 한국은 이 판에서 언젠가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 선택의 순간에 우리는 미국을 택할 확률이 높다. 다만 막판 택일의 순간은 '올인'의 판이다. 그 결정까지 상당한 시간을 들일 수 있다는 게 한국의 독특한 지위를 상징하며 동시에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가장 큰 판이다.

 

중국을 버리기로 했다 하더라도 최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가지고 우리 이득을 챙기든가, 아니라면 추후 중국과의 관계를 생각해 최소한의 여지는 남겨놔야 하는데, 한국은 ‘태평양의 민주주의 동맹’에 이름을 올린다. 가장 크게 먹기 위해 차곡차곡 쌓아온 판돈을 이번에 써버렸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얼굴을 익히고 돌아왔다. 나토 회의에서 거둔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