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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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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이성과 힘>

 

 

프롤로그 : 부의 세습보다 질긴 가난의 세습 

 

모든 선생님 중에 학생들이 유일하게 신뢰하는 수학 교사가 교실로 들어왔다. 그는 손에 책을 들고 있지 않았다. 오늘이 그의 마지막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학교를 그만두는 이유는 간단했다. 대입 고사에서 그가 담당한 반의 수학 점수가 예년보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수학 교사는 수업 대신 아이들에게 뫼비우스의 띠를 만들어 보여주었다. 뫼비우스의 띠란 안과 겉의 구분이 없는 곡면이다. 한쪽 면만 갖는 곡면이어서 출발점의 끝은 바로 그 출발점의 뒷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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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 띠

 

끝으로 내부와 외부가 따로 없는 입체는 없는지 생각해보자. 내부와 외부를 경계지을 수 없는 입체, 즉 뫼비우스의 입체를 상상해보라.

 

차차 알게 되겠지만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없이 간사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제군은 이제 대학에 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제군은 결코 제군의 지식이 제군이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여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신분제는 폐지되었지만 그 끝은 또 다른 신분제이다. 지배하는 자들과 지배당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호칭은 변했을지언정, 지배의 방법이 세련되었을지언정, 신분제는 영원히 살아있다. 어쩌면 우리는 뫼비우스의 입체 속을 떠도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끝내 이 뫼비우스 입체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난장이 김불이 씨의 장남인 영수는 중학교를 다니다 말고 공장에 나가야 했다. 영수는 자신이 일하는 인쇄 공장에서 이상한 매매 문서가 들어 있는 원고를 조판한 적이 있었다. 그 매매 문서는 ‘노비 매매 문서’의 한 부분이었다. 영수는 깨달았다. 

 

자신의 아버지만 고생한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할아버지...... 대대로 올라갈수록 고생은 더 심했다. 어머니는 비록 영수에게 아버지 탓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영수는 알고 있었다.

 

우리의 조상은 상속·매매·기증·공출의 대상이었다.

 

어머니는 장남인 나에게만 말했다. 외할머니에게 들은 말을 나에게 전한 것이었다. 천년을 두고 우리의 조상은 자손들에게 이 말을 남겼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도 씨종의 자식이었다.

 

부의 세습보다 더 질긴 것은 가난의 세습이었다.

 

 

난장이의 가족이 매일 천국을 생각한 이유

 

난장이 김불이 씨는 그의 아내, 장남 영수, 차남 영호, 그리고 막내딸 영희, 이렇게 다섯 가족의 가장이다. 난장이네 가족은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의 비탈진 고지대에 자리 잡은 빈민촌에 판잣집을 짓고 거기에 둥지를 틀고 살았다. 난장이네 집보다 더 높은 곳에는 교회가 있었고, 빈민촌의 한구석에는 높디높은 굴뚝을 가진 벽돌 공장이 있었다.

 

마을 아래에는 폐수가 흐르는 개천이 하나 있었다. 난장이는 가끔 이 개천에 주워 온 널빤지들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조각배를 띄우곤 했다. 개천은 부잣집들이 모여 사는 아랫동네와 난장이네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의 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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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부동산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이 마을을 보았다면, 틀림없이 이 빈민촌을 싹 밀어버리고 멋진 아파트를 짓자고 했을 것이다. 지대가 높아 전망이 좋고 개천마저 하나 흐르고 있으니 멋진 ‘개천뷰’ 아파트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개천 주변을 콘트리트 판넬로 대충 정비하면 ‘00 HILL RIVER’ 따위의 이름을 붙인 아파트 단지 하나는 충분히 지을 수 있었다.

 

그럭저럭 버티고 살 수는 있었으나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아랫마을에서 올라오는 고기 굽는 냄새였다. 저녁 시간이 되면 난장이네 가족은 조각 마루에 둘러앉아 보리밥에 까만 된장, 그리고 시든 고추 두어 개와 졸인 감자를 놓고 식사를 했다. 그때 아랫마을에서 올라오는 고기 굽는 냄새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가끔 동생들이 아랫마을로 가 고기 굽는 냄새를 맡고 오면 영수는 동생들을 모질게 혼냈다.

 

우리의 밥상에 우리 선조들 대부터 묶어 흘려보낸 시간들이 올라 앉았다. 그것을 잡아 칼날로 눌렀다면 피와 눈물, 그리고 힘없는 웃음 소리와  밭은 기침 소리가 그 마디마디에서 흘러 떨어졌을 것이다.

 

김불이 씨의 키는 백십칠 센티미터였고 체중은 삼십이 킬로그램이었다. 그는 그 체격에 각종 낡은 공구들이 들어 있는 자루를 메고 펌프 설치와 수도 고치는 일을 했다.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수돗물이 잘 나오지 않아 고생을 했다. 돈이 있는 집들은 따로 우물을 파고 펌프를 달기도 했으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늦은 밤에 물을 받아 놓고 쓰고는 했다. 김불이 씨는 그런 집들의 수도꼭지를 낮게 계량기 뒤쪽에 새로 설치해 그나마 이른 시간대에 물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어느 날 수도꼭지를 새로 달던 난장이는 동네 펌프집 사장으로부터 무지막지한 구타를 당했다. 그는 난장이의 얼굴을 후려갈기고 한 손으로 들어 올려 가슴을 쥐어박고는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난장이는 쓰러져 꿈틀거렸고 사내는 그를 벌레처럼 다루었다. 왜 이 동네에 와서 기웃거리며 남의 장사를 방해하냐는 것이 폭력의 이유였다. 

 

난장이는 힘이 달려 더 이상 무거운 자루를 메고 수도꼭지 다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때때로 가해지는 폭력도 견딜 수 없었다. 이는 망가져 잠을 이루지 못했고 말도 어눌해졌다. 난장이는 가끔 약국에서 백반을 사 먹으며 버텼다.

 

“아버지는 너무 지치셨다.”

 

어머니가 말했다.

 

“알겠니? 아버지를 믿지 마라. 너희들이 아버지 대신 일해야 한다.”

 

난장이네 가족 모두가 일을 해야했다. 그의 아내는 인쇄소 제본 공장에 나가 접지 일을 했다. 영수는 인쇄소 공무부 조역으로 일을 시작했다. 동생 영호는 먼저 철공소 조수로 들어가 잔심부름을 했다. 그리고 영희는 큰길가 슈퍼마켓 한쪽에 자리 잡은 빵집에서 일했다. 모두 중학교도 그만두어야 했다.

 

우리는 죽어라 하고 일했다. 우리의 팔목은 공장 안에서 굵어갔다.

 

영수가 좋아했던 같은 동네 명희는 영수에게 공장 다니는 사람은 되지 않겠노라는 약속을 받고 자신의 가슴을 만지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영수는 명희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명희 역시 나이를 먹으며 다방 종업원이 되고, 고속버스 안내양이 되고, 골프장 캐디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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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에게 허락된 유일한 선택

 

난장이네 가족이 행복했을 때가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판잣집을 지을 때였다. 난장이와 그의 아내는 개천에서 돌을 져와 계단을 만들었고, 벽에는 시멘트를 발랐다. 장독대를 지을 때는 ‘명희 언니는 큰오빠를 좋아한다’고 영희가 짓궂게 낙서를 하기도 했다. 

 

자식들에게 단 한 번 김불이 씨가 거인으로 보였던 때도 있었다. 가끔 선거 때가 되면 좋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찾아와 난장이에게까지 악수를 청하곤 했다. 그 사람들은 동네를 양성화시킬 것이며, 도로도 포장해주겠다고 했다. 난장이는 발뒤꿈치를 들고 그들과 악수했다.

 

아버지가 어떤 자세를 취했건 상관이 없었다. 난장이 아버지가 우리들에게는 거인처럼 보였다.

 

어느 날 아침 난장이네 가족은 보리밥마저 먹을 수 없었다. 통장이 ‘철거 계고장’을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밥이 넘어갈 수 없었다. 그 계고장에는 언제 언제까지 자진철거하지 않으면 강제 철거를 실시할 것이며, 그 비용을 징수할 것이라고 준엄하게 쓰여 있었다. 물론 구청장의 이름과 직인이 찍혀 있었다. 입주권 따위는 당장 밤이슬 피할 공간도 없는 그들에게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었다. 난장이네 가족은 갈 곳이 없었다.

 

영희는 마당가 팬지꽃 앞에 서 있었다.  

 

“우린 못 떠나. 갈 곳이 없어. 그렇지 큰오빠?”

 

“어떤 놈이든 집을 헐러 오는 놈은 그냥 놔두지 않을 테야.”

 

영호가 말했다.

 

“그만둬.”

 

내가 말했다.

 

“그들 옆엔 법이 있다.”

 

아버지 말대로 모든 이야기는 끝나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당가 팬지꽃 앞에 서 있던 영희가 고개를 돌렸다. 영희는 울고 있었다.

 

영희는 집을 나갔고, 영수는 꿈에서 영희를 보았다. 꿈속의 영희는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 놓고 있었다. 그 어떤 해결책도 있을 수 없었다. 결국 난장이네 가족도 지하실 셋방으로라도 이사를 가려면 입주권을 팔아야 했다. 동네에는 고급차를 타고 와 입주권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난장이의 몸은 작았지만, 고통은 거대했다.

 

집이 헐리는 날, 쇠망치를 든 사람들이 난장이의 집을 에워싸고 서 있었다. 영수는 대문을 잠갔다. 난장이의 아내는 고깃국을 끓였고 쇠고기를 구웠다. 난장이는 구운 쇠고기를 영수와 영호의 밥그릇에 넣어 주었다. 뿌연 시멘트 먼지 속에서 난장이네 가족의 행복동 마지막 만찬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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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후 난장이의 아내는 부엌에서 식칼, 도마 등을 챙겨 나왔고, 영수는 이불과 옷가지를 싼 보따리를 메고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난장이는 자신의 공구들이 들어 있는 부댓자루를 메고 나왔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난장이네 가족의 집을 부수기 시작했다.

 

난장이는 무너지는 집을 뒤로 하고 걸어갔다. 난장이보다 더 작은 난장이의 그림자가 그 뒤를 따랐다. 밭은 기침을 연신 해 대며 걸었다. 난장이의 머리는 달나라로 가고 있었다. 몇 번이고 지구 대기권을 넘어 달나라로 가고 있었다. 그는 이 지구에는 자신이 살 곳이 없음을 결국 깨달은 것이다. 난장이에게는 단 한 순간이라도 편안하게 가족들과 보리밥 한술 먹을 공간을, 지구는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난장이네 마을 높은 곳에 있는 교회의 목사는 인간의 숭고함·고통·구원을 말했다. 그러나 난장이에게는 숭고함도 없었고, 구원도 있을 리 없었다. 오직 고통만이 있었다. 난장이는 자식들만큼은 자신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이들은 난장이의 자식들이었다. 자식들은 이미 시작도 하기 전에 첫 싸움에서 져버렸다. 이제 이곳은 그 어떤 희망도 없었다. 이곳에서 구할 자비는 없었다. 이제 난장이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은 지구를 떠나 달나라로 가는 것이었다.

 

“살기가 너무 힘들다.”

 

아버지가 말했었다.

 

“그래서 달에 가 천문대 일을 보기로 했다. 내가 할 일은 망원 렌즈를 지키는 일이야. 달에는 먼지가 없기 때문에 렌즈 소제(더럽거나 어지러운 것을 쓸고 닦아서 깨끗하게 함) 같은 것도 할 필요가 없지. 그래도 렌즈를 지켜야 할 사람은 필요하다.”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다고 말하는 아들에게 난장이는 쇠공을 쏘아 올려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난장이의 눈에 곧 헐릴 벽돌 공장의 높은 굴뚝이 다가왔다. 달나라로 쇠공을 쏘아 올리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난장이는 굴뚝을 기어 올라가 맨 꼭대기에 섰다. 

 

그 높은 굴뚝 위에서는 한 걸음 정도 앞에 달이 걸려 있었다. 난장이는 굴뚝 제일 위의 피뢰침을 잡고 한걸음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다음 걸음은 달을 디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난장이는 벽돌 공장 굴뚝 위에 서서 손을 들어 보였다. 하늘을 쳐다보는 자식들 위로 까만 쇠공이 일직선으로 하늘을 가르며 날아갔다. 난장이는 그 자세로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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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몸이 작았다고 생명의 양까지 작았을 리는 없다. 아버지는 몸보다 큰 고통을 죽어서 벗었다.

 

어머니는 반 줌의 재를 쌌던 흰 종이를 물 위에 띄웠다. 우리는 물가에 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없어졌다. 바람이 불었다. 햇볕이 따뜻했다. 몇 마리의 새가 어머니 옆에서 날았다.

   

 

고통의 대물림

 

난장이네 가족들은 ‘은강’시의 빈민촌에서 다시 삶을 시작했다. 은강시는 썩은 바닷물이 찬 항구와 유독가스를 뿜어내는 공업단지를 갖고 있는 큰 도시였다. 은강시는 또한 ‘은강그룹’의 도시이기도 했다. 

 

일자리가 많았던 이유는 저임금에 살인적인 노동강도 때문이었다. 영호는 은강전기 제일공장에 들어갔고 영희는 은강방직 공장에 들어갔다. 영수는 은강자동차에 들어갔다. 은강시로 이사 온 난장이네 가족은 호흡까지 조심스럽게 했다. 바짝 마른 콩알처럼 아주 약한 호흡을 했다. 

 

나는 은강에서의 생존비를 생각했다. 생활비가 아니라 살아 남기 위한 생존비였다. 우리 삼남매는 죽어라 공장 일을 했다.

 

난장이의 자식들은 아버지의 방식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죽지 않고 살면서 고통을 줄여나가고자 했다. 은강그룹의 회장은 해마다 수십억의 돈을 사회에 기부했지만 정작 그 돈을 벌어주는 은강의 노동자들은 생활이 아닌 생존에 허덕여야 했다. 영수는 진심으로 호소했다.

 

“종업원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올린 수치스러운 이윤을 어느 사회에 어떻게 환원합니까? 그 이윤을 또 어떤 주주들에게 나누어주고, 그 끔찍한 이윤을 축적해 또 뭘 하려는 거죠? 그런 기업은 더 이상 자라면 안 된다는 생각을 저희들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영수는 이후 그 어떤 공장에도 취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느닷없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죽지 않을 만큼의 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어느 날 영수는 게시판 앞에 서 있었다. 게시판에는 퇴직·해고·출근정지 처분자의 명단이 적혀 있었다. 난장이의 자식들은 아버지처럼 고생했고, 아버지처럼 점점 키가 줄어 난장이가 되어 갔다. 자식들은 자주 아버지의 고통을 떠올렸다. 

 

나는 게시판 앞에 아버지보다 작은 몸이 되어 서 있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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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는 혓바늘이 빨갛게 돋고, 입에서는 고무 냄새와 쇠 냄새가 났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밥과 시래기와 꽁치를 넣어 끓인 국도 반 정도만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주 코피를 흘렸다. 영희는 섭씨 삼십구 도의 공장 안에서 한 시간에 칠천이백 걸음을 걸으며 일했다. 영희는 가끔 잠을 자다가 일어나 울었다. 

 

영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난장이가 되어 달나라를 향해 닿을 수는 없지만, 쇠공을 던지든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해야 했다.

 

모두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예외란 있을 수 없었다. 은강에서는 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에필로그 : 진짜 개새끼는 누구일까

 

은강그룹 회장의 아들 ‘경훈’은 숙부의 죽음 때문에 유학 도중에 한국에 와야만 했다. 숙부는 난장이의 큰아들이라는 놈이 칼로 찔러 죽였다고 했다. 그 살인자는 원래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려 했으나 숙부를 아버지로 착각하여 칼로 찔렀다고 했다.

 

검사의 물음에 난장이의 아들은 뉘우치는 빛 하나 없이 모든 것을 말했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회사 측의 노조 파괴와 온갖 불법들, 그리고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테러 행위에 맞선 것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라고 했다. 

 

경훈은 노조를 악마의 도구라고 말했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만약 노조가 결성된 해당 계열사는 중역들을 문책할 것이라는 말도 떠올렸다. 경훈은 난장이의 아들을 향해 “개새끼!”라고 외쳤다. 이따위 재판을 하는 것조차 납득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짜증이 치밀어 왔다. 방청석을 가득 메운 노동자들의 몸에서 나는 땀 냄새와 같은 도저히 참기 어려운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난장이의 아들이 사형 선고를 받았다. 경훈은 그룹 내 우수한 인재들로 연구진을 만들어서 먹으면 행복한 마음으로 일만 하게 하는 약을 만들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경훈은 ‘애국 부녀 봉사회의 불우 이웃 돕기 모금 집회’에 나간다는 어머니를 배웅하고 나서 경제사 책을 들었다. 은강그룹 회장인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읽을 참이었다. 그러나 곧 잠이 들었고 꿈을 꾸었다.

 

한 떼의 고기들이 내 그물을 향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살찐 고기들이 아니었다. 앙상한 뼈와 가시에 두 눈과 가슴지느러미만 단 큰 가시고기들이었다. 수백 수천 마리의 큰가시고기들이 뼈와 가시 소리를 내며 와 내 그물에 걸렸다. 나는 무서웠다.

 

그것들이 그물코에서 빠져나와 수천 수만 줄기의 인광을 뿜어내며 나에게 뛰어올랐다. 가시가 몸에 닿을 때마다 나의 살갗은 찢어졌다. 그렇게 가리가리 찢기는 아픔 속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다 깼다.

 

 

진정한 거인이 인정받는 사회를 위하여

 

언젠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아니, 이 책은 지금도 잘 팔리고 있다. 2018년에는 20주년 기념 특별판이 발행되었고, 그 인기에 힘입어 지금까지 시리즈로 8편까지 출간되었다. 책의 내용이 얼마나 좋은지, 또는 이 책을 읽고 얼마나 많은 아빠가 부자가 되었는지는 모른다. 제목이 주는 질식할 것만 같은 천박함에 서점에 갈 일이 있어도 이 책이 꽂혀 있는 서가는 눈길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아빠들은 주로 노동하는 아빠들이다. 부자 아빠들은 노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본이나 금융으로 돈을 벌기 때문이다. 현 체제에서는 근로 소득이 절대 금융 소득을 따라갈 수 없다. 위에서 말한 천박함을 느꼈던 이유는 노동하는 아빠들을 난장이로 만드는 것에서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노동의 가치를 업신여기는 것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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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국경제>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재화는 결국 자연물과 인간 노동력의 산물이다. 둘 다 한정된 자원이다. 과거에는 권력과 무력으로 소수가 이 재화를 독점했다. 오늘날이라고 본질이 크게 다르진 않다. 차이점이라면 과거의 그것을 복잡한 법과 금융체계가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월가나 여의도로 상징되는 금융가의 고소득자들은 그 무엇도 생산해내지 않지만 일하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소득을 올린다.

 

폭력은 세련되어졌고, 착취는 복잡한 법률의 비호 아래 합법이 되었다.

 

“아저씨는 평생 동안 아무 일도 안 하셨습니까?”

 

“일을 안 하다니? 일을 했지. 열심히 일했어. 우리 식구 모두가 열심히 일했네.”

 

“그럼 무슨 나쁜 짓을 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법을 어긴 적 없으세요?”

 

“없어.”

 

“그렇다면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어요.”

 

“기도도 올렸지.”

 

“그런데, 이게 뭡니까? 뭐가 잘못된 게 분명하죠? 불공평하지 않으세요? 이제 이 죽은 땅을 떠나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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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의 비극’은 개인의 문제가 원인이 아니다. ‘죽은 땅’의 체제가 비극의 원인이다. 체제가, 우리 사회가 이 땅의 노동자 아버지들을 난장이로 만들고 있다. 따라서 내가, 나의 아버지가 난장이가 아닌 거인이 되는 것도 역시 개인의 역량이 아닌 체제의 문제인 것이다. 체제가 바뀌지 않으면 ‘난장이의 비극’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난장이가 아니라면, 그래서 이 구질구질한 김불이 씨의 인생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에게 묻고 싶다. 아직도 제대로 된 안전장치가 없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 소득이 보잘것없는 취급을 받는 우리 사회에서, 당신은 영원히 거인으로 살 자신이 있는가?

 

거인이었지만 난장이로 삶을 끝낸 ‘김불이’ 씨를 위해 레퀴엠(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 음악) 한 곡과 함께 영희의 팬지꽃 한 송이를 보낸다. 그리고 모든 ‘일하는 아버지(어머니)’들이야말로 진정한 거인임을 말씀드리며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이 소설을 쓴 조세희 작가의 인터뷰를 소개하며 열한 번째 인생 탐구를 마무리한다. 

 

“내가 ‘난장이’를 쓸 당시엔 30년 뒤에도 읽힐 거라곤 상상 못했지.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읽힐지, 나로선 알 수 없어. 다만 확실한 건 세상이 지금 상태로 가면 깜깜하다는 거, 그래서 미래 아이들이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며 눈물지을지도 모른다는 거, 내 걱정은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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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EBS북채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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