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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 저녁, 딴지일보 4층에서 각기 다른 책을 쓴 두 명의 저자를 만났다. 자리에는 이 책들을 펴낸 출판사 관계자도 함께였다.

 

딱 여기까지만 하면 ‘아, 딴지이너뷰가 일타이피로 책 홍보를 하는구나’할 수도 있겠다. 출판사 관계자 입장에서 보자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그렇게 고분고분 친절하고 이타적인 애덜은 아니잖아(뭐, 우리야 10원 한 푼 받는 거 없으니). 그러니 아직 뒤로 가기를 누지르는 건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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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불안한 것이 당연합니다>라는 책을 이날 만난 한덕현 정신의학과 교수가 썼다. 정신과 의사가 쓴 불안에 대한 책이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신박한 건 아니다만 그가 국내에서 스포츠 정신 의학을 제대로 전공한 아마도 최초의 정신과 전문의라는 설명을 덧붙이면 조금 눈길이 간다. 거기에 20년 가까이 국내 여러 프로야구팀의 심리 자문을 맡으면서 선수와 코칭 스탭 상담을 해왔다는 것까지 알고 나면 제법 호기심까지 생긴다. 적어도 모태 야구팬인 나로서는 “그 이너뷰, 내가 한 번 해보겠소” 자진해서 나설 정도는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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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만난 또 다른 저자는 <뛰지마라, 지친다>를 쓴 이지풍 한화 이글스 수석 트레이닝 코치다. 이지풍 코치가 현업에서 잠시 떠나 있던 지난해에 딴지에 연재한 글(링크)을 바탕으로 낸 책이니 딴지 독자들에게는 익숙할 거다. 그에 대해 짧게 소개하자면 김용일 LG트윈스 수석 트레이닝 코치와 더불어 한국 프로야구의 유이한 네임드 트레이닝 코치라 할 수 있겠다.(기왕이면 ‘유일한’이라고 소개하고 싶었는데 당사자가 한사코 김용일 트레이닝 코치를 빼놓을 수 없다고 해서 수정했다. 그의 말이 맞기는 하다) 이 둘을 제외하면 프로야구팬들에게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트레이닝 코치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지풍 코치는 야구 선수 경력이 전무한 ‘비선출’ 트레이닝 코치였음에도 자기 존재감을 뿜뿜해온 덕에 야구 꽤나 봤다 하는 사람 치고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다. 글타. 이런 캐릭터는 딱히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세간의 평이 어떠할지 대강 견적이 나오는 바, 좋지 않게 보는 자들은 ‘튄다’, ‘잘난척한다’, ‘재수없다’고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능력은 확실하다’, ‘다르다’, ‘난놈’이라고 인정하는 부류도 있게 마련이다.

 

고로 이날 딴지이너뷰가 만난 이들은 프로야구 선수들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분덜이 이번에는 독자들의 마음도 함 어루만져 보겠다는 망측한 의도로 책을 써들고 나타난 건데, 글쎄 그게 잘 될 지 안 될지를 떠나서 어디 야구판 얘기라도 함 들어볼만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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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뷰는 지성인들의 격조 높은 대화답게 높임말로 진행되었으나 독자들의 오글거림과 피로를 방지하기 위해 생략했음을 밝힌다.

 

환영받지 못했던 자들

 

이지풍 코치가 국내 유이한 네임드 트레이닝 코치라는 잡담을 하다가,

 

홀짝(이하 ‘홀’) : 여전히 두 사람 말고 없지 않나. 다른 트레이닝 코치들을 폄하하는 건 아니고 이름이 되게 알려진 트레이닝 코치는 여전히.

 

한덕현(이하 ‘한’) : 그러니까 캐릭터를 가진 트레이닝 코치의 정말 유이한 사람이지.

 

이지풍(이하 ‘이’) : 이름도 특이하고.

 

홀 : 기존에는 트레이닝 코치가 이름이 알려진다는 것 자체가 없는 일이었는데 알려졌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안 좋게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튄다’

 

이 : 엄청 싫어하지.

 

홀 : 스스로 책에 ‘나에 대해서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이 있다는 걸 안다. 그것도 되게 부드럽게 얘기해서 호불호가 갈린다는 거다’라고 했을 정도면 그 이상이겠구나.

 

이 : 그렇지.

 

홀 : 책만 봐도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더라. ‘(호불호가)갈리겠다. 근데 별로 개의치는 않을 것 같다’ (한덕현 교수도 맞다며 맞장구. 둘은 거의 스무 해 전에 현대 유니콘스 시절 처음 만나 지금껏 연락하고 지내는 막역한 사이다)

 

이 : 예전에는 엄청 힘들어 했다. 근데 이젠 뭐 해봐야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의 책을 읽어 보면 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건 뭔가 합리적이지 않다, 비논리적이다 하는 일을 마주하게 되면 회피하고 이런 거 전혀 없다. 들어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왠지 이 사람 말을 인정하면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만 같아서 쉽게 끄덕여주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 주변에 하나쯤 있잖나. 심지어 이지풍 코치는 선수들과 선수 출신 코치, 감독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에서 마치 이방인 같은 비야구인 출신 아닌가.

 

홀 :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오래 일해왔다. 작년에 1년 쉰 거 말고는 어쨌든 계속 야구단에서 일을 했다는 건, 호불호는 갈릴지 몰라도 능력만큼은 모두가 인정했다는 거 아닌가.

 

한 : 틀리지 않았다는 거지. 만약 틀렸으면 선수들이 거부하거나 팀에서 거부하거나 그랬을 거다.

 

홀 : 이지풍 코치 책은 야구와 관련 없는 일반 독자들에게 야구 코치가 쓴 자기개발서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 그거를 완전히 모티브로 한 거다 어떻게 보면.

 

홀 : 아~ 내가 잘 낚인 거네.

 

이 : (출판사에서) 시킨 대로. 그런데 생각보다 안 팔리네(웃음).

 

한 : 그 정도면 엄청 많이 팔린 거지. 자기개발서인데 그 이상 어떻게 팔리나.

 

이 : 마케팅이 좀…

 

홀 : 본인이 책에는 남 탓하는 사람 멀리 하라고 했으면서(웃음).

 

이 : (출판사 관계자를 보며 웃음) 우리는 가족이니까.

 

홀 : 아무튼 자기개발서 느낌을 많이 받았다. 거기(야구단)도 조직 생활이기도 하고. 그래도 이제 십 몇 년을 넘게 했으면 선출 아니라고 해서 거리감을 두거나 이런 건 좀 덜하지 않나?

 

이 : 아직 있다. 이제 야구인, 비야구인 이런 표현 쓰는 것도 의미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아직도 있다고 본다. 겉으로는 나한테 말 못하더라도. 그래서 나도 좀 조심하는 부분도 있고.

 

‘체육교육과 졸업하고 체육 선생님을 하지 왜 마사지하러 왔냐’

 

이지풍 코치가 처음 프로 야구팀 실습을 나갔을 때, 코치들로부터 들은 말이라 한다. 이 한 문장에 다 드러나있다. 당시 선수 출신 코치들이 비선수 출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땠는지, 트레이닝 코치라는 보직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런 환경에서 자타공인 호불호 심하게 갈리는 캐릭터가 2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보직 앞에 ‘수석’이라는 타이틀까지 달고 대중에 이름을 각인시켰다면 자기개발서든 뭐든 쓸 자격에 모자람은 없어 보인다.

 

반면 한덕현 교수는 프로야구팀 심리 자문이 되고나서 처음에는 상담실도 제대로 없이 선수들 차에서 상담을 했단다. “스포츠에 문외한이면서 선수들하고 무슨 얘기를 하겠냐?” 는 말까지 들었다. 두 사람 다 비선출이면서 야구 선수를 지원하는 일에 발을 들여놨는데 처음에는 별로 환영받지 못한 자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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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쥐 효과’와 중압감

 

홀 : (한덕현 교수에게) 처음에 현대 유니콘스에서 심리 자문을 했었고, 그 이후에 KT나 축구단 쪽도 맡았던 걸로 아는데?

 

한 : 현대 유니콘스에 있다가 LG로 갔다가 KT로 갔다. 그러다 다시 LG로 왔고.

 

홀 : 스포츠 정신의학을 전공한 교수가 보기에 LG는 우승이 가능하겠나?

 

한 : 가능할 것 같다.

 

홀 : 우승에 필요한 멘탈이 준비되어 있다는 말인가. 우승 DNA랄까.

 

한 : 부단히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야구장에 와서 내가 일반인으로서 느꼈던 제일 무서운 경험 중에 하나는 더그아웃에 있다가 (타자가) 홈런 쳤나 하고 더그아웃 밖으로 머리를 딱 내밀면 경기장 안으로 관중들이 쏟아내는 에너지가, 그게 정말 느껴진다. 내가 정신과 의사인데도 이런 무당 같은 얘기를 하잖나. 근데 그게 느껴지거든.

 

정말 이게 나 같은 일반인이, 그 안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잠깐 경기장 안으로 머리를 디밀었을 때 그게 느껴질 정도니까. 선수들이 운동장 안에서 느끼는 에너지를 받고 느끼는 부담감은 엄청날 것 같은데 그게 다른 팀도 인기가 많은데 왜 LG 트윈스만 이렇게 관중이나 팬의 관심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느냐라고 하지만 사실 그거는 한 3배, 10배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래서 탈 LG 효과라는 것도 있잖나.

 

LG에 있다가 밖에 나오면 잘 하는 거. 나는 그게 한편으로 이해가 간다. 이 안에서 선수들이 받는 그 엄청난 관심, 그들은 사실 20대 중후반 기껏 해야 30대 초반 어린 어떤 청년들인데 외부에서 받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관심에 대해서 이들이 하는 퍼포먼스, 운동 외에 다른 엑스트라 스트레스에 대해서 충분히 인정을 해주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LG 트윈스의 마지막 우승은 1994년 시즌이었다. 프로야구 10개 구단 가운데 LG 보다 더 오랜 기간 우승 맛을 보지 못한 팀은 롯데 뿐이다(1992년). 우승 다음 해인 1995년 스프링캠프 때 고 구본무 당시 그룹 회장이 선수단 회식에서 내건 다음 우승 축하 기념주는 아직도 개봉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쯤이면 다 증발해서 날아간 거 아니냐’는 팬들의 웃픈 자조가 나올 정도. 한덕현 교수가 LG 트윈스 야구단의 심리 자문을 맡고 있어서 가볍게 웃자고 던진 질문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중압감과 탈쥐효과까지 말이 이어졌다. 

 

LG 트윈스 선수라서 타팀 선수보다 더 관심과 부담을 받는다는 말에 ‘지금 우리 팀 인기 무시하는 거임?’할 분덜이 지금 줄 서고 있는 거 안다. LG 선수단의 심리 자문이 하는 말이라는 걸 잊지 마시라. 팔이 안으로 굽지 어디로 굽겠어? 여기서 중요한 뽀인트는 중압감이다.

 

말이 나온 김에 탈쥐 효과(LG에서 다른 팀으로 이적한 선수, 특히 야수가 LG에 있을 때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박병호 선수 사례에 대해 물었는데, 한덕현 교수와 이지풍 코치는 공통적으로 기회에 대한 확신을 이야기 했다. 내가 오늘 4타수 무안타 4삼진을 먹어도 내일 경기에 나간다는 확신이 있으면 불안 수준이 떨어지고 더 나은 퍼포먼스를 낸다는 것. 실제로 당시 히어로즈 감독은 박병호에게 ‘어떻게 됐든 너는 우리 팀 4번 타자’라는 믿음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여러 요인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과감히 생략.

 

홀 : 도쿄올림픽에서 체조 여제로 불렸던 시몬 바일스 선수가 경기를 포기해버렸지 않았나?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못하겠다’ 근데 그게 의외로 미국 국민들한테도 굉장히 큰 지지를 받았다. (한덕현 교수는 바일스의 경기 포기에 대해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한 바 있다. (관련기사 링크)

 

한 :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지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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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홀 : 그래서 경기를 안 뛴 선수인데 경기를 뛴 선수보다 더 주목을 받는 결과를 낳았는데. 그러니까 중압감이 큰 거는 알겠다. 일반인이 봤을 때에도 되게 힘들 것 같다. 온 국민이 기대를 건다는 게, 예전에 김연아 선수도 그랬고. 근데 거기까지만 알지 그렇다고 경기 자체를 포기하는 거는 나 같이 안 뛰어본 사람 입장에서는 사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 중압감이 어느 정도라고 볼 수 있나.

 

한 : 숨을 못 쉬니까. 숨을 못 쉬는데 무슨 경기를 하나.

 

홀 : 심지어 올림픽이 처음도 아니고, 바일스는 금메달을 많이 땄던 사람이라서 더 그런 걸 수도 있겠다.

 

한 : 나는 그때 바일스가 선언을 해 줌으로써 굉장히 여러 가지에 대한 것들을 얻었다고 본다. 만약에 그때 어중간하게 불안과 공황 증세를 안고 그걸 뛰었으면 그걸로 은퇴 했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내가 안 하고 싶을 때 안 할 수 있다는 걸 경험한 자체로 어느 정도 공황 치료가 된 거다.

 

홀 : 경기를 포기함으로써 치료가 된다?

 

한 : 공황장애 환자들이 극장에서 가운데 자리, 죽어도 못 앉는다. 그리고 고속버스 3시간 이상 안 서고 논스톱 가는 거 못 탄다. 그리고 추석 명절 때 고속버스 안 타고 반드시 기차 탄다. 왜? 내가 일어나서 움직이고 싶을 때 움직이지 못하면, 공황장애의 특징이 뭐냐면 나를 조절하는 정부가 없다는 것 자체가 공황이잖아. 그래서 공황장애인 거다.

 

그걸 내가 할 수 있다라는 느끼는 순간 거의 치료가 완성된다. 그래서 바일스는 올림픽 경기를 포기함으로써 자기 인생의 치료뿐만 아니라 공황장애나 불안이나 중압감을 느끼는 많은 선수한테 ‘야~ 올림픽 4관왕 금메달리스트가 안 하고 싶을 때 안 할 수 있대. 아~ 그럴 수 있는 거구나’를 보여줬다. 선수들한테 정말 좋은 것을 줬다.

 

홀 : 우리나라에서 만약에 올림픽 4관왕 했던 선수가 그랬으면…

 

한 : 올림픽 양궁 금메달 리스트가 활을 쏘다가 활을 내려놓고 나갔다.

 

홀 : 그것도 만약에 단체전에서.

 

한 : 어떻게 됐을까?

 

홀 : 여자 양궁이 단체전에서 30년 넘게 계속 금메달을 따고 있는데 갑자기 두 번째 주자 선수가 ‘못하겠는데요’ 이래버리면…

 

그랬다면 우리는 그 선수에게 잘 결정했다며 박수를 쳐줄 수 있었을까.

 

홀 : 요새 선수들이 받고 있는 중압감이 예전 보다 더 극대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야구 관련해서나 스포츠 관련해서는 커뮤니티나 SNS를 보면 이제는 선수들한테 피드백이 그냥 온 사방에서 꽂힌다.

 

한 : 그렇다.

 

홀 : DM으로도 오고 막 댓글에 뭐에, (이지풍 코치에게) 선수들이 실제로 많이 보나?

 

이 : 다른 코치는 길거리에서 마주치지 말고 조심하라는 DM도 받았다고 하더라.

 

홀 : DM도 DM이지만, 선수들도 사람인데 왠지 댓글도 찾아서 볼 거 같다. 야구 커뮤니티 들어가서.

 

이 : 보는 사람도 있고 안 보는 사람도 있다. 나한테도 DM이 2개가 왔었다.

 

한 : 진짜?

 

이 : 내가 그냥 안 봤다. 차단하고 삭제하고.

 

온라인 야구 커뮤니티 여론이 얼마나 무섭냐면, 전 시즌 우승 감독도 당장 오늘 경기 지면 ‘돌+이름’으로 불리는 게 일상이다. 그나마 선수들한테는 애정이 있어서 하루 이틀 못한다고 쉽게 역적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이 또한 실적(?)이 쌓인 선수들에게는 가차없다. 타팀이 아니라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선수와 감독에게 그렇다는 말이다.

 

이 : 안 보는 게 솔직히…

 

홀 : 안 보는 게 맞을까?

 

한 : 왜냐하면 사실은 스포츠의 근원은 공격성이거든. 그 공격성은 선수들도 표현하지만 경기를 보고 있는 관중들도 공격성을 발휘하는 게 어느 정도 허용이 되고 있는 거다. 근데 거기에 승패라는 게 가미가 되니까. 이 사람들이 던지는 어떤 멘트들이 굉장히 공격적이라 총이나 활만큼 날카롭기 때문에 나는 선수들이 일부러 노출해서 자기 가슴으로 맞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지풍 코치 “문동주, 앞으로 강백호와 이정후 정돈 씹어 먹을 수 있어”

 

본문에는 생략됐지만 투수들이 볼넷을 남발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에 한덕현 교수가 한화 신인 투수 문동주 선수 얘기를 꺼냈드랬다.

 

한 : 한화 얘기하면 문동주? 문동주가 LG전에 나왔는데 (구속이)150Km씩 나왔다. 근데 4타자 연속 두드려 맞고 나갔어.

 

홀 : 그 경기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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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 공은 가운데로 빡빡 들어가는데 타이밍이 일정한 거야. 타자, LG 타자들이 기다렸다가 빡빡빡 2루타 2개, 안타 2개. 근데 문동주가 왜 좋은 투수냐면 그 다음 경기에 나가서 이전 던졌던 그 감을 기억하고 있더라고. 그러면서 거기서 SELF PERCEPTION(본인의 동작에 대한 자각)을 하면서 커브를 던지고 코너웍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 다음부터 안 맞기 시작한 거다. 진짜 좋은 선수구나. 그게 에이스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프로야구가 배출한 최고 핫한 타자는 단연 키움 이정후와 KT 강백호다. 이지풍 코치는 이 둘의 신인 시절을 트레이닝 코치로 함께한 이력의 소유자. 그런 선수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냐는 질문에 대한 이지풍 코치의 대답.

 

이 : 정후가 딱 그 얘기를 듣고 그걸 바로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길 줄 알더라. 그런 게 와, 얘 대단하다. 그리고 2017년 시즌 처음 훈련하는 날, 이택근 선수랑 웨이트 장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열아홉살 짜리(당시 신인 선수였던 이정후)가 여기 와 가지고 화이트 보드 뒤에서 뭘 하는 척 하면서 둘이서 무슨 얘기 하나 듣고 있는 거야. 근데 그렇게 행동하는 어린 선수가 잘 없거든. 자기가 잘해야 되겠다는, 선수 성장에 필요한 마인드 셋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잘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는 거지. 보통의 열아홉살 짜리들은 ‘와~’ 가고 그냥 뭐 ‘우~’ 하다가 그냥 시간 되면 가고 그런다. 나도 열아홉살 때 그랬으니까. 그런데 다른 선수들하고 남다른 그런 순간 순간의 행동들이 있다.

 

홀 : 책에서는 강백호 선수 이야기도 했는데.

 

이 : 백호도 그렇고 정후도 그렇고. 그런데 그 위가 문동주 같다. 아까(인터뷰 전)도 말했지만 겨울에는 내가 못 느꼈는데 이번에 알았다. 2주 전인가에 소름 돋는다고 말했다. “야~ 동주야 너 진짜 대박이다”, “너는 백호보다 더 대단한 선수 같아”

 

홀 : 내가 이거 스포츠 신문처럼 헤드라인 뽑아도 되나.

 

이 : 이거 해도 되지.

 

홀 : 이지풍 코치 ‘문동주는 강백호, 이정후 씹어 먹을 수 있다’

 

이 : 이거는 상관 없지.

 

홀 : 아~ 그 정도까지는 괜찮다?

 

이 : (한화가)월급 주는 회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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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당시 한화는 8연패 중이었다. 야구 쉬는 월요일에 약속이 잡혀 있어서 그 전날 일요일 경기를 보며 내심 한화가 연패를 끊어주길 바랐건만 1회부터 시원하게 5점을 주고 시작하더니 결국 3:6 패배. 세 시즌 연속 꼴찌 우려가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작금의 한화를 보며 나라고 도대체 한화의 성적이 왜 이 모양인지에 대해 이지풍 코치를 붙잡고 캐묻고 싶지 않았겠냐만… 그가 팀 사정에 밝은 적당한 관계자면 몰라도 너무 대놓고 선수단의 일원이다 보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독자덜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기 위해서라면 눈치쯤은 가볍게 쌈싸먹고 가는 딴지 이너뷰라지만 서로 간에 밥그릇은 걷어차지 않는 게 강호의 도리 아니겠는가. 암튼 보살을 넘어 성불하게 생긴 한화팬들은 강백호, 이정후 씹어 먹을 지 모르는 문동주의 창창한 앞날이라도 함 기대해보자.

 

이지풍 코치가 ‘뛰지마라, 지친다’고 한 이유

 

홀 : (이지풍 코치에게) 책에서 죽기 살기로 하지 말라고. 야간 훈련하지 말고 쉬는 게 낫다. 이런 걸 날것 그대로 표현하면 뻘짓인데,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밤잠을 쪼개가면서 스윙 훈련을 하고 이런 게 사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하는 노력의 일환이지 않나? 불안해서 뻘짓을 한다고 책에서 말했는데(‘뻘짓’이라는 표현을 하지는 않음), 똑같은 말이지만 뻘짓을 하는 건 결국 불안의 산물인 거잖아. ‘니 체력 비축하고 쉬는 게 나아. 지금 하는 거 뻘짓’이라고 얘기해도 못 쉰단 말이지. 심지어 안 하면 안 하고 쉬었을 때 잘 쉬면 되는데 잘 쉬지도 못하잖아. 결국 휴식도 아니게 된다. 이도 저도 아니니까 또 야간 훈련을 하고 자기를 갈아 넣을 거란 말이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이 : 내가 그런 얘기 많이 했는데 불안하면 그냥 전문가를 만나서 약을 먹으라고. 약의 도움을 받든지 하면 되는 거고. 이거는 우스개 소리로 하는 거고, 나는 뻘짓을 하게 그냥 냅둬. 본인이 끝까지 뻘짓을 계속하다가 성적이 안 나서 벼랑 끝에 몰릴 때까지. 그러면 말을 듣거든. 그전에 백날 내가 얘기해도 안 듣지. 당연히 안 듣고 숨어서 더 하지. 내가 안 보이는 데서 더 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냥 뻘짓하면 냅둬. 그래서 우리 팀 선수들이 그런 얘기를 해. ‘아~ 형은 딱 자기들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얘기를 해서 듣는다’는 거지. 내가 뭐 얼마나 대단한 얘기를 했겠나. 선수들이 벼랑 끝에 몰렸을 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내가 뭘 한 마디 해 주면 바로 바꿔. 다 바꿔 그러면.

 

홀 : 그런데 모든 코치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너 야간 훈련하는 거 뻘짓이야. 이거 너한테 도움 안된다’ 라고 하면 또 모르는데 그걸 권하는 사람은 더 많지 않나.

 

이 : 그렇다.

 

홀 : 오히려 안 하면 혼내니까. 근데 이게 야구판이 아니라 학생들이나 취업 준비생들한테도 똑같이 적용되는 얘기란 말이지. ‘나는 주말에도 안 쉬고 영어 공부했어’, 이러면 오히려 박수를 치지. ‘너는 성실하니까 될 거야’ 이러면서.

 

이 : 회사 생활이나 야구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잘하면 땡큐지. 잘하면 되는 거고, 만약 그렇게 했는데도 못해서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거거든. 찾아오면 그때 얘기를 해 주면 잘 듣는 거고. 그래서 나는 거의 얘기를 잘 안 한다. 먼저 물어볼 때까지.

 

홀 : 수훈 선수 인터뷰 같은 거 보면 되게 오랫동안 부진했던 선수가 결승타를 치고 나서 ‘요새 너무 안 돼가지고 특타를 했더니 잘 됐습니다’하기도 하고, 기사에서도 부진을 겪고 있는 어떤 선수가 2시간 먼저 나와서 훈련 하는 걸 잘하고 있다는 식으로 내보내는 걸 보면 아직은 이런 분위기가 주류인 것 같다.

 

한 : 그렇게 해서 잘 되는 경우도 있지. 연습량이 부족해서, 못 해서, 연습량을 늘려서 잘 되는 선수도 있다. 그리고 연습량이 너무 많아서 못하는 선수도 있고. 그런 다양한 케이스가 있는데 그걸 다 하나로 몰지 말라는 거지.

 

이 : 내가 연습을 적게 하라고 얘기하는 그 핵심은, 특타를 본인이 원해서 하는 거는 나도 적극 권장해. 자기 결정권이 있으면. 선수가 폼 바꾸는 걸 개인적으로 싫어하지만 어떤 선수가 본인이 고민해서 폼 바꾸고 싶다 하면 나는 언제든지 해보라고. 안 되면 돌아오면 되니까. 근데 항상 우리나라는 자기 결정권이 없었거든.

 

이번 이너뷰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가 나왔다. 자기결정권. 그러고 보니 선수 팔아 구단 운영한다는 핀잔을 듣는 키움 히어로즈가 그렇게 잘 나가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을 때도 이지풍 코치의 답은 자기결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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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옥같은 내용이 너무 많은 관계로 이번 딴지이너뷰는 2회에 걸쳐 나갈 예정이다. 1부에서는 주로 야구 선수를 비롯한 스포츠 선수 위주의 내용을 다루었는데 중압감과 불안에 시달리고 자기결정권이 필요한 게 어디 운동 선수 뿐이랴. 우리도 조또 불안하다 이거지. 하여 2부에서는 불안한 ‘우리’에 대해 이야기 나눈 썰을 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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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