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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가 죽었다

 

현직에서 떠난 지 2년 가까이 되는 그의 죽음이지만, 최장수 일본 총리를 역임하고 현재도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정계의 거물이라는 점, 유세 도중 피격으로 사망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일본은 여전히 충격에 빠져 있다.  

 

일본 현대사에서 그는 최장수 총리이기도 하지만, 2차대전 이후에 태어난 첫 번째 총리면서, 일본 천황이 아키히토(연호:헤이세이[平成])→나루히토(연호:레이와[令和])로 바뀌는 시대교체기의 총리라는 점에서, 또한 자칫 붕괴할 뻔했던 자민당 1당 집권체제를 복원시켜 NEW 자민당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더 의미 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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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 다음 회호 표지

출처-<TIME 트위터 캡쳐>

 

이 글에서는 아베가 일본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와 아울러, 이러한 모습이 한국 정치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2009년 8월 30일

 

한국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이 치러진 지 1주가 되는 날이며, 심대평 대표가 총리직 수락 여부를 둘러싼 이회창 총재와의 갈등으로 자유선진당을 탈당하던 날, 일본에선 제45회 중의원 총선거가 치러졌다.

 

결과는 몹시 충격적이었다. 1955년 이후 최초로 집권 자민당이 119석의 제2당으로 전락한 반면,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전체 의석(480석)의 2/3에 육박하는 308석을 얻어 단독으로 정권교체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1955년 결성된 이래, 1993년 8월~1994년 6월까지 짧은 기간 정권을 내준 걸 제외하면 한 번도 정권을 빼앗긴 적 없는 자민당으로서는 당혹스러운 결과를 넘어,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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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더구나 1993년에는 원내 제1당인 자민당에 맞서 무려 7개 정당이 영혼까지 끌어모은 연립정부를 구성해 가까스로 이룬 정권교체였다. 결국 예상대로 그 취약성을 이기지 못한 반 자민 연립정부는 1년도 되지 않아 붕괴하였고 자민당은 금방 정권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2009년 자민당은 공명당까지 끌어모아도 민주당의 절반도 되지 않는 140석에 불과했다.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박근혜 탄핵 이후 쫄딱 망한 자유한국당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은 오래가지 못했다. 동일본대지진 등 천재지변과 소비세 인상처럼 불가피한 정책적 문제도 있었지만, 선거자금 스캔들과 끝내 분당으로 이어진 당내 갈등 같은 자충수도 있었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야구팀이 연달아 투수를 교체하듯 민주당은 불과 3년 사이에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까지 3명의 총리를 잇달아 투입해 봤지만 모두 소용없었고 끝내 중의원 해산이라는 승부수이자 무리수를 두기에 이르렀다.

 

아베의 화려한 귀환과 장기 집권

 

이때 중의원 해산을 이끌어낸 자민당의 총재가 바로 아베 신조였다. 고이즈미의 후계자로 1년간 총리를 역임했으나 각종 스캔들로 인해 참의원 선거에 참패하자 신변을 이유로 사퇴한 인물. 이후 5년 가까운 공백을 거쳐 야당 총재로 돌아온 그는, 무제한 양적완화와 국채 발행을 통한 정부지출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아베노믹스' 정책을 내세워 3년 4개월 만에 정권을 되찾는 데 성공한다. 한국에서 박근혜가 문재인을 꺾고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되던 2012년 12월의 일이었다.

 

이후 총리에서 물러나는 2020년 9월까지 약 7년 10개월 동안, 아베 신조의 2기 내각은 경제적으로는 아베노믹스, 외교적으로는 미국과의 동맹을 바탕으로 한 국제적 역할 확대, 사회적으로는 원전 재가동과 도쿄올림픽/오사카 엑스포 유치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장기 집권에 성공했다.

 

이러한 정책의 목표는 경제적으로는 소위 '잃어버린 10년', 사회적으로는 동일본대지진, 그리고 외교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 등 흑역사를 지우고 더 강한 일본을 만들자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군대를 보유하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정상 국가화 또는 보통 국가화를 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거나 공물을 봉납하고, 731이 선명한 훈련기에 탑승해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등 과거사를 부정하는 여러 행보가 그것을 강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이는 아베의 외조부이자 2차세계대전의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모습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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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충격적인 사망이 일본의 우경화를 더 앞당기게 될지 그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추는 일이 될지 판단하기는 아직 조심스럽다. 다만 러시아의 푸틴, 중국의 시진핑, 일본의 아베(그리고 미국의 트럼프?) 등 장기 집권을 추구하는 지도자들은 예외 없이 대외적으로 강한 나라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은 특기할만하다.

 

한국 보수의 영원한 로망, 아베 모델

 

박근혜 탄핵 이후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던 보수세력은, 대통령 자리까지 윤석열에게 내어주는 등 사활을 걸고 검찰 및 조중동과 연대를 추진한 끝에 0.73%P 차이로 정권을 되찾았다.

 

그러나 선거기간 때부터 지적되어온 자질 부족과 노답 주변 인사들로 인해 정권 초기부터 지지율보다 반대 여론이 더 높아지는 소위 데드크로스 현상이 발생하고, 물가, 환율, 금리, 무역적자가 모두 급등하는 최악의 경제난으로 민생경제가 도탄에 빠지며 정권 재창출은커녕 4년 10개월이나 남은 임기를 무사히 채울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운 상황.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윤석열의 막장 행보가 계속된다면 보수세력 입장에선 AGAIN 박근혜의 공포가 재현될 수밖에 없다.

 

결국 그들은 이렇게 최고통치자 1인의 역량으로 인해 정권을 빼앗기거나 위기에 처하지 않는 안정적인 정치체제를 꿈꿀 수밖에 없고, 그중에서도 보수정당이 67년 중, 불과 4년을 제외한 나머지 올 타임 집권 중인 이웃 나라 일본은 가장 이상적인 롤모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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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아베 신조 내각 발족 후의 기념 촬영(2012년 12월 26일)

출처-<위키피디아>

 

뇌피셜이지만 윤석열 지지도가 더 떨어져 레임덕이 심화하고 정권교체의 압력이 거세진다면, 상징적인 대통령하에 수도권의 안철수, 강원의 권성동, 충청의 정진석, 부산의 장제원, 대구의 주호영, 울산의 김기현 등 지역 맹주들이 돌아가며 총리를 맡아 실권을 행사하는 일본식 내각제를 도입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명분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혁을 위한 분권형 정치체제의 도입'이 될 것이고,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이를 그럴듯하게 마사지해 윤석열의 행태에 실망한 국민들을 설득하려 할 것이다.

 

현재 국민의힘이 가진 의석은 115석에 불과하여, 헌법개정을 위해 필요한 의석(200석)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야권의 분열을 통해 내각제 파를 포섭하려 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정계 개편 및 선거제도 개편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이는 대연정이나 거국내각 같은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될 것이며, 그에 앞서 전임 대통령에 대한 정치보복과 야권 차기 주자에 대한 처벌 등의 정지작업이 선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당내에서는 이미 윤핵관과 안철수 연대를 통해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비주류 세력을 쳐내고 2024년 총선 공천권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이 표면화되었고, 정부 요직에는 검사 출신이나, 사실상 검찰에서 인사 검증한 인사들을 대거 등용하여 장기 집권의 토대를 만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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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7일 국회 본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에 출석하는 이준석

출처-<한겨레21>

 

이렇게 당, 정부, 검찰을 한 묶음으로 만든 뒤, 경제적으로는 고용 유연화 및 아베노믹스와 유사한 양적완화 정책, 사회적으로는 탈원전 정책 백지화와 차별금지법 반대, 공권력 강화(특히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 외교적으로는 미국 일본과의 동맹강화를 통한 대 북한 강경책 등을 내세워 재벌과 보수언론, 기독교계 등을 우호 세력으로 끌어들이면, 일본과 유사한 보수 대연합 모델이 구축되어 장기 집권을 꿈꿀 수 있는 것이다.

 

윤석열은 오프너인가

 

일반적으로 야구 경기에선 팀에서 가장 잘 던지는 투수가 선발되어 최대한 많은 이닝을 던져주는 게 승리에 유리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최근 메이저리그 등에서는, 중간급 또는 추격조 투수를 선발(오프너)로 내세워 1~2이닝을 던지게 한 뒤 그 선수의 구위가 떨어지면 그보다 길게 던질 수 있는 다른 투수를 등판시켜 3~6이닝을 던지게 하는 소위 오프너 전략이 유행하고 있다.

 

이 전략은 선발로 낼 만한 투수가 마땅치 않은 팀이 다소 실력이 떨어지는 투수를 등판시켰다가, 상대 타자들의 눈에 익숙해질 때쯤 다른 유형의 실력 있는 투수로 교체함으로써, 상대 타선이 한창 달아올랐을 때 김을 빼고 경기 흐름을 바꿔버리는 효과가 있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은 내각제로 가기 위한 보수세력의 오프너 선발투수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그의 취임 후 최대 업적(?)이 대통령제의 상징과도 같은 청와대 이전 및 개방, 그리고 대통령보다 내각제의 총리들에게 더 적합해 보이는 출근길 도어스테핑이란 것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미국 대통령도 도어스테핑과 유사한 즉석 브리핑을 하지만, 이는 출근길이 아니라 기자회견장이나 헬기 착륙장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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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향후 계속되는 지지율 하락 끝에 내각제와 유사한 친위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윤석열은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 60년 전 윤 대통령처럼 상징적인 존재에 만족할 것인가. 어쩌면 그 대답은 (이미 상징적인 대통령 놀이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는) 윤석열보다는 (실권자로 추정되는) 김건희 씨나 천공 스승에게 물어보는 게 자연스러울지 모르겠다.

 

민주당이 조심해야 하는 것 

 

앞서도 얘기했듯 내각제, 대연정, 거국내각 등 어떤 형태의 시스템 개편도 민주당 일부 세력의 협조가 없으면 이뤄질 수가 없다. 이는 결국 민주당의 분열을 전제로 하는 것인바, 분열과 통합의 결과에 대해서도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볼 만하다.

 

1993년 잠깐 정권을 빼앗겼던 자민당은 반 자민 7당 연대의 일원이었던 사회당에 총리직을 넘겨주면서 연립정권을 붕괴시키고 정권을 되찾았다.

 

이후 2009년 단독 과반수를 얻어 정권을 교체했던 민주당은 2012년 오자와 이치로 계파 의원들의 집단탈당으로 분열되며 3년 만에 정권을 빼앗겼고, 야당으로 전락한 이후에도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 등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지리멸렬한 끝에 현재로서는 정권 교체는커녕 평화헌법 개정을 저지하는 것조차 버거워 보인다.

 

반면 자민당은 총재 선거에서 아베 신조와 경쟁했던 이시바 시게루를 자민당 간사장으로, 아소 다로를 부총리 겸 재무대신으로 기용하는 등 당내 화합을 도모하며 정권 탈환 및 장기 집권의 토대를 닦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결국 단합하면 이길 수 있지만, 서로 싸우고 갈라서면 보수세력의 장기 집권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보수정권 역시, 선별적 검찰수사를 통해 소위 친문 친명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국민통합 및 지역갈등 완화를 명분으로 호남 출신 정치인들을 회유하여 장기 집권을 위한 대연정 또는 거국내각의 구색을 갖추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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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13주기 추도식에서

 

결국 8월 28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는 민주당 새 지도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새 지도부는 윤석열 정권의 무능을 철저히 비판하고, 민생을 살릴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며, 자칫 소외될 수 있는 당내 비주류 세력들도 아울러 원팀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의 몰락이 자칫 내각제 개헌과 같은 보수세력의 영구집권 프로그램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정국의 흐름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가장 적합한 리더는 누구일지, 후보들의 치열한 경쟁과 당원들의 현명한 선택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