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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청부 살인자의 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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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민음사>

 

 

스페인이 씹고 버린 껌, 콜롬비아

 

거칠고 난폭한 스페인 사람들, 교활한 원주민들, 불길한 흑인들, 그들을 교접의 도가니에 넣고 모두 섞으면, 이  모든 것이 교황의 축복과 더불어 어떤 폭발이 일어나는지 보게 될 거야.

 

그러니까 문란한 난교의 결과가 바로 스페인의 작품이야. 그게 바로 그들이 금을 갖고 꺼지면서 우리에게 남겨준 거야.

 

헤이, 파르세로(친구)! 지금부터 이 늙은이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봐. 지금부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내 어린 남자 연인에 대해 말할 거야. 착한 아이였지만 거리에서 죽었지. 아마 스무 살을 채우지 못했을 거야. 늙은이에게 그게 가능하냐고? 물론이지. 콜롬비아에서는 ‘희망’ 빼고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까. 이 천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우선 콜롬비아를 알아야 해. 콜롬비아를 모르면 나의 사랑 이야기를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야.

 

콜롬비아 위치.PNG

콜롬비아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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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

 

나의 조국 콜롬비아는 푸른 하늘과 그보다 더 푸른 바다를 갖고 있지. 물론 씨만 뿌려놓아도 쑥쑥 자라는 옥수수와 달콤한 바나나를 품에 안은 비옥한 농토도 있어. 아 금, 황금이 있어. 이것 때문에 스페인이 이 나라를 자기들의 식민지로 만든 거야. 아니야. 식민지라는 고귀한 말로는 설명이 안 돼.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네. 아! 생각이 났어! ‘도축장’이야. 그래 도축장이 적절하겠어. 왜냐하면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나의 조상, 원주민들을 학살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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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먼저 전염병으로 학살을 시작했어. 그런데 문제가 생겼지. 정신없이 죽어 나가는 원주민들을 보며 환호성을 지르다 보니 그들을 위해 당나귀처럼 일해 줄 노예들이 부족해진 거야. 그래서 스페인 놈들은 서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다 콜롬비아에 뿌렸지. 그리고 원주민들과 교접을 시켰어. 이제 노예들이 충분해졌으니 채찍을 휘두를 기분이 났겠지. 그리고 금과 곡물들을 범선에 가득 싣고 자기네 나라로 돌아갔어. 물론 콜롬비아에 선물도 주고 갔지. 그건 피와 기독교야.

 

우리 조국 콜롬비아 역시 그를 받들고 있어. 그는 바로 예수이고, 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리키고 있으며, 상처 입은 가슴에서는 심장이 피를 흘리고 있어. 새빨갛고 조그만 핏방울들은 마치 풍등 안에 환히 켜진 양초 같아. 하지만 그건 영원히 콜롬비아가 흘릴 피야.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증오와 원한의 도시, 메데인 in 콜롬비아

 

그런 동안 콜롬비아도 우리 손으로 통제할 수 없는 나라가 되어 있었어. 거리를 두고 멀리서 보면, 이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범죄가 잦은 나라였고, 메데인은 증오와 원한의 수도였어.

 

메데인은 ‘코무나’의 도시야. 코무나가 뭐냐고? 뭐 별거 아니야. 빈민들의 마을이지. 메데인 산기슭에 허름한 판잣집들이 겹겹이 포개진 동네들이 생겨났어. 이것들은 마치 저주처럼 메데인을 짓눌렀지. 

 

생각해 봐. 그들이 무얼 먹고 살았겠어. 씹다 버린 껌에는 단물이 없지. 아무것도 먹을 게 없었지. 그래서 그들은 ‘마체테(남미에서 농기구로 사용되는 넓은 칼, 정글도)’를 들었지. 코무나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서로를 죽였어. 서로를 망쳐댔지. 약탈이라도 해야 입에 풀칠할 수 있었으니까. 이 메데인의 코무나에만 150만 명이 염소 떼처럼 엉겨 붙어 살며, 들쥐 떼처럼 번식하고 있어. 

 

메데인 위치.PNG

메데인 위치

 

메데인에 위치한 코무나 중 하나.PNG

메데인에 위치한 코무나 중 하나

 

이 코무나의 빈민들은 서로와 서로들이 ‘쿨레브라’로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지. 쿨레브라가 뭐냐고? 원래는 ‘뱀’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해묵은 원한을 뜻해. 원한은 반드시 갚아야 하지. 그래서 메데인은 끔찍한 장소야. 여러 세대에 걸쳐 누적된 복수가 살인으로 이루어지거든. 부모에서 아이들로, 아이들에서 손자로......

 

코무나는 여러 ‘동네’로 나뉘고, 각 동네는 여러 폭력 조직이 나누어 가져. 다섯 명, 열 명, 혹은 열다섯 명의 젊은 애들이 사냥개 무리를 이루고, 그들이 오줌 싸는 곳에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아.

 

정부는, 경찰은 무얼 하고 있냐고 묻지는 마. 콜롬비아의 유일한 장점은 ‘리복 테니스화’나 ‘캘빈클라인 속옷’ 때문에 살인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건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니까. 운동화 때문에 죽는 놈은 그걸 부당하다 생각하겠지만 그걸 빼앗은 놈은 그 운동화를 갖지 못하는 현실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살인이 가능한 거야. 이게 ‘정의’지. ‘증오의 정의’야. 몸부림을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모래 구덩이 같은.

 

콜롬비아의 법은 불처벌이 원칙이고, 범죄자이면서도 처벌받지 않은 첫 번째 인간은 바로 대통령이야.

 

도둑놈들에게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왕국이야. 이곳보다 더 좋은 나라는 없어. 그 다음이 먼지와 구더기들이 좋아하는 곳이야. 그러니 도둑질이 최고야. 특히 정부 안에서 도둑질하는 게 가장 좋은데, 그게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야.

 

 

메데인의 성자, 파블로 에스코바르

 

잔뜩 축복받은 도시답게 드디어 이곳에서 성자가 탄생했어. 그의 이름은 ‘파블로 에스코바르’야. 그는 천재이자 위대한 사업가였어. 코무나 전체의 재산을 다 모아도 우지 기관단총 하나를 사지 못하는데 그는 황금보다 비싸고, 애플보다 더 큰 수익률을 거둘 수 있는 것을 발견했지. 그건 코카인이야. 

 

그 유명한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머그샷.PNG

그 유명한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웃고 있는 머그샷

 

그는 상상할 수 없는 돈을 벌어들였어. 그 돈으로 메데인에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지어 주었지. 가히 메데인의 성자였어. 그는 반정부 게릴라들, 또 다른 마약 조직들, 이 모든 것들의 반목과 살인을 종식시켰어. 대통합을 이뤄냈어. 드디어 세계 최대의 범죄 조직이 메데인에서 탄생했어. 바로 ‘메데인 카르텔’이야.

 

파블로의 이 위대한 업적은 어디서 나왔을까. 이 위대한 업적을 이룬 힘은 바로 어린 ‘시카리오(청부 살인자)’들 덕분이야. 파블로는 어린아이들에게 마체테 대신 ‘쇳덩이(권총)’와 우지 기관단총을 쥐여 주었지. 왜 시카리오들은 어리냐고 묻지는 마. 늙은 시카리오가 없는 이유는 간단하니까. 시카리오는 12살 정도에 만들어지지. 그리고 보통 20살을 넘기기 전에 죽어버리지. 새로운 시카리오에게 자신의 임무를 넘기고.

 

여기서 청부 살인자들은 십 대 아이이거나 아주 젊은 청년이야. 열두 살, 열다섯 살, 아무리 많아도 열일곱 살을 넘지는 않아.

 

열두 살이 되면 코무나의 아이는 늙은이와 다름없어. 살아갈 날이 얼마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열두 살짜리 아이는 열 살짜리 아이로 대체될 거야. 그게 콜롬비아의 커다란 희망이지.

 

상상할 수 없는 양의 코카인이 미국으로 수출되었어. 그리고 국회의원들, 대통령 후보들, 장관들, 주지사들, 판사들, 시장들, 검사들과 수백 명의 경찰도 죽어야 했어. 물론 방송 기자들과 신문 기자들도 살해됐어. 미국의 압박 속에서 콜롬비아 정부는 공개적으로 미국에게 무언가를 보여 주어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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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인을 지역구로 국회의원에도

당선되었던 ‘파블로 에스코바르’

그는 자신을 비판한 언론사의 건물을 폭파하기도 했다.  

 

코무나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메데인 북동쪽 코무나라면 콜롬비아 대통령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바르코야. 그는 모든 언론이 침묵을 지키고 사람들이 똥도 누지 못할 정도로 무서워 벌벌 떨고 있을 때, 마약 조직과의 전쟁을 선포했어. 그는 자신이 대통령인데 자신을 장관으로 착각하고 비서실장인 몬토야 박사에게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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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전 대통령 ‘비르힐리오 바르코 바르가스’

(재임 1986-1990)

 

“난 다음 국무 회의에서 대통령에게 마약 조직과의 전쟁을 선포하라고 조언하겠소.”

 

그러자 그의 기억이자 의식인 몬토야 박사는 이렇게 고쳐 주었어. 

 

“바르코 박사님. 지금 대통령은 당신입니다. 또 다른 대통령은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생각에 잠겨 말했어. 

 

“아, 그렇지...... 그럼 전쟁을 선포합시다.”

 

“이미 선포했습니다, 각하.”

 

“아...... 그렇다면 이기도록 합니다.”

 

그러자 비서실장이 말했어. 

 

“이미 졌습니다, 대통령 각하. 이 나라는 이제 끝났습니다. 이제 손을 쓸 수 없습니다.”

 

파블로가 세 명의 대통령 후보를 죽이자 운 좋게 살아남은 꽥꽥 울어대는 앵무새, 세사르 가비리아가 대통령이 되었지. 미국의 압력을 견딜 수 없었던 그는 기가 막힌 생각을 해냈어. ‘카테드랄’이라고 불리는 대저택이자 요새를 지은 거야. 물론 파블로를 위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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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유례없던 ‘파블로 에스코바르’만을 위한

개인 호화 감옥(이라 부르지만 사실 대저택임). 

이 감옥에는 영화관, 수영장, 파티장, 체육시설 등

각종 시설이 갖춰있었다.  

 

이 위대한 두목은 요새를 지킬 (교도관이라 불린) 경비병들을 직접 선택했어. 그리고 사람들을 초대해 축구를 하고 파티를 벌이며 놀았지. 그러나 이것마저 지겨워지자 위대한 두목은 경비병들에게 치킨을 먹게 해주고 걸어서 ‘카테드랄’을 나갔어.

 

그리고 25,000명의 병사들을 동원해서 그가 살고 있던 나리뇨 대통령궁을 제외하고 전국을 구석구석 샅샅이 뒤지게 했어. 나는 위대한 두목이 그곳에, 그러니까 정부 예산의 손이 닿지 않는 구멍이 무엇이든 거기에 꼭꼭 숨어 있었다고 말했어. 하지만 아니었어. 그는 우리가 살던 동네에 있었어.

 

메데인의 성자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바로 그 메데인에서 두 발의 탄알로 죽었어. 그답게 메데인에서 죽었어.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어. 손에 쇳덩이를 쥔 수많은 어린 시카리오들이 청부 살인의 가장 큰 계약자가 죽자 일자리를 잃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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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2월, 미국 정부 요원들과

콜롬비아 특수부대의 공조로

죽음을 맞이한 에스코바르

 

 

‘착한’ 시카리오, 알렉시스                 

 

“각자 자신의 별이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넌 몇 개의 별빛을 껐을까? 네가 가는 속도로 너는 하늘을 죽일 거야.”

 

아름다운 내 사랑, 청부살인자 알렉시스 역시 일거리가 사라졌지. 여전히 그 아이의 손에는 쇳덩이가 있었지만 할 일이 없었어.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바수코(정제되지 않은 코카인)’를 피우다가 간혹 배관공의 일당보다 싼 가격으로 누군가를 죽여주는 일을 하는 거야. 

 

물론 어떨 때는 돈을 받지 않아도 살인을 하지. 그래도 먹고 살 수 없을 땐 매춘을 해. 그래서 알렉시스와 나의 사랑이 시작된 거야. 금빛으로 반짝이는 솜털과 매력적인 초록색 눈을 가진 알렉시스와의 사랑이. 나는 알렉시스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어.

 

그는 순수하고 맑으며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초록색 눈을 가지고 있었어. 우리나라 푸른 목초 지역의 모든 초록색 눈을 뒤져도 그처럼 아름다운 눈은 없었을 거야.

 

알렉시스는 메데인의 다른 아이들처럼 독실한 신자였지. 그리고 역시 다른 아이들처럼 두 번의 세례를 받았어. 한 번은 성모 앞에서 신부에게. 또 한 번은 자신의 빈민가 동네에서 ‘창곤(changon)’ 세례를 받지. ‘창곤’이 뭐냐고? 그건 총신을 잘라낸 엽총이야. 엽총의 총신을 잘라내면 총알이 넓은 영역으로 발사되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타격을 주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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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곤(changon)

 

나는 내 사랑 알렉시스와 메데인 거리 순례를 시작했어. 성당에 가고 싶었지. 알렉시스가 성모 앞에서 무엇을 기도하는지, 주님께 무엇을 부탁하는지 궁금했으니까. 알렉시스는 늘 성모 앞에 기도했어. 코무나의 동네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유일한 존재는 죽음밖에 없었어. 문을 연 성당이 있을 리가 없었지. 메데인에는 150개의 성당이 있었지만, 경호원이 배치된 몇 개의 성당을 제외하고는 모두 닫혀 있었어.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알렉시스에게 기도에 대해 물었지. 그러자 알렉시스가 답했어.

 

“성 유대 타대오(혹은 히라르도타의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 또는 당신이 믿고 섬기는 성인)의 은총으로 이렇게 축복받은 총알들이 한 발도 실수 없이 정확하게 목표물에 적중하게 해 주소서, 그리고 죽은 사람이 고통받지 않게 해주소서, 아멘”

 

그리고 이 기도의 끝에는 ‘약속한 돈’을 제대로 받게 해달라는 기원이 추가되기도 하지. ‘축복받은 총알’이 뭐냐고? 

 

앞에서 말했듯이 독실한 신자인 알렉시스는 살인을 앞두고 총알에 주님의 축복을 부여해. 우선 오븐으로 빨갛게 가열한 냄비에 여섯 개의 총알을 넣지. 그리고 성당 성수반에서 받아 온 성수를 이 총알들에 뿌려. 그러면 성수는 격렬한 열로 증발해 버리지. 이때 단순하고 꾸밈없는 마음으로 위에서 말한 기도문을 주님께 올리는 거야.

 

알렉시스와 택시를 탔어. 메데인에는 35,000대의 택시가 있어. 모두 마약을 팔아 번 달러로 사들인 택시들이지. 콜롬비아는 아무것도 수출하지 않으니 마약이 아니면 어디서 달러를 얻을 수 있겠어. 택시에서는 ‘바예나토(콜롬비아의 민속 음악)’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소음으로 들려왔어. 나는 소리를 좀 줄여달라고 기사에게 말했지. 그는 어떻게 했을까?

 

오히려 소리를 최대로, 끝까지 높였어. 나는 알겠노라 말하고 택시를 세워달라고 했지. 내리겠다고 말했어. 그러자 그 택시 기사는 ‘끽’ 소리를 내며 갑자기 세게 브레이크를 밟았어.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갈 정도로. 그리고 ‘어서 내려 개새끼들’ 하고 욕을 했지. 내가 어쩔 틈도 없었어. 왼쪽으로 내린 알렉시스는 발이 땅에 닿자마자 동시에 그 기사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아 넣었지. 이제 메데인의 택시는 34,999대가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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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깐 소리 줄이라고 할 때 줄였어야지.

잘 가라, 아디오스...

 

우리의 순례는 계속되었어. 가끔 높은 지대에 ‘시체 투하 금지’라고 쓰여 있는 팻말을 보기도 했지. 알렉시스의 살인도 계속되었어. 버스 안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뛰어다니는 두 아이들의 엄마를 아이들과 함께 죽였고, 세 명의 군인들을 죽이기도 했어. 서슴없었지. 

 

어린 거지를 두들겨 팬 앳된 경찰을 만나기도 했어. 아이는 젊은 경찰에게 ‘씨팔놈아,’라고 소리치며 대들고 있었지. 나는 저 일곱 살짜리 어린 개자식이 벌써 저렇게 경찰에게 대드는데 나중에 크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어. 세 명의 구경꾼들이 거지 아이를 거들었어. 경찰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지. 내 사랑 알렉시스가 이 소동을 종결시켰어. 그의 쇳덩이가 불을 뿜었고, 어린 거지 아이를 포함해 네 명이 그 자리에서 죽었으니까.

 

이 계속되는 알렉시스의 살인은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았어. 물론 콜롬비아에도 경찰은 있지. 그들은 ‘순경’, ‘순사’, ‘짭새’, ‘권력의 지팡이’, ‘범죄 사냥꾼’, ‘초록 제복의 개새끼’야. 그들은 투명인간이야. 유리컵보다 더 투명하지. 정확히 필요할 때만 보이지 않으니까. 콜롬비아에 신은 어디에 있을까?

 

인류가 살아가려면 신화와 거짓말이 필요해. 만약 누군가가 그대로 드러난 진실을 본다면, 아마도 스스로 자기 머리에 총을 쏴버릴 거야.

 

나는 진심으로 견딜 수 없었지.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조국 콜롬비아는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을 잃어버린 상태였어. 콜롬비아에서는 누군가가 당신의 뺨을 때렸을 때, 당신이 다른 뺨을 댄다면 당신의 눈을 뽑아 버릴 거야. 그리고 당신이 앞을 보지 못하면 칼로 당신의 심장을 도려낼 거야. 알렉시스, 나에게 총을 빌려줘.

 

“얘야, 네 권총 좀 빌려줘, 도저히 더는 참을 수가 없어. 그걸로 내 목숨을 끊어야겠어.”

 
알렉시스와 함께한 메데인 순례는 곧 끝이 났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모터사이클이 달려오더니 그것을 타고 있던 놈들이 총을 쏘았어. 알렉시스는 ‘조심해 페르난도!’라고 외쳤지만, 죽은 것은 그였지. 알렉시스의 마지막 말은 내 이름이었어. 내 아이, 내 사랑은 삶의 공포를 버리고 죽음의 공포 속으로 들어갔지. 죽어가는 개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총을 쏘라고 했을 때, 차마 그러지 못했던 착한 아이였지.

 

  

돌고 도는 콜롬비아의 전염병 ‘죽음’

 

이봐 파르세로, 나와 알렉시스의 사랑 이야기를 잘 들었지. 우리 사랑은 이렇게 끝났어. 콜롬비아 정부가 유일하게 제공하는 복지정책은 ‘시체 안치소’야. 여기서는 시체 안치소를 ‘원형 극장’이라고 불러. 알렉시스의 수첩에 내 전화번호가 있었어. 그래서 나는 연락을 받고 원형 극장으로 갔지.

 

냉동된 시체들은 성명 불상자들, 즉 신원 미상자들이야. 그들은 벌거벗은 몸으로 아이스박스나 냉동고로 보내져서 소 옆구리살처럼 갈고리에 걸려 석 달을 있게 돼. 그 기간이 끝났는데도 아무도 시체를 찾으러 오지 않으면, 국가가 비용을 부담해서 매장해. 다시 말해서, 이 경우 국가인 콜롬비아가 자선을 베푸는 거지.

 
파르세로, 할 얘기가 좀 더 있는 건 사실이야. 나는 ‘윌마르’를 두 번째 애인으로 맞이했지. 놀라지 마. 윌마르는 나의 사랑 알렉시스를 죽인 녀석이야. 왜 알렉시스를 죽였냐고 물었더니 태연하게 그가 자기 형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말했어. 윌마르가 잘 때 잠깐이나마 알렉시스의 복수를 할 생각도 했었지. 하지만 이내 포기했어. 왜냐고? 그 녀석 역시 곧 누군가에 의해 죽을 것이고, 실제로 죽었으니까.

 

어떻게 하면 ‘죽음’이라는 콜롬비아의 전염병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불행한 사람들아, 가난의 유전자는 그것보다 더 심해. 더 지독해. 10,000명 중에서 9,999명이 확실하게 자기 아이들에게 전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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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세로, 그건 아마도 불가능할 거야. 나는 아무 가구도 없고 영혼도 없는 내 황량한 아파트에서 혼자 외롭게 죽어가며 진심으로 기도했어. 종합 병원 의사들이 내 불쌍한 콜롬비아의 심장을 최선을 다해 잘 꿰매게 해달라고. 그러나 헛짓이었지. 신은 단물만 빨아먹고 콜롬비아를 버린 스페인 놈들이 선물한 것이니까. 그래서 신도 콜롬비아를 버렸으니까.

 

그런데 그리스도는 어디에 있지? 성전에서 장사치들을 채찍으로 내쫓은 분노하고 엄한 사람은 어디에 있지? 십자가가 그의 분노를 치료해 주어서 이제 더는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며 냄새 맡지 못하는 걸까?

 

나의 파르세로,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야. 지금 헤어지는 게 좋겠어. 이 이야기는 우연히 콜롬비아를 떠난 후, 수십 년이 지나 다시 돌아온 나의 이야기야. 나의 조국 콜롬비아의 이야기야. 지금까지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어 고마워. 이제 자네는 자네의 길을 가면 돼. 나도 아무 버스나 타고서 어디든지 아무 곳이나 갈 테니까.

 

그럼 잘 가.

 

차에 치이길.

 

혹은 기차에 두 동강 나길.

 

 

메데인의 법이 지구 반대편에 미칠 수 없도록

 

인생은 주먹으로 시작해서 보자기로 끝난다. 엄마의 배에서 세상으로 나온 아이는 주먹을 쥐고 우렁찬 울음을 터뜨리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노인들은 쥔 손을 펼쳐 떨구며 눈을 감는다. 이것은 아이들은 꿈으로 살고 노인들은 추억으로 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하는 말의 시작이 ‘나는 이다음에......’이며, 노인들이 하는 말의 시작이 ‘내가 왕년에는.......’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청년들의 분노는 더 파괴적이고 더 치명적이다. 청년들은 절망적인 미래를 용납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청년들은 자신을 ‘잉여 인간’으로 만들고, 자신의 인생을 ‘잉여 인생’으로 만든다. 그리고 세상과 기성세대에 대한 혐오와 조롱으로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유지해 나간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소비사회에서 청년들의 분노는 하루 세끼 밥을 먹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분노와 절망은 ‘상대적 빈곤’ 때문이다. 절대적 빈곤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상대적 빈곤이다. 

 

“나는 이다음에도...” 

 

“나는 앞으로도...” 

 

남들이 갖고 있는,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되는 것, 이것이 상대적 빈곤이다. 상대적 빈곤은 아무 이유도 없는 우연의 결과이기에 청년들의 좌절은 더 아픈 것이다. 누군가가 ‘흙수저’로 태어난 것은 그의 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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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에서 쉬고 있는 청년의 모습

출처-<연합뉴스>

 

청년들이 속한 사회 체제는 청년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체제는 기성세대가 만든 것이다. 그렇기에 청년들의 분노를 해결해 주는 것도 기성세대의 몫이 된다. 흙수저 청년들도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임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난한 청년들의 인생에 대해 우리 사회가, 우리 체제가 그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른들은 사과해야 하고 반성해야 하고 해결책을 만들어야 한다.

 

만약 이 말을 부정하고 싶다면 눈을 크게 뜨고 우리 사회를 관찰하면 된다. 19살의 청년 김 군이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작업하다가 죽었다. 김 군의 가방에는 1회용 나무젓가락과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원칙대로 2인 1조로 작업했다면 김 군의 인생이 19살에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른들이 돈을 아끼려고 김 군의 인생을 19세에 끝내 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2016년에 일어났고, 4년 뒤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민주’와 ‘진보’를 내세운 민주당이 180석을 얻었다. 그러나 김 군과 같은 흙수저 청년들에게는 여전히 ‘희망찬 변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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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BS>링크

 

법을 만들 권한을 부여받은 300명 중 무려 180명에게 개혁의 자리를 주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청년들에게 그 어떤 희망도 주지 못했다. 최소한의 임무였던 ‘동일노동 동일임금’ 조차 입법하지 못했고, 늙은이들이 만들어낸 망령인 ‘국가보안법 철폐’도 달성하지 못했다. 

 

자비로운 성모에게조차 버림받은 메데인 빈민가의 아이들이 총을 잡는 것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한 사람들을 만들고, 가난은 더 심한 가난을 만들어. 그리고 더 심한 가난이 있는 곳에 더 많은 살인자가 있고, 더 많은 살인자가 있는 곳에는 더 많은 사람이 죽어. 이것이 메데인의 법인데, 앞으로 전 지구를 지배하게 될 거야. 그러니 잘 적어놓도록 해."

 

우리의 일이고 우리나라의 일이다. 단지 이 땅의 청년들은 총 대신에 냉소와 혐오라는 무기를 들었을 뿐이다.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청년들의 인생이 빛나야 한다. 그것이 어른들의 의무이다. 젊은이들의 주장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주장하는 것 자체는 옳다. 그리고 그것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어른들 역시 옳다. 

 

가난한 청년들의 인생에도 희망을! 

 

이것이 열두 번째 인생탐구의 결론이며, 한 어른의 자기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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