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2일, 미국 전체를 뒤흔드는 대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여성의 낙태 권리를 인정했던 판례(로 대 웨이드, Roe v. Wade)를 뒤집는 결정이 나온 것이다. 미국인들에게 이 판결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성문법 시스템인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미국은 판례법 시스템이기 때문에, 연방 대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나온다면 앞으로 모든 판결은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은 충격, 혼란에 빠졌고, 걱정과 분노를 여기저기서 표출하고 있다. 일부 미국인들은 대법관들의 집을 둘러싸며 시위하기도 했다.
나는 과거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번복한 이번 판결에 비판적이라는 점을 우선 밝힌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한 폐해는 막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 언론에선 대부분 이번 판결에 대해 단편적인 소식만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판결이 왜 그렇게 나오게 됐었는지, 현재 미국에선 정확히 어떤 논리들이 오고 가는지는, 우선 최대한 중립적으로 전하려 한다. 그래야지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충격이 가시지 않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비판하고 싶지만, 미국 이슈이기 때문에 한국에 계신 독자들을 위해 배경 설명을 먼저 하겠다.
로 대 웨이드 사건
19세기 중반까지 미국에선 낙태에 관련한 법이 크게 없었다. 태동이 느껴지는 20주 전후까진 임산부의 결정에 따라 낙태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19세기 중반 전미의사협회가 ‘태동이 느껴지기 전까진 낙태를 해도 괜찮다’는 건 굉장히 비과학적이라며, 도덕적으로도 옳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미국 사회를 장악하게 된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미국 주에서 낙태는 불법이 되었다. (자료 링크1 / 링크2)
이런 현실이 뒤집히며 여성들이 다시 낙태권을 얻게 된 사건이 1973년 일어났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이다.
1970년 미국 낙태 합법/불법 상황
회색 주들은 낙태 불법.
Roe 판결이 시작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당시 텍사스에 살고 있던 노마 맥코비(Norma McCorvey)라는 여성이 이혼을 하고 난 후에 셋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 둘째 아이를 출산했을 때도 입양시켰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셋째 아이를 양육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낙태를 결심하게 되는데, 그때 린다 커피, 사라 웨딩턴이라는 두 변호사가 그녀에게 접근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사라 웨딩턴, 린다 커피,
제인 로
텍사스 댈러스의 검사였던 ‘헨리 웨이드’
이들은 ‘낙태법은 위헌’이라는 소송을 대법원까지 가져가기 위해, 낙태를 원했지만 하지 못하고 있는 여성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이렇게 뜻이 맞는(?) 세 사람은 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노마 맥코비가 ‘제인 로(Jane Roe)’라는 가명을 써서 텍사스 댈러스의 검사였던 ‘헨리 웨이드(Henry Wade)’를 상대로 소송을 내며 이 역사적 사건이 시작된다.
(알아두면 재미난 잡학 상식: 영미권에서 통상 법률이나 기타 공식문서에 성명 미상의 인물을 기재할 때, 혹은, 일반적인 인물을 지칭할 때, 남성의 경우 존 도(John Doe), 여성의 경우 제인 도(Jane Doe)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1973년 노마 맥코비가 사용한 가명 제인 로(Jane Roe)는 성명 미상은 아니나 신원 공개를 본인이 원하지 않았기에 사용한 이름이다)
이 사건은 아시다시피 ‘제인 로’가 이겨 여성의 낙태권을 찾아오며 마무리되었다. ‘제인 로’와 ‘헨리 웨이드’가 진행한 소송에서 나온 판결이기 때문에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이라 부른다(‘로 대 웨이드(Roe v. Wade)은 이하 ‘Roe 판례’ 혹은 ‘Roe 판결’로 간단히 칭하겠다).
왼쪽 여성이 '제인 로'
이후 Roe 판결은 미국에서 굉장히 뜨거운 정치 이슈가 된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에 나온 대부분의 후보는 Roe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항상 받을 정도였다. Roe 판결이란 낙태할 수 있는 권리를 부분적이지만 헌법적으로 인정해 준 것이다.
-임신 초기(12주까지) : 낙태 허용
-임신 중기(12주~24주까지) : 제한적으로 허용
-임신 말기(24주~출산) : 낙태 금지
-산모의 생명에 위협이 되는 경우 : 시기 관계없이 낙태 허용
삼분기(timester)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판결은 이런 식으로 낙태권을 보장해 준 판결이다.
로 대 웨이드 판결, 뒤집혔다. 왜?
1973년 이후, 낙태권을 보장받던 미국인들에게 중간중간 낙태 관련 자잘한 일들이 있었지만, 큰일들은 아니었다. 큰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건, 2018년이었다.
2018년 미시시피주가 낙태를 규제하는 법을 통과시킨다. 내용인 즉, 임신을 한 지 15주가 지나면 임산부의 건강에 굉장히 심각한 위험이 있거나 태아에게 위험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다(예외 사항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성폭행 등에 의한 임신일지라도 낙태를 할 수 없다.
그래서 미시시피주에 위치한 여성 클리닉 'Jackson Women's Health Organization'가 이 법이 위헌이라며 미시시피주의 보건 책임자 ‘토마스 도브스’를 상대로 소송을 낸다. 이 소송 사건의 이름이 ‘도브스 대 잭슨(Dobbs v. Jackson) 사건’이고, 이번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온 사건이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은 Roe 판결을 뒤집으며 Roe 판결을 무효화했다.
잭슨 여성보건기구
(Jackson Women's Health Organization)
토마스 도브스(Tomas Dobbs)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건, Roe 판결을 뒤집은 이번 판결이 낙태를 금지한다는 판결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판결이 말하는 건 당시 Roe 판결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미국의 수정 헌법에는 이런 조항이 있다.
제1조 : 종교,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 청원 권리
제4조 : 부당한 수색, 체포, 압수 금지
제5조 : 대배심 보장, 이중 처벌 금지, 재산권 보장
제9조 : 국민 권리 장전(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국민 권리)
제14조 : 시민권의 정의, 적법 절차 권리, 평등 보호
1973년 Roe 판결 당시, Roe 측에선 이 조항들을 근거로 들어 국민의 사생활 권리는 보호받아야 하며, 낙태의 권리는 이 사생활에 들어간다고 주장했다. 특히, 9조와 14조를 강조했는데, 이 조항들만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겠다.
"The enumeration in the Constitution, of certain rights, shall not be construed to deny or disparage others retained by the people“
(헌법에 특정한 권리들이 열거되었다는 것이 국민에게 있는 (열거되지 않은) 다른 권리들을 부정하거나 폄하하는 것으로 해석되면 안 된다)
-수정 헌법 제9조-
"No State shall make or enforce any law which shall abridge the privileges or immunities of citizens of the United States; nor shall any State deprive any person of life, liberty, or, property, without due process of law"
(어느 주도 적법한 절차 없이 개인의 생명, 자유, 재산을 빼앗을 수 없다)
-수정 헌법 제14조-
이 두 부분은 이런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국민은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고, 적법한 절차 없이 (주나 국가가) 이것을 침해할 수 없다."
때문에 임신의 단계를 고려하지 않고, 모든 낙태를 금지하는 텍사스 법은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거다. 미국 수정 헌법에 ‘사생활을 보호한다’는 조항이 직접 명시되어 있진 않지만, Roe 판결 전에 있었던 여러 판례에서 수정 헌법에 명시된 자유와 권리에 대한 부분을 근거로 사생활을 보호해야 한다는 판결이 있었기 때문에 Roe 측도 이 논리를 사용하여 텍사스 법을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대법관 9명 중 7명이 이 주장에 찬성하며 텍사스 법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 당시 대법관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윌리엄 렌퀴스트(위), 바이런 화이트(아래)만이
Roe 측의 주장을 반대했다.
당시 Roe 판결에 대한 ‘반대 의견’ 중엔 사생활과 낙태에 관한 권리에 대해 헌법을 너무 광범위하게 해석했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이번 판결에서 그 부분에 대해 지적을 하며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헌법에는 낙태에 관한 언급이 없는데, 당시 대법원에서 사생활과 낙태에 관해 헌법을 너무 과잉적으로 확대해석하여 월권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확대해석을 하여 법에 없는 권리를 만들어 내어, 입법부의 권한을 침해했기 때문에, 법을 제정할 권한이 있는 입법부(주의회)에게 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입법권을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문 중 그런 내용이 담긴 부분이다.
“The Constitution does not confer a right to abortion; Roe and Casey are overruled; and the authority to regulate abortion is returned to the people and their elected representatives.”
(헌법은 낙태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 Roe와 Casey 판결은 뒤집혔다. 그리고 낙태를 규제할 권한은 국민과 그들이 뽑은 대표들에게 돌아간다)
9명의 대법관 중 5명이 이 논리로 Roe 판결을 뒤집는데 찬성표를 던졌다.
현재 미국 대법관들.
Roe 판결을 뒤집는데 찬성표를 던진 대법관은
Thomas, Kavanaugh, Alito, Gorsuch, Barrett이다.
50년 전으로 돌아간 미국
1973년 Roe 판결이 있기 전까지 미국에서 원치 않은 임신에 직면한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거의 없었다. 인생이 뒤틀려 버렸다. 유복한 가정의 여성들은 그래도 좀 나았지만(물론 부모한테 엄청 혼났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막막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낙태가 불법인 지역에서 낙태를 꼭 해야만 했던 여성들은 불법 시술에 의존하다가 부작용의 희생자가 되거나, 시술 후 체포되기도 했고, 출산을 해도 미혼모의 경우 사회적으로 나락에 빠졌다. ‘품행이 방정치 못한 년’이라는 사회적 낙인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다시 이런 세상이 되었다.
정상적인 커플 간에도 아기를 낳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임신은,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특히 여성들이 많은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임신은 남녀 함께 이루어 낸 것인데 말이다.
Roe 판결은 그런 수많은 여성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었다. 일차적 수혜자는 여성이지만, 남성들에게도 궁극적으로 득이 되는 바람직한 시대적 변화였다.
Roe 판결 번복 이후, 주별 현황
출처-<한국경제>
물론 이를 두고 논쟁은 계속 있어왔다. 생명주의파(Pro-Life)와 개인의 선택주의파(Pro-Choice) 간의 논쟁이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생명주의파(Pro-Life)는 모든 시기의 태아를 생명으로 봐서 모든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선택주의파(Pro-Choice)는 (시기를 구분하여) 개인에게 낙태를 할지 말지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자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시각에서 궁극적으로 차이 나는 부분은 ‘태아를 인간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것인데, 생명주의파는 임신이 이루어진 상태를 인간 생명의 시작으로 본다. 한편, 선택주의파는 일반적으로 태아가 산모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도 자연생존이 가능한 상태여야 인간 생명의 시작으로 본다.
일단 태아를 생명으로 간주하게 되면, 낙태를 쉽게 주장하기는 힘들다. 뱃속의 태아도 생명체이고 임신 중절은 살인과 다름 없게 되기 때문이다. 정확히 어떤 지점을 생명의 시작으로 보느냐에 대해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칠삭둥이는 의학이 발전하지 않았던 예전에는 출생 후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 의료기술은 육삭둥이의 생존도 가능하게 한다.
현실은 교과서 속 이론과는 다르다
여기서 한 가지, 생명주의는 선택주의를 향해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살인자 집단’이라 자주 공격하는데, 이는 편견을 담은 극단적인 관점이다. 세상 살다 보면, 인생이 교과서적으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닌 것임을 우리는 잘 안다.
일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되기도 하고, 본인의 잘못 없이 억울하게 흘러가기도 한다. 때로는 본인이 일탈했던 정도보다 훨씬 가혹한 결과를 맞게 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인생은 복잡하다. 임신이 되는 경우도 다양하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더라도 아기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고(예를 들면, 어린 학생 등), 성폭행으로 인해 임신이 될 수도 있고, 근친상간으로 될 수도 있다. 일일이 언급할 순 없지만, 임신이 되는 상황은 정말 다양하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높은 확률로 엄마(혹은 아빠)와 아이는 불행한 환경 속에서 시작을 맞이하게 되고 그 여파는 높은 확률로 지속된다.
이것이 삶이고 현실이다. 그런데 생명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은 교과서적인 생명 존엄성이란 명제 하나로, 아이를 무조건 낳으라고 강요하며 그 입장을 반대하면 ‘아기 살인자’로 규정한다. 선택주의자들의 주장은 무조건 낙태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개인에게 선택권을 주자는 것이다.
제목: 선택주의(Pro-Choice)가 낙태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고민 끝에, 그래도 신이 주신 생명인데 아무리 힘들어도 낳아야 하겠다고 결정하거나, 그렇지 않고 현실적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낙태를 선택한다. 양쪽 모두 존중해준다는 의미이다. 물론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할 수는 없기에 낙태를 한다면 가능한 최대 이른 시기에 하도록 한다.
시기를 놓쳐 배가 불러오고 자기 신체에 변화가 느껴지면, 산모들은 어떤 형태로든 새 생명과 교감을 하게 된다. 그동안 낙태 권리를 주장해왔던 여성이라도 이런 것들을 느끼다 보면 낙태 결정을 손쉽게 하기는 힘들다. 낙태를 하게 된다해도, 그 후 죄책감에 빠지곤 한다.
선택주의를 향해 ‘아기 살인자’라고 공격하는 생명주의자들은 공감능력이 크게 부족하다고 본다. 타협하지 않으려는 그들은 생명의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하고, 다른 모든 것은 거기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놓고 표현하자면, 자기 일이 아니니까 쉽게 말하는 것이라 본다. 본인이 한번 그런 입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고도 이렇게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있을지.
생명주의파(Pro-Life) 시위
출처-<AP>
말로써 어떤 가치를 주장하는 것과 실제 그 가치를 이행하는 것은 매우 큰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보자. 길 가는 사람 중 웬만한 사람을 붙잡고 기후위기에 도움이 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내고 친환경 상품을 사용할 용의가 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그렇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 더 싼 것을 살 것이다. 물건 사는 것만 해도 이런 선택을 하는 게 사람이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다는 건, 물건 사는 것과 비할 수가 없다. 실제 당해본다면, 많은 갈등과 혼란, 그리고 고민을 통해 결정을 내릴 것이다. 만약 고민을 통해, 그래도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결정한다면, 나는 그 결정에 존중하며 박수를 보낼 것이다. 어? 이거 바로 위에서 본 건데? 맞다. 바로 이것이 선택주의자가 하는 결정과정이다.
아무리 생명주의자라 하더라도, 생명 존엄성 한 가지 명제만을 갖고서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실제로 본인이 당해보면 그렇게 결정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결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도 결국 선택주의자의 모습을 띠게 된다는 얘기다.
생명주의자의 논조는 근본적으로, 남의 인생에 대해서 ‘감 내놔라 밤 내놔라’하는 것이라 본다. 알다시피 미국은 개인주의 사회이다. 남의 일에 쓸데없이 간섭하지도 않고, 간섭을 받는 것에도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는 사회다. 그러니 Roe 판결에서도 사생활이 중요한 요인이 된 것이다.
논란과 토론은 계속되었지만, 지난 50년간 미국 사회는 점차 개인의 선택권을 지지해주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비정치적 싱크탱크인 Pew Research Center의 조사와 발표에 의하면, 전체 미국인의 60-70%가 Roe 판례를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모든 혹은 대부분의 경우에 대해서,
낙태 권리 찬성과 반대 여론
그런데 어찌하여 2022년 6월에 시대를 역행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게 된 것일까? 1973년 Roe 판결에 비해, 이번 판결은 다분히 정치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판결문의 내용 중에는,
“낙태 권리에 관련된 사생활은 이 나라의 역사와 전통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
고 했다. 사생활로 인정받기 위해선 이미 많은 국민들의 역사와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관습과도 같은 것이어야 하는데, Roe 판결 당시, 낙태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생활로 인정받기 위해선 역사와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관습이어만 한다니... 정치에 철저히 중립을 지켜야 할 대법원에서 이런 판결이 나오자, 많은 미국인들은 실망감을 표출했다. 갤럽 조사에서는 미국인들의 25%만이 대법원에 대해서 믿음이 간다고 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제목 : 미국 대법원에 대한 신뢰가 역대 최저로 떨어지다
<계속>
※다음 편에선 이번 판결로 인해 어떤 폐해가 발생할 것인지, 미국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미국에서 대표적 낙태 반대세력은 누구인지, 이번 판결에 숨어있는 보수 세력의 음모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살펴보겠다.
알아두면 재미난 잡학상식 2 : 노마 맥코비(1947-2017)는 비록 미국 역사의 큰 획을 그은 사건 중심에 섰던 인물이지만,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았던 그녀의 삶은 수수께끼 투성이었다. 그다지 남에게 모범을 보일만한 삶을 살지 않았고, 오히려 굴곡 투성이의 삶을 살았다. 알콜중독 가정, 청소년 범죄, 소년원 수감, 폭력 남편, 아이 방치하고 놀러 다니는 등 속되게 말해 ‘정말 이런 사람은 아이를 낳으면 안 돼’ 소리가 나올 만한 에피소드가 몇몇 된다. 그녀는 린다 커피, 사라 웨딩턴 두 변호사가 찾아낸 인물일 뿐, 대단한 인물은 아니다.
사실 그녀는 세 번째 아이를 출산하였다. ‘로 대 웨이드’ 소송은 임신 초기에 시작한 것이고, 판결은 한참 나중에 나왔으니까. 이후 낙태 권리 운동에 참여하였지만, 1995년 갑자기 마음을 바꿔 이후 평생을 낙태 반대운동의 선봉에 섰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로 볼 수도 있지만, 나는 보수 진영이 한 ‘공작의 승리’라고 본다. 생명 존엄을 앞세워 세뇌를 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넘어가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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