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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두 분은 합법적 섹스 파트너인가요?”

 

“와 애국심이 없구만! 순 자기밖에 모르는 놈!”

 

“지금이야 좋지. 나중에 늙으면 외롭다~ 그러니 하나만 낳아!”

 

나열하려면 서른마흔다섯 개쯤 더할 수 있는, 딩크로 사는 부부가 들었을, 혹은 들으며 사는 말들이다. 미혼 2030 10명 중 5명 가까이가 딩크족이 되려 하는 2022년 대한민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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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혼 6년 차 30대 딩크족 부부다. 나는 처음부터 아이 없는 삶을 생각했다. 아내는 당연히 결혼하면 아이를 낳는 것 아닌가라고 막연히 생각을 하다 나중에 결심을 굳힌(이라 쓰고 내가 설득한) 케이스다. 지금은 이 문제로 더 이상 싸우지 않지만 결혼 2~3년 차에는 내일 법원 앞에서 만나자는 말이 오고 갈 정도로 극렬하게 싸웠다.

 

싸움 내용은 주로 이랬다. 나는 아이를 별로 좋아라 하지도 않고, 아이라는 존재를 오롯이 키워낼 자신도 없었고, 굳이 나의 유전자를 지구에 남겨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마음가짐으로 아이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을 했고 앞으로도 크게 마음이 바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왜 아이를 가져야 해?”라는 본질적 질문을 아내에게 던졌고, 아내는 “당연한 것 아냐? 결혼은 아이를 가진다는 걸 전제로 하는 거 아냐? 난 사기 결혼을 당했다?”로 맞섰다.

 

우리의 치열했던 논쟁은 “혹시 아이가 생기면 낳되, 노력은 하지 말자”를 거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이를 낳지 말자는 오빠의 말에 나의 선택권이 빼앗긴 것 같아 화가 났던 것 같아. 사실 나도 아이가 없는 삶이 좋을 것 같아”로 끝을 맺었다. 선택권을 빼앗긴 것 같다는 아내의 말에 너무 내 생각을 강요한 것이 아닐까 싶어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렇게 우리는 합의된(?) 딩크족 부부가 되었다(뭔가 그 뒤로 아내한테 더 잘하게 된 건 절대 기분 탓은 아닌 것 같지만).

 

여하튼 이렇게 결론이 났지만 논쟁을 하는 와중, 그리고 지금까지도 곰곰이 곱씹게 되는 말이 있다.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가지는 것 아냐?”

 

정확히는 그 “당연히”에 포커스가 있다. 우리의 삶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고 무한도전에서 봤는데 왜 이런 큰일이 선택이 아닌 당연한 것인지 싶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비단 그것만 그런가 싶기도 하다.

 

지금은 조금 변화해 가는 추세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목적지와 행선지가 정해진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 같은 삶을 살지 않으면 피곤한 나라다. 좋은 말로는 염려와 조언, 흔히 하는 말로는 오지랖이다. 왜 그럴까?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과 역사, 초고속 압축 성장의 부작용, 군사 독재의 긴 시간 등등 다양한 이유와 분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그것을 면밀히 분석할 깜냥은 없으니 그냥 나의 경험을 한 스푼 넣어 뇌피셜을 풀어볼까 한다.

 

양육비, 경력 단절, 난임

 

부모님 세대는 근면 성실히 일하며 착착 성장하는 시대를 살아오셨다. 지금과는 달리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결혼도 해 가정을 꾸리는 시대였다. 그리고 그 공식은 진리와 같았다. 하지만 그 진리는 1998년 ‘IMF 사태’로 무참히 무너졌다. 그야말로 폭망이었다.

 

그 일을 기점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망할 수 있고, 망하면 다시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널리 퍼졌다. 그래서 안정적인 수입(일자리)과 내일도 오늘 같을 변화 없는 평범한 삶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결국 망하기 어려운 선택을 하고 누구나 하는 선택을 해서 행여나 망하더라도 나만 망하지 않을 극단적 리스크 회피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이 무렵 공무원과 대기업 선호가 증가한 통계를 보면 나만의 뇌피셜은 아님을 주장할 수 있다.

 

안 그래도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는 나라에서 이렇게 극단적 안정을 추구하는 게 보편적 정서가 되다 보니, 나의 소중한 자식이나 사람이 위험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을 하면 말리고 싶고, 바로잡아주려 하며 안된다고 가르치는 것 아닐까 싶다. 더 깊이 들어가면 수렁에 빠질 것 같으니 원인은 여기까지만 알아보자. 어차피 원인을 안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 말이다.

 

다시 나의 딩크 이야기로 돌아와서. 과연 딩크를 선택한 이유가 나처럼 완전히 개인적 고민과 취향만 있을까? 나도 궁금해서 여기저기 찾아보니 너무나 서글프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아까 처음에 나왔던 조사를 다시 살펴보면, 딩크를 선호하는 이유로 전체의 48.8%는 ‘경제적 여유’를 꼽았고, 34.5%는 경력 단절을 이유로 뽑았다. 결국 나와 같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양육비와 경력 단절 우려로 인해 이런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자의든 타의든 선택인데 더 서글픈 것은 난임으로 인한 비자발적 딩크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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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코노미스트

 

사회가 복잡해지고 환경적인 변화가 커지며 난임과 불임은 눈에 띄게 많이 늘어나고 있다. 30대인 내 주변에도 난임 치료를 하거나 시험관 시술을 하는 분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래도 많은 경우 임신에 성공하는 것 같지만 실패로 힘들어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런 분들에게 서두에 나왔던 그런 질문과 말들은 얼마나 무례한 말이며 폭력일까?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기찻길 인생에서 나이에 맞춰 제 속도로만 가지 않아도 문제 있는 기차라 말하는 이 사회에서 말하지 못하고 묵묵히 그런 말을 곱씹었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이렇듯 딩크족에게 쉽게 하는 말은 비자발적 부부에겐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하고, 선택을 강요받은 부부에겐 허탈감과 박탈감을 주며, 선택을 한 부부에겐 ‘지가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왜?’와 같은 어이털림을 준다. 그러니 괜한 오지랖보다는 알아서 잘 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그저 응원을 해주면 어떨까 싶다. 원래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는 것이고, 자신의 문제는 자기가 제일 잘 아는 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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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료가 되라!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한국이라 조금 피곤하기는 해도 기찻길에서 약간만 벗어날 용기만 가지면 스스로 결정한 삶을 조금은 뻔하지 않게 살아볼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부모님께 등짝을 맞거나, ‘내가 니가 이러라고 그렇게 힘들 게 키운 줄 아냐?’ 같은 다소 억울한 말을 들을 각오는 필요하다.

 

여하튼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했고 조금은 남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 그래서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았고, 회사원은 되었지만 노동조합을 만들어 4년째 조금은 다른 회사 생활(?)을 하는 중이다. 물론, 노동조합도 딩크족 못지않은 격정과 염려(?)와 오지랖에 마주한다. (심지어 나는 2개 다 해당해서 따불로…) 가령

 

‘그러다 밉보여서 회사 짤리고 인생 골로 간다’

 

‘남을 위한 것도 좋지만 너의 인생을 살아라’

 

같은 말이다. 마음은 감사하나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고, 회사 말고도 밥 먹고 살 일은 많은 것 같아 그만 듣고 싶은데 계속 말씀해 주신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라 더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좀 알려졌으면 하기도 했고 나 같은 사람이 더 많아져서 보편화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딴지에 ‘야 너도 할 수 있어’로 시작해 ‘게임회사 노동조합 분투기(링크)’를 썼다. 

 

하지만 주제가 문제인지 내 글이 노잼인지 모르겠지만(모르긴 후자겠지!) 하찮은 조회수로 조기종영을 했고, 마지막에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면 추천을 주세요!’ 했지만 심폐소생술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았고 누구도 궁금해하거나 시키지 않았지만 그 뒷이야기까지 다 써서 책으로 돌아왔다.

 

그렇다.

 

시작은 딴지가 했지만 마무리는 내가 했다! 사실, 이 한마디 하려고 위에 썰 푼 거다! 딴지 편집부에선 광고비를 줘도 안 받는다고 하고, 무엇보다 우린 광고비 받고 기사 써주는 곳이 아니라며, 대신에 저자가 직접, 재미나 의미가 있는 글을 쓰면 기사로 간다해서 썼다.  

 

그래도 여기까지 스크롤 내리며 본 독자분들이라면, "이자가 대체 뭔 소리를 하는지 함 들어나 보자!"라는 마음이 있었을 수도 있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애 안 낳고 노조에 인생을 좀 갈아 넣은 이 작자가 뭔 소리를 하는지 속는 셈 치고 함 들여다보심이 어떨까 한다. 

 

책 광고라는 불순한(?) 의도를 드러낸 김에, 대놓고 말하자면 책은 아주 얇고 내 경험담 위주로 노조를 찍먹(?) 할 수 있게 쉽게 썼다. 나 역시 이런 인생을 살지 상상하지 못했기에 어떻게 직장과 사회의 불합리에 대응하고 바닥부터 시작하는지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시작은 이 미천한 나와 함께 하는 것도 좋겠다.  

 

까놓고 말해, 저자들이 자기 인생 갈아 넣어서 책을 써도 대부분 1쇄에서 끝난다. 그 1쇄 부수도 엄청 줄어든 게 요즘이다. 다 팔아 봤자 돌아오는 돈은 100만원에서 200만원이다. 그 돈,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게 낫지만 그 수입보단 함께 이야기할 동료가 많았으면 한다.  

 

노동조합이 궁금하신 분, 쟤는 왜 저래 사는 거지 궁금한 독자 분덜, 동료를 구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서점에서 이 책을 한 번 거들떠 보심을 권해드린다.

 

마지막으로 직장 내에서 오늘도 고군분투하며 기찻길을 벗어나고 싶은, 벗어나려 하는, 이미 벗어난 모든 이들에게,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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