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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치안을 유지하고 소방은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며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친다. 모든 직업이 그렇듯, 공무원들도 저마다의 역할과 임무가 있다.

 

보좌관만큼 잘 알려진 직업도 드물 것이다. 뉴스에서도 드라마에서도 국회의원 옆에는 으레 보좌진이 있다. 그런데, 보좌진이 무슨 일을 하는 공무원인가? 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딱 부러진 답을 내놓기 쉽지 않다. '보좌'라는 업무의 광범위함과 모호성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보좌진의 업무 범위는 무궁무진하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국회의원 보좌진의 정해진 역할과 임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으로서, 직업인으로서 그들에게도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그들이 보좌하는 국회의원의 역할과 임무에 닿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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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회사무처

 

지역 정치인으로서의 국회의원

 

지역 주민들이 요구사항은 다양하다. 교통체증 완화를 위한 지하 도로 개통 예산을 따온다거나, 자기 지역에 대기업을 유치하고 혐오 시설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는다거나,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체육관 건립에 앞장선다거나 하는 일이다. 작게는 지역 골목길 가로등 설치, 놀이터 놀이기구 보수, 주민들 간의 사소한 갈등 중재 등등이 있다. 국회의원은 지역 유권자의 표를 얻어 당선이 된다. 당연히 지역 유권자들이 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 지역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본인 지역 국회의원 입장에선 놓치면 안 되는 중요 관심사항이다.

 

여기서 질문. 그렇다면 구청장, 군수, 시장 등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말하면 국회의원은 예산을 따오고 단체장은 그 예산을 집행한다.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고, 무언가 일을 도모하려면 지역구 국회의원과 단체장의 케미가 잘 맞아야 한다. 국회의원과 단체장 모두 지역 유권자들의 표로 당선된 정치인들이다. 때문에, 지역 발전 결과를 모두 자신의 공으로 돌리고 싶어 한다. 언제나 과유불급. 자기 공치사에 눈이 멀어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모 지역구에 교육 전문가로 국회에 입성한 국회의원이 있었다. 그 국회의원은 자신의 지역구를 ‘교육특구’로 만들려 했다. 선진 교육 시스템을 자신의 지역구에 도입하고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에게 호응을 얻고 싶어 했다. 그 의원은 늘 교육부와 협의하고 예산을 따려고 노력했지만, 그곳의 시장은 관심사가 달랐다. 지역에 기업과 연구소를 유치해서 기술 선도 혁신 도시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둘의 불협화음이 장엄하게 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국회의원은 교육 예산 확보를 위해 중앙부처와 협의하면서 지역의 공무원들을 푸시 했지만, 그 지역 공무원들의 직속상관은 다름 아닌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시장이었다. 뭐가 뜻대로 잘 굴러갔을 리가. 그 지역은 그렇게 내내 엇박자를 냈다.

 

의원과 지자체장의 소속 정당이 다르면, 이런 불협화음은 도시 전체에 항상 은은하게 깔려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때로는 정치적 타협을 통해 단체장과 국회의원이 호흡을 잘 맞추는 사례도 없진 않다. 반면 같은 정당이라고 항상 좋은 러닝메이트가 되는 건 아니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 둘 사이가 좋지 않으면 말짱 꽝이다. 따지고 보면 같은 정당 소속이라 할지라도, 단체장과 국회의원은 그 지역의 정치적 라이벌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서로 견제하는 경우도 많다.

 

서로 정당이 같든 아니든, 사이가 좋든 나쁘든, 노선과 철학이 같든 다르든, 어쨌든 어떤 성과가 나오면 단체장과 국회의원은 앞다퉈 각자의 공로라고 말한다. 그럴 땐 아주 똑같다. 실제로 지역에서 이뤄낸 어떤 결과물은. 지자체장이 잘한 건지 지역 국회의원이 잘한 건지 칼로 무 베듯 구분하기가 힘들다. 그러니 일단 서로 자기가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심지어 지역의 원외 정치인들도 자기들이 시장과 국회의원에게 건의해서 성과를 냈다고 거들며 공치사 현수막을 내건다. 훗날 선거 공보물이나 의정 보고서에 서로 자기가 했다고 쓰는 것은 물론이다.

 

국회의원실의 보좌진은 크게 지역 보좌진과 국회 보좌진으로 나뉜다. 국회의원의 이런 업무는 주로 지역 보좌진들이 서포트 한다.

 

정당 정치인으로서의 국회의원

 

대부분의 국회의원은 정당에 소속된 정치인이기 때문에 정당 정치인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표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자신이 속한 정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면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기회조차 없다. 그러니 자신에게 공천을 준 정당에 충성해야 하고 정당의 뜻에 따르는 것이 일반적인 룰이다.

 

만만한 게 비례대표나 초선 의원이란 말이 있다. 당내에서 귀찮거나 피곤한 특위를 꾸려야 한다거나 할 일이 있을 땐 지도부에서 가장 먼저 찾는 게 이들이다. 그래서 초선 의원들 방은 항상 일이 많다. 지도부에서 시킨 일만 하다가 임기가 끝나는 경우, 많다.

 

한국 바둑계의 전설 조훈현 기사는 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아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평생을 묵묵히 바둑만 둔 바둑 기사가 말 한마디로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여의도의 어법에 맞는 언변을 구사했을 리가 만무. 그러다 보니 국회에 입성했을 때에 비해 인터뷰나 외부 노출이 극도로 적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조훈현 의원의 정치적 철학이나 본인의 소신에 대한 그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이렇다 할 존재감은 전혀 나타내지 못하고 새누리당의 피켓맨으로 임기를 소진했다.

 

평생을 바둑만 둔 선비 같은 양반이 새누리당의 최선봉에서 피켓 시위를 하는 모습은 정치의 애잔함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이렇듯, 정치인들은 싫든 좋든 자신이 속한 정당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거기서 공천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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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물론 지도부의 결정에 반기를 드는 정치적 선택을 하기도 해야 할 때도 있다. 주로 자신에게 불이익이 되거나 자기가 속한 계파에 불이익이 될 때가 그렇다.

 

시간을 돌려보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시절 친문, 친노, 정세균계, 민평련계, 안희정계, 박원순계, 김한길계, 안철수계, 손학규계 등등으로 당이 개판(?) 이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의 민주당 내홍은 태평성대 수준이랄까. 문재인 당시 당 대표와 손발을 맞춰줄 당내 인사는 극도로 부족했다. 너도나도 자신에게 공천을 준 정당의 당원들이 뽑은 당 대표를 마구 흔들어 댔다. 오죽했으면 아침마다 당 대표 욕을 하며 시작한다고 ‘문모닝’이라는 말까지 있었을까.

 

문재인이라는 인물은 답답해 보여도 지독하게 뚝심 있는 정치인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도 그때다. 당시에 당 대표를 흔들던 인사들은 버티지 못하고(아무래도 공천은 물 건너 갔구나라는 생각에) 탈당했다. 문재인 대표는 그 자리에 새로운 영입인사를 데려왔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는 일대 혁신을 단행했다. 내가 목도한 바, 아니 그 이전을 다해도 한국 정당 사상 최초, 진정한 의미의 ‘혁신’이었다고 본다. 간판만 바꾸고 혁신이라고 하는 이전의 구태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중에, 각 의원실에서는 치열한 회의가 벌어진다. 정당의 결정과 흐름에 순행할 것인가 자신의 이익 혹은 계파의 이익을 위해 역행할 것인가. 국회의원의 이런 중차대한 판단과 내보낼 메시지를 결정할 때 같이 하는 자들은 의원실 내 보좌진들이다. 보좌진들 중에서도 가장 연륜이 많은 사람의 의견이 크게 반영된다. 굳이 명칭을 붙이자면 정무보좌진과 메시지 담당 보좌진들이 바로 그들.

 

입법부원으로서의 국회의원

 

국회의원이 되면, 대한민국 1년 국가 예산을 심의하고 감독하고, 정부의 정책 결정을 견제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원론적인 이야기다. 견제는 야당이 주로 한다. 여당은 정부와 손발을 맞춰서 정책을 추진하고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법안 발의 및 심사, 예산심사, 국정감사 등을 통해서 하게 된다.

 

어떤 국회의원 이름 석 자의 이미지는 권력자라든지 부정부패의 화신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나마 그런 이미지라도 떠오르는 네임드 국회의원은 의외로 적다. 대부분은 빌런 캐릭터고 나발이고 시민들에게 아무런 이미지가 없는 '듣보잡'일 경우가 많다. 국회에는 300명의 국회의원이 있다. 그중 얼굴을 아는, 아니 이름이라도 아는 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떠올려 보시라. 심지어는 자기 손으로 찍은 자기 동네 국회의원이 누군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국회의원들은 언제나 관심을 갈구한다. 오죽했으면 ‘정치인은 자기와 관련된 뉴스는 자신의 부고만 빼면 모두 좋다.’라는 말까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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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이 자신의 인지도를 올리는 가장 평범하지만 정석적인 수단이 바로 국가의 정책을 심의 감독하는 임무다. 노무현이라는 이름 석 자가 떠오른 것은 그가 국회의원 시절이었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 비리 조사 특별 위원회(5공 청문회)에서 활약으로 전 국민의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5.18광주 민주화운동 청문회에서 이인제가, 1997년 한보 사건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김민석이 그런 식으로 전국구 인물이 되었다. 그 외에도 노회찬 의원이 삼성 X파일을 통해 ‘떡값 검사’ 실명을 공개하면서 전국구급의 인지도를 올리기도 했었고, 최근의 사례로는 안민석 의원이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에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이처럼 국회의원들이 의정 활동을 통해 정부 정책과 예산을 심의 감시하고, 사회 부조리를 드러내면서 인지도를 쌓게 되는 그런 기회는 아무에게나 쉽게 오지 않는다. 4년 임기 동안 큰 거 하나만 딱 터뜨려도 재선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그러니 국회의원들이 뭐라도 한 건 올리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그 사력에 9명의 보좌진들의 사력이 보태짐은 당연한 일이다. 전원 총력전이다.

 

오징어 게임 in 여의도

 

이 모든 국회의원들의 역할과 임무는 칸이 명확히 나눠지지 않는다. 모든 것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점을 오가는 것이 보좌진들의 진짜 임무다. 보좌진은 의원이 지나간 자리와 지나갈 자리에 어디에든 있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보통 정무, 정책, 지역, 수행, 홍보, 행정 등으로 보좌진의 업무를 나누는 편이다. 국회의원 운전을 하면서 일정을 따라다니는 수행 비서관이나 사무실의 살림을 맡고 있는 행정 비서관을 제외하면 보좌진 간의 업무 칸막이는 느슨하다. 정책도 하면서 홍보도 하고 그러면서 정무적 판단도 하고 메시지도 써야 한다. 국회의원을 보좌하기 위한 팔방미인이 돼야 한다.

 

처음부터 팔방미인으로 국회에 입성하는 인재는 드물다. 의원실의 요구에 따라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오래 살아남게 되면 모든 의원실에서 탐내는 팔방미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국회야말로 그런 곳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곳. 

 

여기서 알 수 있는 정치의 또 하나의 아이러니. 살아남은 자가 항상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의원이든 보좌진이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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