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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링크)에서 이어집니다.

 

불안해서 하는 뻘짓은 강박행동이다

 

(이지풍 코치와 스스로를 갈아 넣는 과도한 훈련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이어서)

 

홀짝(이하 ‘홀’): (한덕현 교수에게) 여기에 대해서 묻자.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고 쉬어도 쉬는 게 아닌 것 같아서 자꾸 뭘 하게 되는 거.

 

한덕현(이하 ‘한’): 지금 한 이야기, 그 뻘짓을 의학적인 용어로 가져오면 COMPULSIVE BEHAVIOR라고 한다.

 

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다.

 

한: 강박 행동.

 

이지풍(이하 ‘이’): behavior(비하비어)는 알아 들었다(웃음).

 

한: 강박 행동이 뭐냐면, 강박 사고가 있는 사람한테서 그걸 해소하기 위한 강박적 행동이 일어나는 거다. 예를 들면 강박증이 있는 사람이 화장실 들어가기 전에 불을 한 번만 켜고 들어가야 하는데 ‘아~ 이거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아’ 그러니까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번 껐다 켰다 하고서는 ‘아~ 안전해. 들어가자’ 그런 것들이 COMPULSIVE BEHAVIOR다.

 

어떤 비논리적인 사고에 의해서 내 불안이 유발돼서 그 불안을 해소하고자 나오는 행동들이 강박 행동이다. 어떤 선수에게도 똑같이 발생을 하는 거지. ‘내가 내일 분명히 못 칠 것 같아. 내가 오늘 야구 되게 못한 것 같아’ 그래서 불안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 나가서 3천 번 스윙을 하면, 손바닥이 발바닥이 되면서 배트를 못 잡지. 다음 날 힘 있게 배트를 못 쥐어서 또 삼진을 당해. 그다음 날 또 (스윙 연습을) 6천 번 하면 더 잘 할 것 같아. 6천 번을 해. 새벽 3시 반까지. 그다음에 배트를 들 힘이 없어서 경기 못 나가는 거다. 이런 일들이 되게 많았다. 결국 강박 행동이라는 건 뭐냐면 무의미한 어떤 행동을 통해서 이 사람을 계속 파괴시키는 것들이거든.

 

홀: 그걸 무의미하다고 말하기에는 좀 그런 게, 강박증이 있는 사람이 화장실 불을 다섯 번 껐다, 켰다 하는 건 진짜 무의미해 보일 수 있지만 야구 선수가 훈련을 하고, 취준생이 공부를 하거나, 회사원이 자기 개발을 하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가?

 

한: 거기서 어떤 공부를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내가 소아 청소년 진료를 보는데, 공부를 무진장 열심히 하는데 성적 안 오르는 애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 특징이 뭐냐 하면, 자기들이 아는 것만 해. 수학 문제를 풀면 본인이 풀 수 있는 인수분해만 풀어. 미적분을 풀어야 되는데. 자기 공부 3시간 했다 그러는데 자기가 모르는 건 안 풀고 아는 것만 쫙 풀어. 다 동그라미, 다 동그라미야. 시험 문제는 인수분해만 나오나? 미적분도 나오지.

 

홀: 그건 무의미한 행동이고.

 

한: 똑같다. 강박 행동이 바로 그런 거다. 자기가 모르고 있는 것에 대한 도전, 더 의학적으로 표현하면 전두엽을 쓸 수 있는 행동들이 나와야 되는데 전두엽을 안 쓰고 할 줄 아는 행동 능력만 사용한다. 전두엽이 돌아가서 그걸 논리적으로 해결해야 되는데 사람이 불안하면 뇌 안에 있는 특정 부위가 너무 강렬한 신호를 보내기 때문에 전두엽이 활동을 안 하려고 하거든.

 

이: 야간 운동 같은 경우도 내가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냐면 선수들은 그런 이야기하거든. 오늘 야간 운동해야 되니까 본 연습 때 좀 세이브하자. 본 수업 시간에 제대로 안 하고 자율학습 때 많이 하겠다. 나는 뻘짓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홀: 학원에서 전력투구하고 학교에서 자는 것처럼.

 

이: 그런 거지. 경기 때 쓸 힘을 나눠서 야간 운동할 때 더 하는 거잖아. 차라리 그걸 합쳐서 시합 때 다 쏟고 끝나면 그냥 쉬라는, 잘 자라는 거지.

 

홀: 무의미한 강박 행동적 노력을 그만두고 그냥 안 한다고 능사가 아니지 않나. 안 하면 더 불안해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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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로 그 부분을 코치님이 잡아주셔야 된다고 생각한다. 투수 코치면 투수 코치, 타격 코치면 타격 코치. 그런데 그분들이 그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선수들과의 라포가 확실해야 된다. 왜냐하면 선수들은 코치가 하라는 거에 목숨을 걸거든. 어떤 선수는 올해 안 되면 옷 벗어 된다. 서른두 살에 애가 셋 있는데 올해 못해서 옷 벗으면 가족들 다 굶어 죽거든. 근데 코치가 와서 “야! 내가 보니까 너는 지쳤으니까 방망이(스윙 훈련) 그만해. 오늘 4빵(4타수 무안타) 쳤더라도 내일 내보내줄 테니까 그만해”라고 말한다고 해도 못 믿어. 왜냐면 어저께도 4빵, 오늘도 4빵 쳤거든. 그러면 코치 말 안 듣고 그냥 휘두르고 있는 거야. 평소에 라포(심리적 유대)가 만들어져 있는 상태에서 코치가 선수 개개인에 대한 분석과 함께 쉬는 게 낫겠다고 말해주고 선수가 논리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준비가 돼 있으면 될 텐데 아직까지 그렇게 하는 팀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이: 나도 라포 형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MZ 세대들은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와서 말해도 안 듣고 싶은 말은 안 듣거든. 어떤 선수가 호텔 숙소에서 케이크를 갖다주면서 “코치님, 이 호텔 케이크 정말 맛있네요” 그러더라. 사실 나는 밀가루 음식을 오랜만에 먹는 거였다. 내가 이걸 두고 순간 고민했어. 이 선수가 나하고 아직 깊은 관계가 아닌데, 이 친구가 나한테 한 번 툭 던지는 걸 지금 내가 안 물면 나중에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서 한 조각 먹었다. “이야~ 진짜 맛있다” 그러면서. 나는 이런 것들이 조금씩 쌓이다 보면 나중에 선수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찾아오게 되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근데 아직 안 찾아왔어(웃음).

 

불안에 대한 책이 시중에 차고 넘치는데도 여전히 불안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건 저자와 독자 사이의 라포 형성이 안돼서 그런 건가. 여담으로 던졌더니 한덕현 교수와 이지풍 코치가 같은 답을 내놨다. ‘책이 안 팔려서’

 

중압감과 떨림을 극복하려면

 

앞선 편에서 선수들이 경기를 앞두고 느끼는 중압감에 대한 이야기를 했드랬다. 그런데 그 중압감이라는 거, 비단 운동선수들만 느끼는 건 아니지 않나. 온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스포츠 스타까지는 안되더라도 울 엄마, 아빠의 기대나 배우자, 자식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중압감 정도는 누구나 느낀다는 말이지. 최소한 나 스스로의 기대라도.

 

홀 : 우리가 선수들이 느끼는 중압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나 같은 일반인이 갖고 있는 불안도 있다. 중요한 면접, 시험, 대단히 중요한 프레젠테이션. 막상 나가기만 하면 너무 긴장하고 불안한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평상시에 준비할 수 있는 팁 같은 게 있을까.

 

이: 이런 거 어때?(웃음)

 

이지풍 코치가 주머니에서 불쑥 무언가를 내밀었다. 처음에는 씹는 껌이나 사탕 같은 걸 건 줄 알았는데 그가 먹고 있는 약이었다.

 

한: 실제로 그런 것들 때문에 환자들이 찾아온다. 그럴 때 내가 그분들한테 해주는 이야기는 ‘거짓말을 하면 떨린다’는 거다. 예를 들면 당신이 A라는 회사에 어떤 기술을 가지고 취직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경쟁자가 20명이 더 있어서 2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야 해. 20 대 1의 문을 뚫고 있는 그 당시에는 당신이 슈퍼맨이 돼서 나머지 19명을 무찌르고 최고의 지원자가 되려는 생각을 하겠지. 자기 능력의 10배, 20배에 해당하는 능력을 갖고 싶은 거다. 근데 그게 거짓말이잖아. 현실은 20분의 1밖에 안 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그때 뭐라고 하냐면 당신이 (2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그 능력을 가지고 합격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봐요. 슈퍼맨이 다니는 회사에 당신이 다닐 수 있겠냐고. 그래서 면접이든 시험이든 제일 먼저 주는 팁이 뭐냐면 여기서 막상 붙어도 나중에 문제가 되는 회사는 못 들어가.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이 능력을 가지고 여기서 통하겠느냐, 안 통하겠느냐를 봐주세요”라고 오히려 면접관들한테 물어봐야지. 나는 이렇게 저렇게 슈퍼 울트라맨인데 난 여기 올 수 있다고 얘기하는 순간 떨리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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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그런데 솔직하게 말했을 때 거절당할 불안이 또 있으니까.

 

한: 거절당하면 거기 갈 만한 실력이 안 되는 거야. 다니면 안 돼. 그렇게 했을 때 가장 자기 능력에 맞는 회사에 공평하게 합격이 되는 거지.

 

홀: 들어가고 나서도 마음 편히 일할 수 있고.

 

한: 내가 그 얘기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한테 제일 많이 한다. 세계 랭킹 1위인데 올림픽을 앞두고 엄청 떤다니까. 그럼 아까 했던 얘기, ‘너는 잘 해서 금메달 따는 게 아니라 하던 대로 해서 금메달을 딴다’는 말이 1번, ‘(실력이 되지 않는데도) 기적이 일어나서 금메달을 땄어. 요다음 경기는 어떻게 할래’하고 묻는 게 2번이다.

 

중요한 이벤트를 앞둔 우리는 그 누구보다 지독한 답정너가 된다. ‘나는 붙을 만한 사람인가’를 밀어내고 ‘나는 반드시 붙어야만 한다’가 머릿속을 장악하고 나면 당면한 이벤트는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로 돌변하는 것이다. 떡상과 나락을 결정짓는 문고리를 잡은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건 너무 당연하다.

 

자기결정권이 중요한 이유

 

홀 : 야구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학원 스포츠라는 게 자기주도적 훈련 자체가 제한되어 있는 환경이다. 성장하면서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당장 프로가 됐다고 ‘마음대로 해봐’라고 해봤자 그게 바로 몸에 익을 것 같지는 않다. 소아 청소년 상담을 많이 하는 한덕현 교수에게 묻고 싶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자기주도 학습이 잘 안된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주입식 교육도 그렇고 특히나 요즘 열성적인 부모들은 자식이 태어나면서부터 대학 입학까지 스케줄을 다 정해놓고 공부시키는 경우도 있다. 만약 이렇게 계속 해오다가 어느 순간 성인 이후에 ‘너 마음대로 해봐’라고 했을 때 그게 바로 되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한 : 불가능하다.

 

에둘러 물어본 말에 돌아온 한덕현 교수의 답이 단호해서 적잖이 놀랐다.

 

홀 : 불가능할 정도인가?

 

한: 인간에게는 발달 단계가 있다. 3세까지는 어떻고, 6세까지는 뭐 하고, 9세부터는 어떻다는 식의 인간의 발달 단계. 인간 발달 단계는 계단식으로 하나의 단계가 성숙되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가 독립적인 문제, 그다음에 자기 주도적인 문제가 그 안에 들어가 있다. 그런데 만약 자기주도적인 거, 독립적인 문제에 대해서 신경을 안 쓰고 수동적인 먹여주기식 양육을 하면 이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심리적인 발달이 안 되는 거다. 인간이 다른 짐승보다 제일 필요한 부분이 창조성인데 자기 주도력과 자율성이 없으면 창조성에 반드시 문제가 생기는 거지. 모방까지는 어떻게 갈지 모르겠지만 창조성에 문제가 생긴다.

 

홀: 아예 뇌 기능적으로 그렇게 돼버린다?

 

한: 그렇다.

 

이: 야구계에 그런 이야기가 있다. 야구를 잘하려면 싸가지가 없어야 된다. 안 좋게 표현해서 그렇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표현을 이렇게 하거든. 유튜브에 강백호 초등학교 때 영상이 있다. 초등학교 때 치는 폼이 지금 하고…

 

강백호 선수 어린 시절 스윙 영상

 

강백호 선수 프로 첫 홈런 영상

 

홀: 거의 똑같더라.

 

이: 똑같다고, 다 그걸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드러난 것만 보면 백호는 어릴 때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자기결정권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거다. 요즘 트렌드가 과학적인 트레이닝, 데이터 분석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거든. 나는 자기결정권도 없는 선수들한테 백날 이걸 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어릴 때부터 자기주도적으로 하잖아. 그러니까 거기는 이런 자기결정권에 과학적인 트레이닝이라든가 세이버매트릭스(데이터와 통계를 기반으로 한 야구 이론으로 미국에서 출발해 지금은 한국과 일본 등에서도 폭넓게 이용되고 있음)를 접목시키면 되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그게 안되는데 과학이 어떻고 데이터가 어떻고… 제일 중요한 건, 선수들한테 결정권을 주고 스스로 할 수 있게끔 분위기와 환경을 개선해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홀: 그러면 혹시 일반인이든 선수들이든 성장기부터 훈련이나 학습 방식에 자기 주도권을 주는 게 나중에 성인이 됐을 때 불안 지수를 줄이는 데에 영향이 있을까?

 

한: 자기 주도력, 독립성 이런 것들을 자기효능감(SELF EFFICACY)라고 부르거든. 어떤 일을 할 때 스스로를 위로하고 자기한테 합리적인 것들을 ‘괜찮다’라고 말하는 걸 자기효능감이라 하는데, 그게 높은 사람은 불안 수준이 낮은 거지. 어떤 일을 했을 때 ‘어? 누군가 지적하지 않나? 누군가 이건 틀렸다고 다시 해보라고 그러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자기 효능감이 낮은 상황이 되면 불안감이 상대적으로 올라가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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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 대한 책이 차고 넘치는데 왜 여전히 사람들은 이토록 불안한가. 그만큼 각자의 인생에 부여된 자기결정권과 자기효능감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

 

기다려주는 것과 방치하는 것의 차이

 

홀: 두 사람 책을 연달아 읽으면서 동시에 눈에 띈 게 기다려주라는 거였다. 방금 얘기한 자기결정권하고도 연결되는 것 같은데. 이게 마냥 묵묵히 지켜보는 것도 되게 불안한 일이지 않나? 선수들을 보는 코치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자식을 보는 부모 입장에서는 더 할 거다. 어디까지가 지켜보는 거고 어디서부터 방임일까? 내버려 두는 거랑 지켜보는 것의 차이가 미묘해서 구분하기 어려운데 그 부분들은 어떻게 생각을 해봐야 할까?

 

한: 나는 부모들한테 양치기 설명을 해준다. 양치기 개가 양을 몰 때 양의 목을 물거나 다리를 물지 않는다. 계속 짖기만 하고 강아지 3마리가 100마리의 양을 (몰아가는 손짓을 하며) 쭉쭉쭉 하면서 우리로 양을 쫙 모아서 그리로 가. 모가지를 잡아 끄는 게 아니라 몰이하듯 툭툭 치면서 가야 된다. 강제로 끌고 가지 않되, 길을 잡아 주는것. 어떤 양몰이도 안 해주는 건 방임이다. 그러니까 그게 굉장히 어려운데,

 

홀: 다치지는 않게 봐주면서 하고 싶은 대로 놀게 놔두는 건가?

 

한: 그렇다.

 

홀: 누가 봐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제지하는 거고. 얘가 뭘 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되는 거니까.

 

한: 맞다.

 

홀: 이지풍 코치 책에서 ‘너 코치인데 뭐 하냐’ 이런 소리 들을까봐 코치들이 선수들을 마냥 기다려주지 못하는 면도 있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이: 나도 그렇다. 어떻게 가만히 있지?

 

홀: 특히나 현재 한화처럼 연패 중인 팀에 코치들이 어떻게 마냥 기다릴 수 있을까?

 

이: 나도 충분히 이해는 하는데 아까도 말했다시피 그래도 기다려주는 게 제일 빠르다고 생각하거든. 어차피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준비가 안되면 안 받아들일 거니까. 그리고 상처도 곪아 터지는 게 빨리 낫게 하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지더라도 더 기다리자는 거다. 나도 답답하지. 근데 그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더 빨리 이 상황을 더 개선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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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월 아들을 키우는 초보 아빠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조바심을 견디고 기다려주는 일은 벌써부터 무척이나 어려워 보인다. 지금도 우리 애가 말이 느린 건 아닌가 이때쯤이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면서 유튜브, 포털사이트를 뒤지고 다니기 일쑤다. 자식 잘 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라는 선의로 간섭하고 싶은 욕심을 누르고 기다려주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2012년 7월에 멀쩡하게 다니던 첫 직장을 그만두고 2013년 6월 딴지일보에 기자로 입사하기 전까지 아주 대차게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다. 말이 좋아 방황이지 여기에 쓰기도 창피할 정도로 대책 없이 막 살았다. 서른 먹은 아들놈이 그러는 꼴을 매일 같이 보고 있던 부모님이 지금 생각해도 애처로울 지경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당시 내게 별말이 없었다. 앞으로 뭘 할 거냐고 물은 적은 있어도 대답 없이 짜증만 내는 나를 혼내거나 다그치지 않았다. 그로부터 7년 후에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을 하다가 물었다. 어떻게 그때 나를 지켜만 볼 수 있었냐고. “그럼 두고 봐야지 어떡해. 사람이 아예 안 될 사람 같으면 할 수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살려고 어디 가서 부대껴 보고 그다음에 자기가 찾아가는 게 올바른 사람인 거고 그게 아니면 그 사람은 이거 해도 저거 해도 뭘 해도 못하는 사람이야.”

 

기다려주는 일이란 나의 불안과 조바심을 내가 지켜보는 대상에게 전가하지 않는 것이겠다.

 

‘존버’의 핵심

 

홀: 기다려주는 일 말고 두 사람이 책에 공통적으로 언급한 게 하나 더 있더라. 버티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지풍 코치는 선수들한테 ‘잘 버티는 방법을 한번 고민해보자. 선수들에게 버티고 있다 보면 이제 기회는 올 거다’고 하면서 그 기회가 트레이드가 될 수도 있고 나를 알아보는 감독이 새로 부임하는 게 될 수도 있다고 있다고 말한 이야기를 책에 소개했던데.

 

이: 그랬다.

 

홀: 한덕현 교수는 책에서 일관되게 니체를 인용하면서 눈보라 속 러시아 군인의 예를 들어 설명한 게 인상적이었다. 무식하게 헤쳐나가다가 죽지 말고 내려놓을 건 내려놓고 내 목숨 보존하면서 웅크리고 있다가 가라고. 근데 요새 같은 세상에 참 쉽게 하는 말이기도 하잖아. 버티다 보면 좋은 날 올 거야.

 

한: 존버 존버.

 

홀: 맞다. 존버. 잔인한 의미로 한 말이 아닌 건 알겠는데 불안해서 책을 찾는 사람들, 아마도 요즘 사람들 대부분 불안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확 와닿지 않을 수 있단 말이지. 버티다 보면 좋은 날 올 거야라고 하지만 좋은 날이 결국 오지 않는 케이스도 많이 보이니까. 니체의 예를 들어서 러시아 군인이 눈보라가 그칠 때까지 웅크리고 있으려고 그랬는데 눈보라가 안 그치는 거다. 그래서 웅크리고 있다가 죽을 수도 있어. 그러면 ‘아~ 그냥 눈보라를 헤치고 나갔다가 뒤지더라도 어디 근처에 움막이라도 있나 찾아볼 걸 그랬나?’ 뭐 이런 생각도 들 수 있고.

 

이: 얼마 전에 SBS 정우영 캐스터가 제 책을 소개하는 라디오에 나가서 그 이야기를 하셨다. 본인은 자기개발서를 안 읽는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책 쓴 저자도 저렇게 안 살 거니까. 나도 버티기 힘들다. 쉽지 않다. 당연히. 나도 항상 그런 불안함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덜 불안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공황장애 있으니까 약을 항상 들고 다니고. 또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고. 버티는 게 사실 진짜 말이 쉽지 어렵다. 나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홀: 책에서는 잘 버팀에 대해서 어떤 건지 이야기했지만 인터뷰를 읽는 독자분들은 아직 책을 보지 않는 분들이 더 많을 테니까 잘 버틴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부탁한다.

 

이: 자기가 준비를 잘하고 있는 게 중요하지. 아무리 버티더라도 그 기회가 왔을 때 준비가 안 돼 있으면 안 되잖아. 자기가 준비할 것들 잘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무조건 온다고 믿고 있거든. 그러면 불안함도 좀 떨어지지 않을까.

 

홀: 좀 더 임팩트 있는 날 것 그대로의 한 방 없을까(웃음)? 지어 내라는 건 아니고. 나도 동의는 하지만 그건 모두가 알고 있는 정답 같다. 잘 준비하고 있으면 기회는 올 거야라고 하는 것이. 이지풍 코치가 말했듯이 버티는 게 어렵다는 거 다 알잖나. 사실은 다 머리로는 아는데 실행이 안 되는 거 같다.

 

한: 문제는 어떻게 버티는지를 모르는 거다. ‘나 버틸 거야’, ‘존나 버텨라’ 그래서 나 버틸 거야 했는데 ‘어떻게 버틸래?’ 그러면 ‘무식하게 그냥 있는 거 아니야?’ 이렇게 하는 게 문제다. 버티라는 얘기의 다른 이야기는 뭐냐면 자기부정을 하지 말라는 거다. 사람이 불안한 이유는 내가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 불안해지는 거거든. 모르는 대상이 있어서 불안해지니까 지금 여기서의 것들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른 것을 찾는다. 근데 지금, 여기가 사실은 가장 최적화된 진실이거든. 이 사람의 능력이나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름 최적화돼서 버티게끔 되어 있는 현실이 어떻게 보면 가장 좋은 정답인데, 이걸 눈앞에 두고 쭉 밀고 나가라고 했는데 이게 아니고 딴 거라고 우기고 있으니까 문제가 더 심해진다. 결국 이 사람은 딴 거를 찾다가 눈앞에 최적화되어 있는 걸 못하고 딴 데 가서 더 망해버린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존나 버티라는 얘기가 뭐냐면 현재 최적화된 게 있으니까 그냥 이걸로 가. 언제까지? 이게 아니라 다른 정답이 나올 때까지. 다시 얘기하면 ‘이게 아닌가봐. 틀렸나봐. 이게 더 안 좋은 거’라는 자기부정을 하지 말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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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책에서 안 좋은 사이클을 타는 것에 대해 말한 내용인 것 같다. ‘안 돼’하고 자기 부정을 하면 그것 때문에 더 안 돼, 나중에는 자기부정이 합리적, 논리적 사고까지 방해해서 극단적인 경우에 조현병으로 갈 수도 있다고. 안 좋은 굴레에 이제 막 진입해 있는 사람이 주변에 한 분 계신데, 말을 안 들어. 한 마디도 안 듣는다.

 

한: 왜냐하면 그 안에서 자기가 또 하나의 잘못된 완벽한 논리를 만들었거든. 그 논리에 발을 디뎌서 그 논리의 길로 계속 가는 거다.

 

홀: 병원 가야 되나? 어떻게 해야 하나?

 

한: 그걸 망상이라고 얘기하는데 망상은 잘못된 생각인데 고쳐지지 않는 잘못된 생각이고 지금 자기의 사회, 문화, 교육적인 환경에 지식을 가지고 고칠 수 없는 잘못된 생각을 망상이라고 얘기한다. 그 로드를 타기 시작한 거면 그거는 도움을 받아야 된다.

 

존버가 어려운 이유를 알겠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불안은 더해지고 이걸 언제까지 버티고 있어야 할지, 그런다고 이 고통의 끝이 오기는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의 무한한 존버를 자신할 수 없는 이유는 나의 의지와 참을성에 있지 않다. 그 지난한 시간 동안 나를 부정하지 않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를 향한 스스로의 의심은 한 시도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기에. 이 방법이 옳은 걸까,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의심하다 끝내 나라는 존재 자체를 의심하고야 마는 것이다.

 

결국은 괜찮다는 말. 불안해도 실패해도

 

홀: 이제 슬슬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겪고 있는 아주 묵직한 중압감이 있다. 짧은 선수 생명과 미래에 대한 불안, 현재 퍼포먼스가 그대로 대중에 드러나는 것에 대한 불안, 기회가 나한테 영영 주어지지 않을지 모르는 불안.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던 게 뭐냐면 요새는 일반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다. 전 국민이 프로 스포츠 선수화가 되고 있는 것 같은? 오히려 프로 선수들은 몸 관리도 더 잘하게 되어서 선수 생명이 더 연장되는 느낌인데 일반 직장인들은 지금 은퇴 시기가 더 빨라지고 있잖나. 그런 면에서 독자들이 상담받고 있는 선수, 혹은 나한테 코칭을 받고 있는 선수라 생각하고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예전에 쓴 책에 부적을 만들어놨었다. 그 부적에 뭐라고 써있냐면 ‘괜찮아’, 괜찮아라고 써있다. 제일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그거다. 당신들이 알고 있는, 그렇게 극단적으로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그 부정적인 감정들이 사실은 괜찮은 거야. 그리고 당신들의 몸 안에 붙어 있는 그런 불안이나 안 좋은 감정들이 나쁜 거라고 때어 버리고 싶겠지만 사실은 나름 괜찮은 거야. 같이 동반해도 그렇게 나쁜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책을 한 줄로 요약하라고 하면 그 얘기를 하고 싶은 거지.

 

홀: 그런 마음을 받으면서 책을 정독한 사람은 다음부터는 불안에 관한 책을 안 찾게 될까?

 

한: 아니지. 내 책을 읽고서 ‘아씨~ 뭐 별거 없네, 괜찮다는 얘기네’ 그럼 난 완전 오케이.

 

홀: 이지풍 코치는?

 

이: 뭐 비슷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선수들한테 실패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거든. 야구가 실패를 훨씬 더 많이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취업 준비생들 입장에서 보면 시험을 치는데 보통은 낙방을 계속하지 않나. 남들 얘기로는 한 방에 붙은 사람들만 나와서 자기가 잘못한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은 당연히 실패가 계속되는 과정들인데 그게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고 여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야구도 세 번의 안타를 치기 위해서 일곱 번을 실패해야 되는 것처럼 인생도 그런 실패의 과정들이 있어야지 성공하는 거기 때문에 실패를 그냥 자연스럽게 잘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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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뭐야, 결국 그냥 괜찮다는 말이네? 하고 실망하는 분이 있다면 할 수 없다. 고민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이 자질구레한 상황과 사정까지 다 늘어놓으면서 전전긍긍하며 끝내 얻어내고자 하는 대답이 뭔 줄 아나? 결국 괜찮다는 말이다. 그 말 한마디 듣고 싶고 그 말이라도 들어야 숨을 쉴 것 같아서 들어줄 사람을 찾는 거다.

 

야구는 그깟 공놀이일 뿐이고, 프로 선수들이 대단한 업적을 이뤄내고 팀이 우승을 한다고 해서 내 인생에 직접적으로 도움 되는 일 하나 없다. 그렇게 냉소적으로 보자면 사람 인생도 뭐 참 별거 없다. 우주적 관점으로 보면 한 사람의 생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티끌이라는 표현도 과할 정도로 미미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안하고 내가 느끼는 삶의 무게는 우주만큼 무겁다. 온몸과 온맘으로 그 과정을 겪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깟 공놀이인 야구도, 나랑 하등 관계없는 프로팀의 우승도 과정을 함께 보고 겪어내면 그깟 게 아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원 한 푼 받지않고 이렇게 대놓고 버젓이 책 광고성 인터뷰를 내는 건, '그런다고 뭐 회사가 망하기야 하겠어?'라는, 대용산시대에 대책없이 존버하는 딴지의 기업 운영 방침이다. 존버기간에 만나는 알맞은 책 만큼 좋은 길잡이도 없을 터.

 

 ‘결국 그냥 괜찮다’는 말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게 됐는지 한덕현 교수의 책을 보면 실망이 좀 덜 할지 모른다. ‘뛰지 마라. 지친다’는 당연한 말을 이지풍 코치가 하기 위해 어떤 경험과 썰을 동원했는지 궁금하다면 찾아봐도 좋겠다.

 

아, 뭐야 결국 그냥 책 홍보잖아? 하고 실망하는 분이 있다면 뭐,

 

그걸 이제 알았나? 그게 뭐 어때서?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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