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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M(Convention on Cluster Munitions)란 게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개념인데, 원문 그대로 번역해 보자면,

 

“집속탄 금지 조약”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집속탄(Cluster Bomb)이란 게 뭘까? 간단하다. 폭탄 하나에 작은 자탄을 잔뜩 담은 폭탄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커다란 드럼통에 수류탄을 가득 채웠다고 보면 된다. 이게 위력이 있을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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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수류탄만 한 작은 포탄 2~300개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생각해 보자. 전차나 장갑차같이 어느 정도 ‘방어력’이 있는 장비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않지만, 일반 차량이나 사람에게는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효율적인 무기가 상당히 ‘위험’하다는 데 있다.

 

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이 집속탄을 아낌없이 뿌렸고, 애꿎은 이들이 그 후과(後果)를 치러야 했다(정작 이스라엘 사람들이 치른 건 아니다). 이 집속탄이란 건 자탄이 흩어질 때 터지면 거기서 끝나지만 불발률도 꽤 높다. 이스라엘이 떨어뜨린 집속탄의 자탄 중 40% 정도가 불발이 났다. 문제가 된 건 그 다음인데, 이 불발탄이 지뢰처럼 잠복해 있다가 터진 거다. 애꿎은 민간인들의 피해가 확산됐고, 이게 국제여론을 움직였다.

 

결국 2007년 2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46개국이 모여서 ‘오슬로 선언’이란 걸 하게 된다. 뭐 대단한 것 같지만, 간단히 말해서 집속탄을 사용하지 말자는 거였다. 이 선언은 계속 이어져서 종국에 가서는 100여 개국 가까운 나라들이 집속탄 사용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게 된다.

 

여기까지 보면, 인류애의 발현 혹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긍정을 말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는데, 이 집속탄이 엉뚱하게 ‘빵 폭탄’으로 둔갑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바로 RRAB-3 폭탄에 관한 이야기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밑장 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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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소련제답게 ‘크고’, ‘아름다운(?)’ 이 폭탄은 높이만 2.25미터, 지름이 0.9미터에 달했다. 이 폭탄은 다들 눈치챘겠지만, ‘집속탄’이었다. 이 폭탄은 100여 개의 소이탄을 가득 안고 있다가 낙하하다가 이 자탄들을 공중에 흩뿌린다. 놀라운 건 이 크고 아름다운 본체가 단순히 ‘자탄 운반용 폭탄’으로 끝나지 않고, 본체는 본체대로 떨어져서 폭탄의 역할도 수행했다는 거다.

 

이 녀석은 형식별로 고폭탄, 소이탄, 화학탄을 장착한 무시무시한 녀석이지만, 별명은 의외로 친근하다. 바로,

 

“몰로토프의 빵 바구니”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2차 세계대전 직전에 있었던 독일과 소련의 상호 불가침 조약까지 이어진다. 1939년 8월 23일. “두 악마의 야합”이라고까지 불렸던 독일과 소련의 불가침 조약은 당시 국제정치의 역학 구도를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국제정치학을 공부한 이들이 독일을 말할 때 자주 쓰는 말이 하나 있다.

 

“독일은 선천적으로 포위됐다.”

 

프로이센이 두 번의 전쟁(보오 전쟁, 보불 전쟁)으로 마침내 통일됐고,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독일제국을 선포했을 때 독일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그러나 지정학적으로 봤을 때 독일은 ‘포위’돼 있었다. 이건 30년 전쟁을 통해서도 이미 경험했던 이야기다.

 

중부 유럽의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독일은 밑으로는 오스트리아, 동쪽으로는 러시아, 서쪽으로는 프랑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바다를 건너가려니 영국이 노려보는 상황이다.

 

1차 대전 때 독일은 슐리펜 계획으로 전쟁을 빨리 끝내려 했지만, 마른강에서 진격이 막힌 후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포위망에 갇혀서 말라가다가 항복하게 된 거다(러시아가 중간에 나가 떨어졌지만, 미국이 참전하면서 이야기가 더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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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리펜 계획(링크)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은 달랐다. 1차 세계대전 때 이미 뼈저리게 깨달은 ‘지정학적 문제’를 히틀러는 극복해 보겠다고 나선 거다. 이렇게 나온 게 독소 불가침 조약이다.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으로도 불리는 이 상호 불가침 조약은 겉으로 보면,

 

“독일과 소련이 서로 싸우지 않는다.”

 

란 선언으로만 보이는데(그 정치적 파장은 엄청났다. 당장, 독일의 동쪽 국경을 안정화 시킬 수 있으니, 독일은 서쪽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이런 겉으로 보이는 조약 말고도 이면합의가 있었다.

 

바로 유럽의 분할이었다.

 

빵 같은 소리 하네

 

북유럽과 동유럽의 서쪽은 히틀러가, 동쪽은 스탈린이 차지한다는 밀약이 있었다. 이 밀약은 폴란드 침공으로 온 세상에 다 알려지게 된다(히틀러의 침공에 발맞춰, 스탈린도 폴란드로 밀고 들어왔다).

 

폴란드 점령이 얼추 마무리되자 스탈린은 핀란드를 노려보게 된다(이미 독일과 맺은 상호 불가침 조약에서 핀란드는 소련의 ‘이해권’에 들어간다는 합의가 있었다). 이미 1935년에 핀란드와 불가침 조약을 맺었지만, 힘 앞에서 ‘조약’은 한갓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소련은 핀란드에 가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강요했다. 외교적으론 정중했다.

 

“소련, 핀란드 협정을 체결하자.”

 

그러나 그 요구사항은 ‘점령’의 다른 말이었다.

 

“소련과 국경 부근의 카렐리아, 라플란드 지방을 포함해 약 2,300제곱 킬로미터의 영토를 내놔라.”

 

“코틀린섬을 포함한 4개 섬과 올란드 제도를 내놔라.”

 

“발트해와 핀란드만에 접해 있는 주요 항구들에 대한 소련군의 주둔과 조권 권리를 내놔라.”

 

당연히 핀란드는 이 요구를 거부했고, 1939년 11월 30일 소위 말하는 ‘겨울 전쟁’이 시작됐다. 이 당시 스탈린은,

 

“1939년 말까지 핀란드 전역을 점령할 것이다!”

 

라고 호언장담했다. 이 말을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체급 차이가 너무 컸다. 1939년 11월 30일 47만의 소련군이 핀란드로 밀고 들어갔다. 뒤이어 에스토니아에 주둔하고 있던 소련 폭격기들이 핀란드 수도 헬싱키를 포함해 주요 도시들을 폭격하게 된다. 폭격도 문제였지만, 떨어뜨린 폭탄의 의도가 너무 ‘뻔히’ 보였다는 거다.

 

“RRAB-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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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집속탄이었다. 게다가 그 자탄에는 소이탄도 섞여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서방 진영의 큰 형님들이 들고 일어나게 된다. 영국, 미국, 프랑스 등등이 소련의 비인도적인 도시 폭격, 집속탄 사용에 대해 비난을 하기 시작했다. 외교적으로 궁지에 몰린 소련. 이때 소련의 외무장관 몰로토프가 소련 국영 라디오 방송에 나와 해명 방송을 하게 된다.

 

“소련 공군기가 핀란드에 투하한 건 폭탄이 아니라 빵이었다.”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핀란드 국민들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빵을 투하했다는 거다. 핀란드인들의 분노가 폭발한다(당시 핀란드인들은 소련에 대한 분노의 대상을 ‘몰로토프’에게 집중시킨 듯했다. 오죽하면 ‘몰로토프는 안 돼!’란 노래까지 만들어 부를 정도였을까?).

 

소련의 폭탄이 떨어질 때마다 ‘몰로토프 씨가 빵 배달이 왔네.’라며 비아냥거리는 건 일상이 됐고, 그 유명한 ‘몰로토프 칵테일’이 등장하게 된다.

 

“빵을 받았으니 도의적으로 뭔가 인사를 해야 하지 않은가?”

 

라며 화염병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전차 무기가 부족했던(뭔들 부족하지 않겠는가?) 당시 핀란드에서는 전차를 상대하기 위해 대대적인 화염병 제작에 들어갔다(화염병으로 전차 상부에 있는 엔진 그릴 같은 곳을 노렸다). 이 당시 핀란드의 술 생산은 국영기업인 알코(Alko)에서 독점 생산했는데, 전쟁 기간 동안 무려 45만 병의 술병을 만들어 납품했다.

 

빵 폭탄이 화염병으로 되돌아왔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이런 빵 폭탄은 2차 대전 동안 또 한 번 등장하게 된다. 놀라운 사실은 이번엔 진짜 ‘빵’을 떨어뜨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