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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근육병아리는

 

요리에 관한 어떤 정식 교육도 받은 적 없으며,

 

 오직 유튜브와 만화책으로만 수련 중인

야매 수산인으로

 

 기사에 담긴 그 어떤 레시피도

성공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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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창작자에게, 사람들의 관심은 소중한 동력원이다.

 

하루키도 독자가 있어야 하루키고, 박찬욱도 관객이 있어야 헤어질 결심을 하든지 말든지 해볼 수 있는 것. 제아무리 불세출의 예술가라 한들, 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저 동네 이상한 아저씨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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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가카의 비자금 저수지를 쫓는 목숨을 건 탐사보도도 아니고, 싫은 소리 좀 했다가 10년째 소송에 시달리게 되는 촌철살인 정치비평도 아닌, 고작 '노량진에서 생선 사다가 회 떠먹는 썰'을 풀고 있는 근육병아리에게, 독자들의 따수운 피드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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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에 잠자고 있던 관심종자의 싹을 틔워버리기 충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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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관심병이 휴가 기간에 도져버렸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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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가는 거 어떻게 알았지..

 

배 안에서 뜨문뜨문 잡히는 와이파이가 전해준 구독자님덜의 댓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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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풍선 받은 스트리머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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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리액션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갈급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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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바다 한가운데를 둥둥 떠가며 밀려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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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장마로 갑오징어 편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떠난 울릉도도 여지없이 우기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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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기저기 낚싯대를 빌릴 곳을 수소문해 보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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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씨에 뒈지고 싶은 겨?"

 

라는 숙소 사장님의 애정어린 만류에 따라, 깔끔하게 후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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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쪽으로 아이템을 돌려보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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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기상 악화로 더딘 조업에 의미 있는 종목을 찾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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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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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이구 징글징글한 타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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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산지 직송 버프로 맛은 또 기똥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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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바위에 따개비라도 따서 라면을 끓여볼까 싶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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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에 갈매기들도 버로우를 타고 있는데, 괜히 울릉 119안전센터 대원 분들 고생시키지 말자는 생각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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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나 촉촉하게 마시고 왔다.

 

아무튼, 그래서. 빳때리 풀충전으로 다시 시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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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댓구많!!

 

비수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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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여름으로 접어든 노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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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여름에 회 먹는 거 아니다'라는 말이 있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식품 안전에 관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위생에 대한 개념이 흐리고 냉장시설도 변변찮았던 쌍팔년도였으면 모를까.

 

근육조직인 생선 살에 비브리오 균이 증식하려면 상온에 상당 시간 방치되어야 하는데, 겨울에도 그런 거 먹으면 피똥 싼다. 그런 개념 없는 요리사는 대한민국에서 칼을 잡을 수 없다. 우리 구청 공무원분덜, 그렇게 호락호락한 분들 아니다. 유통부터 손질까지 수산 먹거리는 생각보다 더 촘촘하게 관리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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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미식의 측면에서 '여름엔 먹을만한 게 없다'라고 한다면, 일단은 좀 더 들어볼 만한 이야기가 된다. 아무래도 바다 수온이 낮을 때, 추위를 견디기 위해 바닷속 친구들은 몸 안에 지방을 좀 더 축적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여름엔 바다 외적 변수도 있다. 태풍과 장마로 조업이 원활하지 않은 날이 많은 계절이다. 폭우로 바다 표면의 염도가 내려가면 가두리 양식장에 막대한 피해를 주기도 한다. 여름철 이래저래 수산물 공급이 시원시원하지 않은 이유다. 그래서, 여름 비수기 때 1년 365일 불 꺼질 일 없는 노량진에도 수조를 비워두는 점포가 드문드문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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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수산물의 여름 비수기는, 대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측면도 있다. 왜냐면 여름에도, 아니, 여름에만 맛있는 생선이 졸라 많기 때문이다.

 

생선의 맛은 산란 주기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대표적인 여름 횟감 민어를 예로 들어보자. 8월에서 9월 사이에 알을 낳아야 하는 민어는 알집을 만들기 위해 봄부터 가열찬 먹이활동을 한다. 그리하여 여름 즈음에 몸 안에 지방을 가득 머금게 되는 것이다. 산란철에 접어들면, 몸 안에 영양분은 알집으로 몰빵된다. 살에 기름이 없거나 이미 산란을 마친 개체는 홀쭉해져 먹잘 게 없어진다. 즉, 민어는 여름에 맛의 피크를 찍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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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맛있는 게 민어만 있느냐? 그럴 리가. 민어처럼 여름에 포텐을 터트리는 횟감은 얼마든지 있다. 단지 유명하지 않을 뿐.

 

유명하지 않으니 찾는 사람이 적고, 찾는 사람이 적으니, 업장에서는 선뜻 매입하기가 힘들고, 업장이 물건을 많이 쓰지 못하니 중도매인들은 물건을 시원시원하게 밀지 못하고, 처리 물량이 시원찮으니 출하주들도 물건을 씩씩하게 올리지 못하고, 결국 어민들도 좋은 가격을 기대하기 힘들어지는 여름 비수기의 연쇄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민어만 해도, 지금과 같은 이름값을 얻은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서남해 지역에서 별미로 소비되던 민어는 2000년 대 중반 허영만 화백의 <식객>등 여러 매체에 미식으로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문제는, 전국적으로 치솟는 호기심과 환상에 비해 민어의 어획량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럼 뻔하다. 가격 떡상. 초복에 접어들면, 민어의 경매 단가는 6~7만 원을 우습게 뛰어넘는다. 업장에서 6~7kg 중량의 대민어 한 마리를 매입하려면 40~50만 원 정도 베팅을 해야 하는 거다. 그게 손님 접시로 가면, 가격은 아득해진다.

 

그래서, 우리의 여름 제철 친구들은 좀 더 유명해질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이 다른 여름 전성기 횟감들을 많이 즐기면 즐길수록, 굉장히 신나고 즐겁고 맛있고 훈훈한 일들이 벌어진다.

 

어민들도 좀 더 좋은 가격을 기대하며 만선한 배를 항구에 댈 수 있고, 출하주들도 신나게 물차를 노량진으로 올리며, 중도매인들도 업장에 좋은 횟감을 마구 밀어주고, 셰프님들도 신명 나게 온갖 기교를 부려 써머시즌 모듬회 접시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여러 대체재의 등장으로 민어의 진입장벽은 한층 낮아진다. 민어만 조지던 시절만큼 남획되지도 않을 것이니 심지어 수산자원의 보호 문제까지도 해결된다.

 

어떠한가. 이것이 바로 우리 딴지스들부터 여름 횟감 타선 강화에 앞장서 여름 비수기를 혁파하자는, 두 주먹 불끈 쥔 근육병아리의 선전과 선동이다.

 

보고 있나 수협중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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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승하십쇼

 

 

용왕님의 것은 용왕님에게

 

휴가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잠시 열정이 넘쳤다.

 

웅장해진 가슴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오늘의 선수를 캐스팅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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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입부터 시선을 강탈하는 대포 한치. 표준명 날개 오징어다. 아직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종목. 본능적인 호기심이 일긴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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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족상잔의 갑오징어 편 충격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동지들을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고 지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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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수한 가격이었던 선어 킹쿠랩. 굉장히 탐났으나 나는 아직 이 과목에 실력이 부족하다.

 

선어 갑각류 선별 난이도는 최상급 레벨이다. 겉으론 그럴싸해 보여도 뚜껑을 열어보면 황망한 경우가 종종 있다. 가격이 싸다고 느껴진다면 더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다.

 

경매장에서 가격은 굉장히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이곳은 선수들의 필드이기 때문에 웬만해선 어설픈 장난은 치지 않는다. 비싼 건 비싼 이유가 있고 싼 건 싼 이유가 있다. 수없이 눈탱이 밤탱이 되어가며 깨우친 시장의 이치. 험한 산은 오르지 않는다. 패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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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보기 힘든 덕자 군단. 시장에서는 이런 큰 병어들을 보통 '덕자'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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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삼치. 아직은 좀 이르지만 선선한 바람이 부는 즈음에 기름이 오른 걸 소금 쳐서 오븐에 구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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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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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진짜 미친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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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기약하며, 경매가 한참 진행 중인 전복 섹션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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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의 센트럴파크, 활어 경매 섹션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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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다비드 마냥 늠름한 자태를 내뿜고 있는 이 구역의 럭키짱, 엉클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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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 블랙잭 테이블 구경꾼마냥, 뒤에 딱 붙어서 베팅각을 재본다.

 

근병 : 오늘 어때요?

 

엉클보스 : 오늘은 별로 재밌는 게 없네.

 

근병 : 농어나 잿방어 큰 거 좀 나왔어요?

 

엉클보스 : 오늘 다마(크기, 중량을 뜻하는 업장 용어)가 죄다 애매하다. 어제 날씨 안 좋아서 배가 많이 안 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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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채 경매에 오르기 전에 숨이 떨어져 버린 활어들을 보니, 간밤에 용왕님이 심통을 꽤나 부린 모양. 활어는 숨이 떨어져 선어가 되는 순간, 신분도 몸값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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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활어들도 덩치 좋은 타자가 그닥 눈에 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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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엔, 경매 소리부터 다르다. 물량이 쏟아지면 좋은 물건에 치열하게 붙는 호가 소리와 출하주들의 격양된 추임새가 한데 섞여 혼을 쏙 빼놓지만, 오늘처럼 물량이 적은 날엔 물건들이 차분하고 신속하게 빠져나간다. 중도매인들에게도 선택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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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뭐, 이 또한 자연의 섭리. 바다에 순응하는 것이 진정한 수산인의 자세 아니겠는가.

 

여름 제철 대물 횟감은 후일에 도모하기로 하고 지하에 가서 작업장 형님들과 노가리나 까려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불러 세우는 엉클보스.

 

엉클보스 : 이거라도 한 마리 가져갈래? 이거 오늘 노량진에 네 마리 딱 한 박스 들어온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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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잉? 이게 뭐시다냐.

 

다음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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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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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속의 횟감을 협찬해주신,

노량진 수산시장 90번 중도매인 엉클마린(링크) 엉클보스님께 폭풍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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