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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재 유행한다. 이쯤에서 마무리 되는 줄 알았는데, 다시 폭발적인 확산세다. 분위기 좋았는데... 기가 막히고 약이 오르지만, 세상 어떤 일이 네 바람대로 호락호락 풀리더냐는 아주 오래 전 할머니의 가르침이 다시 귓전을 맴돈다.

 

결과론적인 얘기라고 하겠지만, 사실 최근 방역이 많이 허술해 졌다는 느낌. 나도 많이 받았다. 그동안 무지 고생했고, 이제 코로나 거의 끝물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다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어느 한 가지, 마음에 안 걸리는 것이 없다.

 

급식 시간에 떠드는 아이들이 많아졌다거나, 식탁 위의 투명 칸막이도 없어졌다거나, 놀랍게도 학급 담임 선생님이 코로나에 먼저 걸려 아이들에게 전파됐다거나 하는 등 아이들로 부터 들려오는 학교 이야기가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어디보다도 끝까지 조심하고 철저해야 할 학교가 이 정도라니, 우리 사회 전체의 코로나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느슨해져 있었는지는 안 봐도 비디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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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지금껏 나와 가족들은 코로나는 커녕 감기조차 걸린 적 없었다. 개개인이 조심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학교나 학원, 회사의 철저한 방역조치로 인해 코로나에 노출될 위험으로부터 1차적으로 필터링이 되었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유행에는 속수무책으로 뚫려버린 느낌이다.

 

시작은 막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부터였다. 그동안 한 학급에 코로나를 한 번도 걸린 적이 없는 아이가 2~3명 밖에 안 남았을 정도로 유행이 심각했다. 언제 우리 아이가 걸려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였다. 불안했다. 열심히 마스크 쓰고 손 소독제를 쓰라고 일렀지만, 결국 막내도 목이 칼칼하다고 했다. 확진이었다. 막내만 안방으로 격리했다. 곧 나도 목이 칼칼해졌고, 나도 확진되었다. 그러고는 아내와 큰 애가 연이어 확진이 되었다. 결국, 우리 집은 그대로 코로나 병동이 되어버렸다.

 

지난 일주일 남짓의 기간, 나와 우리 가족은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채 코로나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벌여왔다. 비록 두려움에 남몰래 숨죽였던 순간도 있었지만, 한 여인의 지아비이자 한 가정의 가장, 그리고 국가 경제의 중추를 담당하는 중년 아저씨라는 막중한 책임감이 날 물러서지 않게 했다. 이것은 스스로를 격려하고 채찍질 하며 의연히 코로나에 맞서 싸운 나의 처절한 투병 일지다.

 

D-1 일요일 : 아이가 걸리면 엄마도 다 걸려

 

안방에서 격리 중인 막내가 자꾸만 바로 문 밖 거실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뭐 하냐고 뭐 먹냐고 자꾸 물어본다. 밥도 혼자 먹고, 혼자 열심히 잘 놀고 잠도 혼자 잔다고, 우리 딸 씩씩하다고 칭찬했는데 실은 저도 힘들었나 보다.

 

수시로 아이의 열이 오른다. 하지만, 아내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방에 들어간다. 방역장비래봐야 마스크가 다인데, 해열제를 먹이고 물수건으로 아이 몸을 닦아준다. 힘들다고 우는 아이를 온몸으로 품어 안고 금방 끝날 거라고 등을 쓰다듬어준다. 

 

“아이가 걸리면 엄마들도 다 걸려.”

 

걱정하는 것이 느껴졌는지, 아내가 당연한 듯 얘기했다. 엄마와 영상통화하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여주는데 트루먼 쇼가 따로 없다.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난 왜 목이 칼칼한 걸까? 가슴 속에 난로를 켜놓은 것처럼 내 쉬는 입김이 뜨겁다. 나는 아닐 거라고, 아무리 좋은 쪽으로 시나리오를 짜내려 해봐도 집 안에 확진자가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이가 많을수록 증세가 심하다던데... 나야말로 노약자에 기저질환자 아닌가.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냥 무증상으로 지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저녁이 되니 오래 전 독감을 앓던 때 처럼 몸살 기운도 올라온다. 잊고 있었는데, 낯익은 느낌이다. 팔다리가 마디 마다 쑤시고, 누워도 앉아도 어떻게 해도 편치 않다. 체온은 37.5~38도를 오르내린다.

 

D-day 월요일 : 확진, 열 ,오한 그리고 몸살

 

목이 따갑다. 열이 났다. 열 때문인지, 밤새도록 오한이 났다. 팔다리가 관절 마디마다 해체되는 것 같은 근육통, 관절통은 덤이다. 그 와중에 중간중간 기침을 한다. 눈에 알레르기가 올라온 듯 시뻘겋게 충혈이 됐고 퉁퉁 부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몸의 균형을 깬 때문인 것 같다. 

 

밤새도록 잠을 설치다 아침에 잠깐 잠이 들었나 했다. 아내가 깨운다. 큰 애도 검사를 해야 학교를 가든 말든 결정할 수 있으니 빨리 다 같이 병원에 가자는 것이다. 나중에 따로 갈 테니 먼저 가라고 이야기했다가 후환이 두려워 일어났다. 아이 일이 걸려있을 때, 아빠에겐 선택권 같은 건 없는 것이다. 우리 동네에서는 이비인후과에서 신속 항원 검사를 한단다. 

 

“아이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어요? 왜 이렇게 하얗게 샜어? 얼굴은 또 왜 이리 안됐어요?”

 

오랜만에 만난 의사 선생님이 말을 건넸다.

 

“어버... 어..”

 

뭐라 대답하면 좋을지 몰랐다.

 

“늙었죠, 뭐...”

 

고민하다 기껏 생각한 대답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진짜로 더 늙어버린 건가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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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결과 큰 애와 아내는 음성, 나만 양성이었다. 이상하다. 큰 애는 증상이 없었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아내는 나와 증상이 똑같은데 왜 음성이 나왔을까. 아내는 그냥 감기일 수 있으니 약 먹고 쉬라고 했고, 나는 7일간 격리 잘 하라고 했다.

 

‘아... 모르겠다.’

 

이번 주에 걸린 스케줄은 다 어쩌냐... 어떡해야 좋을지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정말 생각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구나 싶을 정도였다. 그냥 집에 돌아와 약을 먹고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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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소에서 연락이 왔다. 문자를 보냈으니, 링크 타고 들어가서 설문조사 완료하란다. 들어가 보니 설문조사가 아니고 역학조사다. 거짓말하면 1천만 원 벌금이 부과될 수 있으니, 신중하게 대답하란다. 괜히 신경 쓰인다. 혹시라도 잘못 클릭할까 조심조심 대답했다. 

 

약기운 때문인지 하루 종일 잠들다 깨기를 반복했다. 매미는 울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고. 7월 치고는 선선한 날씨 덕에 기분 좋게 낮잠을 잤다. 그러는 동안 진땀이 나고 열이 내렸다.

 

코로나에 걸리면 입맛이 바뀐다고 하지 않았던가? 막 입맛이 떨어져서 음식이 영 내키지 않는다던데, 나는 전혀 그런 게 없었다. 배도 고파졌고, 밥도 먹었다. 밥맛도 괜찮았다.(사실, 맛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니 한결 가볍고 상쾌해졌다. 목이 칼칼한 느낌은 여전했지만, 이쯤 해서 코로나가 완치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다. 

 

D+1 화요일 : 열, 오한 그리고 무기력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실은 밤새도록 잠을 설쳤다. 다 나은 것 아닐까 했던 전날 밤의 생각은 그냥 약기운에 착각한 것이었다. 오한이 나서 이불을 아무리 뒤집어써도 한기를 덮을 수가 없었다. 열이 오르면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는 것 같다. 오한도 오한이지만, 기운도 빠지고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다. 머리 속도 몽롱하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 갔다. 너무 추워서 덜덜 떨면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약을 먹어야 할 것 같아 시리얼 한 사발을 우유에 말았다. 자주 먹던 음식인데, 이상하게 꼭 흙을 씹는 느낌이다. 약을 먹고 자리에 다시 누웠다. 잠이라도 들어야 아픈 걸 잊을 텐데... 막 잠이 들려는 찰나, 딸랑구가 침대에 뛰어 올라 열을 잰다. 뭐라 뭐라 얘기하는데 귀에 안 들어온다. 

 

“몇 도라고?”

 

다시 물어봤지만, 뭐라는지 잘 못 알아 들었다. 그냥 높은가 보다 했다.

 

아내도 밤새 아파서 힘들었다고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다시 자가 검사를 했다. 역시나, 아내도 양성이 나왔다. 어제는 음성 나온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였을까? 이로써 며칠 만에 네 식구 중 셋이 확진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효율 참 좋다.

 

생각해 보니, 3차 백신을 맞은 것이 지난 12월이다. 벌써 7개월이나 지났는데, 면역이 되었기를 바란 것은 너무 큰 것을 바란 것이었겠구나 싶었다.

 

홀로 음성인 큰 애는 학교에 갔다. 큰 애는 백신 접종 시기가 비교적 최근이라, 아직 백신 면역이 남아있는 것일까? 아니면, 큰애는 말로만 듣던 슈퍼 항체 보유자인 걸까? 가만히 누워있으니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큰 애가 말했다. 

 

“목이 칼칼해.”

 

온 가족이 저녁을 따로 먹었다. 나와 아내는 식탁에서, 큰 애는 책상에서 먹었다. 막내는 안 먹고 잔다. 반찬은 없다. 다들 밥 그릇에 밥과 반찬을 한꺼번에 넣고 한 그릇으로 끝내기로 했다. 꼭 전쟁통에 아무렇게나 따로 앉아 밥 먹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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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먹으면 땀이 나고, 졸리다. 반대로 열이 나고 몸이 아프면 얼추 약 먹을 때가 된 거다. 잠자리에 일찍 들긴 했지만, 밤에는 도대체 잠이 들지 않는다. 침대에 누웠다 소파에 누웠다 바닥에 누웠다 이리저리 방황하다 기어이 해 뜨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D+2 수요일 : 인후통

 

잠깐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9시다.

 

“큰 애 학교 갔니?”

 

학교 가는 것도 못 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침대에 누운 채 큰 애를 불러봤다. 

 

“아니. 나도 확진이야. 병원 가서 확진 확인서 받아올게. 그거 학교에 제출해야 해.”

 

결국… 100% 확진이다.

 

목이 찢어질 듯 아픈 것과 간헐적인 기침이 오늘의 코로나 증상이다. 사포로 목구멍에 때를 민 것처럼 얼얼한데, 침을 삼킬 때마다 목을 조르는 것 같아 인상이 찌푸려진다.

 

약을 먹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식탁에 앉았다. 이제 온 가족이 그냥 한 자리에 앉기로 했다. 막내가 확진된 후 며칠 만에 온 가족이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는다. 음식 삼킬 때 인상을 쓰는 것을 보니, 다들 목이 부었나 보다. 하지만 약을 먹으면, 다음 번 약 먹을 때까지 몇 시간 생활은 할 수 있을 만큼은 상태가 호전된다. 신기하다.

 

“그런데, 고양이들이 평소와 좀 다르네.”

 

아내가 말했다. 그렇다. 늘 침대 한 켠을 차지하던 고양이들이 밤에도 낮에도 침대에 오지 않는다. 하루 종일 옷장 구석에 처박혀 나오지 않는다. 고양이들도 집사들이 법정 전염병을 앓고 있으니 가까이 가면 안된다는 것을 아는 걸까? 아니면 고양이들도 코로나를 옮은 것인가?

 

D+3 목요일 : 인후통과 수면질 저하

 

이제는 밤에 잠을 아예 못 잤다. 갱년기 증상이 증폭된 것인지, 수면 리듬이 깨져버린 것인지 밤에는 통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낮에 졸리고 피곤하냐 하면 또 그런 것도 아니다. 그저 새벽부터 아침까지 늦잠 자는 정도로 잠이 줄어들었다. 아침 9시 쯤 눈을 떠 나와보니 마지막 확진자인 큰 애가 소파에 누워있다.

 

“잘 잤니?”

 

얼굴이 좀 상기된 것 같아 만져보니 따뜻하다. 열을 재보니 38도다. 내가 초기에 열이 났던 것처럼 큰 애도 그렇게 시작하는 것 같다. 얼른 아침 먹고 약을 먹자고 했다. 

 

나는 인후통과 가벼운 두통, 간헐적 기침 정도만 있고, 그 외는 괜찮은 느낌이다. 상태를 물어보니 아내도 나와 비슷하단다. 코로나를 제일 먼저 시작한 막내는 인후통도 없고 아픈 곳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막내는 처방받은 약을 이미 다 먹었고 오늘 자정이 지나면 격리 해제다. 그나마 다행이다. 제일 늦게 확진된 첫째가 제일 마지막에 격리 해제가 된다. 8월 초에 개학하던데, 올 여름 방학은 그냥 코로나 요양으로 의미 부여하고 넘어가야 하나보다.

 

저녁 즈음에는 몸 상태가 꽤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땀을 좀 흘려볼까 하는 생각에 노젓기 운동을 시작했다. 무리하지 않으려고 슬렁슬렁했다. 기록 따위, 재는 거 아니다. 나는 환자니까 운동을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거다.

 

그런데, 좀 살 것 같다고 야밤에 운동한 것이 잘못이었나, 밤새도록 잠을 잘 수 가 없었다. 일찍 잠자리에 든 것도 아니었는데, 새벽 4시까지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었다. 뒤척이다 혹여 아내를 깨우게 될까 봐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누워 멀리 동트는 것을 보고서야 잠이 들었다. 

 

D+4 금요일 : 수면질 저하, 고장난 미각과 후각

 

아침에 눈을 떴다가 아내와 막내에 고양이들까지 단체로 거실에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찌 된 일인지 물었더니, 아내도 새벽까지 잠이 안 들어 힘들었다고 했다. 내가 거실로 나가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방이 답답한 느낌이 들어 따라 나왔다는 것이었다. 고양이들이야 늘 아내를 따라다니는 녀석들이고, 막내는 새벽녘에 깼다가 엄마를 따라 나와 잠든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고양이들이 이제 옷장에서 나왔다. 코로나에 걸린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걸렸다가 사람보다 훨씬 빨리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냥 잠깐 옷장에 들어갔다 나온 건지도 모른다. 

 

밤잠을 설쳤는데도, 하루를 지내는 것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급한 일을 처리하는 것 말고는 일을 펼치지 않았다. 잘 먹고 잘 자고, 약 잘 챙겨 먹고 생활 리듬을 되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침을 먹으면서 점심 메뉴를 고민했다. 아내에게 오늘 점심은 짬뽕라면을 끓여 먹자고 했다. 몇 주 전부터 먹고 싶었노라고, 꼭 짬뽕라면 먹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작년 통풍 발작 이후 난, 어쩔 수 없이 각종 라면들과 안타까운 이별을 해야만 했다. 

 

며칠 전, 찬장을 열었다가 수줍게 포개져 누워있던 짬뽕라면 5봉지와 우연히 눈이 마주 치고 말았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난 머리 속에 계속해서 떠오르는 짬뽕라면 생각을 떨쳐 낼 수 없었다. 결계가 풀린 그리움은 오랜 기억을 깨워냈다. 해물의 풍미를 잔뜩 머금은 진하고 시원한 짬뽕 국물과 그 국물에 온 몸을 흠뻑 적신 꼬불한 면발. 그리고 앞다투어 감칠맛 내뿜는 각종 건더기까지. 내 입을 한없이 희롱하던 그 맛의 조화, 내 몸이 기억하는 그 맛의 향연! 기어이 다시 치러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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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환자니까, 먹고 싶은 것은 꼭 먹어야 한다는 오랜 소신에 아내도 흔쾌히 화답해 주었다. 이왕이면 여한을 남기지 말자고 했다. 찬장 깊숙이서 스팸을 꺼내 발긋하게 구워 따끈한 짬뽕라면 곁에 함께 차렸다. 아! 상대의 생각에 공감하는 것으로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 더 나아감에 주저하지 않는 아내의 깊고도 과감한 배려에 절로 고개가 숙여져, 그대로 면발을 들이켰다. 

 

그런데. 짬뽕라면의 국물 맛은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진한 감칠맛은 온데간데 없었다. 물 분자 사이사이 소금 알갱이만 알알이 박혀진 듯, 허무하리만큼 정직한 짠 맛만이 심심하게 입 안을 휘저을 뿐이었다. 의심스러웠다. 두 번째 젓가락도 마찬가지였다. 당황스러움에 황급히 스팸을 집어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라면이고 스팸이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맛은 극대화된 짠맛 뿐이었다. 아내도 나와 같다고 했다. 짠맛 외에는 느껴지는 것이 없다고. 말로만 듣던 코로나의 부작용, 미각 상실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 했다.

 

뭘 먹어도 짜다고 했다. 심지어는 커피도 짜다고 했다.(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짠맛만 느끼게 되자, 음식에 대한 아내의 관심이 급격히 식어갔다. 하지만 나는 그러기 싫었다. 뭐든 열심히 먹으려 애썼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냄새였다. 마치, 비강을 락스로 소독이라도 해낸 듯, 하루 종일 수시로 락스 냄새가 코 앞을 맴돌았다. 나만 그런가 하고 아내에게 물어봤더니, 아내도 똑 같다고 했다. 역시, 부부는 일심동체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닌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D+5 토요일 : 회복 국면

 

어제 밤에도 잠을 못 잤다. 잠자리에 아무리 일찍 들어도 비몽사몽하다가 말똥말똥 해질 뿐이었다. 결국, 또 아침에 해 뜨는 것을 보고야 잠이 들었다. 매일 새 해, 새 아침을 맞이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11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이러다가 밤낮이 바뀌는 것은 아닐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막내는 이제 다 나았다. 목요일 자정에 격리 해제되어 금요일에 학교도 다녀왔으니, 법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모두 완치다. 풍선껌과 과자를 찾으며 밥에는 관심이 없어지는 것을 보니, 예전의 컨디션을 다 회복했음이 틀림없다. 목도 하나도 안 아프다고 한다.

 

나도 거의 다 회복된 느낌이다. 열도 없고, 인후통도 없다. 기침이 가끔 나는 것, 어제와 달리 기침할 때 기관지에 가래가 약간 끼는 것 같은 느낌 외에는 특별히 불편하거나 아프거나 하지 않다. 나도 격리 해제 전에 깨끗하게 나을 것 같은 느낌이다. 아내도 인후통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근육통도 없고, 열도 없다. 큰 애도 열은 거의 없다. 마지막 확진자인 큰애는 증상의 진전이 가장 늦어 아직 인후통에 침 삼키는 것을 괴로워하고, 기침을 조금 할 뿐이다. 

 

여느 주말처럼 느지막이 아침을 시작하고 늦은 아침을 먹었다. 이제 다시 예전처럼 생활이 회복되어 가는 것 같다. 지난 한 주, 온 가족이 투병하며 어떻게 보냈는지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다. 지난 주말부터 이번 주 초까지, 열과 몸살, 오한이 특히 괴로웠다. 

 

며칠간의 시간차를 두고 가족들도 비슷한 증상을 지나며 견뎌왔다. 지지난 주 목요일 막내의 발병부터 엊그제 큰 애의 확진에 이르기까지, 자신도 똑 같이 아프면서도 한 순간도 쉴 새 없이 크 애쓴 아내가 새삼 어른스럽고 멋있어 보였다. 아내에게 까불지 말고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D+7 일요일 : 격리 마지막 날

 

모처럼 밤에 잠을 좀 잤다. 생활리듬을 완전히 회복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깜깜할 때 잠이 들었고, 해가 뜨고 나서 잠이 깼다.

 

아침에 일어나니 일주일 동안 묵은 집 안의 먼지를 털어내고 싶어져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까지 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코에서 락스 냄새 같은 것도 나지 않고 짠 맛 외에 다른 맛도 조금씩 느껴지는 것 같다. 아직 조금씩 기침을 하지만, 뭔가 몸이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오늘 자정이면 나의 코로나 격리치료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또 내일 모레 자정, 큰 애의 격리 치료 종료로 우리 가족의 코로나 투병도 모두 마무리 될 예정이다.

 

난생 처음 온 가족이 법정 전염병을 동시에 앓는 특이한 경험을 해보았다. 이만하길 참 다행이다. 온 가족이 건강하게 다시 일상 생활로 돌아올 수 있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그동안 백신 접종도 착실히 하고 꾸준히 건강관리해 온 덕분에 한 사람도 중증으로 번지지 않고 비교적 가볍게 홍역을 치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거, 한 번이니까 했지, 여러 번 할 일은 못 되는 것 같다.  

 

세상에는 아주 소중한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건강과 가족이다. 나와 내 가족의 건강, 나 말고 지켜줄 사람 따로 없다는 말, 피부로 와 닿는다. 독자 여러분도 부디 건강 조심하시고 또 조심하셔서 다가오는 거대한 코로나 확산의 파도, 무사히 잘 넘기시길 바란다.

 

그리고 혹여 코로나 증상을 느끼는 분 있으시다면, 지체 없이 병원으로 가셔서 적절한 처방을 받으시기를 권한다. 그게 제일 빠른 해결책이다. 우리 가족은 약 먹고 정말 큰 도움 받았다. 기저질환자이며 노약자인 나도 이겨냈다. 걱정하지 마시라. 딱 7일,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 생각하고 열심히 약 먹고 푹 쉬면 곧 쾌차하실거다.

 

센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 가는게 센 놈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 건강한 명랑 사회에서 손에 손잡고 오래오래 악착같이 잘 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