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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핵심 주제는 ‘아베 사후의 선거 결과와 향후 자민당 또는 일본 정치의 향방’이다. 이를 제대로 이야기하기 위해선 아베가 어떤 정치가였는지를 이야기해야 하고, 아베가 사망하기 전까지 자민당 내에서 어떤 위치였으며, 현 기시다 정권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향후 일본 정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이에 대한 정보를 기반으로 이야기해야 보다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지난 편에선 아베 사망 전과 후의 참의원 선거 분위기, 아베가 어떤 과정을 거친 정치가였는지에 대해 다뤘다. 

 

 

이제 아베가 사망하기 전까지 자민당 내에서 어떤 위치였으며, 현 기시다 정권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가를 살펴보며, 향후 일본 정국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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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의원 선거 결과가 보여주는 현재의 일본

 

일본은 양원제다. 상원 격인 참의원과 하원 격인 중의원이 있다. 참의원은 6년 임기로 3년마다 정원의 절반을 선출하는데, 지난 7월 10일 그 참의원 선거가 있었다. 정원의 절반인 124석에 결원으로 생긴 1석을 더해 총 125석을 뽑는 선거였다. 

 

선거 결과, 자민당은 원래 55석에서 8석 늘어난 63석을 차지했다.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맺고 있는 공명당은 14석에서 1석이 줄어 13석이 되었다.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자민당과 공명당의 의석수를 합하면, 참의원 전체 과반수인 125석을 훨씬 넘게 되었다. 

 

선거 전 : 자민당 111석, 공명당 28석 (총 139석)

선거 후 : 자민당 119석, 공명당 27석 (총 146석)

 

여기에 자민당과 함께 헌법 개정에 적극적인 소위 ‘개헌 세력’이라 불리는 일본 유신회 또한 15석에서 21석으로 늘어났다.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 2/3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총 정원 465명인 중의원은 개헌을 위한 2/3가 이미 확보한 상태였다. 이번 선거로 참의원에서도 개헌에 필요한 의석을 확보했다. 2/3에 해당하는 의석이 166석인데, 총 177석을 확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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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 결과가 보여주는 바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자민당 승리, 공명당 선방이라는 여당의 성적표

②그 외 개헌 세력(일본 유신회, 국민민주당 등)의 약진 및 건재

③지리멸렬한 야당 세력의 추락 가속화

 

제1야당인 입헌 민주당은 6석을 잃어 39석이 되었으며, 공산당은 2석 줄어 11석이 되었다. 그나마 합리적 개혁 세력으로 주목받으며 일본 정치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야마모토 타로가 이끄는 ‘레이와신센구미’라는 정당이 기존 2석에서 5석으로 늘어난 선전을 했지만, 소수 정당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의석수임엔 변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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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타로

배우 출신 정치가이기도 하다.

 

 

아베와 기시다의 관계는 어땠나

 

기시다 총리와 아베 전 총리(이하 호칭 생략)는 공통점이 있다. 1993년 총선거에서 처음 당선한 정치가 입문 동기이며, 3대째 세습하고 있는 금수저 정치가라는 것이다. 차이점으로는 아베가 보수 우익을 대표하는 매파로 분류된다면, 기시다는 온건한 비둘기파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정치가로서 인성이나 캐릭터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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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첫 당선된 기시다(위)와 아베(아래)

 

강경 매파인 아베파는 ‘보수 방류’의 맥을 잇지만, 기시다가 이끄는 일명 ‘기시다파’는 45대와 48~51대 총리를 역임했던 요시다 시게루(한국전쟁이 터지자 “한국전쟁은 신이 일본에 내린 선물이다”라고 했던 그 총리 맞다)의 노선을 잇는 ‘보수 본류’로서, 보수 리버럴 색채를 띤다. 

 

이런 점에서 기시다가 총리로 취임했을 때, 정책 결정 과정에서 아베를 정점으로 하는 매파와 충돌이 예상됐었다. 지금까지 눈에 띄는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서로 이해가 상충하고 엇갈리게 되면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은 상황이었다.

 

정치 노선을 떠나 권력 면에서도, 기시다가 의전 서열(일왕 제외)과 함께 실질 권력에서 1인자가 되기 위해서, 아베는 부딪칠 수밖에 없는 산이었다. 아베는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를 이끌고 있었으며, 자민당 지지세력인 보수 성향 유권자와 우익 세력의 지지와 기대를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상징적 존재였기 때문이다. 

 

기시다에게 아베의 존재는 대놓고 대결하기에는 벅찬 존재이고, 그렇다고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없는 말 그대로 ‘껄끄러운’ 동지이자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었다. 일명 ‘적대적 동지 관계’였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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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베가 뜻하지 않은 참변으로 사라졌다. 단순히 생각해도 기시다에게는 자민당의 당권을 장악하면서 정권을 안정적으로 핸들링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도래했음을 뜻한다. 때문에 기시다가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당내 영향력을 확대하며 확실한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지, 향후 행보가 주목될 수밖에 없다.

 

(일본 보수 본류와 방류가 어떻게 나뉘고, 방류는 어떻게 권력을 잡으며 일본을 우경화의 길로 몰아갔는지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사를 보면 좋다)

 

 

 

향후 일본 정치에서 집중해야 할 3가지 포인트

 

잠깐 다시 정리해보자. 

 

전술했듯, 기시다 정권은 작년 중의원 해산총선거에서 승리했고,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도 승리하며 2연승을 거두었다. 거기에 아베가 사망하며, 당내 권력 공백이 생겼다. 이 상황을 어떻게 활용해 나가냐에 따라 기시다 정권의 운명과 일본 정치의 향방도 갈리게 될 것이다. 

 

기시다 입장에선 장기집권을 원할 텐데,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제들을 달성해야 그 목적이 이뤄질 수 있을까. 기시다가 잘 해낼 것인가. 이것이 향후 일본 정치의 흐름을 볼 수 있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크게 3가지를 짚어본다.

 

1. 아베와의 결별 

 

가장 큰 과제다. 이미 생물학적 결별은 이루어졌지만, 구조적이고 이념적인 결별이 남아 있다. 평생 2인자로 만족한다면 과거의 주군과 결별을 도모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기시다는 그렇지 않다.  

 

아베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것이야말로, 그동안 무색무취라며 특징 없는 정치가로 야유되어 온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하여 명실상부 기시다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 길이다.

 

아베의 노선을 그대로 답습하며 유지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반 아베 정서가 결코 만만치 않은 현실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며칠 전 아베의 장례를 9월 27일 국장으로 치른다고 각의결정을 하였다. 일본 국내에서는 이에 대해 찬반 여론이 뜨겁게 쟁점화되고 있다. 정치노선을 떠나서도 아베는 영화 ‘신문기자’에서 다룬 가케 학원 스캔들과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 벚꽃을 보는 모임 스캔들 등 수많은 비리 의혹으로 인해 비판을 받았었다. (참고로 전후 일본 총리의 국장은 1967년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의 국장 이후 두 번째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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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가케 학원 스캔들을 다룬 영화 ‘신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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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일본 총리였던 '요시다 시게루'

 

그간 사토 에이사쿠는 ‘국민장’으로 오히라 마사요시, 오부치 게이조, 나카소네 야스히로 등 전 현직 총리의 장례식도 ‘내각・자민당 합동장’으로 치른 것에 비하면, 현직 총리도 아닌 전직 총리에 대한 국장 결정은 매우 파격적이고 놀라운 결정이다. 

 

이는 기시다가 아베의 유지를 받들어 그의 정책 노선을 답습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아베를 따르고 추종하는 자민당 내 세력과 지지층에 대한 배려와 포섭이 목적이 아닐까 한다. 비판 여론을 감수하면서까지 국장으로 치르기로 선택한 속내가 더 정확히 무엇인지는 향후 기시다의 행보를 보며 확인해봐야 할 것이다. 

 

2. 헌법 개정

 

전술했듯, 개헌 세력은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 2/3를 넘는 의석수를 확보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개헌을 위한 발의에 착수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선 개헌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확실히 과거 90년대에 비하면 개헌을 용인하거나 필요하다고 하는 주장이 많이 늘었다. 필자의 감각으로는 이제 ‘50대 50’에 가까워지지 않았나 싶다. 

 

다음으로, 개헌 세력(자민당, 공명당, 일본 유신회, 국민민주당 등) 내에서 개헌의 세부 내용에 대한 스탠스가 제각기 다르다. 이를 조율하고 동의를 끌어내는 건 쉽지 않은 과제다.

 

가령 자민당과 함께 연립정권을 꾸리고 있는 공명당의 경우 개헌에 소극적이며, 특히 평화헌법의 상징인 제9조(전쟁의 포기, 전력(戰力)의 포기, 교전권 부인 등)의 개정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적은 내부에 있다고 하지만 어쩌면 본격적으로 개헌을 논의하게 되면서 연립정권 내 균열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만약 의견이 잘 조율되어 개헌안이 중의원에서 통과된다 하더라도, 참의원에서 2/3의 찬성을 얻지 못하면 개헌안은 즉시 파기된다. 또 중・참의원에서 모두 통과되어 국민투표에 부쳐져도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비로소 개헌이 성립된다. 

 

일본의 개헌은 절차만으로도 이처럼 매우 허들이 높은 경성헌법인데, 국회에서 각 세력 간 동상이몽도 진행 중이니, 이제 막 참의원의 2/3를 넘은 지금, 개헌이 단번에 이루어지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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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동아일보>

 

다만, 아베와 실질적 결별을 꾀하더라도 자민당 지지세력인 보수 우익 성향 지지자들에게도 납득할만한 성과와 과정을 보여 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기시다 정권으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개헌을 위한 로드맵과 절차에 대해 검토하고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가 개헌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중도파기로 이어질지 점치기는 힘들지만,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기란 힘들 것이다.

 

3. 기시다의 ‘무색무취’ 색깔 지우기

 

기시다는 통상 ‘무색무취’의 정치가로 표현되곤 한다. 좋게 보면 부드럽고 유화적인 정치가로 볼 수 있지만, 엄하게 표현하면 정치적 소신과 배짱이 부족한 리더로 비치기도 한다. 자민당 총재 선거 때마다 하마평이 무성했지만, 몇 번의 실패와 좌절을 거쳐 지난 2021년 9월 총재로 당선되었다. 

 

이렇게 긴 터널을 뚫고 겨우 자민당 총재&총리가 되었는데, 그간 기시다가 보여준 행보로는 정치적 결단력이 부족하다 또는 배짱이 없고 소신이 없다는 혹평을 감수해야만 했다. 더불어 국민적 인기도 항상 하위 수준에 머물렀다. 개인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정치가로서 그간 행보가 밋밋했던 탓이 크다.

 

하지만 두 번 다시 없을 이 절호의 찬스 국면(아베 사망으로 인한 권력 공백)에서는 기시다도 밋밋하게만 있을 순 없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행보로 어떤 색깔을 입혀갈지는 곧 이루어질 개각과 자민당의 당 간부 인사에서 힌트가 나올 것이다. 

 

통상 선거를 치르면 소폭의 개각이 있어왔다. 일본의 대신 평균 임기가 대략 1년 정도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올 9월쯤에는 개각이 있을 것이다. 동시에 자민당 간부 인사도 함께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개각이 소폭으로 이루어질지 혹은 큰 폭으로 이루어질지도 중요하지만, 특히 아베의 영향력을 지우기 위한 아베파의 배제가 이뤄지는지가 향후 일본 정국 향방을 점치기 위해 중요한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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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 인사권은 내각총리대신의 전권이며, 자민당 간부 인사 역시 자민당 총재인 총리의 권한이다. 자신의 고유 권한을 어디까지 행세하며 무색무취의 정치가 이미지에 변신을 꾀하고 정치적 입지와 토대를 강화해 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다음으로, 역시 인사 문제이긴 하지만 조금 성격이 다른 인사 문제다. 아베 정권 내내 아베노믹스를 견인하며 이끌어 온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2기 임기가 만료되는 것이 내년 4월 초다. 

 

구로다 총재는 아베가 파격적으로 등용하여 아베노믹스를 같이 추진해 온 인물인데, 이 구로다 총재와 부총재 두 명이 내년 봄에 임기가 만료된다. 기시다가 어떤 인물을 후임으로 앉힐지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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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의회에서 경제 정책에 대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그 뒤로 당시 총리 아베와 부총리 아소의 모습이 보인다. 

출처-<Reuters>

 

기시다는 자민당 총재 선거 때부터 줄창 ‘성장’보다는 ‘분배’에 방점을 두고 강조해왔다. 이는 다분히 ‘격차 사회’가 심화되는 작금의 일본에 대한 처방전으로 중・저소득층에 대한 배려적인 정책을 염두에 둔 발상일 것이다. 

 

지금까지 아베가 펼쳐온 성장을 통한 경제회복과는 궤를 달리하는 정책이다. 국가재정에 대해서도 아베가 적극적인 재정출동을 주장하고 요구한 것과 달리, 기시다는 재정건전화를 우선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상호 간 충돌이 노정되기도 했었다. 따라서 아베노믹스를 견인하며 지탱해 온 일본은행 총재와 부총재 인사에서 어떤 인물을 앉히느냐에 따라 기시다의 경제정책에 대한 의지와 노선이 드러날 것이다. 

 

 

죽은 자 vs 산 자

 

기시다는 현재 저성장, 저물가, 저소득, 저금리로 대표되는 일본의 ‘4저 현상’을 극복하고 경제를 회복시켜야 하는 절대절명의 처지에 놓여있는 리더이니만큼, 적극적 정치적 스탠스를 바로 취하며 정쟁하기보다는, 경제회복이 우선이라는 스탠스를 취하며 어필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정치가로서 또한 일국의 리더로서 자신에게 찾아온 모처럼의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며 난국을 헤쳐 나갈지는 기시다 자신의 정치력과 능력에 달려있음에는 변함이 없다. 

 

여러 어려움이 기시다 앞에 놓여있지만, 그가 확고한 권력을 잡고 장기집권을 하기 위해 제일 중요한 과제는 역시 일본 사회와 정계에 짙게 드리워진 아베의 그림자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삼국지에서는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쫒았다’고 하는데, 과연 현대의 일본에서 ‘산 기시다와 죽은 아베의 싸움’ 결과는 어떻게 될 지 두고 볼 일이다. 

 

이헌모 (일본 중앙학원대학 법학부 교수, 정치학 박사)

 

 

 

 

편집부 주

 

30여 년간 도쿄에 살며 일본 정치를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이헌모 교수가

재일한국인의 눈으로 본 생생한 일본정치 현장과

일본 우경화의 현주소를 진단한 책이다.

 

일본 정치가 돌아가는 원리와 어떻게 우경화가

독주할 수 있는지 궁금한 독자는 집어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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