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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O에서 만든 <BAND OF BROTHERS>란 드라마. 다들 알 것이다. 2차대전 당시 활약했던 제101 공수사단 506연대 소속 이지 중대를 주인공으로 만든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의 4화 보충병(Replacements) 편을 보면, 이지 중대가 노르망디 이후 2번째 강하를 한다. 강하지점은 네덜란드의 에인트호번. 작전목표는 에인트호번 근처의 다리를 점거하는 거였다.

 

그 유명한 마켓 가든 작전(Operation Market Garde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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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오브 브라더스> 4화 보충병(Replacements)

주요 인물인 덴버 '불' 랜들먼 하사(실존 인물 중 한 명이다)

출처-<링크>

 

잠깐, 이 마켓 가든 작전에 관해 이야기해 봐야겠는데... 이 작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도 할 말이 많다. 고등학생 시절, 이 마켓 가든 작전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몽고메리 장군의 자서전을 구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품을 팔아 겨우겨우 몽고메리의 자서전을 구해서 서둘러 목차를 확인했던 게 바로 이 마켓 가든 작전 편이었다(엘 알라메인 같은 건 건너뛰었다). 마켓 가든 작전에 관해서 쓴 그의 소회를 읽어보고 내가 뱉은 첫마디는 지금도 똑똑히 기억난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당시 이 책을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펴냈었는데, 이 책을 구하기 위해 애썼던 걸 생각하면... 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몽고메리는 마켓 가든 작전에 대해서, 작전 목표의 80, 90%를 달성한 작전이었다고 말했다. 쓸데없는 네덜란드 땅 얼마를 더 얻었다고 ‘성공’이라고 포장하는 걸 보면서,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던 기억이 난다(몽고메리를 너무 몰아붙인 거 같다. 인간이란 게 원래 자기변명이나 합리화가 기본사양으로 탑재된 존재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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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 원수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가운데)과 

소련군 원수 주코프, 로코솝스키 장군 모습.

몽고메리는 서방연합군 장군들 중 아이젠하워 장군과 더불어

소련군으로부터 전승 훈장을 받은 유이한 인물이다

출처-<링크>

 

마켓 가든 작전의 배경: 전선 확대에 따른 보급 문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한 이후 연합군을 가장 괴롭혔던 건 ‘보급’이었다. 당시 연합국들의 ‘보급창고’였던 미국이 유럽에 상륙한 상황에 보급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는 게 아이러니한데, 문제는 물자 부족이 아니라 ‘보급로 확보’의 문제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연합군의 제일 목표는 ‘항구’였다. 밥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소화할 여력이 안 되면, 살이 빠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자는 넘쳐나지만, 하역할 항구를 찾는 게 제일 급한 일이었다. 이걸 잘 아는 연합군은 교두보 확장을 위해 셀부르 항과 캉을 둘러싼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독일군과 치열하게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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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세계일보>

 

어찌어찌 파리를 해방하고, 프랑스를 얼추 다 해방한 것처럼 보이지만, 독일은 끝까지 프랑스 북부의 주요 항구들을 사수했다. 이때까지 연합군의 대규모 물동량을 감당할 만한 항구는 노르망디 정도뿐이었다. 이게 처음엔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점점 더 전선이 확대되고, 항구에서부터 전선까지 보급품을 이동시키는 게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가면, 보급품을 전선까지 운송하는데 드는 물자(物資)의 양이 보급품 양보다 더 많이 드는 경우까지 발생했다(온라인 마켓에 주문을 넣었는데, 물건값보다 배송비가 더 나오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거다).
 

게다가 독일 본토로 가까워지면서부터 독일군들의 반격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고, 파리를 해방했을 때까지만 해도.

 

"1944년 크리스마스 전에 전쟁이 끝난다. 안 끝난다?"

 

라는 걸로 내기를 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지만, 보급의 문제·독일군의 반격 등등 때문에 진격이 멈췄다. 이때 영국의 몽고메리가 하나의 작전을 들고나온다. 바로 마켓 가든 작전이다.

 

마켓과 가든, 공수부대와 지상부대 

 

"아니, 굳이 독일군이 바글바글 몰려 있는 쪽으로 넘어갈 필요 있나? 독일 놈들이 했듯이 우회하고 가면 안 돼?"

 

"거기에도 독일군이 있잖습니까?"

 

"지크프리트 라인처럼 강력하지는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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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국방TV>

 

"네덜란드 같은 저지대 국가(Low Countries)는 운하나, 제방, 다리로 이어져 있다니까요. 우리가 진격하는 낌새만 보여도 길목 막고 버티면, 뚫기 힘들어요. 설사 뚫고 나간다고 해도 다리 끊어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 다리를 지키면 되잖아?"

 

"예?"

 

네덜란드를 징검다리 삼아서 독일 본토로 들어가자는 게 이 작전의 핵심이었다(당시 독일군은 벨기에 방어를 포기하고, 남은 병력을 네덜란드에 집결한 상태였다).

 

핵심은 간단했다. 네덜란드의 다리를 먼저 확보해 진격로를 닦아 놓고 기다리면, 기갑부대들이 이 진격로를 따라 네덜란드를 거쳐 독일 본토로 들어간다. 이 기갑사단들이 독일 최대의 공업지대인 루르 공업지대로 짓쳐 들어가면? 독일의 전쟁물자 생산량은 떨어질 테고, 전쟁은 일찍 끝이난다란 꽃그림을 그렸다.

 

듣기만 해도 심장이 요동치는 멋진 작전처럼 보인다. 본론은 지금부터 나온다.

 

"그 다리를 어떻게 확보할 건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고 해야 할까? 이때 몽고메리 눈에 들어온 부대가 바로 ‘공수부대’다.

 

"아니, 쟤들 지금 뭐 하고 있어?"

 

"예? 아, 공수부대 병력 말입니까? 쟤들 노르망디 이후엔 후방에서 정비시키고 있습니다."

 

"정비?"

 

"예, 당장 공수작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노르망디 때 고생도 많이 해서 좀 쉬게 했습니다."

 

"정예 병력을 이렇게 낭비할 순 없지! 우리가 쟤들 키우는 데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잘 됐다 이참에 쟤들 좀 써먹자."

 

이렇게 나온 게 마켓 가든 작전이다. 이 작전에서 마켓(Market)은 공수사단 작전을, 가든(Garden)은 지상부대(기갑부대) 작전을 뜻한다. 공수부대(미 제82공수사단, 101공수사단과 영국군 제1공수사단)를 날려서 네덜란드 다리를 확보하고, 지상부대(영국군 제30군단)는 독일 본토로 진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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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의 진격로

출처-<국방일보>

 

겉으로 보면 장대하고, 웅장한 작전 같다. 실제로도 그렇다. 3만 5천 명 이상의 공수부대, 4천 대 이상의 수송기, 1천 500여 대의 전투기가 동원된... 2차 대전에 있었던 공수작전 중 최대규모였다(공수작전 규모만 보자면, 노르망디보다 더 큰 작전이었다).

 

한 사람의 자존심이 역사에 종종 (악)영향을 끼친다

 

까놓고 말하자면, 이건 영국군... 아니, 몽고메리의 공명심(功名心)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라이벌로 생각했던 미국의 패튼 장군이 연일 승승장구하고 있자, 몽고메리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던 거다. 관심병이라고 해야 할까? 패튼보다 먼저 베를린에 입성하겠다는 욕망이 몽고메리의 몸을 달뜨게 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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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국방TV>

 

이 당시 연합군 최고 지휘관들의 회의 모습이란 게, 안건이 있어서 모이면 패튼과 몽고메리가 티격태격 싸우고, 이걸 보던 아이젠하워가 한숨 쉬며 브래들리에게 눈짓한다.. 그러면 브래들리가 패튼과 몽고메리 사이를 오가며 중재하고, 겨우겨우 타협안을 제시해 들고 오고... 다시 작전회의를 하고, 그러면 다시 패튼과 몽고메리가 싸우고, 아이젠하워가 한숨 쉬고, 브래들리가 출동하고의 무한반복이었다.

 

문제는 아무리 최정예 공수사단이라고 하지만, 이들의 ‘본질’은 알보병이란 거다. 아니, 보병보다 더 취약하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보면, 이들이 일반 보병보다 훨씬 더 훈련을 강하게 받은 건 사실이다. 또한 정예 병력이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장비만 보자면, 이들은 보병보다 더 취약하다. 낙하할 때 보면 수류탄, TNT, 대검, 권총, 실탄, 소총 등등 수많은 장비들을 몸에 걸치고 비행기에 타는 걸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간단하다. 이들은 보병처럼 지속해서 보급이 유지되는 게 아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5화 교차로(Crossroads) 막판에 바스토뉴로 향하단 윈터스 대위가,

 

"포위당하는 게 우리 전문이다."

 

라고 말한 걸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거다. 적진 한가운데 떨어지는 것이기에 언제 보급받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최대한 장비를 들고 가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난점이 더해지는데, 비행기에 싣고 가서 떨어지는 것이기에 장비에도 무게 제한이 많이 걸린다(공수부대용 장비가 최대한 경량화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다 보니 중장비를 들고 가는 것에 많은 제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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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9월 마켓 가든 작전에서

영국 1공수사단 병사들이 네덜란드 아른험을 점령하고자 

낙하산을 펴고 내려가고 있다.

출처-<National Archives>

 

보병들이야 무게 제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터라 이런저런 장비들을 들고 다닐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기갑부대를 상대할 때 나름의 선택지가 있었다. 그러나 공수부대에게 기갑부대란?... 천적 중의 천적이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아무리 강한 훈련을 받았더라도 기본적인 ‘장비’의 격차를 극복하기는 어렵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