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0.jpg

나다. 17kg짜리 V4 서포트를 세우는 중이다.

형틀목수가 된 첫 날이다.

 

형틀 목수의 개인 연장은 14kg 정도에서 시작한다. 오른손잡이들은 왼쪽에 메는 못 주머니에 거푸집의 종류에 따라 다른 핀들을 넣는다. 알루미늄 거푸집 작업을 할 경우엔 부피 대비 양은 얼마 안 돼서 자루를 끌고 다니기도 한다. 핀의 무게에 전체식 안전벨트 무게까지 합치면 20kg은 족히 넘는다. 해체공 경우에도 비슷하다. 다만 일하면서 쓰는 자재는 없고 바라시대 혹은 해체 빠루라고 하는 넘을 추가로 더 들고 다닌다.

 

1.jpg

 

1.2미터에서 1.5미터까지,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한다. 목수 빠루와는 생긴 것부터 다르다.

 

나를 힘들게 한 건, 겐바 아니 현장 용어들

 

해체일을 할 때 힘들었던 것은 사실 무거운 연장 매고 거푸집 뜯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 날 힘들게 했던 것은 낯설기 그지없는 현장 용어들이었다(겐바는 현장[現場]을 뜻하는 일본어다).

 

2.jpg

정체불명의 건설현장 용어들

 

뭐 정체불명의 일어들을 쓰는 곳은 내가 일하는 건축만은 아니다. '야마' 같은 거, 글 쓰는 이들이나 방송에서도 많이 하던 말인걸. 사실 일어만 문제였던 것도 아니다. 영어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골때렸던 것은 slab. 종종 보던 미드 수사물에서 the slab이라고 하면 시체 안치대를 뜻하던 말이었다. 하지만 건축에선 폭이 넓고 두꺼운 널빤지 정도로 번역되는 slab을 '층을 나누는 바닥'을 말하는 걸로 변형해서 쓴다. 여기에 되지도 않는 발음 굴리는 멍청이들은 Slav라고 해서 더 헷갈리게 했다. 부랴트 공화국 친구들은 총반장이 저렇게 발음하는 날엔, 혹시라도 자기들 다 자르고 슬라브계 친구들을 영입하려고 하나보다 생각해 나에게 몇 번씩 확인하곤 했다.

 

애초에 해체일을 주업으로 할 생각은 눈곱 위의 먼지만큼도 없었기 때문에, 건설 현장 속어 같은 것을 외울 마음이 없었다. 2018년 겨울까지만 해도 준비 중이던 사회적 기업에 대한 PT 요청을 종종 받아 희망을 완전히 접을 수도 없었다.

 

그게 팀원들에겐 무진장 낯설었던 것 같다. 다들 그냥 외우기만 했던 단어들의 원래 뜻을 따지는 인간은 처음이었고, 그게 상당히 재수 없이 보였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아무도 어떻게 하라고 안 알려줬다. 당연히 무엇부터 뜯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사실 내 안전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고 가장 앞에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제거하면서 어떻게 해야 내부 압력을 최소로 줄이느냐만 생각하면 되던 일이다. 그런데 (작정하고 날 제자로 받아들였던 사부 외엔) 사람들과 좀처럼 친해지지 못해서 배우는 자체가 좀체 힘들었다.

 

3.jpg

 

떼어내는 순서는 너트와 사각 와셔 제거부터다. 그 뒤 좀 긴 나무(현장에선 투바이라고 부른다. 쟤 규격이 2x4[[투바이포]]인치인데 뒤는 생략해서 부른다)를 제거한다. 그다음에 튀어나와 있는 볼트를 모두 제거하고, 굵은 철사를 끊고 파이프를 떼어낸다. 이후 철근을 내린다. 거푸집 뜯어서 쌓아둘 공간도 확보해줘야 했다.

 

노안을 위한 현장은 없다

- No construction for Old Eye

 

그 다음으로 일을 하면서 날 힘들게 했던 것은 그즈음부터 심해지던 노안이다. 안경을 쓰면 1미터 밖의 것은 잘 보이는데 50센티미터 안쪽 게 이중으로 흔들려 보이는 현상이 심해졌다.

 

콘크리트가 특정한 형태의 형상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거푸집의 구실이다. 거푸집이 굳으면 떼어내는 일이 해체(업계 용어론 바라시)다. 콘크리트에 들어 있는 시멘트는 물과 반응하면서 상당한 열을 내는데 이걸 수화열(水和熱)이라고 한다. 거푸집을 뜯어낼 때 거푸집에 갇혀 있었던 수화열이 한꺼번에 뿜어져 나온다. 이 때 안경을 쓰고 있으면 열과 습기 때문에 안경이 뿌옇게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4.jpg

 

거푸집 사이에 들어가 있는 넘은 거푸집 간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시켜주는 타이(Flat Tie)다. 그걸 가로와 세로로 결합해 타이와 거푸집을 같이 잡아주고 있는 넘이 유로폼 핀(Wedge Pin)이다. 형틀 목수가 저렇게 조립한 것에 콘크리트를 부어 넣고 나서, 벽은 하루 정도 후에 뜯기 시작한다. 위 사진에서처럼 거푸집 앞에 붙어 있는 부자재들을 다 떼어내고 난 다음에 웨지핀을 망치로 때려서 뽑아줘야 한다.

 

뜨거운 열기와 습기에 노출되어 있다 보면 저게 안보였다. 사실 타이와 핀을 넣는 규칙이 있어서 그 규칙을 이용해서 작업하면 수월한데… 알려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잘 안 보여서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다 보니 여기저기 부딪혔다.

 

엎친 데 덮치기 = 노안 + 어둠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컴컴했으니까.

 

5.jpg

 

목수들이 slab 작업할 땐 콘판넬을 쓴다. 위 사진의 하얀(?) 색 강화 플라스틱 소재의 판자들. 얜 빛을 통과시키기 때문에 위를 이걸로 막아놔도 내부가 그렇게 컴컴하진 않다. 하지만 저걸 깔고 나서 단열재를 깔고 그 위에 철근을 엮은 다음 콘크리트를 부어 넣으면… 뭐든 보일 리가 없잖는가.

 

6.jpg

천정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보엔

엄청 촘촘하게 철근이 들어간다.

저렇게 철근을 집어넣는데

자재난으로 철근을 덜 넣었다는 소문이 돌면

만드는 처지에선 정말 황당하다.

 

지금은 형틀 목수로 일하고 있다. 일하는 곳이 1군 현장이다. 컴컴하다고 조명이 필요하다고 사측에 요구하면 용역 아저씨들이 작업등(오징어잡이 배들이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주로 오징어등이 라고 부른다)과 투광등을 가지고 와서 설치해준다. 하지만 이 현장에서도 콘크리트를 부어 넣고 나서 거푸집을 떼어내야 하는 순간이 되면 작업등과 투광등은 대체로 철거한다.

 

7.jpg

 

투광등이 비추고 있는 천장 슬라브 모습이다. 보시다시피 내부의 시스템 동바리는 그대로 있는 상태다. 만약 거푸집이 투광등에 떨어져 전선이 끊어지면 시스템 동바리를 타고 전기가 흘러 대규모 전기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거푸집 해체할 때는 철거하는데… 뭐 투광등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사진에서 보듯 조금 안으로 들어가면 음영 지역이여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주로 헤드랜턴을 썼다.

 

8.jpg

 

문제는 이분이 상당한 병약 미소녀(?)과라 잘 고장이 잘 났던 것이다. 쇳덩어리들이 잔뜩 있는 공간을 비집고 가는데 저런 걸 안전모에 달아놓으면 여기저기 닿는다. 그러면 그 충격으로 납땜으로 연결한 부분이나 센서가 쉽게 나갔다. 게다가 딸려 나오는 충전지가 하루도 못 갔다. 오후 작업하다 보면 방전되었다.

 

노안 + 어둠 + 날씨

 

무엇보다도 최강의 조건은 날씨였다. 예나 지금이나 최악의 적은 사측도, 깡패도, 작업 난이도도 아니고 날씨다.

 

9.jpg

 

믿거나 말거나 3월 초에도 아침엔 저렇게 살얼음으로 덮여 있다. 저거 잡고 일하고 있으면 뼛속까지 시리다.

 

여름엔? 작년 여름이 꽤 더워서 몇 도인가 싶어 팀장이 온도계를 갖다 놓았었는데 46도까지 올라갔던 것 같다. 그런데 이건 밖의 이야기다.

 

위에서 말한 수화열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지하실의 경우엔 불가에서 말하는 초열지옥이 현세에 구현된 것 같았다. 건설 현장에서 일할 수 없는 비자를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었던 까닭에 어지간한 악조건에도 일했던 곳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런 초열지옥에 보내면 총반장부터 도망갔다. 대표적인 곳이 고(故) 물뚝심송 정치부장의 가족 납골당 근처에 있던 요양병원 현장이었다.

 

사방이 막힌 구조라 제대로 달궈졌다. 총반장이 갖은 핑계를 대고 도망쳐 버렸다. 팀장은 조선족 형님을 반장으로 올려 그 현장을 맡겼다. 그러고도 작업 속도가 안 나자, 이른바 '현지 지도'차 나와 뜨거운 환경에선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시범을 보여줬다.

 

'빤쭈에 안전화만 신은 채 연장 벨트 차고 올라가서 일하기.'

 

를 시전했다. 허나 그날은 진짜 더웠다. 더위에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일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팀장 쪽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좀 지난 후에 옷 들고 올라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본인도 더워 죽겠으니 경리에게 입을 옷과 아이스크림 배달을 시켰던 것. 그날 거의 한 시간 간격으로 폴라포를 물었던 것 같다. 그다음 날부터 그 현장 일이 끝날 때까지 얼음 물통 두 개와 얼어 있는 개인 물병도 따로 지급받았다.

 

안전화 가득 땀이 차서 그 땀을 두세 번쯤 쏟아내고 나야 하루가 끝났다. 땀이 그렇게 차니 안전화도 2주 간격으로 바꿔야 했다.

 

나중에 알았던 건데… 2018년 여름은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기에 거의 모든 다른 팀들 현장에선 서큘레이터가 몇 대씩 동원되었다.

 

10.jpg

지하로 공기를 집어넣는 산업용 서큘레이터

 

게다가 대부분 다른 현장이 4시쯤 시작해 3시 이전에 작업을 끝냈었다. 그래도 더워서 작업 중단하고 휴게실에서 대기하는 날들이 꽤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죽자고 일했다.

 

람 취급 못 받던 불법체류자 팀이었으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