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긴 글이다. 시간 없으신 분들은 아래 목차를 보고 궁금한 부분 위주로 보셔도 된다. 그러나 각 목차별로 다 의미가 있고, 40-50세대가 이해하기 힘든 이대남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고자 한 글이니, 이대남을 알아보기 원하시는 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시길 바란다.

 

 

목차

 

1. 이 글을 쓰게 된 사정

 

2. 젊다는 것이 진보인 이유

-청춘의 생물학적 특징이다

-청춘의 사회 문화적 특징이다

 

3. 왜 이대남은 2찍을 했을까

-이대남의 정보 유통 경로

-이대남들의 꿈은 모두 ‘돈’과 관계가 있었다

-분노할 대상도 이데올로기도 없었다

-민주당을 더 꼰대 정당으로 바라봤다

-이재명과 윤석렬의 리스크가 대등했고, ‘공정’은 매력적이었다

-‘2찍’에 대해 대부분 후회하거나 자신이 없었다

 

4. 이대남과 대화하며 느낀, 한국 사회의 두 가지 특징

 

5. 이대남은 진보다

 


 

 

1. 이 글을 쓰게 된 사정

 

나는 꼰대다. 일단 생물학적으로 꼰대다. 아주 먼 옛날 ‘머틀리 크루’를 영접한 바로 그날, 전영록과 이문세를 버렸다. 친구 녀석이 사 온 푸르스름한 빛이 도는 청계천 빽판(분명히 원본은 칼라였을거다)이 주는 신비러운 포스와 죽여주는 스키니 가죽 바지에 한눈에 영혼을 뺏겼다. 

 

머틀리 크루.PNG

머틀리 크루

 

요즘 표현으로 ‘폭풍 간지’였다. 그때부터 종로 파고다 극장을 야자 하듯 드나들었다. 이름 없는 조선 메탈 밴드들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탠딩으로 대가리 흔들며 열광했다. 양놈들 표현으로는 ‘헤드뱅잉’이다. 그래도 내 모가지는 끄떡없었다. 슬프게도 지금은, 자다가 담 안 걸리면 다행이다.

 

당연하겠지만, 나는 문화적으로도 꼰대다. 몸이 늙는데 뇌라고 무사할 리 있겠는가. ‘BTS’라는 조선 청년들이 빌보드 차트를 씹어 먹고 있다 했다. 시대에 뒤처질 수 없다는 간절함으로 도전했지만, 듣다가 껐다. 내 감수성이 아니었다. 내 문화적 감수성의 한계는 ‘에미넴’ 정도가 마지노선 아닐까 한다. 이 자리를 빌려 아빠 등짝을 도닥여 주며, 끝까지 함께 ‘the dirt’를 감상해 준 내 이대남 아들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꼰대지만 젊은 친구들의 삶에 대해 편하게 글 한 편 쓰고 싶었다. 지난 대선 이후 2찍 이대남에 대한 조롱과 경멸이 난무하고 있다. 나 역시 ‘딴게이’로서 그 분위기에 휩쓸렸지만, 나름 문제의식을 느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만든 건 애들이 아니고 어른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40-50과 이대남을 화해시키자. 아니, 그 전에 이해를 해보자.” 

 

“내 취재와 경험을 갈아 넣어, 글 한 편 써보자.”

 

고 생각했다. 

 

청년이 진보인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20년 이상 교육계에 몸담았었기에 직업상으로, 경험상으로 자신 있었다. 물론 거의 매주 ‘책에서 마주친 100개의 인생’(링크) 연재가 너무 힘들어, 한 주 쉽게 가자는 사악한 생각도 있었다.

 

g한주 날로.jpg

 

그런데... 일이 좀 커졌다.

 

꽤 괜찮은 얼개(전문용어로 개요표)가 나왔다. 글의 얼개가 완성되면 이제 살만 붙여 쓰면 된다. 순간 왠지 모를 마음 속 껄끄러움 하나가 있었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니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대남 하나가 줌으로 땡겨지며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 녀석과 대화를 좀 나눴다.

 

김민교.jpg

 

대화의 결과는 생각보다 충격적이었고 심각했다. 짜놓은 개요를 버렸다. 그리고 더 많은 이대남들과 대화를 나눴다. 이 글은 그 결과물이다. 

 

이 글은 논설문도 설명문도 아닌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의 괴상한 글이다. 이 글을 통해 누군가를 설득할 의도도 없고 그럴 실력도 없다. ‘정치’는 내 전문 분야도 아니다. 나와 대화를 나눈 이대남들이 표본이 되지 못하는 독특한 녀석들일 수도 있다. 나의 바람은 그저 이 글이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청년들에게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고, 좀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지난 대선에 투표권을 행사한 만 25세부터 만 29세 사이의 이대남들과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가 아니고 ‘대화’였다. 익명 관계가 아닌 ‘지인’ 관계였기에 진솔한 속마음 듣기가 쉽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녹취를 통한 직접 인용 없이 내가 쓸 글에 참고만 하겠다고 약속했다. 메모는 했다. 중간중간 나오는 대화는 내 메모와 기억에 의지한 것임을 밝힌다. 1찍과 2찍의 비율은 비슷했으며, 그중 1명은 정의당을 찍었다. 그리고 대화에 응한 모든 청년들은 ‘일베’를 하지 않았고 ‘딴지’도 하지 않았다. 눈물이 흘렀다. 우리 딴지, 신경 좀 쓰자ㅠ)

 

 

2. 젊다는 것이 진보인 이유

 

 청춘의 생물학적 특징이다.

 

고딩 시절, 머리를 기르고 싶었다. 미치도록 기르고 싶었다. 스포츠 머리로는 아무리 격하게 헤드뱅잉을 해도 자세가 안 나왔다. 음악 다방에서 틀어 주던 비디오 속의 락밴드들이나 관객들은 모두 치렁치렁한 머리를 휘날리며 헤드뱅잉을 했다. 멋있고 싶었다. 

 

다행히 학교는 교복 자율화 시범학교였기에 복장이나 두발에 대한 규제가 다소 느슨했다. 악착같이 길렀고 비극은 예정된 것이었다. 내 머리 위로 고속도로가 생겼다. 

 

고속도로.PNG

띠발...

출처-<Insight> 링크

 

학생주임이 ‘바리깡’으로 내 머리 한가운데를 밀어버린 것이다. ‘학생 인권’ 따위의 단어는 내가 밤마다 읽었던 그 숱한 책에서도 보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머리를 밀리며 ‘지금 내가 사람 새낀가, 양 새낀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여의도 매미들은 악에 받쳐 운다. 하도 시끄럽게 울어서 소음 측정을 했다고 한다. 항공기 착륙 시 발생하는 소음이 80.3db인데 놀랍게도 여의도 매미들이 내는 소음은 84.3db였다고 한다. 

 

출처MBC.PNG

출처-<MBC> 링크

 

왜 시골 매미 소리는 정겹고 낭만적인데 도심의 매미들은 이토록 피 토하듯 울어댈까? 이유는 간단했다. 짝짓기 때문이다. 여름날 매미가 우는 것은 짝을 유혹하는 소리이다. 매미들은 짝을 찾아 번식하기 위해 우는 것이다. 따라서 도심처럼 주변 소음 자체가 심할 때는 그보다 더 큰 소리로 울어야만 짝짓기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의도 매미는 통곡을 하는 것이다.

 

내가 고딩때 ‘멋있고 싶었다’는 것과 ‘여의도 매미 소리’는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은 현자 ‘도킨스’ 선생께서 하셨다.

 

“그것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것들을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를 알게 해주는 유일한 이유다. 그것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 기계다.”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친 책 1위로 꼽는 ‘이기적 유전자’ 중 한 문장이다. 그렇다. 이 비루한 몸뚱아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의 보존과 복제를 위해 프로그래밍된 생존 기계이다. 생명체의 첫 번째 존재 이유는 유전자의 복제, 즉 번식이다.

 

인간이란 포유류는 대단히 특이한 생명체라 참으로 복잡한 사회 체제를 만들어 내었다. 그래서 사회 진출과 자립의 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다. 배워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번식이 늦어지고 있는 이유이다. 또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한 자의적 선택으로 번식을 늦추기도 한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인간에게 가장 좋은 번식의 시기는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이다. 그래서 청춘은 아름다운 것이고, 청춘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자! 지금 즉시 순간적으로 ‘국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한 단어로 표현해보라. 내가 해봤다. ‘추하다’이다. 그들에 대해 갖고 있는 내 이미지는 ‘추하다’ 거나 ‘느끼하다’, ‘혐오스럽다’ 뭐 대충 이런 것들이다. ‘아름답다’와는 정반대 이미지이다.

 

홍준표 윤석열.PNG

 

지난 대선에서 1, 2위 국힘 대선 후보들이다. 당신이 청춘이라면 찍고 싶은가? 아름다운 것을 추구할 나이, 즉 청춘이라면 공약이고 정책이고 나발이고, 이런 사람들에게 자기 권한을 위임하지 않는다. 청춘이 진보인 이유는 너무나도 당연한 생물학적 특징이다.

 

② 청춘의 사회 문화적 특징이다

 

대학생이 되었더니 ‘광주항쟁 사진전’이란 것이 캠퍼스에 펼쳐져 있었다. 대단한 충격이었다.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고, 분노해야 당연한 것이다. 시위가 열렸다. 나도 참가했다. 교문을 나서자마자 내 앞에 거대한 ‘팔랑크스 방진’이 펼쳐져 있었다.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를 멸망시킨 그 방진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것을 능가하는 공포스러운 위압감이었다.

 

맨 앞에는 방패를 들고 검은색처럼 보이는 짙은 녹색 군복과 보호대로 무장하고 손에는 ‘장창’ 대신 ‘곤봉’을 든 ‘중장보병’이 있었다. 그 뒤에는 날렵한 ‘기병’들, 가볍게 하얀 헬멧과 무릎 보호대만 한 사복 체포조, ‘백골단’이 포진해 있었다. 그리고 중장보병과 기병들 사이에 시커먼 전차 두 대가 있었다.

 

백골단11.PNG

팔랑크스 방진과 전차

 

1986년 백골단의 모습.PNG

1986년 백골단 모습

 

시위대는 가장 후미에 주로 여학생들이 있었고, 앞부분은 남학생들이었다. 그리고 시위대의 앞에서는 ‘주동자’들이 구호를 선창했다. 그 ‘주동자’와 ‘팔랑크스’ 사이에 CC(컴뱃셀, 전투조)들이 화염병과 쇠파이프로 무장하고 버티고 서서 시위대를 보호하고 있었다. 난 무섭고 두려워서 여학생들 쪽에 서서 소심하게 구호를 따라 외치고 있었다. 어색하고 낯설었다. 바로 그때, 빠방! 하고 중장보병들이 무언가를 시위대 쪽으로 발사했다. 

 

난 태어나서 그런 고통을 주는 가스는 처음이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났고, 코에서는 콧물이 흘렀고, 입에서는 침이 삐져나왔다. 따갑고 숨을 쉴 수 없었고 토가 나왔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두 대의 전차 지붕에서 뭔가가 솟아오르더니 ‘바바바방’하고 다연발 로켓이 발사되었다. 일명 ‘지랄탄’, 다연발 최루탄이 발사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팔랑크스 방진이 시위대를 향해 전진했다. 눈물, 콧물, 기침과 함께 나도 학교 쪽으로 도망쳤다. 도망치는 사람의 본능으로 뒤를 보았다. 바로 그때, ‘그 선배’를 보았다.

 

내 인생 두 번째 ‘머틀리 크루’였다. 그 선배는 최루탄 지옥 속에서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팔랑크스 방진에 맞서며, 시위대를 덮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잡히면 ‘죽음’보다 더한 폭력, 구타와 구속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도 말이다.

 

투쟁.PNG

출처-<중앙일보>

 

대충 이런 모습이었다. 나는 ‘운동권’이 되기로 했다. 당시 조중동에서 선동하던, 선배들이 술 사주며 순진한 신입생 꼬셔서 ‘의식화’ 시킨다는 말은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구라’와 ‘조작질’일 뿐이었다. 난 스스로 운동권이 되었다. 불타오르는 정의감으로 전두환 노태우의 ‘파쇼정권 타도’를 위해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운동권이 되기로 한 내 앞에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민족통일’이었고, 또 하나는 ‘노동해방’이었다. 난 후자를 선택했다. 

 

내 인문학적 지식으로는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보수’의 것이었다.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이 진정한 진보의 가치라 생각했다. ‘그 선배’를 찾아갔다. 그 선배 역시 ‘노동해방’의 길을 선택한 입장이었다. 그 선배가 내민 첫 번째 팜플릿은 내 기억으로 대충 ‘한국 학생 운동사’ 이런 제목이었다.

 

419.jpg

4.19 혁명 당시 학생들 

 

그 팜플릿에는 3.1 운동부터 4.19 혁명까지, 항상 한국 사회 변혁의 선봉에는 학생 운동이 있었음을 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왜 그런 것인지를 사회.문화적 세대론적 특징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첫째, 학생이라는 지위는 진실 탐구에 가장 유리한 위치라는 것이었다. 책을 읽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새로운 지식과 선진적인 이론에 그 어떤 직종보다 접근하기 쉬우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가장 적극적이라는 것이었다. 

 

둘째, 학생은 곧 청년이라는 것이었다. 청년이라 함은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고 그것은 기성세대와 달리 가장 ‘정의감’이 충만할 시기라는 것이었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현실과 타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정의’보다는 ‘이익’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셋째, 학생 또는 청년은 ‘부양가족’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성세대와는 달리 선택과 행동의 제약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에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기성세대보다 더 쉽게 뛰어들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모두 동의했다. 그 팜플릿 속에 근거로 제시된 교육학 쪽 논문 인용들도 필요 없었다. 내가 청년이었고 모두 나에게 해당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 증거이다.

 

한국갤럽.PNG

 

중앙일보11.PNG

출처 링크

 

내 평생 이토록 아름다운 그래프를 본 적이 없다. 20, 30 지지율 0%! 민주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여론조사 결과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한국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조중동 조사에서! 이래서 ‘국힘’ 쪽은 ‘높은 청년층 투표율’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회.문화적으로 세대적 특성으로 청년은 진보이다.

 

그런데... 

 

5년의 시간이 흐른 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 (청년은 진보인데, 진보여야 하는데 이대남들의 선택은, 내 기준으로 ‘가짜 보수’였던 것이다)

 

지지율.PNG

 

무려 58.7%라는 일명 ‘이대남’들이 윤석렬을 찍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전에 더 심각한 지표가 있었다. 대선 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이대남 72.5%가 오세훈을 찍었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뇐네’들 보다 더 높은 지지율이 청춘들에게서 나왔다는 것이다. 0% 지지율만큼이나 충격적인 사실이다. 하아...

 

조선일보 오세훈.PNG

출처-<조선일보> 링크

 

도대체 4, 5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가.

 

 

3. 왜 이대남은 2찍을 했을까

 

 이대남의 정보 유통 경로    

 

옷을 하나 사려 해도 정보가 필요하다. 아무리 가벼운 선택일지라도 사람이라면 판단의 근거가 필요한 법이다. 그 정보를 어디서 얻는지, 얻은 정보는 어떻게 유통되는지 궁금했다. 50대인 나와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1찍’과 ‘2찍’의 고백까지도 끌어내려면 가벼운 말로 시작해야 한다는 나의 ‘스킬’도 작용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이대남들은 필요한 정보든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된 정보든 모두 100% 인터넷이 매체였다. 신문, TV와 같은 ‘늙은 매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활자 매체 자체가 없었다. 그리고 얻은 정보들은 자신이 속한 ‘친구 집단’ 내에서 신속하게 공유되었다. 뒤에서 말하겠지만 투표 시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도 ‘친구 집단’ 내의 여론이었다.

 

나 : 정보는 주로 어디서 얻어?

 

이대남 A : 어떤 정보요?

 

나 : 그냥 이것저것. 예를 들어, 투표를 하려면 어떤 선택의 근거 같은 게 필요하잖아.

 

이대남 A : 아, ‘쇼츠’나 ‘페북’ 같은 거?

 

나 : (당황했다) ‘쇼츠’가 뭐지?

 

이대남 A : 걍 유튜브 영상인데 짧은 거요.

 

나 : 아~ 필요한 걸 쇼츠에서 찾아?

 

이대남 A : 아뇨, 찾는 건 아니고 심심해서 암거나 한번 틀면, 그냥 이것저것 랜덤으로 떠요. 그래서 보다 보면 가끔 정치 얘기도 나오고 해요. 그래서 알게 돼요.

 

나 : 커뮤니티를 통해 얻는 건 없어? 예를 들면 ‘펨코’ 같은 거.

 

이대남 A : ‘펨코’만 해도 좀 나이들이 있지 않나? (만 25세다) 뭐 열심히 들락거리는 커뮤니티 같은 건 없구요, 굳이 하나 들자면, ‘디시’나 ‘루리웹’ 정도?

 

나 : 새롭게 알게 된 정보들은 어떻게 해?

 

이대남 A : 친구들하고 얘기해요.

 

같은 질문에 대한 다른 이대남들의 대답이다.

 

이대남 B : 주로 유튜브나 친구들, 네이버 같은 데서 정보를 얻어요. 굳이 하는 커뮤니티는 없구요, 가끔 ‘디시’ 구경해요.

 

이대남 C : 주로 인터넷, ‘nate’도 가끔 들어가요.

 

나 : 네이트가 아직도 있어?

 

이대남 C : 예, 이용자가 적어서 오히려 괜찮아요. 거기서 뉴스 기사들 같은 거 읽어요.

 

나 : 기사들이나 댓글들 보고 생각을 결정하거나, 결정한 것이 바뀌기도 해?

 

이대남 C : 아뇨, 댓글들은 보지도 않아요.

 

나 : 그럼 대선 같은 중요한 투표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뭐지?

 

이대남 C : 뭐, 아무래도 친구들 얘기가 가장 공감도 되고...

 

이대남 C : 자주 가는 커뮤니티는 ‘MLB파크’에요. 야구를 좋아하거든요.

 

이대남 E : 전 여러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는데, 펨코를 가장 자주 이용해요.

 

 

 이대남들의 꿈은 모두 ‘돈’과 관계가 있었다

 

이대남과의 대화 중,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웠고 일종의 죄책감까지 들었던 부분이다. 나와 대화했던 이대남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한 명도 예외 없이 ‘돈’이거나 ‘돈’과 관계된 것들이었다. 

 

내 20대를 생각해보았다. 그때 내 꿈은 ‘혁명’이었고, ‘정의로운 공동체’였다. 난 오히려 20대들보다 더 ‘철없는 아재’였다. 진심으로 모르겠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된 것인지. 그들은 그 나이 시절의 ‘나’나 ‘내 친구’들 보다 정신적으로 어렸다. 말투도 그랬고 행동도 그랬다. 그러나 적어도 ‘돈’ 문제만큼은 그 시절의 ‘우리들’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다.

 

인크루트.jpg

현재 20대 / 출처-인크루트

 

80년대 20대.PNG

80년대의 20대

 

 

나 : 넌 꿈이 뭐야?

 

A : 무슨 꿈이요?

 

나 : 그냥 진짜 꿈, 젊으니까 남은 인생 동안 이루고 싶은 거.

 

A : ‘집’ 사는 거요.

 

나 : 그따위가 꿈이야? (사실 조금 화가 났다. 개인적으로 가장 친분관계가 깊은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A : 그게 왜 꿈이 아니에요? 

 

나 : 너 나이가 있잖아. 앞으로 인생이 많이 남아 있잖아. 그럼 꿈이라고 하면 뭔가 좀 더 큰 거, 예를 들면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든가, 유명해지고 싶다든가, 우리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고 싶다던가...

 

A : 아니요, 전 집을 사는 게 꿈이에요.

 

나 : 집이 그렇게 중요해?

 

A : 결혼 같은 걸 하려 해도 일단 집은 있어야 하니까요.

 

나 : 꼭 결혼이 하고 싶어?

 

A : 그렇진 않지만 그래도 집은 꼭 있어야 해요. 집이 있어야 그나마 돈이라도 모아 뭐라도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잖아요.

 

나 : 집이 있어야 돈이 모여?

 

A : 저야 부모 집에 사니까 문제없지만, 서울서 자취하는 친구들 같은 경우는 일하고 와서 샤워라도 편하게 할 수 있는 정도의 셋방만 얻어도 돈 모으기 힘들 걸요? 월세 주고 나면... 나도 형편만 되면 독립해서 따로 살고 싶은데...

 

B : 취업이요.

 

나 : 지금 일하고 있잖아.

 

B : 아뇨, 돈이 필요하니 그냥 ‘알바’ 개념이에요. 지금보다 돈을 더 벌 수 있는 곳이 나타나면 바로 옮길 거예요.

 

C : 돈을 좀 많이 벌고 싶어요.

 

나 : 그렇게 돈이 필요해? 돈 벌어서 ‘포르쉐’ 같은 것도 사고 그러고 싶어?

 

C : 그런 건 꿈도 안 꿔요.

 

나 : 그런데 그렇게 돈을 벌고 싶어?

 

C : 워낙 경쟁이 치열하잖아요. 계속 지금 상태라면 그냥 하루 세끼 밥 먹는 걸로 만족하고 살아야 할걸요?

 

D : 친구 선배들과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게 잘 됐으면 하는 게 제 꿈이에요.

 

 

 분노할 대상도 이데올로기도 없었다

 

굳이 대화를 소개할 필요도 없다. 1찍, 2찍 모두 나와 대화를 나눈 친구들은 현재 사회에 만족하지 않았고, 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무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했고, 당연히 왜 그런지에 대한 생각들도 불분명했다. 어디에야 화를 내야 할지, 그 대상이 누구인지 자체가 불분명했다. 당연히 ‘이데올로기’도 없었다. 

 

이데올로기는 현실의 문제를 규명해주는 힘이고, 개혁의 과정과 개혁 후 전망을 제시해준다. 그래서 이데올로기가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의지적이다. 나는 젊을 때 ‘무정부주의자’였고, 이후 ‘사회주의자’였으며, 지금은 대략 ‘사회민주주의자’이다. 심지어 고딩 때에도 또래들에게, 

 

“네들이 실존주의를 알아? 무식한 거뜰...” 

 

실존주의.png

 

하고 뽐을 내며 말도 안 되는 치기를 부린 적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대학생이 된 이후, 무엇이든 이데올로기가 없던 때는 없었다. 내가 만난 이대남들은 현실에 불만이 있었지만, 분노할 대상이 누구인지 몰랐으며 자기 인생의 방향타가 될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없었다. 그나마 의미 있었던 대화 하나를 소개한다.

 

A : 전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나 : 왜? 어떤 점에서? 예를 들면 부모의 재력? 태어나보니 아버지가 이건희가 아닌 거?

 

A : 아뇨,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거나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우연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진학이나 취업에서도 계속 부모의 힘이 작용한다는 거요.

 

나 : 그렇구나, 왜 그럴까?

 

A : 우리 사회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 : 구체적으로 어떤 시스템? 그리고 어떻게 고쳐야 할까?

 

A : 거기까지는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민주당을 더 꼰대 정당으로 바라봤다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선입견이라는 것이 있다. 선입견이 정치적으로 작용한다면 어떤 정당에는 마일리지를 줄 것이고, 어떤 정당에게는 패널티를 줄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민주당에게 줄 마일리지는 없다. 그러나 국힘에게는 무지막지한 패널티가 있다. 

 

나에게는 국힘이란 재집권에 성공한 민족반역자들을 뿌리로 두고, 군사쿠데타와 파쇼정치의 후예들로서 현재는 기득권 적폐들의 정치적 결사체이다. 내가 더 늙어서, 아주아주 늙어서 내 뇌세포들이 미쳐서 발광하지 않는 한, 국힘은 아예 고려 대상 자체가 아니다. 그 어떤 선거에서도 투표 대상이 아닌 투표 대상 후보로도 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대남들에게는 두 당이 모두 마일리지의 대상도 패널티의 대상도 아니었다. 그들은 정확히 두 당을 동등한 위치에 놓고 비교할 뿐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앞서 청춘의 세대적 특징을 말한 바 있다. 당연히 지금의 이대남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문제는 놀랍게도 ‘변화’의 이미지는 ‘국힘’이 강했고, 꼰대의 이미지는 오히려 ‘민주당’이 더 강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일등 공신이 ‘30대 남성 당대표의 당선’이었다. 

 

이준석.jpg

 

‘무선중진’이라 비웃는 이준석의 국힘 당대표 당선은 생각보다 강한 이미지를 주었다. 물론 페미니즘(정확히는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도 크게 작용했다.

 

이대남들과의 대화에서 느낀 것은 그들이 ‘이미지즘’의 세대라는 것이었다. 활자는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아 있다는 뜻이다. 세심한 관찰과 정보 습득, 그리고 진정성 있는 사색의 결과로 선택하지 않는다. 순간 스쳐 지나간 이미지들이 선택의 근거들이었다. ‘비판적 사고’보다는 ‘즉자적 감상’이 훨씬 더 발달한 친구들이었다. 오해할까봐 말하는데, 이건 칭찬도 아니고 욕도 아니다. 이대남과 50대인 나의 사고 체계가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다. ‘틀리다’ 말고 ‘다르다’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30대 당대표, 이주민,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이 나온 게 보수정당이다.”

 

‘K를 생각한다’라는 저서로 화제를 모은,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는 이대남, 임명묵 씨의 한국일보 인터뷰 중 한 문장이다. 적어도 이대남들에게 있어서는 맞는 말이었다.

 

임영묵.PNG

임명묵 씨

출처-<한국일보> 링크

 

나 : 1번을 찍은 건 민주당이 더 괜찮았기 때문이야?

 

1찍 A : 아니요. 민주당이나 국힘이나 고만고만했어요.

 

나 :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른데, 왜 그렇게 생각하지?

 

1찍 A : 민주당이 뭘 했죠?

 

나 : 적어도 ‘국힘’보다는 덜 부패하지 않았나? 의원들 자질도 국힘보다는 괜찮고.

 

1찍 A : 부패요? 그냥 다들 ‘내로남불’ 아닌가요?

 

1찍 B : 그냥 허튼 데 돈 쓰는 거 같아요.

 

나 : 예를 들면?

 

1찍 B : 뭐 ‘여성전용주차장’이니 이런 거 다 쓸데없는 돈 낭비 아닌가요? 적어도 우리는 단순히 성별이 여성이라서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 공정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범죄 예방 목적이라는 말도 있던데, 그게 정말 효능이 있는지 배려해야하는 남자들한테 설명도 잘 안 되는 것 같고... 

 

2찍 A : 갑자기 왜 (래디컬) 페미니즘이 유행처럼 됐을까요?

 

나 : 상실감 느끼니?

 

2찍 A : 예, 윗세대는 몰라도 우리 세대는 남자라고 우대받고, 여자라고 차별받는 것도 없는데, 왜 윗세대 여성들이 차별받았던 것에 대한 반작용을 차별 없이 자란 우리 세대 여성한테 그대로 적용하냐는 거예요. 정치인이나 언론은 윗세대 여성이 차별받았던 걸 전 세대 여성에 뭉뚱그려 적용하며 말하고... 우리는 군대까지 갔다 와도 뭐 대우는 커녕, 그냥 다 여성 배려만 있잖아요. 공정하지 않아요. 좀 억울해요.

 

(일정부분 동의했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 어느 날 갑자기 2년간 군대에 끌려가야 한다는 것은 정말로 끔찍한 것이다. 나는 비만에 아버지도 끼지 않는 안경을 쓴 내 아들의 군입대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 아들 카톡 프사에는 ‘이거 꿈이 아닐까’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참으로 눈물 없는 사람이지만 고성에서 아들을 입대시키고 돌아올 때 계속 울음이 나왔다. 중간중간 운전을 멈춰야 했다)

 

군입대.jpg

출처-<중앙일보>

 

나 : 그래서 2찍을 한 거야?

 

2찍 A : 그래도 국힘은 우리 불만에 반응이라도 하잖아요. 30대인 이준석이 당대표에 당선된 건 대단한 거 아닌가요?

  

 

 이재명과 윤석렬의 리스크가 대등했고, ‘공정’은 매력적이었다

 

‘늙은 언론’은 ‘좀비’였다. 이대남 그 누구도 신문이나 TV 뉴스를 보지 않았지만, 언론이란 것들은 여전히 영향력이 살아 있었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포털에 뉴스를 공급해 클릭질을 유도하고 있고, 그런 것들이 실제로 이대남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언론을 통해 공급된 내용(사실이든 추측이든 선동이든)을 믿고 있었고, 따라서 이재명과 윤석렬을 비슷한 생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재명의 가장 큰 매력은 ‘능력’이었고, 놀랍게도 윤석렬은 ‘공정’이었다.

 

이재명 윤석열.jpg

출처-<연합뉴스>

 

나 : 1번을 찍은 이유가 뭐지?

 

1찍 A : 이재명이 더 일을 잘할 거라 생각했어요.

 

나 : 그것 말고 다른 이유는 없었어? 예를 들면 부패 문제라든가, 친인척 스캔들 같은 거. 

 

1찍 A : 그건 둘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나 : 이재명에 관한 여러 스캔들이 사실이라고 생각해?

 

1찍 A : 예, 인터넷에서 많이 보잖아요.

 

나 : 내용 자세히 확인하고 사실관계 파악해 봤어?

 

1찍 A : 그러지는 않았지만, 뭐 다들 알고 있잖아요.

 

나 : 네 친구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니?

 

1찍 A : 예

 

나 : 이재명을 찍은 이유가 뭐야?

 

1찍 B : 뭐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나 : 특별한 이유 없이 대선 투표를 했어? 이재명이 더 일을 잘한다거나 더 정의롭다거나 그

런 거 없었어?

 

1찍 B : 예, 둘 다 맘에 들지 않았어요.

 

나 : 그런데 왜 투표를 하고 이재명을 찍었어?

 

1찍 B :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왠지 윤석렬은 대통령이 되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나 : 왜 윤석렬을 찍었지?

 

2찍 A : ‘공정’이 마음에 들었어요.

 

나 : 윤석렬이 공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2찍 A : 예.

 

나 : 난 정반대야. 그 사람이야말로 검찰 권력을 사적인 목적으로 사용, 남용한 사람 아닌가?

 

2찍 A :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 윤석렬이 박해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이 부당하게 박해받았고, 검사 출신이고 하니 다른 건 몰라도 공정은 할 거라고 생각해요.

 

나 : 윤석렬이 박해를 받아? 누구한테?

 

2찍 A : 법무부 장관들한테요.

 

나 : 같이 어울리는 네 친구들도 같은 생각이니?

 

2찍 A : 예, 다들 비슷한 생각들이에요.

 

나 : 정의당을 찍은 이유가 뭐야? 당원이야?

 

심찍 A : 당원은 아니지만, 가끔 정의당을 찍어요.

 

나 : 왜지? 정의당의 주장이나 활동이 마음에 들었어?

 

심찍 A :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정의당마저 사라지면 딱 두 개만 남잖아요. 전 그게 더 큰 문제라 생각해요.

 

나 : 아, 그럼 민주 국힘 양당체제가 싫어서 정의당을 찍은 거야?

 

심찍 A : 예.

 

나 : 만약 이재명과 윤석렬을 비교한다면 누가 더 매력적이야?

 

심찍 A : 그냥 둘 다 그래요.

 

나 : 혹시 이번 대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 있어?

 

심찍 A : ‘공정’이요.

 

 

⑥ ‘2찍’에 대해 대부분 후회하거나 자신이 없었다

 

내 마지막 질문은 2찍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자신의 선택에 대해 만족하냐고 물었고, 만약 다시 대선이 펼쳐진다면 같은 선택을 하겠냐고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침묵이었고, 다른 하나는 후회였다. 후회의 이유는 자기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무능(일을 못한다)하다는 것이었다.

 

 

4. 이대남과 대화하며 느낀, 한국 사회의 두 가지 특징

 

이대남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이 글을 쓰며 두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첫째, 한국 사회가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했다는 것이다. 나는 2002년을 잊지 못한다. ‘축빠’인 나에게 2002년은 참으로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행복했던 건 ‘노대인’께서 대통령에 당선되신 거였다. 

 

중앙일보 노무현 사진1111.PNG

출처-<동아일보>

 

난 우리 사회가 여전히 봉건적 사고의 찌꺼기들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생각했다. 왜 지하철 자리는 노인이 차지해야 하지? 노인 중에서도 팔팔한 사람도 있을 건데, 무조건 노인이 아니라 약자가 앉아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가? 왜 우리는 여전히 ‘관혼상제’에 그토록 집착하지? 성대한 결혼식과 장례식,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에 ‘허락’이라는 단어가 개입하는 거지? 왜 능력이 아니고 ‘혈연, 지연, 학연’이 인생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거지? 등의 불만을 품은 의문들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졸’ 출신인 분이, ‘조중동’을 공식적으로 반대하신 분이 한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신 것이다. 그 순간 난 확신했다. 한국이야말로 가장 ‘역동적’인 사회라고, 곧 한국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내가 ‘일본이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일본이 ‘늙은 사회’였기 때문이다. 변화의 가능성과 에너지, 즉 활력이 없는 사회라 생각했다. 나는 현재의 GDP보다 변화의 에너지가 미래를 결정하는 요소라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노대인’의 당선이 그리도 기뻤다.

 

당선 소감 말하는 노무현 대통령.JPG

 

그런데 어느덧 우리 사회도 ‘늙은 사회’가 되어 버렸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기회가 넘치는 개발도상국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세계 질서 속에 편입되고 싶어 문을 두드리는 손님이 아니었다. 안방을 차지한 주인마님이었다. 새로운 신분제 사회였다. 이것이 이대남들의 꿈이 ‘돈’과 관계있는 것들로 채워진 이유라고, 나는 이해했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이었던 것은 ‘활자의 죽음’이었다. 이제 ‘디지털’이 아니거나, ‘디지털화’되지 못하는 것들은 곧 멸망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진심으로 한자를 쓰는 중국인들의 키보드가 궁금했으며 다시 한번 세종대왕님께 감사했다). 

 

‘엄마, 아빠’를 배우는 것과 동시에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자란 세대들이었다. 활자를 밀어낸 자리는 디지털화된 ‘이미지’가 차지하고 있었다. 가히 ‘이미지즘’의 시대가 되었으며 ‘탈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둘째는 ‘한국 정치의 비극’이었다. 한국 정치의 비극은 심각한 우편향 때문에, 정치와 정의에 대한 개념의 혼란되고 왜곡되었다. 그리고 이런 왜곡이 지배적 생각이 되었다. 해방 직후의 분단과 참혹한 내전, 그리고 민족 반역행위에 대해 수구 언론들이 끊임없이 왜곡된 이데올로기 생산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용서받았다고 반성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이용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새로운 권력을 위해 끊임없이 이데올로기를 생산해낸다. 이것이 바로 ‘혹세무민’이고, 프랑스가 나치부역자들 중 지식인들을 가중 처벌한 이유다)

 

그래서 ‘보수’가 아닌 세력이 ‘보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진보’가 아닌 세력이 ‘진보’의 역할을 주문받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민주당은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억울할지도 모른다. 내 개인 생각이다. 

 

‘국힘’이 ‘보수’가 아닌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난 내가 읽은 그 어떤 책에서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보수 중 ‘민족과 국익’이 없는 보수를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민주당’도 ‘진보’가 아니다. 내 관점에서 보면 ‘민주당’은 근수 잘 쳐서 달아봐도 ‘리버럴’ 정도가 최대치이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최초로 ‘진보’와 ‘보수’라는 워딩을 도입하여 한국 정치 지형의 모든 것을 둘로 갈라 ‘면죄부’과 ‘과한 역할’을 선사한 먹물에게 진심으로 찬사를 보낸다. 그는 천재다. 한국의 ‘괴벨스’다. 왜곡된 정치 지형은 유권자에게 왜곡된 정치적 선택을 하게 한다. 

 

 

5. 이대남은 진보다

 

생각보다 긴 글이 되어버렸다. 정리를 해야겠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여러 이대남과 깊은 대화를 해보며 느낀 건, 여전히 ‘이대남은 진보다’는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변화된 사회구조와 왜곡된 정치 지형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당연히도 청춘의 특징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변화와 진보 추구’라는 특징 말이다.

 

캡처.PNG

 

그래서 2찍을 한 이대남 역시 진보이다. 그들도 앞서 말한 ‘변화와 진보’라는 젊은 세대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단지 그들의 욕구를 제대로 담아낼 정당이 없었을 뿐이다. 민주당은 그들에게 ‘변화와 진보’를 보여주지 못했다. 여기에 급격한 사회변화, 즉 활자에서 이미지로 바뀐 시대에 민주당은 이미지를 생산할 도구, 언론, 여론조사기관, 유튜버 등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왜곡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청춘은 진보이다. 이대남은 청춘이다. 그래서 이대남은 진보이다. 그들은 노인들이 아니다. 그들은 생각을 바꿀 수 있다. 그들은 쉽게 돌아온다. TK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윗글에서 보듯 젊은이들의 선택에는 주변 친구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TK 이십대라고 해서 노인들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환경에 영향을 받았을 뿐이다. 즉 ‘사회적 유전(meme)’의 결과일 뿐이다. 보고 듣고 하는 것들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인 것이지 그들도 청춘이다.

 

본질은 하나지만 현상은 여러 개다. 현상은 본질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때로는 본질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대남의 57%가 2찍을 한 것이 바로 그 예이다. 진짜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민주당을 좀 더 잡탕으로 만들어야 한다. 민주당의 ‘리버럴’에 ‘진보’를 섞어야 한다. 민주당이 그들의 에너지와 욕구를 담아낼 그릇이 된다면, 그러면 이대남은 돌아온다. 당연히 그렇게 된다. 여전히 이대남은 진보이기 때문이다.

 

 

Profi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