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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9월 17일. 마켓 가든 작전(Operation Market Garden)이 시작된다. 연합군 제1공수군 산하 영국군 제1공수사단, 미군 제 82, 101 공수사단 병력 1만 9천여 명이 네덜란드로 골고루 뿌려진다(101 공수사단이 네덜란드 에인트호반으로 떨어진 건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잘 표현돼 있다. 최악은 아른헴 지역에 투하된 영국군 제1공수사단이다. 이들은 가장 깊숙한 아른헴에 떨어진다. 몽고메리는 가장 힘들지만, 전공을 세울 수 있는 지역에 영국군을 집어넣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장대한 전쟁계획이라 볼 수 있는데, 연합군이 애써 무시한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탱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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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른헴에 낙하한 연합군 공수부대 진압에 나선 독일 9기갑 연대

 

장군을 용서하소서

 

이 당시 네덜란드 지역엔 독일군 탱크가 있었다. 팔레즈 포위망을 탈출했던 SS 제9기갑 사단은 재정비를 위해 장비를 SS 10기갑 사단에 넘기고 후방으로 간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동부전선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었다.

 

결정적으로 이 당시 B집단군 사령관은 ‘방어의 사자’ 혹은 ‘총통의 소방수’라 불리며, 방어전 전문가로 명성을 떨친(상황이 그래서 방어전을 주로 해서 그렇지, 전체적으로 최고의 독일군 지휘관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었다) 발터 모델 원수가 아른헴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기갑 병력을 아른헴 방면으로 주둔시킨 후였다.

 

이런 상황에서 공수부대가 하늘에서 떨어진 거였다. 이후의 상황은 영화 <머나먼 다리>에 잘 표현돼 있었다. 공수부대들이 포위돼 탱크의 밥이 된 거다. 다리를 지켜냈지만, 영국군 기갑부대들은 독일군의 대전차포에 의해 발이 묶였고, 공수부대들이 용전분투했지만, 공수부대란 한계 때문에 독일군에게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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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른헴에 낙하한 영국 공수부대를 겨냥하는 독일군

 

연합군 사령부는 공수부대를 구원하겠다고(영국 공수부대를), 폴란드 제1공수여단을 투입하게 된다(부실채권을 막아보겠다고 계속해 돈을 집어넣는 형국이었다). 이때 폴란드 제1공수여단 여단장이었던 스타니슬라브 소사보우스키(Stanisław Franciszek Sosabowski) 소장의 말이 압권이었는데,

 

“신이여, 몽고메리 장군을 용서하소서.”

 

마켓 작전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영국군은 네덜란드 쪽 정보를 모으기 위해 레지스탕스와 항공정찰을 통해 수많은 기초자료들을 모았다. 이미 이때 ‘독일군 탱크’를 확인했음에도 작전을 강행했던 거다. 몽고메리의 공명심이 만든 비극이었다. 결국 폴란드 제1공수여단도 녹아내린다(영국군 제1공수사단이 녹아버린 건 이미 그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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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머나먼 다리’를 보면, 이 당시 상황을 잘 묘사해 주고 있다. 숀 코네리, 로버트 레드포드, 라이언 오닐 등등 쟁쟁한 배우들이 등장하는 영화다. 보지 못 한 분이 있다면, 꼭 한 번 찾아서 시청하길 추천한다.

 

탱크가 뭉갠, 연합군의 꽃그림

 

자, 문제는 이 작전 때문에 ‘빵’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견 비상식적인 작전. 바로 ‘차우하운드(chowhound : 대식가, 먹보) 작전’이 시작됐다는 거다(차우하운드 작전은 미군의 작전명이었고, 영국군은 좀 더 고상하게 ‘만나Manna’ 작전이라고 명명했다. 성경에 나오는 그 ‘만나’가 맞다).

 

이야기를 다시 <밴드 오브 브라더스> 4화 보충병(Replacements) 편으로 돌려 보자. 이지 중대가 잔뜩 긴장해 네덜란드 땅으로 낙하했는데, 갑자기 오렌지 물결이 넘실대고, 네덜란드 사람들이 달려와 이지 중대를 환영한다. 레지스탕스들이 달려와 정보를 알려주고, 너 나 할 거 없이 환영 일색이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해방자 미군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독일의 압제로부터 네덜란드가 해방됐다!”

 

등등의 고색창연한 선전이 아니라 그 이면을 들여다보자는 거다. 우리나라 3.1 운동을 생각해 보자. 단순히 독립운동 지도부가 독립선언을 하고, 태극기를 나눠주니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만세를 부른 걸까? 아니다. 사전에 치밀하게 조직했고, 계획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네덜란드도 마찬가지였다.

 

마켓 가든 작전이 처음 입안 됐을 때부터 영국에 있던 네덜란드 망명 정부는 이 작전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우리나라를 해방시키겠다구요?”

 

“뭐, 싫음 말구요.”

 

“아,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죠! 저희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뭐든 말만 하십시오!”

 

“우선 네덜란드쪽 정보가 필요하구요...”

 

“당장 네덜란드 쪽 레지스탕스와 연결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아무래도 공수부대다 보니... 보급이 좀 어렵겠죠?”

 

“아... 저희들이 영국군을 보급시킬만한 능력이...”

 

“아, 오해하셨나 본데 저희들 보급은 저희들이 알아서 합니다.”

 

“아, 네 그러셔야죠. 그럼 뭘...”

 

“저희가 힘든 만큼 독일군도 힘들었으면 해서요.”

 

“독일군이요?”

 

“독일군 보급을 어렵게 하면, 작전의 성공률이 올라갑니다.”

 

“아...”

 

“네덜란드의 철도를 멈추게 해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네덜란드 망명정부는 운송의 핵심이었던 ‘철도망’을 정지시키기로 결심한다. 그 즉시, 네덜란드 본토에 있는 레지스탕스와 철도 노동자들과 접촉한다.

 

“이 한 번의 작전으로 네덜란드는 해방됩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이렇게 네덜란드 철도 노동자들을 설득한 망명 정부(실제로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 전쟁은 거의 끝나가는 분위기였고, 그동안 독일이 했던 ‘짓’을 기억하고 있었던 네덜란드 철도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아니, 적극적으로 이 계획에 찬성했다)는 연합군이 원하는 ‘수송망 마비’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작전이 시작되자마자 네덜란드의 철도 노동자들은 일제히 파업했다. 단순한 파업이 아니었다. 독일군들이 총칼로 위협해 현장으로 끌고 갈 걸 대비해 네덜란드 철도 노동자들은 그길로 지하로 숨어들었다. 열차를 움직이고 싶어도 사람이 없던 거였다.

 

“이것들 다 어디 갔어? 당장 열차를 움직여야 하는데... 하필 왜 이때 파업을 하는 거야?”

 

“뭔가 냄새가 납니다.”

 

“냄새?”

 

“파업이라면, 다들 뭉쳐서 시위를 해야 하는데 아예 코빼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연합군이 개입돼 있습니다.”

 

네덜란드 철도 노동자의 90%가 장비를 내려놓고 사라진 거다. 당연히 철도망은 마비됐고, 독일의 군사물자 수송에는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레지스탕스들이 철도망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다 보니 독일군의 탄약과 보급품 수송이 마비돼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하늘에선 ‘하얀 장미’가 쏟아져 내렸고, 네덜란드 국민들은 미군과 영국군 공수부대들에게 열렬한 키스를 날렸다.

 

여기까지는 ‘꽃그림’이었다. 몽고메리도, 연합군 사령부도, 영국에 있던 네덜란드 망명정부도, 네덜란드 국민들도... 독일군을 네덜란드에서 쫓아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네덜란드에는 독일 탱크가 있었고, 진격해 오던 30군단의 탱크들은 독일군 매복에 번번이 발이 묶여야 했다. 결국 마켓 가든 작전은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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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가든 작전 당시, 네덜란드 아른헴 시가지의 독일군

 

연합군은 네덜란드를 해방시키지 못했다. 아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네덜란드는 독일 점령지로 남아 있었다. 소련이 베를린을 점령하면서 독일이 패망한 걸 보면서, 독일군이 베를린에 모든 병력을 남겨 놓고, 최후의 전투를 벌이고, 패배해서 패망한 이미지가 있는데, 당시 서부전선에서 싸우던 영국과 미국은 독일군의 분전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네덜란드만 하더라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었기에 어떻게 손써볼 뭔가가 없었다. 히틀러가 죽고, 되니츠가 총통이 돼 연합국과 협상을 할 때 연합국이 화내며 소리쳤던 게,

 

“여기서 찔끔, 저기서 찔끔 항복하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다 항복하는 게 아니라면 항복 협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

 

였다. 독일이 패망하긴 했지만, 독일군은 아직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