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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만화 가게에서 만화를 보다 한글을 깨쳤다. '국민학교' 2학년 초, 그날도 동네 자주 가는 단골 만화 가게에서 주인아저씨에게 10원을 내고(그런 시절이 있었다...! 믿지 못하시겠지만...!) 만화에 푹 빠져서 보았다. 10원에 일곱 권을 볼 수 있는 제한이 있던 터라, 나는 만화를 많이 보고 싶어서 최대한 빨리 페이지를 넘겼다. 주인 아저씨의 눈을 속이며 한 권이라도 더 보려고 책장을 빨리 넘기던 어느 순간, 문득 눈앞이 환해지면서 만화 속 활자가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듯 내게 달려드는 경험을 했다.

 

지금은 어린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이미 한글을 다 깨치고 들어가서 학교에서는 따로 한글을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는다고 하던데, 내가 '국민학교' 입학할 때만 해도 거의 모두 한글을 모르는 상태였다.

 

나에게 학교는 육성회비를 가져오라고 수업 시간에 집으로 돌려보내는, 가난의 비참함을 확인하는 장소였다. 진짜 공부를 한 곳은 만화 가게였다. 나는 고우영·김민·신문수·이근철·김기백·백산·손의성·길창덕·박기정·이우정·이향원·박기준·임창·김수정·허영만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만화가의 작품을 읽으며 상상의 세계를 확장했다. 만화 가게는 가난한 어린 시절에 유일하게 즐거움을 누리는 장소였다.

 

그때 만화 가게의 풍경을 묘사한 '서울신문'의 보도를 인용하면 이렇다.

 

"3평짜리 좁은 방 안, 희미한 형광등, 탁한 공기, 그 속에 20여 명의 어린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한 권에 5원짜리 만화들을 본다. 마음껏 뛰어놀 것이 없는 도심지 아이들에겐 이 5원짜리 만화 가게가 꿈을 기르는 오락 장소. 그러나 이 어린이들이 보는 만화는 거의 건전한 꿈을 길러주기보다는 허황되고 모험심만 자극하는 것들이다."

 

어린이들에게 중요한 오락이자 문화생활이었던 만화가 '불량, 저질만화'라는 딱지가 붙어 길거리에서 불태워지기도 했다. 60·70년대 만화는 한국 작가들의 노력도 대단했지만, 한편에서는 일본 만화의 무단 복제와 수준 낮은 만화가들의 자기 복제로 만화 시장이 왜곡·오염되어 앞서 얘기한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하였다. 

 

이 무렵, 어린이 잡지가 여러 종류 등장하면서 잡지부록으로 만화책이 들어 있었다. 어린이 잡지에도 만화가 여러 편 실렸다. <새소년>·<어깨동무>·<소년중앙>·<보물섬>등은 어린이들의 문화, 교양 함양에 큰 몫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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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신문>

 

2.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가난한 부모 밑에서 어쩔 수 없이 소년 노동자가 되었다. 먹고 살려고 하루 열두시간 일하고, 출퇴근에 네 시간이 걸리는 길을 버스 타고 다녔다. 새벽에 일어날 때마다 베갯잇에 코피가 흠뻑 젖었고, 더 이상 만화를 보는 건 사치스러운 일이 되었다.

 

다시 만화(책)를 가까이 할 수 있게 된 건 마흔 살이 넘어 중년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 사이, 그러니까 약 30년 세월 동안 나는 건축 공사장에서 일했고, 독서회 모임에 가입했으며, 검정고시를 봤고,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쳤으며, 공장에서 일했다. 잡지사에서 일하다 여기저기 잡지에 원고를 쓰는 '프리랜서'로 일했고, 컴퓨터를 독학으로 배웠으며, 컴퓨터 책을 십여 권 썼고, 소설을 써서 상을 받았으며, 결혼해서 중동 신도시에 아파트를 마련했고, 아이가 태어났고, IT업체에서 일했으며, 도시에서 시골로 이주했다.

 

30여 년 동안 만화를 완전히 끊은 건 아니었지만, 만화보다 이런저런 책을 더 많이 읽었다. 책만큼 영화도 많이 봤다. 책과 영화는 나에게 '취미'보다는 좀 더 진지한 대상이었다. 내가 읽는 책, 내가 보는 영화는 편협하고 편향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좋게 말하면 '개성'이지만, 좋아하는 분야·장르가 뚜렷해서 다른 분야·장르는 쳐다보지 않았다. 스스로 편협한 세계에 갇혔으되, 그걸 즐기는 마음을 가졌다.

 

만화도 마찬가지였다. 마흔 살이 넘어 우연히 다시 만화를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난 만화는 30년 전의 만화와 사뭇 달랐다. 비주류였으며,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만화들이었다. 나의 편협함이 만화에서도 드러난 것이다(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작가와 싫어하는 작가를 뚜렷이 구분했는데 그때는 그 둘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 자신조차 몰랐다. 막연히 그림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야기가 재미없어서 같은 이유를 들어 봤다. 그게 '미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걸 시간이 흘러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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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3.

어느 나라나 주류 문화와 비주류 문화가 있다. 만화에서도 주류는 대중성·상업성을 앞세운 만화다. 사회가 요구하는, 대중이 바라는 정서를 잘 반영해서 창작하는 작가들이 '잘 팔리는' 현실은 당연하다.

 

주류와 비주류가 애초에 따로 존재하는 건 아니다. 대중성과 상업성도 독자나 작가가 결정하는 게 아니므로, 모든 창작물은 비주류에서 시작해 주류가 된다. 주류와 비주류는 변증법적인 상호 갈등·보완 관계에 놓인다. 단적인 예로, 김은성 작가의 '내 어머니 이야기'가 독립만화 잡지에 처음 실렸을 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공중파 텔레비전의 유명한 프로그램(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가 소개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주류 만화는 많은 대중이 좋아하고, 선택한 작품을 말한다. 만화를 바탕으로 영화·드라마 등으로 제작되어 이야기와 서사의 힘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주류 만화는 대기업이 만든 플랫폼 안에 들어가 대중에게 쉽게 노출되어 많은 매출을 일으키는 작품들이다. '주류 만화'의 특징은 '대중성'에 있으며, 이는 곧 '상품성'과 연결된다. 

 

주류 만화에서도 높은 예술성과 상품성을 동시에 획득한 작품이 적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독립만화·대안 만화·언더그라운드만화가 가진 무차별적이고 제한 없는 상상력과 자유로움을 따라오지는 못한다. 나는 그런 무제한의 상상력과 자유로움이 있는 독립만화·대안 만화·언더그라운드만화의 물줄기를 만났다. 그 길이 내가 찾던 길이라는 걸 알았다. 그동안 만화를 거의 읽지 않았지만 크게 아쉽지 않았던 것이, 내가 찾던 만화가 없었기 때문이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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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국의 '만화 산업'은 이제 세계로 뻗어나가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K-팝·K-뷰티·K-푸드·K-무비·K-드라마... 한국 문화가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지금이다. BTS, 영화 <기생충>·<미나리>·<헤어질 결심>, 드라마 <킹덤>·><오징어 게임>·<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한국 콘텐츠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퍼져나가고 있다.

 

만화와 웹툰이 빠질 수 있을까. 한국 만화·웹툰 시장도 이미 세계 시장에서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있다. 2020년 통계로 한국 웹툰은 매출 1조 원이 넘었다. 세계 웹툰 시장 전체 매출이 약 7조 원 정도로 추산한다. 이 가운데 약 20%를 한국 웹툰이 차지한다.

 

웹툰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콘텐츠이면서 다른 분야인 영화·드라마의 소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 가치가 높다. 웹툰은 10대·20대·30대가 약 64% 비율을 점유한다. 이들은 웹툰 소비자임과 동시에 생산자이기도 하다. 만화·웹툰의 생산·소비자 99%는 주류 문화 속에서 주류 문화를 향유한다.

 

세계 속의 K-웹툰으로 뻗어나가는 상황에서 나는 1%의 비주류 만화에 주목한다. 그 비주류 만화를 'K-그래픽 노블'로 정의한다. 다음 연재부터는 국내외 주류 만화는 거론하거나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래픽 노블'만 이야기해도 공간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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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카카오페이지>

 

5.

몇 년 전, 미국 여행할 때, 가는 곳마다 서점에 들러 '그래픽 노블'을 일부러 찾아봤다. 하버드대학교 서점·시카고의 반즈앤노블·오하이오주의 반즈앤노블·하와이의 서점 등 시간이 조금 날 때마다 서점에 들러 그래픽 노블이 있는 책장을 찾았다. 미국은 DC코믹스와 마블코믹스가 만화 시장을 서로 차지하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 이 두 초대형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만화는 거의 모두 슈퍼히어로 만화들이다.

 

미국에서도 비주류 만화는 1%도 안 되는 극소수 독자가 있으며, 중소출판사에서 출판한다. 2019년 자료를 보면, 미국의 '그래픽 노블'은 베스트셀러라 해도 한 달 판매가 1천 권에서 5천 권 사이다. 1만 권이 채 안 된다. 이건 대형 출판사의 슈퍼히어로 코믹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일본 만화가 미국에서는 잘 팔린다.

 

유럽 만화 시장은 미국보다 크며 작품 다양성도 훌륭하다. 유럽만화는 미국만화처럼 슈퍼히어로가 등장하지 않는다. '(비영웅) 그래픽 노블'에 가까운 만화들이 인기가 있었다. 다만 최근에는 유럽 만화시장에도 미국의 슈퍼히어로 만화가 수입되면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세계 어느 나라든, '그래픽 노블' 작가는 극소수다. 이들은 비주류에 속하지만, 정작 그래픽 노블 작가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시장의 눈치를 볼 필요도, 이유도 없다. (물론, 먹고 살아야 하니 전혀 고고하게 '독립'할 수는 없지만) 대중과 타협하기보다 작가 자신의 창작에 보다 깊이 몰두하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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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시공사 블로그>

 

6.

'그래픽 노블'이란, 한마디로 '작가주의 만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만화 이론가 백란이는 책 <그래픽 노블>에서

 

"일반적으로 그래픽 노블과 대중만화의 차이는 그래픽 노블이 좀 더 성인 독자를 겨냥한 철학적이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예술적 품격을 드러내는 복잡한 이야기 구조와 작가마다 정형화를 탈피한 개성 있는 화풍을 갖고 있다. 그래픽 노블은 미국, 프랑스, 일본, 한국 위키피디아의 정의를 빌리자면, 미국과 유럽의 작가주의 만화를 칭하는 용어로 쓰여 왔다."

 

고 설명한다.

 

만화의 역사에서 '그래픽 노블'의 발달은 짧은 시간에 속한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1970년대 중반부터 '그래픽 노블'이 탄생하고 성장했다. 한국 그래픽 노블은 1980년대를 태동기로 본다. '그래픽 노블'의 탄생은 그 나라의 사회·역사 배경과 깊이 관련이 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68혁명'이 일어나면서 민주주의·평등·인권·자유에 관한 개념이 확고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미국 역시 1968년부터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나면서 반전 운동이 미국 사회의 흐름을 바꾸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노동운동과 민중문화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노동 만화를 시작으로 사회 비판을 다룬 만화가 나타났다. 86, 87 노동자 대투쟁 시기를 거치며 주류 만화와는 다른 '작가주의' 만화가 탄생하는 뿌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 한국에서 팔리고 있는 국내외 그래픽 노블 작가는 만화계의 소수자에 해당한다.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역량과 성과는 빼어나다. 간략하게 성과를 살펴보면 그래픽 노블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선정한 2021년 우수만화 50선을 보면, 내 기준으로 '그래픽 노블'에 해당하는 작품이 열일곱 편이다. 그래픽 노블이 무려 34%를 차지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런 성과를 보이는 이유는, 그래픽 노블 작품이 주류 문화가 바라보지 않는 영역과 세계를 그리기 때문이다.

 

7.

한국에 번역·출판된 외국 그래픽 노블 작품은 대부분 원작자의 나라에서 흥행에 성공하였거나 크고 작은 상을 받은 것들이다. 외국 작품들은 일정 수준을 담보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래픽 노블을 출판하는 국내 출판사에서는 작품성과 함께 흥행에 성공할 만한 작품을 계약한다. 한국에서 번역·출판하지 못한 작품들은 인세를 포함하여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거나, 물리적 한계로 출판 계약을 맺지 못한 작품들인데, 이들 가운데 훌륭한 작품들이 많다. 한국의 여러 출판사가 외국의 그래픽 노블 작품을 많이 수입하고 있어도, 절대 기준으로 보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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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원작 그래픽 노블과 영화 <설국열차>

출처-<알라딘·영화 '설국열차'>

 

한국 독자들은 한국의 그래픽 노블 작가들을 좀 띄엄띄엄 보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착각, 오해하는 거라면 좋겠다. 지금까지 본 작품을 바탕으로 봤을 때 세계 여러 나라의 그래픽 노블 작가들 가운데, 한국 작가들 수준이 단연코 최고 수준이다. 자뻑이나 국뽕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래픽 노블의 정의에 따라 '작가주의 만화'가 지니는 작품성·예술성·역사성·사회성 등을 모두 고려했을 때,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 2015년부터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다양성 만화'를 공모를 통해 발굴하고 있다. '다양성 만화'는 1980년대 후반 이후 활동하고 있는 '대안 만화', '독립만화' 작가들이 '대중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뛰어난 작가와 작품이 꽤 많이 발굴되었다.

 

나는 한국의 그래픽 노블을 'K-그래픽 노블'이라고 이름 붙이고,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살펴볼 생각이다. 외국 작가들 작품-한국에 번역 출판된 작품-도 훌륭한 작품이 많지만,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해 출판했을 때, 외국에서 보이는 반응을 살펴보는 것도 객관적 지표가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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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선 작가의‘해녀(Diver)’그래픽노블 원화 전시회 자료

출처-<제주관광신문>

 

8.

'그래픽 노블'의 시작은 1976년 조르주 메츠거의 작품 <시간을 넘어 다시 한번>부터다. 1978년 결정적으로 윌 아이스너가 <신과의 계약관 다른 주택 이야기>를 발표하며 표지에 '그래픽 노블'이란 말을 썼다. 윌 아이스너가 자기 작품을 '코믹스'로만 여기지 말고 보다 진지한 작품이라는 걸 강조하는 뜻으로 '그래픽 노블'이라고 쓴 의도를 보면, '그래픽 노블'의 의미가 '작가주의 작품'임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서점에서 '그래픽 노블'로 분류하는 작품들에는 미국 대형출판사 <DC코믹스>·<마블코믹스>에서 출판하는 슈퍼히어로 작품들이 있는데, 내 기준으로 이 작품들은 '그래픽 노블'이 아니다(나의 편현한 기준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 드린다). 따라서 앞으로 언급할 작가와 작품에서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작품은 모두 배제하고, 그래픽 노블의 범주에 넣지 않는다.

 

'그래픽 노블'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비영웅(non-hero)' 개념이다. 이 개념은 '반영웅(anti-hero)' 개념과 다르다. '반영웅'은 주인공이 영웅 또는 초인(슈퍼히어로)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개념으로, 신화적 상상력을 제거하는 개념이다. '비영웅'은 처음부터 '영웅' 또는 '초인'의 개념을 상정하지 않음으로써, 주인공이 놓여 있는 현실(리얼리티)를 온전하게 인정한다.

 

다음 연재부터는 '그래픽 노블' 작품을 작가와 함께 소개하고, 작가의 작품 세계와 작품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 글이 '그래픽 노블'을 몰랐던 독자들이 그래픽 노블의 세계로 들어오는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 독자들이 그래픽 노블의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무엇보다 '그래픽 노블'은 재미있다.

 

 

참고도서 :

<한국현대만화사 1945-2010>, 박인하, 김낙호, 2012, 두보CMC

<그래픽 노블>, 백란이, 2021, 커뮤니케이션북스

<2021 만화 산업백서>, 2022, 한국만화영상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