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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알고 연락했는지 딴지 편집장으로부터 기고 요청을 받았다. 글을 쓸 기분도 아니고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글이란 걸 써본 적이 없어서 거절했다. 그런데 죽은 이가 우리와 함께 사는, 바로 옆의 이웃이란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도 그 트라우마를 겪고 있을 터인데 함께 아프기에 위안을 줄 수 있는 사람의 글을 싣고 싶다고 부탁했다. 

 

정말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글이 별로면 싣지 말아달라고 했다. 만약 실린다면 두서가 없어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날 

비가 세차게 내리던 8/7~8/9은 운 좋게 짧은 집콕 휴가중이었다. 비가 너무 많이 와 꼼짝달싹 못하고 '아! 하늘이 미쳤구나'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8월 9일 마지막 휴일을 보내며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단체 문자가 왔다. 언듯 보기에도 노동조합에서 보낸 문자인 듯했다.

 

임단협(임금 및 단체협상) 소식이려니 했는데 낯익은 이름과 장례 일정이란 단어가 보였다. 내용은

 

"딸과 함께 별이 되었다." 

 

딸과 함께? 휴가 때라서 여행가다 누가 사고가 났나? 순식간에 여러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면서도 설마 어제부터 미친 듯이 퍼붓는 비 때문에? 그건 아니겠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름을 확인해 보았다. 수시로 노동조합 소식을 문자나 단톡으로 보내던 그 이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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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문자

 

그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다음 날 서둘러 출근했다. 그리고 뉴스에서 본 신림동 참사... 그 뉴스가 그였다니... 너무 놀란 마음은 물론이고 어제 내가 생각했던 휴가 중 사고를 당했나 했던 그런 생각들이... 너무 죄송했다.

 

생각지도 못한 동료의 죽음에 참담하고 무겁다. 마음에 복잡해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지인들에게 얘기하고 나누기에는 너무 무거운 일이다. 엄마와 언니에게만 얘기하고 조금이나마 마음을 달랬다.

 

우리 회사와 언론 그리고 대통령  

백화점이나 면세점은 브랜드별 파견 인력으로 대부분 운영된다. 거의 90% 기사에서는 우리를 '면세점 하청 노동자'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파견 인력이 법적으로 이렇게 표현되는 건가 했다. 

 

내가 일하는 면세점은 우리 회사 브랜드가 많지 않다. 그래서 고인의 비보는 우리 회사 노조원들만 단톡방을 통해 공유할 뿐,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다른 직원들과 이 안타까운 슬픔을 함께 나눌 직원이 없었다. 중국인 고객이 많아 직원의 30~40퍼센트가 조선족이기도 하다. 당연히 그 직원들은 '아! 그런 일이 있었냐'며 놀라긴 하지만 같은 슬픔을 나눌 순 없었다. 그렇게 어디에 의지해야할지 모를 무겁고 슬픈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퇴근하면서 기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대통령 사고 현장 방문 소식을 전하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대통령 멘토라는 사람의 “누추한 곳에 잘 찾아갔다는 “ 발언을 보았다. 불쾌했다. 하루 만에 사과를 한 거 보니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실수가 아닌, 그의 인식 수준과 마음임을 알고 있다. 기사 속에 반복되는 “누추한 곳", ”반지하”란 단어는 너무 불쾌해 도대체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마치 고인을 매우 낮은 계급으로 폄하하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렇게 보여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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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제20대 대통령실>

 

사고 현장에 구경 온 사람 같은 대통령과 시장의 사진을 보았다. 현장 영상은... 사실 순간 입에서 욕이 나왔다. 어떻게 그런 슬픈 참사가 있었던 곳을 구경하러 온 사람처럼 내려다보며 “왜 대피를 미리 못했나?!” 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홀로 욕을 하며 분노했다가 다음은 허탈함이 몰려왔다. 우리 동료의 죽음은 고작 고작 저 정도로 소비되는구나...  

지금도 여기저기 기사에는 '신림동 반지하 참사'라고 나온다. 나는 기자가 아니라 제목을 왜 그렇게 짓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신림동 침수 사고'라고 하면 좋겠다. 그 반지하라는 단어가 보기 싫다. 내게는, 그곳에 살아서 그런 일을 겪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 양 표현되는 것 같다. 

 

가정사를 함부로 들먹이는 무분별한 기사들과 자극적인 기삿거리로 고인과 유족에게 아픔을 주는 기사도 보았다. 동료의 죽음으로 이런 일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 거구나... 하고 더 와닿는다.

 

예의를 조금만 지켜주면 안 되는 걸까. 편안하고 안전해야 하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난 부고 문자를 받는 것만으로도 미처 생각할 수 없었을 만큼 충격적이고 무서운 일이었는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119가 연락되었다면, 그 문이 열렸다면....  

 

우리 노조 총무부장님

고인이 되신 그분은 노조 총무부장님이다. 노조 전담으로 보직을 변경하신 건 3년 정도 되었다. 보직 변경 전에는 나와 같은 포지션의 브랜드 매니저였다. 잠시 노조 대의원 활동을 하던 시절, 대의원 단체톡방에서 종종 전달 사항을 받았고 그때 카톡 친구도 되었다. 지금도 예쁜 딸의 사진도 있고, 글도 있고... 하릴 없이 카톡 프로필을 눌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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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노조 교육이 끝나고 교육장 바로 앞 식당을 예약해 다 같이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교육 인원이 많아 조금 늦게 지인과 내가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못 잡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 그가 함께 먹자고 자리를 챙겨주었다. 4인석이었고 워낙 인원이 많아 따로 자리 잡기가 어려웠는데 같이 먹자며 “불편하진 않으시죠?!”라고 편하게 얘기하며 웃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교육은 어땠냐”, ”다음에는 더 좋은 자리 만들겠다”며, “우리 매니저님들, 다 동안이고 이쁘다"며, "역시 매장에서 유니폼 입고 봤을 때도 정갈하고 예쁜데 사복 입으시니까 진짜 더 스타일리시 하고 멋지시다"며. 별 것 아닌 일상인데 그 웃으면서 던지는 배려심 넘치는 말들이 떠오른다.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 교육에 참석을 했을 뿐인데 그는 줄곧 우리에게 칭찬을 하고 고마움을 표시해 주었다. 

 

노조의 일을 책임감 있게 하는 분이었다. 일하면서 불편한 점이나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서슴없이 전화 달라 했다. 첫 만남인데도 전에 알고 지낸 사람을 대하듯 편하게 대해주신 기억이 크게 남는다. 나보다 두 살 많은 나이임에도 큰 사람 같은 포근함과 자상함,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노동조합의 임직원으로 일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우리 회사 특성상 노조원들이 여러 면세점에 있다. 이렇게 흩어져 있는 노조원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챙겨내는 건 한곳에 모여있는 회사노조보다 더 힘들다.  

 

우리같은 회사는 코로나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영업이 잘 되지 않으니 직원들 급여는 깎여나간다. 인력이 준다. 거기다 끝없는 온라인 교육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종종 면세점에서나 사측에 과도하거나 부당한 압력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우리 회사는 노조의 도움과 조율로 상황이 완화되는 것을 경험했다. 교육 시간이 조정되고, 대면이 비대면으로 바뀌고... 큰일이 아니더라도 조금씩 상황이 나아짐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그였다. 우리가 그걸 느끼려면 그는 얼마나 고생했을까.  

 

정당히 받을 권리임에도 행하여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런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권리를 주장하고 협의하고 이루어내는 건 헌신하는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들 직장 경험이 있으실 터이니 알 터다. 그렇게 해도 누가 알아줄까. 불만만 많을 뿐이고 겨우 하나 쌓아 올려도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다. 그 일을 해준 그에게, 조합임직원 여러분에게... 아무 의미는 없겠지만 이 자리에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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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비보가 전해지던 날... 가족들은 모두 멀리 있었다. 첫날, 몸이 불편하신 어머님과 아직 도착하지 못한 가족을 대신해 노조위원장이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부고와 빈소가 공지되고 동료들은 조문을 갔다. 추모글도 함께하며 서로의 슬픔을 달랬다.

 

고인을 향한 추모글에서 따뜻한 그녀를 기리며 함께 슬퍼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좋은 세상에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

나는 이번에 알았다. 이런 사고를 보고 "근데 왜 반지하에 살았데?"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몸이 불편한 언니의 생활공간은 모두 그 집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불편을 주는 일도 아닌데, 왜 반지하에 거주하는 걸 그런 식으로 떠들어 댈까. 청와대에도, 기자들도, 악플을 다는 사람들도... 주위에 반지하에 살아본 친구를 평생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걸까. 그냥 다른 세계 사람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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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고인을 두고 반지하에서, 생활고에 시달리고, 힘든 가정사에, 무언가 지치고 힘들게 살았던 불쌍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니다. 우리 회사같은 노동조합의 임직원으로 일한다는 건 사람에 대한 헌신과 배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본인에게 별 득도 되지 않는데 직원들의 목소리가 되어, 직원들을 돕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다. 그런 힘든 일을 해줬던 고마운 분이기에 더욱 아프다. 그리고 글재주라곤 아무 것도 없는 내가 기고하는 이유다. 당신들이 불쌍하게 볼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자기가 속한 곳에서 최선을, 우리를 위해서, 항상 배려하고 살았던 사람이라고. 

 

아직도 나의 휴대폰 카카오톡 속에는 그분의 프로필 상태 메시지와 사진이 있다. 고인과 함께 별이 된 딸의 사진도 지울 수 없다.

 

부디 가족과 함께 좋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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