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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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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

 

지난 11일 수해 피해를 입은 서울 동작구의 한 시장에 피해 복구 봉사활동을 나온 김성원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온 일격의 한마디다. 귀를 의심했다.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 능력이 퇴화하다 못해 염장을 지르는 능력으로 변이됐나 보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봉사활동을 나온 그 현장에서는 이 외에도 그들이 수재민들의 피해에 공감하고 같이 아파하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몇 가지 장면들이 더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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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전 의원 지역구라 봉사활동 현장을

동작구로 정했다고 농담하는 권성동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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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지역구(포천시가평군)의 피해 현황에 대해 묻는 

권성동 원내대표의 질문에 답하는 최춘식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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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민중의소리> 링크

 

위 <민중의소리> 보도기사에 나와 있는 내용은 대략 이렇다.

 

"지난 11일 침수 피해가 심했던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서 봉사활동 후 뒤풀이를 하던 나경원 전 국회의원 일행과 지역 주민·상인 사이에 다툼이 벌어져 경찰까지 출동했다."

 

"다툼 상황을 목격한 상인 A 씨는 “물난리가 났는데, (나경원 전 의원 일행의) 박수 소리 등이 너무 시끄러워서 다툼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나 전 의원 측을 향해 언성을 높였던 상인 B 씨는 “10분, 20분 그랬다면 참았다”라며 “그런데 건배! 건배! (외치고), 나경원! 나경원! (연호)하면서 한 30분째 1시간째 시끄럽게 해서 너무 화가 나서 그랬다”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상인은 “장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서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그런데 걸어서 1분도 채 안 되는 골목 식당에서 회포를 푸는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어서 언성을 높였다는 게 B 씨의 설명이다."

 

"나 전 의원은 경찰이 도착하기 전 현장에서 빠져 나갔다. 상인 A 씨는 “경찰이 나경원 전 의원을 봤냐고 물어봐서, 이쪽 방향으로 조금 전에 막 뛰어갔다 그랬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이럴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군사 정권 시절에도 카메라 앞에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선 가슴 아픈 척이라도 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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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연자실한 상인들 앞에서 함박웃음을 취하던 그들의 얼굴에 아주 오래전, 잔뜩 화가 난 내 얼굴을 보며 빙글빙글 웃어대던 같은 반 녀석의 얼굴이 떠올라 겹쳐졌다. 열일곱 살 즈음이었으니, 삼십 년도 더 된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서로의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버스를 같이 타고 등하교하다가 꽤 가까워진 친구가 있었다. 그날도 그 녀석과 함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야동에 관심이 많던 시절, 그 녀석이 어디선가 비디오테이프를 구했다면서 우리 집에 가서 같이 보자고 했다. 집에 어머니가 계셔서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너희 집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도 어머니가 집에 계셔서 안 된다고 했다. 그럼 다음에 보자고 했지만, 녀석은 그래도 꼭 보고 싶다고 어떻게 안 되겠냐고 계속 조르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누워계신다. 미안하지만 안 되겠다’고 했다. 대체 어디가 편찮으신 거냐고 묻길래 ‘그냥 감기몸살이신 것 같다’고 대답했더니, 그 녀석 이렇게 말했다.

 

“에이, 허리 디스크 같이 못일어나는 병이면 마루에서 볼 수 있을 텐데...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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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거 아냐? 너희 집 가서 봐!’ 하고 어깨빵 쥐어박고 돌아섰지만, 두고두고 기가 막혔다. 뭐 저런 놈이 다 있나 싶었다. 대체 우리 어머니를 어떻게 보고 저딴 소리를 내 면전에 대고 하는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래서 그 후로 한동안 나는 그 녀석을 마주칠 때마다 실내화 주머니를 휘둘렀다. 처음 한두 번은 장난인 줄 알았는지 실내화 주머니에 얻어맞으면서도 녀석은 빙글거렸다. 하지만, 결국엔 왜 자꾸 자기를 때리냐며 볼멘 소리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내 실내화 주머니는 더욱 세차게 날아다녔고 그 후로 그 녀석, 나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졸업 후 이렇게 저렇게 잘 나가고 있다는 그 녀석의 근황과 소식이 들려왔지만, 나에게 그 녀석과의 기억은 거기까지다. 나를 속좁은 녀석이라 말해도 할 말 없지만 그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를 들면서 깨달았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아니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여 살고 있다는 것을. 

 

 

2.

수해 피해지역에 수건을 맞춰 두르고 봉사활동을 나온 그 정치인들의 보송보송한 모습은 이상하게 생경한데, 익숙했다. 사람들과 분리되어 자기들끼리 둘러서서 네 구역, 내 구역을 입에 올리며 하하 호호 이야기꽃을 피우는 결기어린 모습에는 화가 나다 못해 헛웃음이 나왔다. 그들은 흡사 중세 시대의 영주 마냥, 정말 우리와 다른 귀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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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족 3명이 사망한 서울 신림동 반지하 집을

방문한 윤 대통령.

대통령실은 이 사진을 국정홍보 카드뉴스에 사용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옹기종기 우산을 들고 쪼그려 앉아 한 가족이 희생된 자리를 들여다보는 장면은 흡사 스릴러 영화의 포스터를 보는 듯 소름이 끼쳤다. 거기에 덧댄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라는 문구는 화룡점정을 찍었다. 심각하고 비통한 것은 수해를 당한 사람들일 뿐, 그들에게는 먼먼 다른 세상의 일인 듯 보였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한 가족이 숨졌다. 사고가 난 곳이 어디보다도 안전하다고 느꼈어야 할 그분들의 보금자리였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 슬프게 했다. 단지 그곳이 반지하라는 이유만으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수마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것이 늦장마였든, 80년 만의 폭우였든, 한 가족의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매년 이맘때면 찾아오는 집중 호우, 비일 뿐이다. 몇 시간 동안의 비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고 그 사고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공동체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무기력하게, 매정하게 소중한 생명을 놓아버렸다. 안타깝다고 하기엔 너무도 억울하고 비통한 희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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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중앙일보>

 

이번 폭우에 참변을 당한 초등학교 6학년 손녀가 병원에 입원한 할머니에게 보냈던 문자메시지란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아이지만 우리 막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 꼭 우리 막내의 메시지 같다. 뉴스에 비친 문자메시지 화면을 보고 있자니 그 아이의 온기가 느껴져 가슴이 미어진다. 

 

이웃집에서 일어난 참사를 목도하고도 내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는 것이 염치없고, 숨을 쉬는 것이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이런 아이를, 고작 열세 살밖에 안 된 가녀린 생명을 이렇게 보내도 되는 것일까.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마음을 어떻게 가눠야 할지 모르겠다.

 

각종 사고와 자연재해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동체는 제일 먼저 나서야 하고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야 한다. 사고는 최대한 막아야 하고, 피해는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생명이라면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떻게든 지켜내야 한다. 그것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공동체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그럼에도 누군가 희생되었다면, 깊이 애도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것이 먼저다. 남은 사람들이 힘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한다. 목숨이 희생된 건 아니지만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의 상인들처럼 앞으로 살아갈 생계 수단을 잃어버린 이들의 좌절감도 엄청나다. 이들도 최대한 빨리 생계 활동에 복귀할 수 있도록 신경써야 한다. 그것이 공동체의 도리다. 그리고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잘못된 점을 찾아 개선하고 보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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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의

지하 노래방, 피씨방 사장님들의 상황

 

그런데 이 안타깝고 비통한 현장에서 보인 우리 공동체 리더들의 태도는 너무 차갑고 매정했다. 넘어지는 아이를 보면 나도 모르게 손을 뻗게 되는 것이, 슬픔에 잠긴 사람을 보면 내 마음도 무거워지는 것이 당연한 인지상정 아니었던가. 아무 감정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통령부터가 홍수가 나 서울 시내가 침수되는 걸 보면서도 기어코 자택으로 퇴근을 감행했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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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의 죽음에, 재난을 겪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타인의 고통에 조금의 공감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은 공감 능력의 결여를 넘어선, 부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왜 그들이 그 자리에 있는지, 왜 공동체가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했는지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2022년 여름, 수해의 상처 앞에 우리 공동체 리더들에겐 말만 있었고, 행동은 없었다. 권한은 있으나 책임은 없었다. 자기 자신만 있었고, 타인은 없었다. 그들로부터 나오는 감정 없는 말과 약속은 모두 공허할 뿐이었다. 그래서 슬프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왜 이렇게 참담할까.

 

 

3. 

그들만의 탓일까? 

 

아니, 모든 국민은 그들 수준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고 했다. 그들을 그 자리에 올려놓은 것은 바로 우리다. 우리는 다 알고 있었다. 어떤 리더를 가졌을 때 우리 공동체가 어떤 위상을 갖게 되었는지, 우리 사회가, 우리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욕심에 눈이 멀어 영혼 없는 선택을 했던 것 아닌가. 집값 때문에, 돈 때문에, 손해 보기 싫어서, 나만 벼락 거지 되는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이 미워서, 다 같이 불구덩이에 뛰어 들어가는 것을 선택한 것 아니었던가. 나만 아니면 된다는, 나는 아닐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돈을 절대 선의 경지에 끌어올린 욕심이 빚어낸 참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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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 대한 태도는 이미 대선 기간 수없이 보여졌었다 

 

돌이켜보면 늘 그래왔다. 때마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입에 발린 소리, 수십 년 동안 주문처럼 외워 왔다. 하지만 정작 재난에 대한 방비는 뒷전이었다. 집값이 먼저였고, 경비를 줄이고 사람을 줄이는 것이 먼저였다. 서해페리호, 삼풍, 성수대교,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대구 지하철, 우면산 산사태, 세월호... 욕심과 나태가 빚어낸 인재에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에는 커다란 멍이 들고 흉터가 남았음에도 우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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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강원도 고성에서 일어났던 대형 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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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은 전국 소방차 동원령을 내려

화재진압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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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잠깐, 선진국이 된 줄 알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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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온 날의 강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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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출처-<신문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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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구 남성사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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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역

출처-<쿠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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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역

 

꿈 깨자. 아니다. 우리는 아직 후진국이다. 방재에 있어서는 더욱더 그렇다.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은 우리가 선진국의 선진시민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운이 좋기 때문일 뿐이다.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려다 정작 소중한 것을 잃기를 되풀이하는 우리는 욕심쟁이 바보들일 뿐이다. 

 

예전에는 잘 몰랐다. 내려놓고, 나누라고 하던 공부 많이 한 큰 스님이나 신부님의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는 대체 뭘 내려놓고 나누라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어리석었다. 

 

이제서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내려놓고 나누는 것이야말로 ‘나를 포함하고 있는’ 우리가 잘사는 방법이었다.

 

욕심 때문이다. 모든 것이 다 우리 안의 욕심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이 발전을 이루는 원동력이라 하지만, 그 발전이 과연 무엇을 위한 발전인지 생각해 보면 어쩐지 덧없이 느껴진다. 내가 꿈꾸는 욕망의 방향이 나와 내 가족이 조금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안락하고 더 풍족한 삶을 누리는 것만을 향하는 것이라면 내 삶이 너무 남루하지 않은가. 그 초라한 욕심이 결국 우리 스스로의 목을 죄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주 조금씩만이라도 욕심을 덜어낼 수 있다면, 한 번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볼 수 있다면, 욕심에 악수를 두고 후회하는 일은 그만할 수 있을 것 같다. 백 년에 한 번,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위인을 줄줄이 우리 공동체의 리더로 세우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사람들의 아픔에 같이 아파하고 그래도 돈보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리더라면 그뿐이다. 그래서 언제고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공동체가 분명히 나를 구하러 나서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싶을 뿐이다.

 

그럴 수 있을까. ‘앞으로 달라질까?’라는 질문은 ‘우리, 욕심을 버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된다. 잘 모르겠다.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만큼 인간이 현명했다면, 모르긴 해도 우리는 이미 환경 오염의 재앙도 핵전쟁의 위험도 없는 세상에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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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민단체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고 또 후회할지 모른다. 하지만, 더 깊이 슬퍼하고 더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다. 더 많이 화내고 더 크게 후회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 사람이 사람 대접받는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희생되신 분들의 희생을 아주 조금이나마 헛되지 않게 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서다. 

 

이번 물난리에 반짝였던 몇 분의 영웅들을 보며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그분들을 통해 나도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그분들처럼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나눠야 하겠다고. 바리바리 싸 들고 갈 것도 아닌데, 더러 양보도 좀 하고 나누기도 하면서 웃고 사는 게 더 남는 장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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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오던 날,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한 남성이 맨손으로 막힌 배수로를 뚫고 있다.

 

폭우로 인해 반지하 집에 갇혀 못 나오는 시민을

구해준 시민들

 

이번 물난리에 희생되신 일가족과 희생자분들께 심심한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해드린다. 부디 그곳에서는 편히 쉬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