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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5세 입학’ 뒷북 글을 쓴 이유

 

박순애 사퇴.jpg

 

본 글은 얼마 전 박순애 교육부 장관 사퇴의 표면적 이유가 되었던 ‘초등학교 만 5세 입학’에 관한 것이다. 장관도 이미 사임했고,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지금 이 자리에서 폐기한다, 더 이상 추진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하지만,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워졌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고 말했기에 현 정권에서 ‘만 5세 입학’에 대해 다시금 주장할 가능성이 희박한 지금이다. 헌데 뒷북치며 이 글을 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미 ‘만 5세 입학’을 시행하고 있는 영국의 사례를 소개하며, 영국은 어떻게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지 소개한다. 또 영국 사례와 비교해보며, 윤석열 정부의 ‘만 5세 입학’ 주장은 왜 문제가 있었는지 디벼본다.”   

 

현시점, 우리나라에서는 ‘만 5세 입학’이 부적절하다는 주장은 최근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 나왔다. 부정적 의견이 83%다. 이 글은 그 주장들과는 또 다른 관점으로 ‘만 5세 입학’ 문제를 짚어보려는 것이니, 뒷북이지만 앞으로 우리 교육제도에 관한 논의를 할 때 본 글의 내용이 도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 5세 입학’이 나쁜 건 아니다

 

초등교육의 시기는 사실 과거부터 말이 나왔던 얘기다. 유럽과 비교했을 때, 사회로 발을 내딛는 시기에 차이가 있고, 국방의 의무를 감당해야 남성의 경우, 그 시기가 더욱 늦어지기 때문에 한두해 당겨 초등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은, 방법과 시기가 문제였지, 이미 존재했었다. 

 

영국 초등학교.jpg

출처-<Newbury Today>

 

영국의 경우엔 만 4-5살에 초등교육을 시작해 고등교육도 우리보다 한두 해 일찍 마무리 된다. 대학 과정도 짧다. 학부 3년에, 석사 과정은 1년이다. 석사 과정이 1년이기 때문에 학사든 석사든 학위를 따고 사회진출을 하면 20대 초반이다. 박사과정(3-4년)까지 하더라도 학업을 모두 마무리하는 시기는 만 25세 내외 정도. 굉장히 짱짱한 나이부터 일을 시작하니 모든 일에 효율이 높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해야 능률이 오른다는 얘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다. 

 

이는 단순히 사회에 일찍 진출한다는 것 외 다른 부분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남성의 경우, 군 전역과 대학 졸업까지 마치게 되는 시기는 20대 후반이다. 공부 좀 더 하겠다는 이들, 자격증이나 공무원 시험 등을 위해 투자하는 이들의 경우 30대까지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데 걸리는 시간이 늦춰지니 결혼도 늦어지고, 내 집/차 마련이니 하는 일들도 계속 뒤쳐질 수밖에 없다.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가 늦다 보니 젊은 나이에 이것저것 다양한 걸 도전해보는 것에 상당한 부담이 있다. 도전에 한 번 실패하면, 어느덧 나이는 30이 훌쩍 지나있다.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 군대에 가는 2-3년을 제외하면 비슷한 시간을 소비한다. 결혼은 물론이거니와 출산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번외로, 20대에 출산하는 것과 30대에 출산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아무리 의학이 발전했다 하더라도 나이가 들수록 신체적 부담은 차이가 난다. 만약 사회제도가 좀 더 일찍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개선되어 진다면 여러모로 좋은 건 당연지사다) 

 

이런 여러 가지 장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행하려는 대통령과 장관, 교육부에 온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학부모들 시위 연합뉴스.jpg

 

지금까지의 내용만 봐서는 ‘만 5세 입학’이 그리 나쁜 것 같지 않은데 말이다. 아니, 사실 ‘만 5세 입학’은 여러 가지 장점도 많다. 그런데, 왜 ‘만 5세 입학’이 그토록 문제가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준비는 안 됐지만, 일단 시작부터 하고, 그에 대한 손해든 이득이든 다 니네가 떠안아라 하는, 무책임한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무리 없이 ‘만 5세 입학’이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선행조건들을 갖췄기 때문이다. 

 

우선 영국의 교육제도는 어떤지, ‘만 5세 입학’의 선행조건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영국의 교육과정

 

영국은 만 3세가 되는 해 9월부터 공립유치원 보낼 수 있고, 이듬해인 4세 때에는 리셉션(Reception)이 시작된다. 우리말로 정확한 번역이 어렵지만, 초등학교 1학년이 시작되기 전, 준비단계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그렇게 만 5세가 되면 1학년에 입학하고 이후 11학년까지 11년간의 의무교육 기간이 종료되면 공교육이 마무리 된다. 

 

만약, 대학에 가길 원한다면, 2년 동안 12, 13학년을 다녀 ‘에이 레벨’(A-level) – 우리나라로 치면 수학능력시험 – 을 준비해 시험을 치르고 결과에 맞게 지원하고, 대학에 입학해 원하는 학업을 이어갈 수 있다. 말로 설명하면 복잡하고 이해가 어려울 수 있으니 표를 보자면 아래와 같다.

 

한국 영국 교육과정.PNG

출처-<YBM 유학센터> 링크

 

대학원을 마치게 되는 만 나이의 차이가 확연하고, (20대 때는 1년이면 엄청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체력이 있기에) 이는 엄청난 사회적 에너지로 작용한다. 분명한 장점이 존재한다. 

 

 

대학 진학률 40%의 영국은 입시가 치열하지 않다

 

영국은 10학년(만 14세) 이후에 2년간 실시되는 중등교육과정(GCSE, 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 우리나라의 중등교육에 해당)이 끝나면 공교육은 일단락된다. 이때까지 영문학(우리로 말하면 국어)을 비롯하여, 제2외국어, 역사, 수학, 생물 물리, 화학, 정치, 경제, 체육, 미술, 음악 등 10과목 이상을 이수하고 시험을 치러야 한다. 

 

물론, 공부에 관심이 없는 이들은 직업학교에서 기술을 배우고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당연히 대학에 가거나 이후 공부를 더 해야 하는 게 아니니 높은 성적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학을 나온다고 취업이 더 잘 보장되는 것도 아니거니와 기업에 취직한 들, 대입자에게 연봉에 우대를 주지 않는데 굳이 대학 3년을, 그것도 수 천만 원에 해당하는 등록금을 내고 다닐 이유가 없다. 

 

참고로 영국의 한 해 대학 진학률은 40%대로, 학업을 이어가겠다고 하는 이들이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공부도 기술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는데, 어쨌든, 대학에 가기로 결심을 하면 대부분 대학 진학에 성공한다.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느냐 못하느냐가 관건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입시와 비교하면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학교교실.jpg

 

대학 진학을 원할 경우, 2년간의 ‘A레벨’(A-Level) 과정을 통해, 10개가 넘는 과목 중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4과목을 선택해 심화학습을 진행한다. 이 4과목 중 3과목을 선정해 대학에 성적을 제출하고, 지원한 학교의 입시 전형에 따라 별도의 면접이나 논술을 본 후 대학에 진학한다. 그렇게 진학한 대학도 3년. 한국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기간이 짧아 대학을 졸업한다 해도 사회진출 시기도 빠르다는 장점과 함께,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실무적인 지식도 이른 시기부터 습득할 수 있다. 

 

 

‘만 5세 입학’이 가능하기 위한 선행조건

 

이렇듯 영국 교육제도에는 분명한 장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장점을 정책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선행조건이 필요하다. 이 중에서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투자해야 할 제도들이 많다. 

 

가령, 만 4-5세의 아이들의 경우, 자신의 신체를 돌보는 것이 미흡하다.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보는 아주 기초적인 생활부터 시작해 무엇이 위험하고 안전한지에 대한 구분이 어려워 교사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때문에 영국 초등학교엔 반마다 교사들이 넘쳐난다. 가령 만 4-5세의 리셉션이나 초등학교 1학년의 경우, 담임(1명)이 존재하지만,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전임)가 2-4명 내외로 늘 상주하고, 보조교사 1-2명이 함께 수업을 진행한다. 게다가 각 반마다 학생 수는 20-30명 내외. 더 적은 경우도 많다. 학교 시설에 있어서도, 초등학교는 대부분 단층이다. 

 

영국1.PNG

영국의 초등학교

 

출입할 시에도 지층과 건물이 바로 연결이 되어서 별도의 계단을 오르내릴 일이 없고, 장애인의 경우도 출입이 용이하다. 

 

영국2.PNG

 

이런 사안들이 별거 아니게 느껴질 수 있지만, 어린 아이들의 경우 신체를 스스로 가누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설 하나하나에도 굉장한 심혈을 기울여야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교사도 1인당 담당 학생 수가 4-5명, 많게는 7-8명 정도가 돼야 어린아이들의 커버가 가능하다. 교사 수, 학교 시설, 안전 수칙에 대한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으면 소화가 불가능한 정책이 바로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이다. 당연히 이를 구축하기 위해선 교육예산이 충분히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만 5세 입학 정책 발표 전,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 인력 양성에 투자하겠다며, 교육 예산 3조 6천억 원을 삭감하겠다고 했다. 만 5세 입학을 위해선 교육예산을 늘려서 인프라를 구축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하니, 교육 관련 정책은 각각 따로 놀게 되고, 준비 안 된 교육 현장에 무턱대고 아이들을 집어넣어 수많은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막심한 상처와 부작용만 낳게 하는 정책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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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나중에 벌어질 폐해에 대한 책임은 본인들은 모르는 일일 것이고, 국민들이 져야 할 것이다. 만에 하나 직접적인 사고라도 날 경우, 법적으로도 국가가 책임지는 범위가 매우 좁고 이를 뒷받침할 정책 또한 미비할 것이다. 개도국 시절, 우리나라 정부에서 해왔던 선 정책 시행, 후 지원과 같은 ‘일단 하고 보자’식의 이러한 정책 시행을 절대 지양해야 마땅하다. 특히, 교육에 대해서는, 특별히 아동에 대해서는 더더욱. 

 

 

정책 전엔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

 

더불어, 유럽의 경우를 예로 들며 교육정책을 변경하려 한다면, 인식부터 달리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 유럽은 대학 진학률이 그리 높지 않다. 그만큼 치열한 경쟁도 없다. 

 

영국의 경우,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대부분 오전 9시에 등교해서 3-4시면 하교한다. 학구열이 높은 몇몇 지역과 사립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도 있지만 그들은 극히 일부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방과후 수업 없이 하교 후에는 개인적으로 스포츠/악기 클럽에 참여하거나 취미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 후 부모 형제자매들과 함께 남은 시간을 보낸 학생들은 저녁을 먹고 일찍 잔다. 런던의 번화가를 제외한 주거지역을 가보면 저녁 6-7시만 되어도 거리가 한산하고 조용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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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끝났다~ 언능 취미활동 하러 가야쥐!

출처-<SCHOOL HOUSE> 

 

과제, 숙제? 그런 것도 별로 없다. 한국과 비교해 보면 거의 노는 수준이다. 중등시험이나 A-level과 같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시험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시간을 들여 열심히 공부하지만, 한국 학생들에 비해서는 현저히 공부하는 시간이 적다. 

 

대신 영국은 학생들에게 여행을 다니고 사색하고, 독서를 하는 등 자기만의 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한다. 이런 시간은 영국 교육과정에 의무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주어진 개인 시간을 통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파악하도록 한다. 

 

영국의 교육제도가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자유방임적 체제여서 능률적인 면에서만 보자면 학업성취도가 그만큼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공부량을 줄이는 대신 적어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깨닫고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통해 돕는다. 단순히 성적 잘 받아 명문대 진학하여 고스펙을 쌓는 것을 자존감으로 여기지 않도록 국가가 최소한의 방패막이 되어주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전인격적 방침이 영국의 교육 과정에 녹아 있다.

 

그러므로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교육 정책을 모방하려면, 일단 정책부터 시행하고 볼 일이 아니고 어떻게 그 나라에서는 그 정책이 가능했는지, 그 환경을 조사·검토하고 그에 맞춰 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사회적 논의가 필수다.

 

“우리 사회는 어떤 인재를 원하는가? 그 인재를 어떻게 양성하고 교육할 것인가? 각 개개인마다 재능이 다른데 이런 재능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가? 그렇게 타고난 재능으로 선택한 직업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얼마나 차별 없이 관대하게 인식하는가?” 

 

등의 다양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빠르게 가.PNG

 

무조건 좋다고, 빠르게만 가라며, 일단 애들 학교 보내놓고, 부모와 학교가 알아서 해라 식의 정책 시행 말고, 보다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길게 늘어놨다. 과거 IMF 당시 금모으기 운동을 했던 당시도 떠올려보면, 기업이 망하고 나라가 어려워진 것은 정부가 운영을 잘못한 탓인데 왜 그 책임을 오롯이 국민들이 져야 했다.

 

현재 윤석열 정부에서는 교육 정책뿐 아니라 여러 분야 정책에서 ‘우선 시행하고 보자’는 식의 정책이 많이 보인다. 이런 식의 정부 운영 태도를 바꿔야 할 터인데, 오늘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