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이런 일했던 사람이 씁니다

같이 일하는 분들에게 네팔 고인물 시절 이야기를 하면 그때가 나의 리즈 시절이었던 것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꽤 있다. 실상은... 두세 달에 한 번꼴로 죽을 뻔했다! 장 출혈로 시체 상태가 되어 들어온 적도 있고 버스가 절벽으로 추락하는 일도 겪었다. 버스로 정글에 가는데 산불이 나고 네팔 국내용 초소형 여객기가 불과 200미터 앞에 떨어지기도 했다. 

 

딴지를 오래 본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국제]실시간 르포: 지진 6일차, 여기는 네팔 카트만두(링크) 을 연재하던 시기랑도 겹치는데, 실제 가족이 모두 죽을 위기의 한 가운데에 있기도 한 게다. 지금 생각하면 용케 살아있다. 

 

여튼 상수도 없는 카트만두에선 지하수를 흙과 숯으로 걸러서 생활용수로 쓴다. 하천 오염이 심한 상태에서 지하수의 위생 상태가 좋을 리 없다. 더불어 한국처럼 기온이 떨어지진 않지만 거기도 겨울엔 섭씨 10도 밑인 날씨가 꽤 된다. 겨울엔 온수 구하긴 좀 어려운데다 난방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나라라 씻기도 힘들다. 꼬질꼬질하게 있기 힘들어 방콕을 경유해 다녔다. 그래야 방콕 스완나품 공항에서라도 좀 깨끗하게 씻고 들어올 수 있으니까.

 

한 명이 해외에 나가 있어도 지출 경비가 상당하다 보니 인도·네팔·방글라데시·파키스탄에 티베트, 그리고 요즘 시끄러운 스리랑카 지역까지 뭔 일이 생기면 다 도맡아 했다. 치안부터 위생, 거기다 근무 환경까지 열악한 건 말해 뭣하나. 한국인 보조 인력을 두는 것은 꿈도 못 꿨다. 노무사인 지인에게 그때 일하던 환경을 이야기하니 근로기준법상 '학대’에 해당한다고 했으니 사실 희망자를 구할 방법도 없었다.

 

실상이 그랬음에도 영어로 뭔가를 했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이 주변에 많았다. 무언가 지식인(내가...?!?)에 대한 거부감도 있고 이런 곳에서 생활하다보면 영미권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사람도 많고 뭐... 해서 요즘은 아예 그 시절 이야긴 안 하고 산다.

 

대신에 스리랑카 경제 위기와 대통령 탄핵 사태 즈음, 영미권 뉴스들에 대한 불만을 SNS에 늘어놨다가 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에게 낚이고 말았다. 무엇보다 존경해 마지않는 모 사회학자께서 좀 다른 이야길 할 수 있는 사람의 글이 소중할 수 있다는 지적에, 봉인했던 썰을 좀 풀어본다. 

 

앞에 이래저래 설레발을 풀었던 이유는 그런 현장에서 부닥치고 일하면서, 때때로 죽을 고비를 경험한 직장인(?!)의 글이니 정치인이나 기자 양반들이 보는 세상과는 좀 다를 수 있다는 걸 깔아 둔 것이다.  

 

돈 없는 나라는 어떻게 쓰레기를 처리하는가 

 

내가 일하던 회사에서 스리랑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것은 2012년 초부터 2014년 초까지였다. 남한의 60% 정도 되는 크기에 인구 2000만 명이 넘는 이 나라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폐기물 처리 문제다. 폐기물 대부분은 음식물 쓰레기였는데, 이런 곳에선 위생매립 같은 건 생각할 수도 없다. 워낙 가난한 나라라 가장 값싼 방법으로 치부되는 위생매립 예산도 세계은행 같은 곳에 손을 벌려야 한다.

 

그럼 2000만명 분의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냐고? 

 

01JPG.JPG

 

위 사진은 스리랑카의 유명 관광지이자 고대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캔디(Kandy)에서 얼마 안 떨어진 감폴라 (Gampola)라고 하는 작은 도시 쓰레기처리장이다. 우리 눈엔 황당하겠지만 저렇게 산 중턱에 적당히 쓰레기를 부어놓는다;;;  

 

그러면? 

 

장마 때 쓰레기들이 알아서 쓸려 내려간다. 그렇게 쓰레기 처리장을 비우는 게다;;; 당연히 문제가 생긴다. 당연한 소리지만 섬나라라서 이렇게 쓸려 내려간 쓰레기들 중에서 분해가 안 되는 비닐봉지 같은 건 해양 생태계에 치명적이다.

 

06.jpg

 

위의 이미지는 일본 원조기구인 JICA에서 해당 지역의 폐기물 현황을 조사한 보고서다. 위의 도표에서 보듯, 가장 많이 나오는 폐기물은 음식물 쓰레기(Kitchen)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라도 처리 난이도가 좀 있다. 그나마 좀 쉬운 방법이 산소를 좋아하는 호기성 박테리아를 이용한 발효다.

 

적도 근처의 음식물 쓰레기는 처리가 힘들다  

 

03.JPG

 

남아시아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방글라데시에 있는 Waste Concern의 130톤짜리 시설이다. 유기성 폐기물을 발효시켜 퇴비화하는 시설이다. 네덜란드가 기술을 제공하여 지은 곳이다. 발효시켜 퇴비화한 다음, 농축하면 상당히 가격 경쟁력이 있는 원예용 비료로도 판매할 수 있다. 가장 모범적인 시설로 꼽지만 여기는 인근의 농산물 유통단지에서 나오는 폐기물들만 가지고 와서 처리한다(이게 2012년 즈음까지 나왔던 거의 유일한 음식물 쓰레기 해법이었다).

 

문제는 가정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때다.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만들 때 소금이 남는 것이다. 스리랑카는 적도에 가까운 터라 음식에 소금이 많이 들어간다. 인도 대륙 국가답게 강황과 고추도 많이 들어간다. 다른 건 뭐 어떻게 처리할 수 있지만 소금이 많이 들어가 버리면 퇴비화해도 소금이 남는다. 해법은 폐기물과 동일한 분량의 톱밥을 넣고 지렁이를 넣어서 퇴비화하는 방법이지만, 톱밥도 워낙 부족해 지렁이가 버티질 못했다.

 

04.JPG

 

참고로 위 사진이 스리랑카 최대의 상업 도시, 콜롬보의 폐기물 처리장이고

 

05.JPG

 

폐기물 처리장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성분이 음식물 쓰레기니까 이렇게 단을 만들어 퇴비로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 들어오는 폐기물로는 방글라데시의 Waste Concern과 같은, 그러니까 아래의 이쁜 형태를 만들어낼 수가 없다.

 

06.JPG

 

이렇게 고운 형태로 만들려면 발효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소금기 제거도 어려울뿐더러 폐기물 처리장으로 밀려들어 오는 양이 많아 처리되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 스리랑카 정부는 다른 해법이 필요했다.

 

스리랑카 정부 관계자들은 외국에서 신재생 에너지와 관련된 일을 하며 일면식이라도 있는 이들에게 이 문제를 꺼내곤 했다. 2012년 초, 네팔의 깡촌에서 일하고 있던 우리 회사로도 접촉이 올 정도로 폐기물 처리는 심각한 문제였다.

 

중국이라는 동아줄?

 

위 상황은 2008년 우리 회사가 네팔에서 겪었던 것과 비슷했다.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네팔과 달리 스리랑카는 섬나라인 점이다. 섬나라는 주위 눈치를 안봐도 되니 외부에서 석탄 등을 가져와 발전소 돌리기가 내륙 국가보단 훨씬 쉽다. 석탄화력발전소엔 추가로 다른 물질들을 넣어도 된다.

 

당시, 우리도 석탄화력발전소에 우드칩을 많이 넣어서 쓰고 있으니 비슷하게 가동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2012년엔 마침 콜롬보에서 120km 정도 떨어진 푸타람(Puttalam)에 중국에서 300MW 화력발전소 3기를 만들고 있었다. 여러 시나리오 중, 중국이 만들고 있던 화력발전소에 넣어서 태우는 방안부터 염두에 두고, 폐기물 연료화 기술을 지닌 업체와 함께 사업 타당성 조사(Feasibility Study)에 나섰다.

 

07.JPG

 

처음 계획은 여기, 락비자야(Lakvijaya) 발전소에 넣어서 태운다는 것이었다(이곳 방문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일대일로를 너무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타당성 조사부터 난리도 아니었다. 한국엔 공과대학 어디나 있는 분석기가 스리랑카엔 켄디에 있는 국립대에 하나밖에 없으니까. 폐기물 처리 기술이 없으니 그걸로 장사하려는 분들은 곳곳에 빨대를 꽂고 있었던지라, 정말 별것 아닌 일 하나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폐기물의 형태 분석과 발전소까지 운반 등, 비용계산을 마친 후에 발전소 방문도 잡을 수 있었다.

 

화력발전소에 방문해 알게 된, 중국의 야심

 

그런데 폐기물 상태 조사하는 과정에서 좀 골때리는 뉴스들이 신문지상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료화해서 소각하려고 하는 락비자야(Lakvijaya) 발전소가 시험 가동 중, 보일러가 터졌다는 소식부터 작동불능 상태라는 이야기까지... 좀 이해하기 힘든 뉴스들을 보게 되었다.

 

락비자야 화력발전소는 중국이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로 짓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소였다. 석탄을 태운 이산화탄소를 모조리 매립하는 독일식 석탄화력발전소가 아니라고 한다면 엄청난 기술이 필요할 리 없었다. 무엇보다 중국이 해외원조를 위해 만드는 곳에 대단한 기술이 들어갈 것 같진 않았다. 발전소 견학을 하고 발전소장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08.JPG

 

콜롬보에서 장장 5시간을 달려 락비자야 화력발전소에 도착했다. 간단한 보안 검사를 하고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왜 각종 사고가 터졌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공사 현장은 난잡하기 그지없었고, 러닝셔츠에 빤쭈 입은 중국 아저씨 몇 분이 낚싯대를 들고 선착장 쪽으로 낚시를 나가고 있었다. 한참 공사해야 했던 평일에 말이다.

 

발전소 소장과의 인터뷰도 좀 깼다. 우리나라 석탄화력발전소의 상당수는 인도네시아산 석탄을 쓴다. 그게 열량이 낮지만 가장 싸다. 그런데 락비자야 화력발전소는 국제 가격 대비 거의 네 배에 가까운 돈을 지불해야 하는 조건으로 인도네시아와 계약을 맺었다고 했다. 이에 따라 CEB(Ceylon Electricity Board, 스리랑카 전력청)에서 상당히 비싼 가격에 전기를 사줘야 한다고 했다. 더욱이 석탄의 비중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다른 연료를 넣으면 말썽이 생긴다고 한다. 

 

이러면 최초에 우리가 세웠던 계획은 나가리다. '비정상적인 석탄 매입가'와 '비싼 전기 생산비 청구'는 중국이 공적개발원조라며 세워줬던 발전소가 사실은 스리랑카 정권과의 뒷거래를 통해 성사된 EPC 사업(사업자가 설계[engineering]·구매조달[procurement]·시공[construction]에 운영까지 죄다 하는 사업. 플랜트 건설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방식인데 선진국들만 할 수 있다)임을 방증했다.

 

해당 발전소에 국제 가격의 4배로 석탄을 공급하기로 한 업체가 인도네시아 업체였을까? 인도네시아 석탄 광산을 소유한 중국 업체였을까? 답은 명료하다.

 

중국의 국제경쟁력이 EPC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수준이 안되니까 공적개발원조의 껍데기를 쓰고 일을 진행했던 터이다.

 

중국이 스리랑카에 공들이는 이유

 

09.jpg

 

스리랑카에서 남서쪽으로 1,756km 내려가면 ‘디에고 가르시아’라는 영국령 섬이 있다. 사실 작은 제도지만 가장 큰 섬이 바로 디에고 가르시아다. 저기, 영국령이지만 구글 지도로 확대해 보면 섬 전체가 큼지막한 공항임을 알 수 있다. 그 시설의 일부가 미 해군과 공군, 그리고 영국군이 사용하는 캠프 썬더 코프(Camp Thunder Corp)다.

 

요 쪼맨한 섬이 잠수함 보급과 항모전단 보급은 물론, 공군 보급 기지이자 출격 장소가 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미 공군은 이곳에서 전략폭격기들을 띄웠다. 그런데 중국이 스리랑카에 함대공 미사일 플랫폼을 하나 갖다 놓으면 적어도 저기서 날아오는 폭격기는 차단해볼 수 있지 않겠냐는 짱구가 돌아갔던 터이다. 거기다 중동과 아프리카로 넘어가는 중요한 기점. 그러니 공들일 만하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한편 중국은 아직 세계와 함께할 준비가 안 된 분이다. 중화의 기억은 웅장하게 갖고 있는데 그게 자기들 빼곤 죄다 조공 바쳐야 하는 오랑캐라는 기억이다. 이런 마인드로 해외에서 일하면 사고 터진다. 사실 내가 일하기 시작했던 2012년에도 중국이 공적개발원조라고 이것저것 많이 만들어주긴 하는데 나사 하나는 물론, 그거 조립할 인력까지 죄다 중국에서 데리고 왔다. 이로 인하여 경제적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스리랑카 매체들에서 나왔다.

 

그뿐만 아니다.

 

중국 국내의 농민공들을 깡그리 끌어다가 숙소 생활하게 하면서 이들을 상대로 매춘하는 분들까지 중국에서 데리고 왔었다;;;; 이 직업여성들이 숙소 생활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관광객까지 영업 대상으로 확장하다가 스리랑카 경찰에 덜미를 잡혔던 것이 TV 뉴스로 보도되기도 했다(가끔 저녁에 일이 없어 심심할 때, 100달러 한 장 들고 찾던 카지노에서 업계 종사자인 중국 언니가 말도 안 되는 돈을 걸고 있는 걸 직접 보기도 했다). 그즈음 스리랑카 국민들 상당수는 이미 중국을 탐욕의 화신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왜 일대일로에 참여했던 것일까?

 

영미권 매체들은 물론 미국의 정치 외교와 관련된 매체들도 중국에 사기당한 스리랑카, 혹은 사기범인 줄 알면서도 눈 뜨고 코 베인 스리랑카라는 시각으로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 반복하지만 10년 전에 내가 스리랑카에서 일할 때도 현지 매체에선 중국을 곱게 보지 않았다.

 

그럼 스리랑카의 전현직 대통령을 해 드신 라자팍사 형제들이 스리랑카 국민들을 통수 친 것으로만 정리하면 상황파악이 끝나는 셈일까?

 

09srilanka-briefing-rajapaksa-family-videoSixteenByNine3000.jpg

왼쪽은 제6대 대통령(2005-2015)이자 제 13대 총리도 해드시며

대략 18년간 스리랑카를 통치한 독재자, 마힌다 라자팍사.

오른쪽은 그의 친동생이자, 형제 지간에 스리랑카를 해드시며

경제를 파탄내고 도망간 

고타바야 라자팍사 제8대 대통령(2019-2022) 

 

 

British Commonwealth of Nations라는 연합체가 있다. 영국 식민지였던 나라들과 영국의 연합체다. 이 연합체의 정부 수장들의 모임이 2012년 스리랑카에 있었다. 그때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연합체 내 선진국 대표들은 하나같이 당시 스리랑카 대통령이던 라자팍사(이번에 쫓겨난 분의 형)는 생까고 타밀 난민촌으로 직행했었다.

 

그걸 보도하는 스리랑카 매체들 기사에는 문단마다 서방 제국주의자들을 불태우고 말겠다는 분노의 단어들이 넘실거렸다. 스리랑카 매체들이 왜 그렇게까지 분노했을까. 이를 이해하면 스리랑카가 자기들이 눈 뜨고 코 베일 줄 알면서도 왜 중국과 손잡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계속> 

 

간만에 국제부 마실 나온 Samuel S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