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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기여 잘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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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민음사>

 

 

천만 명의 청춘을 죽인 전쟁, 제1차 세계대전

 

“전투를 앞둔 병사의 눈빛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쟁하자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 오토 폰 비스마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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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풍선이 어느 순간 ‘빵’ 터지듯, 한 발의 총성이 유럽의 탐욕을 터트렸다.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를 향해 총알이 발사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유럽의 각 제국들이 전쟁을 선포했다. 낡은 체제의 황제들, 전 세계를 식민지로 만든 각 제국의 정치가들, 끝없는 부를 추구하던 신흥 부르주아들, 그리고 안락한 사무실 구석의 늙은 장군들. 이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전쟁을 결정했고 1,000만 명의 젊은이들이 참혹하게 죽어야 했다. 20세기와 거의 함께 시작된 이 전쟁은 야포와 기관총, 그리고 철조망과 참호의 전쟁이었다. 끔찍한 소모전이었고 더 많이 죽이는 쪽이 승리하는 전쟁이었다.

 

10대부터 20대까지의 젊은이들은 눅눅한 참호 속에서 쥐 떼와 함께 적의 포탄과 무모한 돌격에 죽어야 했고, 또한 질병에 죽어야 했다.

 

겨울이 시작되자 장마가 찾아왔고 장마와 더불어 콜레라가 퍼졌다. 하지만 콜레라가 전염되는 것은 막았고, 결과적으로 군대에서는 겨우 칠천 명의 희생자가 나왔을 뿐이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동맹국’ 측은 사망자 438만여 명을 포함해 총 1,640만여 명의 희생자를 내었고, 프랑스와 영국을 중심으로 한 협상국 측은 사망자 552만여 명을 포함해 총 2,247만여 명의 희생자를 만들었다. 더 많이 죽인 협상국 측이 승리했다.

 

‘이탈리아’는 프랑스의 유혹에 넘어갔다. 동맹국의 일원이었지만 탈퇴하고 협상국에 붙었다. 이탈리아는 1915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탈리아에 유학 중이던 미국인 청년 ‘프레더릭 헨리’는 특별한 신념은 없었지만, 자원입대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앰뷸런스 부대의 장교로 ‘고리치아’ 전선에 투입되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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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전선 지도 

출처-<민음사>

 

참혹한 전쟁터였지만 젊은이들의 호기심과 육체적 욕망은 어쩔 수 없었다. ‘헨리’는 그곳에서 ‘간호 봉사대’ 자원자 ‘캐서린 바클리’를 만났다. 그녀의 약혼자는 ‘솜 전투’에서 포탄에 산산이 부서져 날아가 버렸다. 헨리는 이 아름다운 영국 처녀를 본 순간 육체의 욕망이 불타올랐다. 천만 명이 죽어가는 참혹한 전장에서 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서로를 마주 보았다. 나는 그녀가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손을 잡았다. 그녀는 손이 잡힌 채 가만히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손을 꼭 잡은 채 한 팔로 그녀를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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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 전투에서 기관총탄과 포탄이 난무하는

무인지대(No Man's Land)로 돌진을

시작하려는 영국 육군의 모습.

솜 전투란 1916년, 1차 대전 중 펼쳐진 대규모 전투 중 하나.

철조망과 기관총 앞에서 적어도 100만 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한, 제1차 세계대전

최대, 최악의 살육이 벌어진 전투다.

 

 

부상 그리고 후송

 

가끔씩 총알은 눈이 있다. 그러나 포탄은 눈이 없다. 포탄은 무자비한 전장의 지배자였다. 헨리가 세 명의 운전병들과 함께 참호 속에서 저녁을 먹으려 할 때였다. 치즈에 묻은 흙을 털어 내고 맛이 간 포도주와 마카로니 가닥을 입에 넣을 때였다. 적의 박격포탄이 참호 속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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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섬광이 번쩍였고 휘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맹렬한 폭음이 들렸다. 헨리는 자신의 몸뚱이가 공중으로 붕 떴다가 미끄러지듯 땅으로 내려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숨을 쉬려고 했지만 쉬어지지 않았고 머리는 심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어머니! 아, 어머니!” 하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몸을 끌고 비틀고 한 끝에 겨우 다리를 빼고는 몸을 돌려 그를 만져 보았다. 파시니였다.

 

운전병 ‘파시니’의 두 다리는 무릎 위까지 박살 나 있었다. 한쪽 다리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다른 쪽 다리는 힘줄과 바짓가랑이 일부에 간신히 붙어 덜렁거렸다. 파시니는 끔찍한 고통 때문에 자기 팔을 물어뜯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를 쏴 죽여달라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파시니는 곧 잠잠해졌다. 지혈을 할 필요도 없이 죽은 것이다.

 

파시니가 죽은 후 헨리는 자신의 구두 속이 끈적끈적 거린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몸을 구부려 한쪽 다리의 무릎을 만져 보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 무릎은 없었다. 무릎은 부서져 정강이 아래쪽에 붙어 있었다. 그가 자신의 다리를 보고 무서운 공포에 사로잡혔을 때, 누군가가 와 헨리를 부축했다. 또 다른 누군가가 그의 다리를 들었다. 헨리는 후방 도시 ‘밀라노’의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나는 가만히 누운 채 고통과 함께 달리고 있었다.

 

 

병원에서 재회한 캐서린, 그리고 사랑

 

부상은 행운이었다. 부상과 우연히 만나 밀라노의 미군 병원에서 헨리는 캐서린과 재회했다. 캐서린은 헨리가 부상을 입기 전 밀라노 미군병원에 재배치된 상태였다. 육체의 욕망으로 시작된 만남이었다. 헨리는 사랑 따위는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병실문을 열고 들어오는 캐서린의 싱그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순간 헨리는 이것이 사랑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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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보는 순간 그녀에 대한 사랑이 불타올랐다. 몸속에 있는 모든 것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밤은 언제나 유쾌했고 서로의 몸이 닿기만 해도 우리는 행복했다.

 

밀라노의 밤은 ‘캐서린의 밤’이었다. 헨리와 캐서린은 밤마다 남들 몰래 병실에서 사랑을 불태웠다. 낮에는 캐서린의 간호를 받았다. 하루하루가 꿈 같았고 헨리는 행복했다. 단지 사흘, 캐서린이 밤 근무를 하지 않아 그녀를 만나지 못한 사흘, 그 사흘이 헨리에게는 먼 여행을 떠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밀라노의 밤은 캐서린의 밤이었고, 헨리에게는 유쾌하고 행복한 축복받은 시간이었다.

 

헨리가 누린 사치스러울 정도의 행복은 곧 끝이 났다. 어느 정도 부상이 치료되자 헨리는 다시 전선에 배치되었다. 그만큼 전선의 상황은 긴박했다. 전선으로 떠나는 헨리에게, 반드시 살아 올 것이라는 헨리에게 캐서린은 임신 사실을 알렸다. 걱정과 미안함이 깃든 표정으로, 지우려 했지만 지워지지 않았다는 변명과 함께 캐서린은 이미 석 달이 된 뱃속의 생명에 대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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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나지 않았죠, 자기?”

 

“그럼.”

 

“덫에 걸린 듯한 느낌이 들지는 않나요?”

 

“약간은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당신 때문은 아냐.”

 

“나 때문이라곤 하지 않았어요. 바보같이 굴지 마세요. 어쨌든 덫에 걸린 기분이 드느냐는 거죠.”

 

“인간이라면 언제나 생리적으로 덫에 걸려 있다는 느낌이 들지.”

 

 

전선 복귀와 아군의 공격

 

전선에 복귀한 헨리는 ‘고린치아’ 옆, ‘바인시차’ 전선의 앰뷸런스를 맡게 되었다. 전선의 상황은 심각했다.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 나갔고 죽지 않고 다친 병사들은 더러는 들것에 실려, 더러는 제 발로 걸어서, 또 더러는 전우들의 등에 업혀 주둔지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겁에 질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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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은 고깃덩어리를 땅속에 파묻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것이 없는 시카고의 도살장과 같았다.

 

숫자나 날짜 같은 것들이 지명과 함께 우리가 말할 수 있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이었다. 영광이니 명예니 용기니 신성이니 하는 추상적인 말들은 마을의 이름이나 도로의 번호, 강 이름, 연대의 번호나 날짜와 비교해 보면 오히려 외설스럽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죽고 다쳐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그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전쟁이었다. 헨리의 바람은 이제 오직 하나였다. 이 외설스럽고 잔인한 살육이 끝나는 것, 그것뿐이었다. 이제 이 전쟁은 헨리와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 되었다.

 

퇴각 명령이 떨어졌다. 헨리에게는 세 대의 앰뷸런스를 몰고 ‘포르데노네’로 가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헨리는 임무 완수에 실패했다. ‘우디네’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군용트럭을 개조한 앰뷸런스가 진흙 길에 꼼짝없이 박히고 말았던 것이다. 땅이 너무 무르고 진창이라 다른 차들 역시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헨리는 차를 버렸다. 그리고 운전병들과 함께 우디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미 군데군데 벌써 독일군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발의 총성이 울렸고, 헨리와 함께 길을 걷던 운전병 ‘아이모’가 쓰러졌다. 또 다른 운전병 ‘피아니’가 ‘개새끼!’라고 외쳤다. 총을 쏜 것은 독일군이 아닌 이탈리아군이었기 때문이다. 후방의 이탈리아 군대는 모든 것에 겁을 먹고 있었다. 피난민 행렬 속에 이탈리아 군복을 입은 독일군들이 숨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겁먹은 군대는 아군을 죽이고 있었다.

 

‘아 바소 글리 우피찰리!’, 후방의 이탈리아 병사들이 외치는 말이었다. ‘장교를 때려눕혀라!’라는 이탈리아 말이었다. 장교는 더 위험했다. 헨리는 자신에게 닥친 위험을 직감했다. 군중 사이에 섞여 있는 헨리에게 헌병들이 다가와 멱살을 잡았다. 헨리는 저항했으나 ‘반항하면 총살해!’는 말을 듣고 포기했다. 헨리는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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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앞에 있던 두 명의 장교가 즉석에서 총살되었다. 죄명은 ‘부대 이탈죄’였다. 그들은 소속 부대를 이탈한 소령급 이상의 장교를 처형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헨리 앞에서 심문받은 사람들 중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다. 모두 빠짐없이 총살당했다. 아군을 죽이면서, 그들은 놀랍도록 초연한 태도를 유지했고 준엄한 정의감에 불타고 있었다. 미친 전쟁의 모습이었다.

 

 

헨리, 스스로 전쟁을 끝내다

 

헨리는 헌병들을 밀어젖히고 강물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뛰어들었다. 물은 몹시 차가웠지만, 헨리는 참을 수 없을 때까지 물속에 잠겨 있었다.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고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물속에 잠겨 떠내려갔다. 더 이상 총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헨리는 자신의 몸뚱아리를 거센 물살에 맡겼다. 그리고 헨리는 강기슭으로 올라와 젖은 군복을 벗었다.

 

분노는 모든 의무와 함께 강 속에서 씻겨 내려갔다. 의무는 헌병이 내 멱살을 잡을 때 사라졌지만 말이다. 나는 외적인 형식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지만 군복을 벗어 버리고 싶었다. 소매에서 별을 떼어 버린 것은 그게 편해서였다.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미 그 일에서 손을 뗐다.

 

헨리는 스스로 전쟁을 끝냈다. 그는 전쟁과 단독 강화 조약을 맺은 것이다. 무기여 잘 있어라. 그리고 대포를 싣고 밀라노로 향하는 열차에 뛰어올랐다. 이제 헨리에게는 오직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캐서린과 뱃속의 아이였다. 그들을 다시 만나야 했다. 

 

캐서린이 떠올랐다. 그러나 만날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녀를 생각한다는 것은 미칠 것 같은 일이었다. 그녀에 대해서는 조금만 생각하기로 했다.

 

 

다시 재회한 캐서린과 평화로운 나날

 

“어머, 당신!” 캐서린이 외쳤다.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너무 기뻐서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캐서린은 행복한 눈빛으로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헨리는 드디어 캐서린과의 재회에 성공했다. 밀라노 위쪽 ‘스트레사’에서였다. 고통스러운 여정 끝에 밀라노에 도착한 헨리는 캐서린이 스트레사로 떠났다는 사실을 접하고 그도 스트레사로 와 캐서린을 다시 만난 것이었다. 스트레사는 호수의 도시였다. 아름답고 거대한 ‘마조레 호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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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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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사 위치

 

‘마조레호’는 단지 아름다운 호수만이 아니었다. 그 호수는 헨리에게 희망이자 구원이었고, 이는 캐서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전선을 이탈한 장교에게 안전한 곳이란 없었다. 헨리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헌병대의 군홧발 소리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캐서린을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떠나야 했다. 뱃속의 아이가 무사히 태어날 보금자리를 찾아야 했다. 길쭉한 모양의 ‘마조레호’의 끝은 스위스의 ‘로카르노’였다. 35km만 노를 저어가면 이탈리아를 벗어나 스위스로 들어갈 수 있었다. 헨리와 캐서린은 작은 보트에 몸을 실었다. 헨리는 노를 저었다. 그들은 정말로 스위스에 도착했다.

 

스위스는 아름다웠고 ‘몽트뢰’는 더욱 아름다웠다. 헨리와 캐서린은 몽트뢰의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산 중턱의 갈색 목조 가옥에 둘만의 보금자리를 꾸렸다. 하루하루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내리는 비마저도 이탈리아보다 상쾌했다. 이제 헨리에게 전쟁은 누군가의 대학에서 벌어지는 축구 경기처럼 아득한 것이 되었다. 캐서린의 배는 점점 불러왔고 헨리는 수염을 길렀다. 둘은 매일 밤 창밖의 어둠을 벗 삼아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차갑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밤하늘의 별과 소나무들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잠에 들었다.

 

 

캐서린의 출산 그리고...

 

캐서린은 분만을 위해 ‘로잔’에 있는 병원의 분만실에 누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헨리는 초조해서 술을 마셨다. 그러나 취해서는 안 되기에 도수 낮은 맥주를 마셨다. 병실에 도착한 것이 새벽 3시였는데 정오가 되도록 진통만 할 뿐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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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이 진통을 못 견딜 정도가 되면 의사는 캐서린의 얼굴에 고무 마스크를 씌우고 다이얼을 돌렸다. 마취가스를 주입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캐서린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캐서린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기진맥진해 있었다. 가끔씩 의사에게 ‘대줘요, 어서 대줘요’ 하고 외치고는 했다. 캐서린은 점점 지쳐갔지만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헨리는 초조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가엾고 가엾은 내 귀여운 캣(캐서린의 애칭)! 그래, 이것이 바로 함께 잠을 잔 것에 대한 대가구나. 이것이 그 덫의 끝이구나. 이것이 인간이 사랑해서 얻게 되는 결과구나.

 

의사가 헨리에게 제왕 절개 수술을 권했다.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것은 캐서린에게도 위험했기 때문이다. 의사는 수술을 빨리할수록 안전할 것이라고 했다. 헨리는 동의했다. 헨리는 불룩한 배에 시트를 덮은 채, 창백하고 피로한 얼굴로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캐서린에게 직접 마취가스를 주입해 주었다. 캐서린은 진통이 주는 고통에 비명을 질러댔다. 헨리는 마취가스 다이얼을 끝까지 돌렸다. 두려웠다.

 

제왕 절개 수술 끝에 드디어 아기가 나왔다. 5kg이나 나가는 큰 녀석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죽어서 나왔다. 아이의 목에 탯줄이 감겨 있었던 듯했다. 대략 분만 일주일 전, 그때 이미 아이는 죽어 있었을 것이다. 병원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캐서린의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헨리는 자신의 몸 속에서 뭔가가 덜컥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캐서린은 계속해서 출혈을 했으나 의사나 간호사들은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헨리는 병실로 들어가 의식을 잃은 캐서린의 옆으로 갔다. 그리고 그녀가 숨을 거둘 때까지 주욱 그녀 옆에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캐서린은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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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간호사들을 내보내고 문을 닫고 전등을 꺼도 소용이 없었다. 마치 조상(彫像)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잠시 뒤 나는 병실 밖으로 나와 병원을 뒤로 한 채 비를 맞으며 호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생리적 덫’에 걸린 인생을 살아가는 최선의 태도

 

“나는 이 소설이 비극이라는 사실 때문에 불행하지는 않았다. 삶이란 한 편의 비극이라고 믿고 있고 오직 한 가지 결말로밖에는 끝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 말은 누가 한 말일까요? 그 누구도 아닌, 이 소설의 작가인 ‘헤밍웨이’ 자신이 한 말입니다. 헤밍웨이는 이 소설의 결말에 대해 몹시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는 원고를 출판사로 보내기 전까지 마지막 장면을 무려 열일곱 번에 걸쳐 고쳐 썼다고 합니다. 그 무렵 헤밍웨이의 아버지가 권총으로 자살합니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말 ‘인생이란 오직 한 가지 결말’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리고 소설을 캐서린의 죽음으로 끝내게 됩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리적 덫’, 즉 죽음을 향해 살아갑니다. 인생이 전쟁터와 같은 이유입니다. 부자든 가난뱅이든, 권력자든 평범한 사람이든, 여자든 남자든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진리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의 마지막이 ‘예외 없는 평등’이라는 점에서 좋은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인생은 비극이라는 서글픈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 사실입니다.

 

비극이 더 심화되는 이유는 그 누구도 ‘죽음’을 경험하거나 배울 수 없다는 점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은 죽는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어. 그것에 대해 배울 시간이 없었던 거야.

 

아기의 죽음 앞에서 헨리가 마음속으로 떠 올린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죽음에 대해 배우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은 더욱 비극적입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희극으로 시작해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 수많은 축복과 격려와 환호 속에서 태어나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곧 죽음을 향한 걸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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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과 아기의 죽음을 경험한 헨리의 이후 삶이 몹시도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도 소설은 헨리가 병원을 나와 비를 맞으며 호텔로 걸어가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 이후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며 소설을 끝냅니다. 짐작하건대 아마도 그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삶 속에서 평생 캐서린을 추억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는 눈을 감으며 캐서린을 떠 올렸을 것입니다. 드디어 그녀의 옆으로 간다고 생각했다면 미소를 띠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이 예정된 비극이라고 해서 그대로 방관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일종의 직무유기일 것입니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갑니다. 행복은 인간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비극 속에서도 그나마 행복을 찾으려 하는 것, 비극의 정도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생리적 덫’에 걸린 인생을 살아가는 최선의 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누군들 죽을 때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세상 그 누가 자신의 죽음을 대신하거나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만약 위에서 말한 제 상상대로 헨리가 죽는 순간 캐서린을 떠 올리며 미소라도 지으며 죽었다면 그는 최소한 다른 사람보다는 덜 외롭게 죽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 추억, 그리고 그 사람과 같은 운명을 살았다는 동질감, 이것이 그나마 인생의 비극을 완화시키고 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이 아닌가 합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조금 더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연인, 가족들, 친구들, 뜻을 함께했거나 하고 있는 사람들. 이 모두를 지금보다 조금 더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예정된 비극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유일한 방법이자 죽음 앞에서도 외롭지 않을 단 하나의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무기여 잘 있어라’를 읽으며 제가 느낀 것입니다.

 

헤밍웨이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잉글랜드의 극작가 ‘W.S. 몸’의 말로 열다섯 번째 인생 탐구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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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 몸

 

“인생에서 최대의 비극은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을 그만두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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