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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하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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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문학동네>

 

 

도장 찍어 넘긴 ‘유자의 나라’

 

놀라워하지 말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아직 수치와 굴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인간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하늘을 보지 말고 땅을 보고 살아야 한다. 5000년을 유지한 독립국가이자 인구 2,000만(당시 콩고, 르완다 등을 식민지로 갖고 있던 벨기에 제국의 인구가 700만이었다)의 나라가 세계사에서 사라지는 데 총성 한 방 울리지 않았다.

 

도장을 찍어서 한 나라의 통치권을 스스로 넘긴다는 것은 보도 듣도 못한 일이었으나, 조선의 대신들은 국권을 포기하는 문서에 직함을 쓰고 도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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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병탄 조약 당시 전권위임장. 관례와는 다르게 순종의 이름(坧)이 서명에 들어갔다. 그러나 坧은 순종의 친필이 아니다. 한마디로 날조라는 말.

1905년 제2차 한일협약, 을사늑약으로 나라의 통치권을 넘기는 것은 정부 대신들의 도장으로 이루어졌다. 그 어떤 저항도 없었다. 일본은 나란히 서지도 못할 강력한 제국, 영국과 프랑스가 인도와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을 때도 몇십 년이 걸렸고 수많은 전투가 있었다. 그러나 ‘유자의 나라’ 조선은 종이 쪼가리에 도장을 찍은 것으로 스스로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군대가 있었으나 허울뿐인 ‘황제’라는 감투를 쓴 ‘순종’은 전투명령 대신 해산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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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순종 황제

 

너희들은 나의 뜻을 헤아려서 각자 맞는 일거리를 찾아서 살아라.

 

군대를 해산시킬 때 폭동에 미리 대비하라. 혹시 폭동을 진압할 일이 있으면 이토 통감에게 의지하고 부탁하라.

 

이것이 자국의 군대를 해산시키며 ‘황제’가 자신의 ‘병사’들과 ‘내각’에 지시한 내용이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이토록 부드럽게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전 과정에는 ‘이토 히로부미’의 설계가 있었다. 이토는 단지 식민지 조선의 초대 통감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의 두뇌였으며 심장이었다. 그는 ‘일본 최고의 거물’이었다. 그는 ‘메이지 유신’의 지도자였고 ‘최연소 총리’였으며 ‘시모노세키’에서 출발하여 부산을 거쳐 ‘하얼빈’에서 러시아로 연결되는 일본 제국주의의 설계자였다. 그는 ‘온건파’라는 가면을 쓴 ‘일본 제국주의의 두뇌’였다. 이것이 일본인들이 1984년까지 1,000엔짜리 지폐를 그의 초상으로 꾸몄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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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의 시간’을 멈추려는 청년

 

노루는 바위에 올라 있었다. 노루와 안중근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가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를 방아쇠에 걸었을 때, 그의 조준선에는 모든 주변 풍광이 사라지고 오직 목표물인 노루만이 또렷하게 보였다. 방아쇠를 당기자 총의 반동이 오른쪽 어깨를 때렸다. 안중근은 맞서지 않고 몸 안으로 총의 반동을 받아들였다. 솜씨 좋은 포수 안중근에게 삼백 보 앞의 노루를 잡는 데는 단 한 발의 탄환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아름다운 솜씨다. 짐승을 쏘기에는 아깝구나.

 

황해도 안씨 가문의 장남이자 솜씨 좋은 포수, 서른한 살의 청년 안중근은 환각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환각은 사랑하는 갓난아이 아들의 분홍빛 잇몸이 발산하는 빛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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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사의 부친 안태훈 진사와 모친 조마리아 여사

 

농장기를 들고 일어선 사람들은 총 맞아 죽고 베어져 죽고 매맞아 죽고 얼어 죽고 굶어죽고 앞선 자들의 주검 위에 포개져서 죽었다. 시체들의 흩어진 살점과 터진 창자까지 빛 속에서 환히 보였다.

 

유자, 사대부, 정부 각료, 왕과 왕족들. 이들이 도장 찍어 나라를 넘길 때, 오히려 평생 천대와 착취의 대상으로만 살아왔던 무지렁이 백성들이 저항을 시작했다. 삼남의 들판이 백성들의 시체로 뒤덮히고 있었다. 

 

청년 안중근의 젊은 혈기는 그에게 학교를 열어 학생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며 살아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에게 교육이 백 년 앞을 준비하는 것이라며 달랬으나, 안중근은 지금 당장과 연결되지 않는 백 년 앞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적의에 찬 시간 앞에 홀로 서 있었고, 그의 혈기가 운명에 대답했다. 이토를 만나는 것, 만나서 그의 존재와 그의 영향력을 함께 지우는 것 이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안중근은 이토의 육신에 목숨이 붙어서 작동하고 있는 사태를 견딜 수 없어하는 자신의 마음이 견디기 힘들었다. 이토의 목숨을 죽여서 없앤다기 보다는, 이토가 살아서 이 세상을 휘젓고 돌아다니지 않도록 이토의 존재를 소거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바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

 

 

가족을 떠나 이토가 서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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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사의 동생 안정근(좌), 안공근(우)

 

형님, 가지 마시오. 여기서 삽시다.

 

여기는 이미 이토의 땅이다. 나는 살아 있기 때문에 살길을 찾아가겠다. 이것은 벌레나 짐승이나 사람이 다 마찬가지다. 이것이 장자의 길이다.

 

사랑하는 형제와 문중 어른들의 근심어린 눈, 젊은 아내 ‘김아려’의 눈물과 셋째 임신으로 불러오는 배, 그리고 젖먹이 혈육들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피부도 안중근의 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고향을 떠나겠다는 안중근의 말은 의논이 아니고 통고였다. 사람들은 그의 뜻을 알기에 오히려 떠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현실이 그들에게 안중근이 통고한 이별을 이해시켜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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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거 다음 날인 1909년 10월 27일

안 의사 부인 김아려 여사(왼쪽)와

아들 분도(오른쪽)・준생(가운데)

 

안중근은 자신이 세례를 받던 날을 떠올렸다. 그날 안중근은 기쁨과 함께 밝은 빛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천주의 힘으로 악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토마스(도마)’, 이것이 안중근의 세례명이었다. 안중근은 마음속에 자신의 세례명을 새겼다. 떠나기 전 ‘빌렘’ 신부를 만나야 했다. 고해성사가 하고 싶었고 그의 축복과 기도가 필요했다.

 

...... 도마야, 악으로 악을 무찌른 자리에는 악이 남는다. 이 말이 너무 어려우냐? 네가 스스로 알게 될 때는 이미 너무 늦을 터이므로 나는 그것을 염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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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렘 신부

 

빌렘 신부는 말을 마음속으로만 하고 안중근에게는 하지 않았다. 기도하는 빌렘을 바라보는 안중근에게 흰 수염을 쓰다듬고 있는 이토와 끝없는 벌판에 가득 쌓여 있는 시체들의 환영이 떠올랐다. 안중근이 일어서서 물러가려 할 때, 빌렘은 오직 겟세마네의 예수를 향해 기도를 드릴 뿐이었다.

 

우라지(블라디보스토크), 이곳이 안중근의 1차 목적지였고, 그곳에는 ‘하얼빈’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그 길은 청년 안중근이 걸어야 할 길이었으며, 그 길의 끝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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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의 얼굴을 익히고, 의지를 다지다

 

블라디보스토크 앞, 두만강을 건너면 만나는 연추(연해주)에서 안중근은 독립군 참모중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두만강을 건너 전투를 벌이던 중, 안중근이 살려준 일본군 포로 때문에 안중근의 부대는 위기에 처했다. 이것이 이유가 되어 안중근은 연추에서 어렵게 처신하고 있었다. 그런 안중근의 눈에 신문에 실린 이토의 모습이 빨려 들어온 것이다. 

 

이것이 이토로구나. 신문에 실린 사진 속 이토는 소문처럼 작은 몸으로 순종과 함께 ‘만월대’를 배경으로 서 있었다. 만월대는 멸망한 고려의 왕궁이다. 그 둘의 뒤로는 만월대 계단이 보였고 그 계단 너머로는 폐허가 된 왕궁터가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오백 년 전에 멸망한 고려 왕조의 폐허가 오늘 아침의 멸망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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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서북순행 당시 사진. 이토도 동행했다. 

출처-<국립고궁박물관>

 

이토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은 자각 증세가 없는 오래된 암처럼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었는데, 만월대의 사진을 보는 순간 암의 응어리가 폭발해서 빛을 뿜어내는 것 같았다. 안중근은 몸을 떨었다.

 

신문 속 이토의 사진은 벼락처럼 안중근을 때렸고, 그 벼락이 시야를 열었다. 안중근의 몸속 먼 곳에서 흐린 구름처럼 밀려나는 이토의 모습이 선명한 모습을 갖추고 그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일본 제국주의가 대륙으로 뻗어나가려는 전초기지, 만주에 이토가 온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만주철도를 순시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철도는 쇠로 실현한 제국주의였다. 남만주 철도는 이토와 일본의 꿈을 현실로 바꿔줄 핏줄이었다.

 

이토가 오고 있다. 안중근은 더 이상 연추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야 했다. 그곳에서 정확한 이토의 여행 일정을 확인해야 했다. 안중근은 자신의 몸이 살아 있을 때 살아있는 몸으로 부딪쳐야 할 운명을 재차 확인하며 의지를 다졌다.

 

신문 속 이토의 사진을 보면서 안중근은 조준점 너머에서 자신을 부르는 손짓을 느꼈다.

 

 

동지를 만난 청년

 

확실했다. 이토가 온다. 그의 남만주 철도 시찰의 끝은 하얼빈이었다. 안중근의 눈앞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가는 철도가 펼쳐졌다. 철도는 눈과 어둠 속에 뻗어 있었고, 그 먼 끝에서 이토가 오고 있었다. 철도는 안중근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그 손짓은 안중근이 거역할 수 없는 강렬한 끌림 같은 것이었다.

 

안중근은 우덕순을 만났다. 우덕순은 안중근이 연추에서 벌인 무장투쟁을 함께 한 동지였다. 아무 말 없이, 마치 제 손으로 밥을 벌어먹듯이 싸웠던 우덕순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신문 수금원을 하고 있었고, 담배를 말아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시 만난 안중근과 우덕순은 서로 별말이 없었다. 둘은 말을 아끼고 있었다. 꼭 필요한 말만 했다. 그러나 말의 양과 관계없이 동갑인 둘은 서로 마음의 힘을 느끼고 있었다. 안중근은 우덕순에게 말없이 신문을 내밀었다.

 

이토가 온다는 얘기냐?

 

그렇다. 하얼빈으로 온다.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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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덕순

 

투스키섬의 등대 불빛이 우덕순의 얼굴을 비췄다. 우덕순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안중근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우덕순은 안중근이 온 이유를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안중근은 우덕순에게 같이 가자는 말도 하지 않았지만, 우덕순은 그와 함께 가는 것이 자신의 운명임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 운명을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생각도 함께했다. 그 생각의 끝에는 이토를 쏘아야 한다는 뚜렷하고 밝은 목표가 자리 잡고 있었다.

 

 

두 청년의 걱정은 제대로 죽지 못하는 것일 뿐

 

총알 세 발은 너무 적지 않나?

 

세 발은 많지 않지만, 적지도 않다. 세 발이면 적당하다. 이토는 경호원을 여럿 데리고 있을 테니까 아마도 나는 세 발 이상은 쏘지 못할 것이다. 근접할 수만 있다면 세 발 이상은 필요 없다.

 

우덕순에게는 권총 한 자루와 세 발의 총알이 있었다.

 

자네는 몇 발 가지고 있는가?

 

일곱 발짜리 탄창 한 개다. 그리고 몇 발 더 있다.

 

다 쏠 수 있을까? 탄창을 갈아 끼울 시간은 없을 것이다.

 

안중근에게는 권총 한 자루와 일곱 발의 총알이 있었다.

 

알았다. 여비는 내게 맡겨라.

 

생업이 없이 떠도는 사람이 어찌 돈을 구할 수 있겠는가? 무슨 방편이 있는가?

 

그런 것은 말하지 않겠다. 앞으로도 묻지 마라.

 

안중근은 ‘이석산’을 권총으로 협박해 뺏은 백 루블이 있었다. 이석산은 별다른 저항 없이 안중근에게 백 루블을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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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사가 갖고 있던 벨기에제 브라우닝 권총. 

이 권총으로 이토를 사살했다.

 

둘은 대화를 나누며 웃었다. 예정된 죽음을 계획하며, 서른하나로 인생을 끝내기로 하는 자리에서 둘은 웃었다. 이 청년들은 가난했고 세상의 그 어떤 위력에도 의지할 곳이 없었으나 그들은 두려움도 걱정도 없었다. 있다면 오직 하나, 자신들에게 주어진 소명을 완수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사는 것이 아니고 제대로 죽지 못하는 것이 그들의 걱정이었다. 

 

권총 두 자루와 열 발의 총알, 그리고 백 루블의 여비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려는 두 청년의 기개가 웃음 속에서 뿜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폭발하고 있었다. 안중근과 우덕순, 동갑내기 두 청년의 청춘은 빛나고 있었다.

 

그날 밤, 둘은 안중근의 방에서 함께 잤다. 둘은 잠이 들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륙의 산맥과 강 위로 뻗어나간 철도들이 어둠 속에 펼쳐졌다. 철도의 저쪽 끝에서 이토는 오고 있었다. 그날 밤 안중근은 깊이 잠들었다.

 

 

청년, 제국주의의 심장을 쏘다

 

하얼빈에 도착한 안중근과 우덕순은 깨끗한 옷을 사 입고 이발소로 가 머리를 단정하게 다듬었다. 그리고 찾지 못할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관으로 갔다. 둘은 나란히 사진관 의자에 앉아 인생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러시아 사진사가 손가락 다섯 개를 내밀었다. 닷새 뒤에 찾으러 오라는 것이었다. 그 둘 중 누구도 닷새 후에 그 사진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안중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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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진관에서 찍었던 사진.

왼쪽부터 안중근, 우덕순, 유동하

러시아어에 능통하지 않았던 안 의사였기에,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후 러시아어가 능통한 유동하가 통역으로 참여했다. 

 

이토가 휴식을 위해 하얼빈 전, 채가구 역에 내릴 수도 있었다. 우덕순이 채가구를 맡았다. 이토가 그곳에서 내린다면 우덕순이 쏠 것이다. 하얼빈에서 내린다면 안중근이 쏠 것이다. 안중근은 우덕순에게 총알 네 발을 더 건넸다. 그리고 거사 전에 밥을 사 먹으라고 사 루블을 같이 주었다. 둘은 신문에 실린 이토의 사진을 보고 또 보았다. 키가 작았기에 표적을 구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토를 쏘는 것을 상상하며 권총을 점검했다.

 

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기적소리를 토해내며 열차가 하얼빈역으로 들어왔다. 이토가 객차에서 내렸다. 채가구 역은 지나친 것이다. 일본인 환영객들이 일장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러시아 의장대는 이토에게 받들어 총으로 경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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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가

안 의사에게 사살되기 직전의 모습

 

저것이 이토로구나...... 저 작고 괴죄죄한 늙은이가...... 저 오종종한 것이......

 

안중근은 상의 안주머니에 들어 있던 권총을 꺼냈다. 좌우의 키 큰 러시아 군인들 틈새 사이로 이토가 보였다. 이토가 안중근의 조준선 위로 올라왔다. 안중근의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가 권총의 방아쇠를 직후방으로 당겼다. 손가락은 저절로 움직였다.

 

총의 반동을 손아귀로 제어하면서 다시 쏘고, 또 쏠 때, 안중근은 이토의 몸에 확실히 박히는 실탄의 추진력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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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은 세 발의 총알을 이토의 몸에 박아 넣었다. 탄창에는 네 발이 남아 있었다. 안중근은 혹시라도 자신이 쏜 대상이 이토가 아닐 수도 있었기에 이토 주변의 일본인 세 명에게 세 발의 총알을 발사했다. 안중근은 명사수였다. 한 발, 한 발, 정확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총구를 떠난 총알은 그가 원하는 목표에 명중했다. 세 발의 총알에 세 명의 일본인이 쓰러졌다. 탄창 안에 쏘지 못한 한 발을 남기고 안중근은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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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는 곧 죽었다. 이토는 하얼빈역 철로 위에서 죽었다.

 

체포된 안중근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안중근은 항소를 하지 않았다. 안중근은 여순 감옥으로 면회 온 동생 안정근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자신의 무덤을 하얼빈 마련했다가 조국이 독립하면 뼈를 옮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는 이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1910년 3월 26일, 여순 감옥 사형장에서 안중근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교수형이었다. 일제는 땅을 치며 통곡하면서 시신을 요구하는 안중근의 동생 안정근과 안공근의 요구를 묵살했다. 그리고 감옥의 공동묘지에 그 어떤 표시도 없이 매장했다. 그들은 안중근의 삶과 행동을 지우려고 했다. 그들은 안중근이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주교 조선 대목구장 ‘뮈텔 주교’는 공식적으로 안중근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고 했다. 안중근은 파문당했다. 안중근은 교수형으로 한 번, 파문으로 또 한 번, 두 번의 죽음을 감당해야 했다. 이것이 제국주의를 향해 총을 쏜 청년이 받아야 할 형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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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선교사 뮈텔 주교

 

 

청년 안중근이 건네는 말

 

한국 청년 안중근은 그 시대 전체의 대세를 이루었던 세계사적 규모의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서 있었다.

 

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 있는 몸에 대해 말하려 했다.

 

오늘 소개하는 소설 ‘하얼빈’을 쓴 ‘김훈’ 작가의 말입니다. 인생은 길지만 청춘은 짧습니다. 그래서 청춘은 더 빛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안중근은 불행하게도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20세기 초, 제국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던 시대에 맞이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청년 안중근은 제국주의 시대라는 현실에 맞서 자신의 청춘을 바쳤습니다. 그의 용기와 투지, 천하를 뒤덮은 기개는 그가 청춘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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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시대가 끝나고 우리 사회에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한국이라는 사회에서는 두 시대가 놀랍도록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의 무당 ‘수련’은 태황제의 총애를 입어서 궁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대궐을 드나들었다. 수련은 원구단에서 가까운 자리에 굿판을 벌이고 노래하고 춤추어서 총 맞아 죽은 이토의 혼백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빌었다. 태황제는 늘 수련에게 상금 명목으로 많은 돈을 주었다.

 

황제(순종)가 이토의 사살이라는 사건 앞에서 벌인 일입니다. 총 한 방 쏘지 않고 나라를 넘긴 황제, 자국의 군대를 해산시킨 무능하고 유약한 황제가 일개 무당에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 인용문을 읽는 순간, 오늘날 우리 사회의 최고 권력 집단이 있는 ‘용산’의 행태를 떠올리는 사람이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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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신문> 1909년 10월 29일 자.

대한제국 대황제 폐하(순종)가

"吾國(아국)의 兇手(흉수)"에게 목숨을 빼앗긴

이토 히로부미의 서거를 추도한다는 전문을

일본 천황에게 보냈다는 기사. 

출처-<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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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1월 4일 거행된 이토 히로부미의 장례.

일본 역사상 국왕의 장례를 제외하고는

최고의 격식을 갖춘 장례 행사였다고 한다.

대한제국의 진사 사절단은 안중근의 만행을

진심으로 사죄하며 이토의 명복을 빌었다. 

출처-<프레시안>

 

무능하고 부도덕한 집단들이 권력을 차지하고 있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는 점에서 두 시대는 차이가 없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이라면 그때와 지금이 놀랍도록 닮았다는 제 말에 동의하실 것입니다. 두 시대가 닮았다면 청년 안중근의 고뇌와 선택, 그리고 행동도 동일한 무게로 오늘날 다가옵니다. 

 

인생에 단 한 번뿐인 청년기, 그 시기에 빛나는 삶을 살아야 할 청년들이 하루하루 힘겹게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만든 사회를 살며 힘겨워합니다. 각자도생은 약육강식이기에 경쟁이 치열합니다. 이 경쟁에서 단 한 번이라도 패배한다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인지를 청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부모가 부자가 아니라면 그 결과는 대단히 치명적일 것이고 아마도 극복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청년들은 더욱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 두려움 때문에 모욕과 조롱과 굴욕을 참아내고 있습니다. 빛나야 할 시기에, 그들의 기개가 세상을 호령해야 할 시기에 청년들은 오히려 작아지고 있습니다. 그런 청년들에게 안중근이 말을 건넵니다.

 

‘무직’이며 ‘포수’인 안중근은 약육강식하는 인간세의 운명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 안중근은 말하고 또 말한다.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

 

안중근이 건네는 말이 서늘하게 다가옵니다. 그가 말이 아닌 총으로, 머리가 아닌 몸으로 말을 건넵니다. 그러니 듣는 사람도 몸으로 반응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청년들이 총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두려움을 떨치고 자신의 인생을 빛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인생 속에 굴욕적 인내를 강요하는 것이 있다면, 도전이 아닌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 있다면, 청년들이 총을 들어 그것들을 향해 쏘았으면 좋겠습니다.

 

견디기 힘든 모욕의 시대, 청년들에겐 더욱 견디기 힘든 시대입니다. 어른들은 청년들이 총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했으면 좋겠습니다. 청년들이 청년답지 않다고, 왜 청년들이 악과 싸우지 않고 오히려 타협하냐고 꾸짖기보다는 그런 사회를 만든 것에 반성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한 어른이 소설 ‘하얼빈’ 속 안중근의 인생을 읽으며 느낀 것입니다.

 

다시 한번 청년들의 호령이 세상을 흔들기를 바라며, 그들의 인생이 더욱 빛나기를 바라며 열여섯 번째 인생탐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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