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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던 것처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발의되자 언론들이 한국 자동차 사업이 백척간두에 놓인 것처럼 난리다. 아마 현대-기아차를 40여 년 전 포니를 만들던 회사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럴 리가.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통과되고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되자마자 너무 놀란 정의선 회장이 어떻게든 수습해보려고 급히 미국에 간 것처럼 보도했다. 정 회장이 그런 이유로 미국에 갔다면 두메산골에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목동이지 2021년 전 세계 3위 판매량을 기록한 세계적인 자동차 그룹의 총수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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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8월 16일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한 펜을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에게 건네주고 있다

출처-<링크>

 

기억을 두 달 전으로 되돌려 보자. 지난 5월 하순 출국하는 날, 바이든 대통령이 정 회장을 만나고 기자회견을 했다. 정 회장과 어깨에 손을 얹고 나란히 걷던 바이든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바이든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정의선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다정하게 사진을 찍고 초대형 투자 약속까지 받아냈던 바이든 대통령이 석 달도 안 돼 정의선의 뒤통수를 보란 듯이 후려쳤다? 동네 골목 양아치 우두머리라면 모를까, 세계 최강대국 미 대통령이 할 짓이라기엔 너무 치졸하다.

 

세계 3위 완성차 판매량을 기록한 세계적인 대기업 현대차가 사전에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발의와 통과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는 정보원이나 로비스트를 워싱턴에 한 명도 두지 않았을까?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 시장을, 대한민국 최대 자동차 회사가 지금도 40년 전처럼 정보망이나 의회 로비스트 하나 없이 구멍가게에서 눈깔사탕 팔 듯 자동차를 팔고 있을까?

 

대한민국 기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저런 기사를 쓰고 서로 베끼기 바쁠 것이다. 덕분에 정의선 회장은 졸지에 동네 구멍가게 사장,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목동 신세가 되었다. 심지어 일이 터지자마자 기민하게 미국으로 날아가는, 정말 최악의 상사, 무능한데 부지런한 기업 총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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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기간 중

열린 행사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출처-<연합뉴스>

 

이렇게 앞뒤 분간 못하니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대한 기사나 전문가 인터뷰를 듣다 보면 한결 같이 앓는 소리, 푸념과 탄식만 들린다. 전문가라고 나오는 이들의 분석도 천편일률적이고 대충 대충 비슷한 논조다.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면서 어떤 법인지를 제대로 설명해 주지도 않는다.

 

기후 위기 네 번째 기사를 쓰다 말고 도대체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궁금증을 갖지 말아야 했다. 법안 원문을 내려받고 후회가 밀려왔다. 최종 통과된 법안은 800쪽에 가까웠다. 알다 모를 도전 의식과 호기심 과다 분비가 늘 문제다. 덕분에 예정에도 없었고, 그 누구도 시키지도 않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주제로 한 기후 위기 번외 편이 쓰였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 이름이 왜 이래?

 

법 이름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급조된 인상을 준다. 바이든이 11월 중간선거 때문에 대중들의 뇌리에 콱 꽂히는 직설적인 이름을 선택했다는 게 중론인데 여기서 남들 다 하는 소리를 굳이 부언할 필요는 없겠다. 이 법이 지향하는 목적은 네 가지로 압축된다.

 

1) 인플레이션 및 재정 적자 감축

 

2) 정부 의료보장 확대

 

3) 에너지 안보와 자동차 산업 구조 전환

 

4) 기후 위기 대처

 

제목은 인플레이션 감축이지만 이 법은 다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우리 언론은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쟁탈 구도와 현대-기아차의 위상과 연계해서 세 번째 목적이 이 법의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집중적으로 보도했지만 실제 내용은 매우 복합적이다. 지출 명세 중 가장 금액인 많이 배정된 것도 에너지 안보와 관련된 항목들이지 전기 자동차 산업이 아니다.

 

인플레이션 감축을 법안 제목으로 삼을 만큼 실질적인 인플레이션 감축 효과를 가진 법안이 맞을까? 맞다. 이 법안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인플레이션 감축을 도모하려고 한다. 조세 정책을 통한 통화 회수와 수요 조절을 통한 상품 가격 하락 유도. 이 두 가지는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 상식적으로 흔히 쓰이는 물가상승 관리 방법이다. 사실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지금처럼 이자율을 높이거나, 보유 채권을 팔아 시장에서 돈을 회수하거나, 세금을 높이는 방법 말고는 정부가 돈을 거둬들이기 위해 쓸 수 있는 통화정책이 별로 없다.

 

이 법은 법인세를 더 걷고, 국세청의 세금 징수를 강화하고, 자사주를 매입하는 기업에 수수료를 물려 정부가 직접 시장에서 조세로 통화를 회수하고 재정 적자를 완화하려고 한다. 그래서 법안 전체가 균형이 아닌 흑자 구조로 짜였고 법안의 시작도 적자 축소(deficit reduction) 내용으로 시작한다.

 

세수 규모는 직접 거둬들이는 조세와 함께 정부 의료보험 약값 조정을 포함해서 총 7,370억 달러인 반면, 지출은 4,370억 달러로 세수가 지출보다 3,000억 달러 이상 많다. 이렇게 더 걷어 들인 3,000억 달러로 재정 적자까지 줄여 보겠다는 것이다.

 

수요 조정을 통한 인플레이션 감축 방안은 자동차 등 운송 산업과 발전 분야에 사용되는 화석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서 석유 수요를 줄이는 것이다. 수요가 줄어 공급 과잉 상태가 되면 석유 가격은 자연스럽게 내려가게 된다. 이 효과가 어느 정도의 규모가 될지를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미국 내에서만 운송 산업과 주거·상업·발전 분야에 사용되는 석유 제품의 사용량은 전체 사용량의 70%를 상회한다. 이 중에서 반이 줄면 전체 수요의 35%가 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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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과 영역에 따른 석유제품 소비

[부문별 이용 : 운송 67%, 산업 27%, 주거·상업·발전 6%]

 

운송과 발전 이외 분야에서 사용되는 석유제품의 양이 30% 정도 되니까, 운송과 발전 분야에서 수요를 반만 줄여도 나머지 산업 분야의 수요를 모두 충당할 수 있다.

 

미국은 국내 석유 소비 전량을 자체 생산으로 감당할 수 있는 세계 최대 산유국이다. 이 말은 운송과 발전 부문에서 재생 에너지로 대체되어 절약되는 석유만큼 수출할 수 있게 된다는 소리다. 이렇게 되면 국제 석유 시장은 공급 과잉 상태가 되고 석유 가격은 내려간다.

 

얼마나 가격이 내려갈까? 코로나 사태로 2020년 4월 미국 석유 소비는 1~3월 대비 31%까지 줄었던 것으로 미국 에너지 관리청이 추정했다. 이때 북해 브렌트유의 가격은 1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심지어 미국 내 서부 텍사스 원유의 가격은 마이너스 가격이 되었다. 마이너스 가격이라 함은 극단적으로 설명해 석유를 가져가주면 돈을 준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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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에너지 정보청(EIA)은

석유제품 공급량 집계를 통해 소비량를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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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는 2020년 4월 바닥을 찍는다

 

미국 소비가 30% 정도 줄어들자 세계 석유 가격은 이렇게 요동을 쳤다. 물론 당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석유 소비량도 코로나 이전 대비 25~30% 정도 줄었다. 이를 근거로 운송과 발전 부문의 석유 소비량이 줄게 되면 석유 가격이 얼마나 내려갈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 가격의 1/10~1/5까지 떨어질 수 있다.

 

원재료 가격이 내려갔으니 제품 가격이 내려가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아주 못된 인간들이 아주 고약한 의도로 담합해서 가격 하락을 막지 않는 한 석유가 촉발하는 공급 불안으로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은 수그러드는 게 당연하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석유 수출을 하게 되면 지금처럼 생산량을 조절하여 가격을 통제하던 OPEC의 영향력도 상당히 약해지게 될 것이다. 결국 미국이 에너지 전환으로 석유 수출량을 늘어나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플레이션 감축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라는 이름을 이 법에 붙인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좀 촌스럽고 너무 직설적이긴 하지만 이 법이 제대로 시행되면 인플레이션 압력은 완화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인플레 감축법, 착하거나

 

저소득 계층과 기후 위기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을 가졌기에 이 법안은 제법 착한 법안이다. 정부 보장 의료보험(affordable care)법을 연장하고, 장기간 계속된 서부 가뭄으로 고생하는 농민들과 공동체를 지원하는 것 등 미국 내 기후 위기와 불평등으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현안에 꼭 필요한 조치가 담겨 있다. 트럼프가 기를 쓰고 방해하던 오바마 케어(Obamacare)의 일몰을 2025년까지 연장해서 너무 비싼 의료비 때문에 치료 기회를 국민들이 스스로 포기하지 않도록 조치한 것만으로도 착한 법이 맞다.

 

기후위기에 관해서도 착한 법 맞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급한대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효과적인 방안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역사적'이라는 수식을 붙일 만하고 스티글리츠 같은 진보적 경제학자가 여기 저기 매체마다 같은 글을 복붙하며 지지를 표명할만하다.

 

온실가스를 가장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법은 도로에서 화석연료를 태워 움직이는 차들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줄면 온실가스도 준다. 이는 코로나가 창궐해서 봉쇄(lockdown)했던 기간동안 확인된 사실이다. 2020년 초기는 미국과 유럽은 코로나 확산을 방지하려고 락다운을 했다. 사람들의 활동이 멈추자 석유 소비가 줄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약 17% 정도 감소했다(Corinne Le Quéré et al., “Temporary reduction in daily global CO2 emission during COVID-19 forced confinement”, pp 647~654, Nature Climate Change Vol. 10, 2020).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당연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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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가끔 환경 효과에 대해 기대보다 회의적인 것처럼 말하는 전문가나 기자들이 눈에 띄는 데 그럴 필요 없다. 이 부분은 그냥 인정하면 된다.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이 법은 기후위기에 걱정인 전 세계인들이 두 손, 두 팔 들고 환영해도 된다. 지금까지 기후위기 와 환경 문제에 아주 밥맛 없게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던 미국의 법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적극적이다.

 

인플레 감축법, 못됐거나

 

그렇다고 착하기만 한 법은 아니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게는 대외 무역 분쟁의 소지가 다분한 못된 법이다. 특히 이 법의 세 번째 목적인 에너지 산업과 자동차 산업 구조 전환과 관련된 내용들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온갖 보조금과 세금 혜택을 촘촘히 박아 놓으며 보호무역주의를 보란듯이 포장해 놓았다. GAAT와 WTO 같은 현대 자유주의 무역 구조를 선도적으로 만들며 타국의 관세와 보조금을 사사건건 문제 삼던 이전 미국을 생각하면, 주인공이 입술 옆에 점 하나 찍고 전혀 다른 사람인 척했던 어떤 막장 드라마가 자꾸 떠오른다.

 

세계 제조 공장으로 영원히 이인자로 남아있길 원했던 중국이 자신 못지않게 패권 쟁탈에 목매고 있으니 미국의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중국을 왕따시키고 자기 뒤에 줄 서라고 겁박하는 듯한 법안을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이 곱게 볼 수는 없다. 덩치로는 세계에서 둘째가라 하면 서러울 미국, 중국 심지어 러시아까지 19세기 제국주의 시절에나 어울릴 패권 쟁취에 혈안이 되어 있으니 말문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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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SBS 뉴스>

 

제임스 웹 망원경으로 130억 년 전 초기 우주까지 내다 볼 수도 있는 시절에, 소위 강대국 정치인들과 일부 국민들의 의식이 이렇게까지 퇴행할 수 있을까 싶다. 20세기 잠시 누린 풍요의 대가로 아주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국경 없는 21세기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를 유일하게 해결할 방법이 연대와 호혜 밖에는 없다는 건 자명한데 말이다.

 

법 조문에 촘촘히 박아 놓은 보호무역주의보다 더 고약한 것이 있다. 이걸 보면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 내 뒤뜰에는 안 되지!)는 미국의 본성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언론들이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가 달렸다고 떠들고 있는 전기자동차 부분에서 이 님비 정신이 휘황찬란하게 빛난다.

 

이 법에 따르면 전기자동차의 최종 조립(final assembly)은 북미지역(North America)에서 해야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이 조항은 현대-기아차 때문에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전기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도 최종 조립은 북미 지역에서 해야 한다. 문제는 배터리 제조에 꼭 필요한 핵심 광물(critical mineral)이다. 핵심 광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희토류(rare earth element)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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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지프(Jeep) 전기차 '랭글러 4xe'를 시승하는 바이든

 

이 법은 핵심 광물의 원산지는 따지지 않는다. 어디서 채굴하건 상관없다. 그곳이 중국이라도 괜찮다. 희토류 매장이 중국·미얀마·호주·콩고 등 일부 지역에 편중된 탓도 있지만 집적되지 않은 희토류 광산을 개발하는 것은 회복하기 어려운 환경 파괴를 가져오기 때문에 환경 규제가 심한 서구 국가에선 희토류 광산 개발을 꺼린다. 미국도 마운틴 패스 광산이 유일한 희토류 광산이다. 토지오염·대기오염·물 오염·방사능 오염까지 희토류 생산 모든 과정이 한마디로 인간이 할 수 있는 환경오염 행위의 종합 선물 세트다. 그러니 채굴지는 불문에 부치는 것이다.

 

채굴뿐만 아니라 추출 과정에서도 심각한 환경 오염이 따른다. 호주에서 채굴된 원광을 말레이시아로 가져가서 추출·가공하거나 미국의 마운틴 패스 광산에서 채굴된 원광을 중국으로 가져가 추출·가공하는 것도 환경 문제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미국 내 환경 법규와 보호 기준들을 완화하지 않으면 이 광물들을 미국 내에서 추출하고 가공할 수 없다.

 

이 법이 유일하게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나라, 즉 미국 밖에서도 핵심 광물의 추출·가공할 수 있게 허용하는 이유다. 배터리를 빼면 이 법에서 언급된 어떤 제품도 북미지역(North America) 혹은 미국(the United States)과 미국령(the possession of the United States) 외에서 최종 조립할 수 없다.

 

결국, 미국은 온실가스를 배출이 상대적으로 적고, 환경 오염이 덜한, 아주 청정한 제조 부문만 역내로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자기 손에는 기름도, 먼지도, 피도 묻히지 않겠다는 소리다.

 

미국 내 제조 기반을 회복시키되 청정한 것만, 깨끗한 것만 가져오겠다는 건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 에너지 산업 분야의 관련 조항을 봐도 확인된다. 태양광 발전이나 풍력발전 같은 재생 에너지 발전 분야에서 많이 쓰이는 소재는 철강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르면 철강 소재도 무조건 미국산이어야 한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예외를 두는데, 미국산이 너무 비싸서 건설비용이 25% 이상 증가하거나, 미국 내에서 생산이 안 되는 특수한 소재인 경우에 그렇다. 어라, 에너지도 많이 쓰고 온실가스도 많이 배출하는 철강을 미국산으로 고집하는 걸 보면 앞서 자기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겠다고 비난한 것은 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든다. 물론 아니다.

 

현 공법으로 순수한 철을 얻으려면 이산화탄소의 발생은 피할 수 없다. 철광석은 산소와 결합한 산화철 상태로 채굴된다. 이걸 순수한 철로 제련하려면 일산화탄소를 사용하여 철과 결합한 산소 분자를 산화철에서 떼어내는 환원 과정이 필요하다. 고로에 철광석과 함께 석탄을 구워 만든 코크(coke)를 함께 부어 넣는 이유다. 코크 연소에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로 철에 붙은 산소를 떼는 환원 과정을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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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물을 생산하는 제철소 용광로의 원료와 연료

출처-<포스코>

 

이렇게 철광석에서 순수한 철을 추출하고 필요한 합금을 만드는 정련 과정을 야금(冶金, metallurgy)이라 한다. 온실가스는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배출된다. 그런데 이 과정은 미국산 사용(Buy America)을 규정한 미연방 규정 41조 661.5항(Section 661.5, Title 49, Code of Federal Regulation)에 의해 미국산 지정에서 제외했다. 야금 과정은 어디에서 하든 상관없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재생 에너지 산업에 꼭 '미국산' 철강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화석 연료인 석탄을 사용해서 대규모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야금 과정은 제외하고 화석 연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이후 공정만 미국 내에서 하면 된다는 뜻이다.

 

아마 정 회장이 약속한 조지아 현대-기아자동차 공장이 지어지면 여기에 쓸 강판을 현지에서 조달하기 위해 현대제철도 기존 시설을 증설하거나 새로운 공장을 짓겠지만 고로를 놓을 필요는 없다. 솔직히 말하면 이산화탄소를 뿜어 대는 고로를 미국에 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이산화탄소를 줄여야 하는 미국이 절대 환영할 리 없다. 지금 앨라배마에서 운영 중인 현대제철 현지 공장에도 고로는 없다. 강판을 자르고 성형하는 공정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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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플레 감축법 때문에 현대차는

전기차 공장의 2025년 완공 일정을 앞당길 생각이다

출처-<경향신문>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미국민만 놓고 보면 말갛게 착해 보이던 미국의 속내가 보호무역주의로 회색빛이 되더니 이젠 아예 새까매졌다. 미국 국민에게는 착한 법이지만 미국을 제외한 나라의 국민들에게는 아주 못된 법이다.

 

미국 국내법인데 자기 이익을 위해 이 정도 법도 못 만드나 반문하고 싶겠지만 그래서 안 된다. 지금의 세계 경제 질서를 앞장서서 만들었던 게 미국이고 기후 위기로 가는 길에 '풍요'라는 깃발을 들고 앞장을 섰던 것도 미국이었다. 미국의 책임은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크다.

 

중국을 세계 공장으로 만든 것도, 석유 때문에 중동을 화약고로 만든 것도 화석 연료를 흥청망청 써 대던 미국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미국이 어쩌다 보니 그런 게 아니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꿈꾸며 세계를 경영하겠다고 미국이 총과 달러로 대놓고 힘 자랑을 하고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을 줄을 세운 결과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그러니 이 법은 지구와 세계 시민, 지구 위의 온갖 생명들의 안위를 생각하며, 자기 뒤로 열을 세우는 게 아니라 어깨를 걸고 함께 대오를 만드는, 모두에게 좋은 법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그게 미국이 할 일이다. 세상일을 무 자르듯 흑백, 옳고 그름으로 가를 수 없고, 세상에는 회색지대가 가장 넓다고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정말 짜증 나는 건, 미국과 중국이 피 터지게 싸우고 있고, 어디에도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일본은 군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려 발버둥 치고, 러시아는 독일로 보내는 가스관 밸브를 잠그고 하루에 천만 달러에 달하는 가스를 태우며 이산화탄소를 뿜어 대고 있는데, 우리 대통령은 상품권 금액도 헤아리지 못해 인견 이불조차 사지 못하는 대통령이라니… 속에서 불이 나서 내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량이 두 배는 많아진 듯하다.